세계 문해의 날 기념 영화 콘서트  차례로 사회자 정용시, 김인숙 전국문해기초교육협의회 대표, 유성상 서울대학교 교수, 한지애 활동가

▲ 세계 문해의 날 기념 영화 콘서트 차례로 사회자 정용시, 김인숙 전국문해기초교육협의회 대표, 유성상 서울대학교 교수, 한지애 활동가 ⓒ 김예지


'나의 언어의 한계가 나의 세계의 한계다.'

언어철학자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Ludwig Josef Johann Wittgenstein)의 말이다. 사회에는 글자와 숫자를 몰라 너무도 작은 세계에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문맹자들'(비문해자)이다. 전 세계 비문해 인구는 약 7억 5800만 명. 전체 인구 중 15%에 해당하는 숫자다. 유네스코(UNESCO)는 비문해자에게 문해 교육, 즉 읽고 쓰고 셈하는 능력을 교육하여 더 넓은 세상에 살 수 있도록 하는 데 힘쓰고 있다. 지난 9월 8일은 유네스코가 제정한 '세계 문해의 날'이었다.

세계 문해의 날을 기념하여 한국에서도 아주 특별한 콘서트가 열렸다. 신촌 필름포럼에서 열린 '2017 세계 문해의 날 기념 영화 콘서트'다. 행사는 유네스코한국위원회가 주최,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의 후원으로 진행되었다. 관객은 약 80여 명이 참여했다.

1부는 영화 <퍼스트 그레이더>(The First Grader, 2011) 상영, 2부는 토크콘서트 '영화로 문해를 읽다' 순서로 진행되었다.

영화 <퍼스트 그레이더>는 84세에 처음으로 글을 배우기 위해 학교를 간 아프리카 케냐의 '마루게' 할아버지의 실화를 그린 작품이다. 마루게는 무상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방송을 듣고 학교를 찾아간 유일한 어른이었다. 그는 어린 아이들 사이에서 불편한 몸을 이끌고 글을 배웠다. 부족 간 갈등, 세대 간 갈등 등 그에게는 학업을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이 연속하여 찾아왔지만 스승 제인에 의지해 죽기 전까지 배움을 지속했다. '동그라미 옆에 꼬리'가 a 라는 것을 배운 순간, 그에게는 새로운 세계가 열렸기 때문이다. 글을 몰랐을 시절 그에게 편지는 자물쇠 없이도 굳게 잠겨 있었고, 삶은 독립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수감·고문을 당한 후 엉망이 된 몸과 마음을 견뎌야 하는 시간이었다.

교육은 그가 늘 품고 있던 편지의 내용을 알게 해주었다. 나아가 수의사라는 꿈을 꿀 수 있는 삶을 선물했다.

 영화 <퍼스트 그레이더>의 한 장면

영화 <퍼스트 그레이더>의 한 장면 ⓒ 골든타이드픽처스


영화관에 불이 켜지고 의자가 들어왔다. 오늘의 사회자 정용시 유네스코한국위원회 개발협력팀장이 인사했다. 이어 국내외에서 제 2, 제 3의 마루게 할아버지를 양성하기 위해 힘쓰는 세 명의 명사들이 차례로 등장했다. 처음 자리를 빛낸 이는 김인숙 전국문해기초교육협의회 대표. 두 번째로는 유성상 서울대학교 교육학과 교수가 입장했다. 한지애 전 유네스코 브릿지 아프리카 현장활동가의 등장을 끝으로 제 2부 토크콘서트가 시작되었다.

유 교수는 전 세계 비문해 인구가 7억 5800만 명에 이르며, 특히나 50대에서 80대 여성의 비문해자 비율이 높다고 이야기했다. 김 대표는 문해가 제도화된 지 10년여가 흐른 지금도 약 80%의 문해 교육이 기관의 후원이나 자원봉사에 의존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그들은 비문해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문화적인 문제로, 국가적 차원, 세계적 차원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점을 반복적으로 강조했다.

한지애 활동가는 아프리카에서 활동을 하며 만난 비문해자들의 이야기를 전했다. 그들이 문자를 배우고 싶은 이유는 버스정류장에서 노선도를 보아도 자신이 가고 싶은 정거장을 못 찾아서, 시장에서 장을 볼 때 돈이 얼마나 필요한지 가늠을 할 수 없어서 등이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해왔던 것들이지만 비문해자들에겐 전혀 쉽지 않은 일들이었던 것이다. 김 대표도 자신의 한 학생이 이번 투표 때는 대통령의 이름이 또렷이 보였다며 굉장히 좋아했다는 이야기를 하며 공감했다.

콘서트가 끝나기 전 관객들에게 행사 참여 소감과 질문을 들어보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많은 관객들이 말을 하기 위해 손을 들었다. 게스트들만큼이나 교육에 관심이 높은 사람들이었다. 행사를 위해 멀리 대전에서 올라온 대전외국어고등학교 유네스코 동아리 학생들, 현재 '국경 없는 의사회'에서 일을 하고 있는 활동가, 할머니들께 문해 교육을 진행하는 교사 등 관객들의 말에도 진지함과 열정이 묻어났다.

영화 <퍼스트 그레이더>의 마루게에게는 제인이라는 좋은 스승이 있었다. 그녀는 그에게 단순히 문자를 가르쳐준 것이 아니었다. 또렷이 마주할 수 있는 세상, 그 세상을 사는 데 이정표가 되어줄 꿈을 선물해주었다. 늦은 나이에 배움에 도전한 마루게 만큼이나 어쩌면 더 대단한 이는 제인일지도 모른다.

10시가 넘은 시각, 콘서트장을 나섰다. 캄캄한 밤하늘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세계에는 아직 마루게가 되지 못한 사람들을 많다. 눈앞에 펼쳐진 하늘이 낮이고 밤이고 이렇게 캄캄한 사람들.

우리도 제인이 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후원 문의
전화 1800 – 9971
이메일 peace@unesco.or.kr
세계문해의날 유네스코 영화콘서트 문맹 퍼스트그레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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