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 쪼개듣기'는 한국 대중음악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내는 코너입니다. 화제작 리뷰, 업계 동향 등 다채로운 내용을 전하겠습니다. [편집자말]
최근 서태지가 데뷔 25주년 공연을 성황리에 끝마쳤다. 쏟아지는 행사 기사를 접하면서  "문화대통령"이라는 칭송을 들으며 다양한 음악활동을 펼쳤던 그의 지난날이 불현듯 떠올랐다.

특히 가장 큰 성공과 사회적 영향력을 보였던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엔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남기기도 했던, 이른바 '시대의 아이콘'과 같은 존재였다.

지금에 와선 그저 과거 기억으로 치부하고 넘겨버릴 수 있겠지만 1995년 서태지와 아이들 4집 수록곡 '시대유감'을 둘러싼 검열 (음반 사전심의제도) 논쟁도 그 중 하나였다. 

'시대유감' 가사 논란... 1996년 사전 심의제도 폐지의 기폭제 

 서태지와 아이들 해산 이후 1996년 가사가 포함된 보컬버전으로 뒤늦게 발매된 '시대유감' 싱글 음반. 심의 문제로 인해 처음엔 연주곡 버전만 1995년 4집에 수록되었다.

서태지와 아이들 해산 이후 1996년 가사가 포함된 보컬버전으로 뒤늦게 발매된 '시대유감' 싱글 음반. 심의 문제로 인해 처음엔 연주곡 버전만 1995년 4집에 수록되었다. ⓒ 반도음반


그 무렵 음반 심의 과정에서 가사 내용을 지적받자 서태지 측에선 이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아예 보컬 부분을 제외한 연주곡으로만 이 곡을 담고 발매하기도 했다.

이 일은 심의제도 철폐를 위해 앞장섰던 정태춘 등 선배가수들의 고초와 맞물리며 가요계를 넘어 정치권으로 번지며 사전 심의 제도에 대한 논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1996년까지 존재했던 공연윤리위원회 음반 심의제도는 국내에서 상업적으로 발매되는 가요·팝·클래식 등 모든 음반에 대해서 일괄적으로 국가 기관이 그 내용을 심사, 발매 적격 여부를 결정하는 전근대적인 제도 중 하나였다. 극소수의 심의위원이 자의적인 판단, 기준에 따라 예술가가 피 땀흘려 만든 작업물을 난도질하는 것과 다름 없었다.

결국 각고의 노력 끝에 1995년말 해당 제도 폐지와 관련된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고 이듬해 1996년 6월 7일자로 정식으로 폐지되었다. 같은 해 10월 31일 헌법제판소는 음반 사전심의 제도에 대해 위헌을 결정, 지난 1909년 일제가 시행한 '출판법' 도입 이래 무려 87년 가까이 지속된 검열의 족쇄는 소멸되었다.

[가요] 정권 수호 차원으로 악용된 사전 검열

 양희은의 1971년 1집 음반 (2011년 CD 재발매반) 표지. 대표곡 '아침이슬'이 금지곡 처분을 받고 판매금지 되었다가 1987년이 되서야 해금조치됐다.
ⓒ 예전미디어

관련사진보기


이승만-박정희 정권 등을 거치면서 과거 정부 당국은  "금지곡" 처분, 발매 금지 등 지금으로선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심의를 시행했다.  특히 유신 체제의 전성기였던 1970년대엔 이러한 통제가 가장 극에 달했다.

자의적인 기준으로 진행된 심의를 통과하지 못한 사례는 부지기수였다. 당대 최고 인기 가수였던 이미자조차도 '동백아가씨', '섬마을 선생님' 등이 금지곡 처분을 당하는 수모를 피할 수 없었다.

특히 양희은, 김민기, 양병집, 한대수, 송창식 등 특히 1970년대 장발과 통기타로 대표되는 젊은 가수들의 작품들은 집중 검열의 대상이 되었다. 유신 체제를 수호하기 위해서 정부 당국은 자유, 저항의 기운이 조금이나마 담겨있다면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이유를 들며 창작 활동을 막아왔다. (퇴폐, 왜색 부터 창법 미숙, 불신허무감 조장 등)

양희은 '아침이슬',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 '작은 연못', '상록수', '늙은 군인의 노래' 등 (김민기 작품) / 한대수 '물좀주소', '행복의 나라' / 양병집 '타박네', '소낙비' / 송창식 '고래사냥', '왜 불러' / 이장희 '그건 너' / 김추자 '거짓말이야' / 신중현 '미인' 등 다수

 지난 2015년 발매된 한대수 40주년 기념 음반 표지.  그는 과거 유신 정권 당시 탄압받은 대표적인 음악인 중 한명이다.

지난 2015년 발매된 한대수 40주년 기념 음반 표지. 그는 과거 유신 정권 당시 탄압받은 대표적인 음악인 중 한명이다. ⓒ 유니버설뮤직코리아


처음엔 별 문제 없이 심의를 통과한 후에도 사후에 금지곡 처분, 음반 전량 수거 등의 횡포도 이어졌다. 비슷한 시기에 발생한 대마초 사건은  이에 좌절한 한대수, 양병집, 이장희 등은 활동을 중단하고 해외 이민을 택할 수 밖에 없었다. 

이후 1987년 6.29 선언 이후 조금씩 민주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이들 곡들과 음반들은 속속 해금 조치를 받았고 오랜 세월 판매 금지되었던 양희은, 김민기의 음반들이 같은해 뒤늦게 재발매 되었다.

작사·작곡가가 6.25 전쟁 당시 월북을 했다는 이유로 금지 처분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이를 피하기 위해 고운봉의 대표곡 '선창'처럼 부득히 창작자의 이름을 속여 기재하기도 했다.

이와 별개로 표절 판정을 받은 곡 역시 금지곡 처분을 내리기도 했다. 간혹 인터넷 상에선 표절 금지곡 처분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종종 발견할 수 있지만 표절은 저작권+당사자간의 문제로 풀어야할 '민사'의 영역이기 때문에 이를 제3자가 자의적인 판단으로 발매 금지 등을 정하는 건 엄연히 월권 행위이다.

패티김 '사랑하는 마리아', 김수희 '정거장' 등은 그 무렵 이런 사유로 한때 금지곡 처분을 받았었고 김수철 '나도야 간다'처럼 드물게 가사 표절 판정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물론 지금은 모두 해금 조치된지 오래다.

[해외 팝] 외설, 폭력 사유로 걸작 음반 다수 난도질

 핑크 플로이드의 걸작 음반 < The Wall > (2011년 리마스터링 버전) 표지.  비인간적인 교육, 사회 제도 등을 비판한 작품으로 1980년대 5공 시절 'Another Brick In The Wall' 등 수록곡 대부분이 금지곡 처분을 받았다

핑크 플로이드의 걸작 음반 < The Wall > (2011년 리마스터링 버전) 표지. 비인간적인 교육, 사회 제도 등을 비판한 작품으로 1980년대 5공 시절 'Another Brick In The Wall' 등 수록곡 대부분이 금지곡 처분을 받았다 ⓒ 소니뮤직코리아


영어 등 외국어를 사용한 해외 음반도 과거 사전 심의의 칼날을 피하진 못했다.  보통 외설, 마약 관련, 폭력적인 가사 내용이라는 이유가 주류를 이뤘다. 비틀즈, 밥 딜런, 퀸, 레드 제플린, 딥 퍼플, 핑크 플로이드 등 어지간한 팀들은 기본적으로 국내 금지곡이 다수 존재했다.

밥 딜런 'Blowing In The Wind', 'Masters Of War' 외 다수
핑크 플로이드 'Another Brick In The Wall', 'Us and Them' 외 다수
퀸 'Bohemian Rapsody', 'Killer Queen', 'Another One Bites The Dust' 외 다수
비틀즈 'A Day In The Life', 'Lucy In The Sky with Diamond', 'Revolution'외 다수
유튜 'Bullet the Blue Sky', 'Running to Stand Still', 'Red Hill Mining Town'
딥 퍼플 'Child In Time', 도어즈 'The End' 등
버드 'The Drugs Don't Work'.  스매싱 펌킨스 'X.Y.U', 'Fuck You(An Ode to No One)'

심지어 음반 표지 역시 비슷한 이유로 해외와는 전혀 다른 사진으로 교체, 판매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비틀즈의 명반 <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는 마약-히피 문화의 영향을 받은 표지가 검정색이 칠해진 채 1977년 지각 발매되었고 표지 모델의 노출 문제 등으로 논란을 빚은 스콜피온스의 음반 다수는 다른 사진으로 대체됐다.

 앨리스 쿠퍼의 히트곡 모음집 표지.  오지 오스본과 더불어 공연 무대에서 괴기, 공포를 연출하는 이른바 '쇼크 록'의 대부로 불리운 그의 작품들은 1980년대 한국에선 정식으로 접할 수 없었다.

앨리스 쿠퍼의 히트곡 모음집 표지. 오지 오스본과 더불어 공연 무대에서 괴기, 공포를 연출하는 이른바 '쇼크 록'의 대부로 불리운 그의 작품들은 1980년대 한국에선 정식으로 접할 수 없었다. ⓒ 워너뮤직코리아


특히 공격적인 성향을 담은 헤비메탈 음반들은 사전 심의에서 살아남는 경우가 드물었다.  198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오지 오스본, 앨리스 쿠퍼, 아이언 메이든, 주다스 프리스트 같은 헤비메탈 음악인·그룹의 음반은 정상적으로 국내 발매가 이뤄지지 못했고 수년이 지나서야 몇몇 수록곡을 삭제한 채 지각 발매되는게 다반사였다.

이렇다보니 1980년대 LP 시절엔 청계천 등지의 음반 가게에서 불법 복제된 음반(소위 "빽판")들이 판매됐고 길거리 좌판 리어카에서 취급하던 불법 카세트 테이프 중에선 금지곡/음반들도 심심찮게 접할 수 있었다.

1990년대 들어선 힙합, 모던 록 등 다양한 장르의 음반들의 희생양이 되었다. 레드 핫 칠리 페퍼스 < Blood Sugar Sex Magik >, 엘엘 쿨 제이 < Mama Said Knock You Out > 등은 절반 가까운 수록곡들을 덜어내고 발매됐다.

간혹 익스트림, 더 버브 등 몇몇 해외 음악인들은 이런 식의 한국 내 발매를 거절하기도 해 음악팬들은 서울, 부산 등지의 수입 음반 전문점에서 비싼 금액 치르고 CD를 구매하는 고충을 겪기도 했다.

덧붙이는 글 필자의 블로그 http://blog.naver.com/jazzkid 에도 수록되는 글 입니다.
케이팝 쪼개듣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