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헝거>의 스틸 이미지 및 포스터.

ⓒ 오드(AUD)


'비폭력 저항이냐 폭력 투쟁이냐.'

1955년 12월 1일, 흑인 여성 로자 파크스는 버스에 올랐다. 당시 버스는 백인 좌석과 유색인 좌석이 나뉘어 있었다. 로자가 탄 버스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유색인 좌석 맨 앞줄에 앉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버스가 만석이 됐다. 뒤늦게 탄 백인 몇 명이 서 있게 됐다. 이를 본 운전기사가 로자를 비롯한 몇 명의 흑인들에게 일어나라고 요구했다. 로자는 이를 거부하며 분개했다. 그 결과, 그녀는 '흑백 인종분리법' 위반으로 체포됐다.

노예제도는 1865년에 공식적으로 종식됐다. 하지만 제도가 바뀐다고 세상이 전부 변하진 않듯이, 인종차별도 쉽게 없어지지 않았다. 물리적인 굴레만 없을 뿐, 차별은 여전했으며 오히려 그 방식은 더욱 교묘해졌다. 1960년대의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로자는 범법자가 됐다.

그러나 로자의 체포는 새로운 분기점이 됐다. 그동안 차별에 억눌려왔던 흑인들은 자신들의 주체성을 찾기 위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고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외치기 시작했다. 마틴 루서 킹도 그중 하나였다.

마틴 루서 킹은 보스턴 대학에서 신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앨라배마 주의 몽고 메리 교회에 부임했다. 그곳에서 그는, 로자 사건 이후 버스 보이콧 운동을 비폭력 전술로 이끌며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이후 본격적으로 온건한 방식으로 흑인 인권운동을 진행하며 흑인뿐만 아니라, 차별에 반대하는 미국, 특히 백인 사회로부터도 지지를 받았으며, 인종 차별 해소에서 많은 진전을 이뤘다. 흑인들의 참정권을 요구하며 1.5마일을 걸었던 '셀마 행진'은 대표적인 사례다. 그 공로로 그는 1964년에는 노벨 평화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마틴 루서 킹과 함께 1960년대 흑인인권운동을 상징하는 인물인 말콤X에 대한 세간의 인식은 마틴의 그것과는 달랐다. 말콤 또한 언제나 흑인의 인권투쟁에 앞장선 인물이었다. 그러나 둘은 흑인의 천부인권 확보라는 대의는 공유했으나, 그 노선과 방법론에서는 큰 차이를 보였다. 온건주의 노선을 택한 마틴과는 달리, 말콤은 급진적인 방식을 택했다. 백인들을 '악마'로 칭한 그의 발언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 결과 대부분의 미국 사회는 말콤의 폭력 투쟁에 부정적 시선을 보냈다. 마틴이 '미국의 간디'라는 상찬을 들을 때, 그는 '증오에 찬 선동가'가됐다.

왜 말콤X는 급진적인 방식을 택했을까? 왜 폭력 투쟁을 할 수밖에 없었을까? 사회로부터 배제되면서까지 말이다. 여기 말콤을 대신하여 하나의 답을 제시하는 영화가 있다. 영국으로부터의 완전 독립을 주장해온 무장조직 아일랜드 공화국군(아래 IRA)의 이야기를 다룬 <헝거>가 바로 그것이다.

폭력을 택할 수 밖에 없었던 보비 샌즈

 영화 <헝거>의 스틸 이미지 및 포스터.

ⓒ 오드(AUD)


영화는 북아일랜드의 수도 벨파스트에 있는 메이즈 교도소를 배경으로 진행된다. 이곳에 수용된 IRA 조직원들은 조직의 핵심인물인 보비 샌즈를 중심으로 영국으로부터의 완전 독립을 목표로 투쟁을 벌인다. 영국 공수부대의 실탄 발사에 맞섰다는 이유로 14년 형을 선고 받은 보비 샌즈는, 조직원들과 함께 죄수복 착용과 샤워를 거부하며 급진주의 노선을 이어간다. 그러나 마거릿 대처 총리를 필두로 하는 영국 사회는 IRA와의 대화를 거부한다. 결국 이에 대항하여 보비 샌즈는 죽음을 각오한 단식 투쟁을 선택하게 된다.

영화와 실존 인물인 보비 샌즈를 연기한 마이클 패스벤더는 이러한 투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마이클 패스벤더는 역할을 위해 14kg을 감량했고, 전라 연기까지 불사하며 역사를 재현했다. 하지만 영화의 정수는 IRA의 저항 장면보다는 다른 곳에 있다. 바로 보비 샌즈와 모란 신부의 대화이다.

장장 16분간의 대화는 마치 실제 대화인 것처럼 편집 없이 보인다. 고향에 대한 얘기 등의 잡담으로 시작한 대화는 곧이어 보비 샌즈의 목숨까지 내던진 극한투쟁에 대한 논쟁으로 이어진다. 특히 모란 신부는 극단적인 단식의 위험성과 그 확산 가능성을 경계하며 우려를 표한다. 그리고 보비 샌즈에게 다음과 같이 묻는다. "자네 제정신인가? 꼭 그렇게 해야만 하는 이유가 뭔가?" 이에 보비 샌즈는 다음과 같은 취지로 말한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저는 목숨을 겁니다."

말콤X, 보비 샌즈 그리고 세상의 급진주의자들

 영화 <헝거>의 스틸 이미지 및 포스터.

ⓒ 오드(AUD)


보비 샌즈의 대답은 마치 말콤X의 말처럼 느껴진다. 왜 그럴까? 앞서 말했듯이 말콤X는마틴 루서 킹과 함께 흑인 인권 신장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가졌다. 하지만 그것을 성취하는 방법에서 전혀 다른 생각을 가졌고, 그에 따라 그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 또한 달랐다. 말콤이 마틴과 달리 비폭력 시위를 별 소용이 없다고 바라본 이유는 그들의 상이한 가정환경에서 비롯된다.

마틴 루서 킹은 미국 남부의 유복한 중산층 가정에서 자랐고, 백인들을 이웃으로 받아들이며 커왔다. 반면 말콤X는 북부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뉴욕 할렘을 전전했다. 마틴과 달리 폭력적이고 잔인한 흑백 인종차별을 일상에서 겪은말콤은, 백인을 이웃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의 삶 속에서 백인은, 대부분 나와 가족의 목숨을 위협하는 적이었다. 폭력에 폭력으로 대응하는 것이 그가 살아남는 방법이었다. 심지어 말콤은 백인우월주의 집단인 KKK에 의해 집이 불타고 아버지를 잃기도 했다. 이런 그에게 "너는 왜 마틴처럼 평화적으로 운동을 하지 않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말콤의 삶을 고려했을 때, 그건 일종의 폭력이 될 수 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으니, 목숨을 건다는 보비 샌즈의 말이 말콤의말이기도 한 까닭이다.

그리고 보비 샌즈의 말은 오늘날의 급진주의자들의 말이기도 하다. 2016년, 한 여성이 아무 이유 없이 목숨을 잃은 이후 페미니즘은 사회의 화두가 되었다. 여성인권 향상을 위해 지금도 많은 페미니스트가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그러나 때때로 일부 급진주의 페미니스트들의 과격한 언행을 이유로 페미니즘 자체가 욕을 먹기도 한다. 물론 실제 피해로 까지 연결될 수 있는 과격한 언행을 옳다고 볼 순 없다. 하지만 그들을 비판하기에 앞서 우리는 '그들은 왜 그렇게 말하고 했을까'에 대한 고민을 먼저 해야 한다.

2016년 5월 17일로부터 1년이 지난 현재, 여전히 여성들은 폭력적인 차별 앞에 서 있다. 남녀임금격차, 육아 부담 등 사회적 차별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심지어 물리적인 폭력 또한 여전하다. 왁싱숍을 운영하던 여성은 여자라는 이유로 목숨을 잃었다. 또 여자라는 이유로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로 살해 협박을 당하기도 했다. 이렇게 폭력이 실재하는 상황에서 급진주의 페미니스트들의 과격한 언행은 어찌 보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보비 샌즈와 말콤X처럼말이다.

그래서 영화 <헝거>가 보비 샌즈와 모란 신부의 대화 장면을 16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편집 없이 보여준 걸지도 모르겠다. 16분의 대화 이후 첫 번째 편집 점이, 보비 샌즈의 얼굴을 찬찬히 보여주는 장면이었던 것처럼, 말콤X와 급진주의자들의 얼굴, 즉 그들이 처한 상황을 찬찬히 살펴보라는 의도로 말이다.

 영화 <헝거>의 스틸 이미지 및 포스터.

ⓒ 오드(A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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