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싸움의 의미요? 전 기록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봐요. 암흑의 시기에 침묵하지 않았다는 것. 10여 년 가까운 기간 동안 싸운 사람들의 청춘과 인생이 다 날아갔지만 어쩔 수 없는 희생이라고 봐요. 저도 마찬가지고."

2008년부터 9년. 공영방송 정상화 투쟁을 지속하는 언론인들을 다룬 영화 <공범자들>의 엔딩은 이용마 기자에게 돌아갔다. <공범자들>의 감독 최승호는 기나긴 언론 정상화 투쟁을 다룬 영화 러닝타임의 마지막을 이용마에게 할애한다. 침묵하지 않았다는 것. 기록을 위해 자신의 청춘이 날아가도 '어쩔 수 없는 희생'이었다는 그의 말. 참 기자답다고 생각했다.

2016년 복막암 진단을 받은 이용마 기자는 <공범자들> 촬영 당시 전라북도 진안의 한 요양원에서 투병 중이었다. 그는 핼쑥하지만 반가운 얼굴로 최승호 감독을 맞는다. "6시에 일어나서 실내에서 할 수 있는 운동을 하고 10시 정도에 등산 가서 밥을 먹고 오후에 운동을 하고..."라면서 하루 일과를 빼곡하게 소개하던 그는 "최근에 글을 하나 쓰고 있다"며 말을 더 이어가지 않는다.

'무슨 글을 쓰는지' 최승호 감독이 묻자 이용마 기자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글쎄 이렇게 말하면 좀 그런데..."라면서 "아이들에게 줄 글을 쓰고 있다"며 문장을 더 이어가지 못하고 얼버무린다. 그리고 웃으면서 덧붙인다. "괜히 이야기를 해가지고 아이고"

이용마 전 MBC 기자와 김민식PD 이용마 해직기자는 현재 암투병 중이다.

영화 <공범자들> 속에 등장하는 이용마 전 MBC 기자와 김민식 피디. ⓒ (주)엣나인필름


난감해하는 이용마 기자를 비추던 영화는 시간을 순식간에 5년 전으로 돌린다. 지금보다 훨씬 몸집이 크고 얼굴에 살이 오른 5년 전의 이용마 기자가 보인다. 그는 김민식 MBC 드라마 피디와 서로 실없는 소리를 주고 받으며 구속영장 실질 심사를 받으러 서울남부지방법원으로 들어간다. 이내 관객들은 '영화가 끝났다'는 의미의 깜깜한 스크린을 마주한다.

"개인 문제 부각되면 안 돼"

최승호 감독은 <공범자들>의 엔딩을 이용마 기자로 끝낸 이유에 대해 "공영방송의 싸움을 상징하는 인물이라서"라고 말했다. "(공영방송 투쟁이) 승리하지 못했고 이용마 기자는 지금 아프다." 영화는 5년 전 건강했던 이용마 기자의 모습을 현재 이용마 기자의 모습과 같이 비추어 관객들의 가슴을 아프게 만든다.

최승호 감독의 말처럼 2016년 이용마 기자의 복막암 투병 사실이 알려지자 그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공영방송 투쟁을 하다가 '저렇게까지' 됐다"는 시선을 마주해야 했다. 아예 무관하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는 해고되기 전후로 자신이 15년 동안 일했던 회사 측으로부터 큰 압박을 받았다. 이용마 기자는 또 "바로 서는 언론을 보는 게 최고의 항암제"(한겨레)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자신의 상태에 대해 말하기를 아꼈다. 김종구 한겨레 논설위원 역시 이용마 기자의 복막암 투병 사실을 최초로 알린 칼럼에서 "애초 칼럼을 통해 암 투병 소식을 알리겠다고 했을 때 그가 우려한 것은 자신의 개인 문제가 너무 부각되는 점"이라고 적는다. 인터뷰 요청에도 "그간 온갖 억울함과 수모를 당했던 사람들이 말하기 시작했으니 내 사연 말고 그들을 다루는 게 좋지 않을까"(시사인)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한 번도 그렇게 살지 않았다"

 지난해 MBC 파업 당시 이용마 기자

2012년 MBC 총파업 파업 당시 이용마 기자. ⓒ MBC 노동조합


 MBC 정영하 위원장을 비롯한 강지웅 사무처장, 이용마 홍보국장, 장재훈 정책교섭국장, 김민식 부위원장이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MBC 사옥 '민주의 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구속영장청구에 대한 입장을 밝힌뒤 공영방송의 정상화와 김재철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MBC 정영하 위원장을 비롯한 강지웅 사무처장, 이용마 홍보국장, 장재훈 정책교섭국장, 김민식 부위원장이 2012년 MBC 170일 총파업 당시 서울 여의도 MBC 사옥 '민주의 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구속영장청구에 대한 입장을 밝힌뒤 공영방송의 정상화와 김재철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2012년 170일 총파업 당시 전국언론노동조합 MBC 본부 홍보국장이었던 그는 '사내 질서를 어지럽혔다'는 황당한 이유로 해고를 당했다. 그리고 병을 얻었다. 애초에 2012년 노조 집행부를 맡지 않았다면 지금 이용마는 괜찮았을까. 그는 '노조 집행부를 왜 맡았느냐'는 질문(시사인)에 "한 번도 그렇게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간 MBC에서 생활하며 많은 혜택을 입었는데 어려운 시기를 피해서 간다는 게 스스로 납득이 안 되었다"라며 "가겠다고 마음 먹고 보면 편해진다"라고 '홀가분한' 대답을 한다.

'한번도 그렇게 살지 않은' 사람이 총파업 기간 동안 치열하게 싸운다는 게 가능할까. 1996년 MBC에 입사한 이용마 기자는 기자로서 끈질기게 권력을 비판한 기자였다. 이용마 기자가 노조 홍보국장을 하던 무렵 그와 함께 노조를 이끈 정영하 전 노조위원장은 "MBC가 훌륭한 기자를 데리고 있었다. 취미도 없고 오로지 세상사 돌아가는 것에만 관심이 있으면서 스스로 일을 알아서 하니 얼마나 좋으냐"고 이용마 기자를 평가한다. 특히 그는 '삼성'을 잡고 놓지 않았다.

이용마 기자는 "삼성 관련된 기사가 심지어 MBC에서도 자꾸 빠져서 보도국 게시판에 '삼성공화국'이란 제목의 글을 올려서 비판했다가 편집부장에게 불려가 실랑이를 했다"고 말한다. 그는 그 뒤 얼마 되지 않아 라디오뉴스 편집부로 쫓겨난다. "그 때 편집부장이 이명박 정부에서 보도국장, 보도본부장을 하면서 뉴스를 망가뜨린 주범"이라고 이용마 기자는 말한다.

왜 그렇게 집요하게 삼성을 따라다녔느냐는 질문에 정작 이용마 기자는 담담하게 "처음에는 경제부 기자여서 썼고 그 후 금융팀에 있으니 썼고 그 후 삼성 불법 상속 문제가 검찰에 고발되었을 때는 내가 또 검찰 출입이라서 (썼다)"고 한다. 그는 "기자로서 대한민국 정부 부처를 두루 돌았는데 그 경험 속에서 깨달은 건 대한민국 핵심 부처가 모두 삼성에 장악돼있다는 거였다.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게 겉으로 보면 정치 권력 같지만 실질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삼성의 힘"(한겨레)이라고 진술한다. 그는 정말 "한 번도 그렇게 살지 않은 것"일까.

 김진혁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제작한 영화 <7년>에 등장하는 이용마 해직 기자의 모습.

김진혁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제작한 영화 <7년>에 등장하는 이용마 해직 기자의 모습. ⓒ 인디플러그


 4일 오후 여의도공원에서 열린 방송사 공동파업 시민문화제 '여의도의 눈물'에서 개그콘서트 '용감한 녀석들'로 분장한 KBS 37기 노조원들이 KBS에서 해직된 최경영 기자(새노조 공정방송추진위 간사)와 MBC에서 해직된 이용마 기자(노조 홍보국장)를 소개하고 있다.

2012년 5월 4일 오후 여의도공원에서 열린 방송사 공동파업 시민문화제 '여의도의 눈물'에서 개그콘서트 '용감한 녀석들'로 분장한 KBS 37기 노조원들이 KBS에서 해직된 최경영 기자(새노조 공정방송추진위 간사)와 MBC에서 해직된 이용마 기자(노조 홍보국장)를 소개하고 있다. ⓒ 권우성


이용마 기자는 자신이 기자 시절 취재했던 '삼성'을 비롯한 재벌 문제에 아직까지 관심을 놓지 않고 있다. 그는 이재용이 징역 5년을 받던 지난 25일 개인 SNS 계정에 "이재용에 대한 실형선고. 이건 이건희 회장이 남긴 유산이다"라는 문장을 시작으로 뇌물 액수나 형량이 너무 적은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취지의 글을 남긴다.

공영방송 정상화에 대해서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작년 10월 '2016 자유언론실천 시민선언'을 한다며 언론계 선후배 기자들에게 적는 편지에서 "개인 사정으로 자리를 함께 하지 못하지만 현직 언론인들이 선배들이 했던 것처럼 다시 일어서기를 기대한다"고 언론의 정상화를 외쳤다. 그는 현재도 공영방송 투쟁을 위해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싸우고 있다. 이용마 기자와 막역한 사이인 김민식 피디는 "나는 늘 이용마와 같이 싸우고 있다"고 말한다.

김 피디는 "('김장겸은 물러나라' 페북 라이브로) 인사위에 가면서도 이용마의 사진을 본다든지 그의 글을 읽는다. 용마가 나를 대신할 수 없기 때문에 '지금 용마의 생각은 뭘까?'라고 용마에 빙의해서 싸운다는 느낌으로 그를 생각한다"고 고백했다. 그는 "사실 인사위에 참석하는 건 두렵다. 열 명이나 되는 임원들이 한 사람을 둘러싼다고 생각해보라"라면서 "그럼에도 이용마를 생각하면 호락호락하게 '아 예 죄송합니다'라고 꼬리를 말고 내려올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용마 기자는 그가 의도하든 아니든 여전히 총파업의 큰 '동력'이 되고 있다. MBC 노조 조합원들은 시위에서 보이는 이용마 기자의 영상을 통해 파업의 이유를 찾는다.

이용마 기자는 8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2017년 총파업 상황에 대해 "전반적으로 조합원들의 분위기가 고조돼있고 주변 국민들의 지지도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이라며 "적어도 최소한 방문진 이사진이 교체가 되는 선까지는 가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또 이용마 기자는 "유의선 (방문진) 이사가 사퇴를 했는데 나머지 이사들은 절대로 물러나지 않겠다고 하는 모양이다. 이 사람들은 2012년에도 MBC 망가질 때 방조하거나 망가지도록 재촉했던 당사자들이다"라며 "MBC에 대한 관리 감독 의무를 철저히 저버렸고 그렇기에 어떻게든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암투병 중인 이용마 MBC 해직기자 암투병 중인 이용마 MBC 해직기자가 1일 오후 전북 진안군 성수면 푸른건강촌에서 요양 중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암투병 중인 이용마 MBC 해직기자가 지난 6월1일 오후 전북 진안군 성수면 푸른건강촌에서 요양 중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이정민


이용마 기자의 쾌유를 기원하며

이용마 기자는 지난 6월 <오마이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권력에 대한 날 세운 비판은 많이 한 것 같은데 사회적 약자들을 대변한 건 부족했던 것 같다"고 자신의 기자 생활을 진단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것은 굉장한 한계"라고 말했다.(관련기사 망가진 MBC, 미래가 있을까? 투병중인 해직기자 이용마에게 묻다)

그는 8일  "지금 생각하고 있는 건 '노동 문제'"라며 "한국 사람들은 왜 일을 하면서 시간당 임금을 적게 받아야 하나. 또 우리는 왜 세계 최장시간 노동을 하면서도 먹고 살기 힘들다고 하는지를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과거부터 새벽별보기 운동을 하면서 외화 벌이를 했고 지금도 하고 있는데 과연 왜 지금 우리 생활이 나아진 게 없는지부터 시작할 것이다."

그는 과거 쟁의 사업장으로 이슈가 됐던 한진중공업과 유성 기업, 한진해운 등을 언급하면서 "지금 언론에서 조명 받고 있지 못하지만 이런 문제들이 발생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를 찾아서 비춰보고 싶다"고 말했다.

 과거 MBC 이용마 전 기자가 했던 리포트들.

과거 MBC 이용마 전 기자가 했던 리포트들. ⓒ MBC


암투병 중인 이용마 MBC 해직기자 암투병 중인 이용마 MBC 해직기자가 1일 오후 전북 진안군 성수면 푸른건강촌에서 미소를 짓고 있다.

▲ 암투병 중인 이용마 MBC 해직기자 ⓒ 이정민


"MBC 뉴스 이용맙니다." 언젠가 언론 정상화가 되는 그날 상암동 MBC 사옥 옆을 지나가다가 스피커에서 익숙한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기를 바란다. "이용마 기자는 심지가 곧고 주관이 뚜렷해 이성적인 진단을 한다"고 정영하 전 위원장이 평가한 대로 이용마의 '이성적인 진단'이 담긴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리포트를 하루 빨리 보고 싶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전동건 MBC 기자는 "우리는 졌고 용마는 해직언론인이 됐지만 지난 5년 동안 나는 새로운 세상이 오고 다시 뉴스를 하게 될 때 이용마가 MBC <뉴스데스크> 앵커가 됐으면 하는 꿈을 꾸고 있었다"(한국기자협회보)고 말한다. 전동건 기자가 말하는 대로 이용마 기자가 빨리 완쾌해 MBC가 정상화되는 그날 리포트든 앵커든 조합원들과 함께 새로운 뉴스를 만들게 되기를 바란다.

그는 공영방송 정상화 투쟁의 의미를 '기록'에서 찾았다. 그가 정상화된 새로운 <뉴스데스크>에서 이 투쟁을 스스로 기록할 수 있게 되기를 또 한 번 바란다.

암투병 중인 이용마 MBC 해직기자 암투병 중인 이용마 MBC 해직기자가 1일 오후 전북 진안군 성수면 푸른건강촌에서 요양 중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용마 기자의 쾌유를 기원하며. ⓒ 이정민



이용마 MBC 뉴스데스크 MBC 총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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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23년차 직원. 시민기자들과 일 벌이는 걸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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