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오후 서울 건대입구 롯데시네마에서 진행된 영화 <아이 캔 스피크> 언론시사회 후 진행된 기자단감회 사진.

지난 6일 오후 서울 건대입구 롯데시네마에서 진행된 영화 <아이 캔 스피크> 언론시사회에 참석한 배우 이제훈, 나문희, 그리고 김현석 감독(왼쪽부터) ⓒ 플래닛


영화 <아이 캔 스피크>의 시작은 코미디의 탈을 쓴 작은 소동극이었다. 동네 터줏대감 옥분(나문희)은 매일 빠지지 않고 구청에 크고 작은 불법을 신고하는 열혈 민원인이다. 모든 구청 직원들은 그가 구청 건물에 들어설 때마다 공포에 떨고, 저마다 이유를 대며 회피하기 일쑤다.

그런 옥분의 앞에 9급 공무원 민재(이제훈)가 나타난다. 다른 동네에서 전근 온 민재는 모든 걸 절차와 원칙대로 처리하는 원칙주의자다. 영화 초반부까진 기를 쓰고 온갖 민원을 넣는 옥분과 그를 전담하는 민재의 옥신각신이 이어지고, 그 후 둘 사이 어떤 극적 사건이 일어날지 짐짓 궁금증이 들게 한다.

허를 찌르는 후반부

 영화 <아이 캔 스피크> 관련 사진.

옥분은 민재에게 영어를 가르쳐달라면서도 정작 그 이유에 대해선 정확히 말하지 않는다. ⓒ 명필름


<아이 캔 스피크>는 추석 대목을 노린 상업영화다. 이 사실을 떠올리면 분명 어떤 훈훈한 감동 코드나 크게 웃고 자지러질 내용을 예상하기 마련이다. 옥분이 민재에게 영어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벌어지는 전개 또한 우리 이웃 간 쉽게 볼 수 있는 해프닝들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부족하다. 분명, 분명히 어떤 한 방이 있을 거라 생각이 들기까지 영화의 전개 속도는 평균보다 다소 느려 어떤 불안함마저 든다.

영화 속 사건과 캐릭터들의 묘사가 소강상태에 빠져들 무렵 극적인 사건이 등장하는데 그게 참 예상외다. 피식거리며 웃던 관객들은 이 지점에서 적잖이 당황할 수도 있다. 민원왕 옥분의 숨은 과거가 드러나며 서로 대치하거나 맞붙던 캐릭터들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꼬장꼬장하면서도 잔정이 많던 옥분은 다름 아닌 일제강점기 일본군에 의해 위안부로 끌려간 피해자 중 한 명이었다.

홍보 과정에서 이 부분을 숨겨오긴 했지만 이 영화가 4년 전 CJ 문화재단 '위안부 피해자 시나리오 공모전'의 당선작이었다는 사실을 알면 일부 예상할 수 있는 지점이긴 했다. 다만 위안부 피해자를 다룬 뭇 영화와 그 문법이 상당히 다를 뿐이다.

사실 이는 메가폰을 잡은 김현석 감독의 장기이기도 하다. <Y MCA 야구단> <광식이 동생 광태> <시라노 연애 조작단> 등에서 소소한 가족용 코미디를 선보여 온 그는 야구를 소재로 한 코미디물 <스카우트>에 광주항쟁이라는 화두를 녹인 바 있다. 마냥 웃기고 끝나는 게 아닌 우리 사회 곳곳에 엄연히 존재하는 아픈 역사, 아픈 인물을 바라본 것이다.

그리고 풍자  

 영화 <아이 캔 스피크> 관련 사진.

가족 영화의 탈을 쓰고 영화는 묵직한 주제 의식을 품고 있다. ⓒ 명필름


아무 생각 없이 연인과 가족의 손을 잡고 극장 안에 들어섰다가 <아이 캔 스피크>가 끝나는 순간 십중팔구 눈물을 쏟을 거라 본다. 영화 제목이 바로 옥분의 바람이었고 그 바람이 어느 곳을 향해 있는지 중후반부에 드러나기에 한국 관객 입장에선 동화되지 않을 수 없다.

"처음 시나리오를 받고 읽다가 후반부를 보고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실제로 피해자 할머님들을 알아가면서 두려운 마음이 들더라. 피할 수 없는데 제 입장에선 앞부분과 뒷부분이 따로 놀지 않게 만드는 게 중요했다. 관객 분들은 편하게 보시다가 뒤통수를 맞는 거지. 우리 삶이 그렇잖나. 위안부 피해자 분들의 역사를 알수록 마음이 아프기에 애써 외면했을 수 있다. 옥분 주변 이웃들이 바로 우리들 자신이라 생각했다." (김현석 감독) 

피해자에 대해 무겁고 아프게 다가가지 않고 곁가지부터 파고 들어간 전략이다. 상업영화로는 나름 훌륭한 방법이 될 수 있다. 특히 워싱턴에서 열린 미 하원의회 공개 청문회 장면에서 수 분간 이어진 옥분의 연설이 이 영화의 백미 중 하나다. 2007년 2월 15일 이용수, 김군자 할머니 등이 참여했던 실제 사건이 모티브가 된 장면이다. 김현석 감독은 "그간 피해자 할머님들이 했던 말들을 모아 옥분의 연설문에 넣었다"고 밝혔다. 그러니까 옥분의 '스피킹'은 우리 현대사 이곳저곳에 퍼즐처럼 분산돼 있던 피해자 한 명 한 명의 목소리인 셈이다.

이 틈에 감독은 시나리오를 각색하면서 몇 가지 풍자를 넣었다. 이를 테면 집무실을 비우고 골프 치는 구청장을 통해 2014년 4월 16일 그날의 참사 당시 자리를 비운 박근혜를 투영했고, 여당의 부패한 정치인과 친분을 드러내는 구청장을 통해선 한국 양당제 정당정치의 모순을 조금이나마 담아내려 했다.

상업영화로서 여러 미덕이 많다. 다만 앞서 말한 대로 초반의 다소 느린 전개가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리고 층위를 달리하는 두세 가지 이야기가 여전히 따로 노는 감이 있다. 억지처럼 느껴지진 않지만 세련미는 좀 떨어진다.

한 줄 평 : 방심할수록 더 큰 울림을 얻을 작품
평점 : ★★★☆(3.5/5)

영화 <아이 캔 스피크> 관련 정보
감독 : 김현석
출연 : 나문희, 이제훈, 박철민, 염혜란, 성유빈, 이상희, 이지훈, 정연주
제공 : 리틀빅픽쳐스
제작 : 영화사 시선
공동제작 : 명필름, 에스크로드
배급 : 롯데엔터테인먼트, 리틀빅픽쳐스
러닝타임 : 119분
관람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개봉 : 2017년 9월 추석 연휴 예정


아이 캔 스피크 나문희 이제훈 위안부 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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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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