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인형인의 연극 <개처럼 순례하라: 초보 히치하이커를 위한 여행 안내서> 공연 사진. 서울 대학로 스튜디오76에서 개막한 연극 <개처럼 순례하라>는 실험 정신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오는 10월 29일까지.

ⓒ 한강아트컴퍼니


정말 독특한 연극이다. 바로 <개처럼 순례하라>(극단 인형인, 대학로 스튜디오 76, 10월 29일까지) 말이다. 공연 시작 전 비자 발급을 위해 내 생각을 간단히 적어내고, 공연에 개가 나오며, 내레이션과 연주 및 노래가 라이브로 진행된다.

배우들조차 어떤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몸짓을 보여준다. 아! 획기적이다. 특히 내레이션은 몽환적인데, 전체 흐름에 잘 어우러지며 초보 히치하이커를 위해 여행을 안내한다. 또한 주인공 개는 공연장 안팎에서 관객들을 호명하듯 종종 외친다, 짓는다.

연극은 '비연극적 시극& 클라우닝 코미디'라고 소개되어 있다. 대사가 없고 줄거리를 짐작할 수 없는 연극은 처음이었다. 연극 예술의 형식과 다양성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만들 정도였다. 그럼 과연 비연극적 시극, 클라우닝 코미디라는 표현은 무슨 뜻일까? 비연극적이란 일반적인 연극적 요소를 배제했다는 뜻일 거다. 시극이란 시를 활용한 극의 형태를 의미할 것이다. 클라우닝 코미디는 광대가 자아내듯 희화화 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둘을 합하면 연극적 요소가 없지만 운율이 있는 언어로 희화화한 광대의 극 정도로 정의된다.

무대에 개가 등장하는 자유 연극

 극단 인형인의 연극 <개처럼 순례하라: 초보 히치하이커를 위한 여행 안내서> 공연 사진. 서울 대학로 스튜디오76에서 개막한 연극 <개처럼 순례하라>는 실험 정신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오는 10월 29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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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은 총 7장으로 이뤄져 있다. 공연은 '제1장 De-Part : 줄이 끊어지면 사정없이 뛰쳐나가기'로 시작해서, '제7장 Gift : 누구를 만나든 주인으로 삼기'로 끝난다. 제2장부터 제6장까지는 ▲ 킁킁거리며 쏘다니기 ▲ 꽁지를 세우거나 내리거나 ▲ 뜨거운 물을 두려워 말기 ▲ 빈들에서 하울링하기 ▲ 고양이와 밥을 나누다이다. 극은 순례자의 나라 비자신청에서 비자발급 순으로 마무리 된다. 우선 관객들은 순례자의 나라로 들어가기 위한 비자신청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공연이 시작된다. 인물 셋과 개 한 마리가 나온다. 배경은 소설 『어린 왕자』와 같다. 여러 곳을 다니는 것이다.

제목에 나오는 '순례'는 '여러 곳을 찾아다니며 방문함'을 비유하는 뜻도 있지만 얼핏 보아서는 종교적 느낌이 강했다. 그래서인지 연극을 보기 전 난해하지는 않을까 겁부터 먹고 있었다. 순례가 아닌 '여행' 이라는 단어를 썼으면 연극이 더 가벼워 보이지 않았을까 생각을 했는데, 방문의 의미보다는 '도착과 가다'의 의미가 강한 순례가 한편으로는 더 어울릴 거란 생각이 연극을 보는 내내 들었다. 잠시 방문함을 뜻하는 순례를 통해 연극은 무엇을 말하려는지 생각을 해보았다.

제1장은 '줄이 끊어지면 사정없이 뛰쳐나가기'다. 인물들은 자유분방함을 보이듯 관객 앞에서 반갑게 인사를 했다. 그러다가 청소를 하거나, 낮잠을 자는 등 지루한 일상을 보인다. 와중에 개가 가끔 튀어나올 때면 인물들은 모든 순간을 잊고 공을 튀기며 즐겁게 논다. 그러다 개가 목줄을 벗어나 달아나버린다. 얽매였던 사슬에서 벗어난 것은 인간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순례를 시작한다.

여행과 같은 순례를 위해 준비할 것들

 극단 인형인의 연극 <개처럼 순례하라: 초보 히치하이커를 위한 여행 안내서> 공연 사진. 서울 대학로 스튜디오76에서 개막한 연극 <개처럼 순례하라>는 실험 정신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오는 10월 29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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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도구로는 늘어나는 밧줄과 다양한 표정의 가면 10여 개 그리고 행성들을 나타내는 탱탱 볼이 있다. 인물들은 개가 어느 행성으로 떠나버렸는지 모른다. 처음에는 무작정 탱탱 볼을 튀긴다. 그러면서 관객에게도 같이 튀기게끔 유도한다. 공 소리에 미칠 듯 반응하던 개는 그래도 나타나지 않는다. 어린 왕자가 장미의 시각으로 행성들을 여행하며 순수를 보였던 것처럼, 순수가 모르는 진실의 모습들에 가끔 순수는 괴로움을 당하게 된다.

극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가면'이었다. 인물들은 가면을 여러 번 바꿔 썼는데 그러면서 자신도 모르게 가면의 표정처럼 행동한다. 마녀처럼, 슬픈 이처럼, 분노한 이처럼, 유쾌한 이처럼. 세 명이 10여 개의 가면을 바꿔가며 역할 놀이를 했다. 어떤 가면을 쓰느냐에 따라, 배우들의 태도와 관객들의 심상이 달라졌다. 그렇다. 개가 아닌 사람이란 가면에 따라 바뀐다. 찡그리는, 소심한, 울먹이는, 주눅 든, 어벙한 얼굴의 가면들은 개처럼 떠돌지 못하는 우리 마음을 반영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인물들은 개처럼 누워 있기도 하고 엎드려 네 발로 걷기도 했다. 그러나 개가 사라진 곳을 알 수는 없었다.

연극이 끝날 때까지 개는 더 나오지 않았는데, 인물들은 개가 차고 있던 밧줄에 묶여 이리저리 뒹굴면서 그동안 개가 어떤 기분이었을까를 느낀다. 진정 개의 입장이 되어 개가 갈 법한 곳을 찾으려는 것인지. 말 그대로 그들은 '개'가 되려고 노력했다. 마지막에 그들은 어둠과 맞닥뜨린다. 그때 빛이 나온다. 빛은 그들이 걸어온 가면, 밧줄, 탱탱 볼들을 비춘다. 마치 먼 우주에서 보는 별들처럼 모든 것들이 아득해 보였다. 그들은 비로소 자유의 몸과 같았다.

공연 내내 내레이션과 국악이 나오기도 했지만, 나로서는 워낙 인물들의 몸짓과 표정이 강렬해 어떠한 해설이 나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데도 내레이터의 대사들은 분명 의미심장했다. 그대로 옮겨 적기엔 힘들지만, 여행과 순례, 만남과 떠남, 삶과 죽음 등을 다뤘던 것 같다. 내 안의 목소리와 스피커로 전달되는 내 밖의 음성이 배우들의 몸짓과 함께 만났다.
유목민의 탈주성을 가진 개의 몸짓

 극단 인형인의 연극 <개처럼 순례하라: 초보 히치하이커를 위한 여행 안내서> 공연 사진. 서울 대학로 스튜디오76에서 개막한 연극 <개처럼 순례하라>는 실험 정신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오는 10월 29일까지.

ⓒ 한강아트컴퍼니


연극의 취지가 유쾌하게 여행을 하라는 의도는 아닌 듯했다. 개를 얼마 보진 못했지만, 왠지 연극 내내 함께 있는 듯하여 그새 정이 들어버렸다. 인간이 일상적으로 떠나는 모습과 달리 그들은 그저 신났다. 지구를 포함해 온 행성이 그들의 순례길이었다. 그들은 방문하는 곳에서도 한결같이 천진난만함을 유지했다. 마지막에 관람객들은 순례자의 나라 비자를 발급받는다. 그리고 작은 빛도 받아 함께 어둠을 밝혀보았다. 우리의 본성이 아마 개처럼 천진난만함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극이 끝나고 규정이 가득한 외부로 나오니 나는 다시 체면을 차리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몸이 경직되어 있었다. 잠시 아무 생각 없이 몸을 축 늘리고 동화 같은 세계에 있었다는 것이 너무 좋았고, 그래서 연극의 그런 아련함이 여태껏 남아 있다.

극단 인형인은 입체적인 시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창의적인 관객 참여형 연극을 시도한다고 밝혔다. '개처럼 순례하라'는 충분히 그러한 의도가 반영된 극이다. 배우들의 과장된 인사로 시작하는 극은 우리가 그만큼 오버하지 않으면 시작조차 못 하는 부류이다.

떠날 용기가 없는 사람들, 어떻게 떠나야 하는지 모르는 이들은 개처럼 순례할 일이다. 개를 업신여기지 말자. 개야말로 유목민의 탈주성을 가진 혁명가이다.

 가면을 쓴 사람들은 순례길을 떠나지 못하고 망설인다. 극단 인형인의 이 연극은 탈주하는 개의 유목성에 주목한다. 서울 대학로 스튜디오76에서 개막한 연극 <개처럼 순례하라>는 실험 정신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오는 10월 29일까지.

가면을 쓴 사람들은 순례길을 떠나지 못하고 망설인다. 극단 인형인의 이 연극은 탈주하는 개의 유목성에 주목한다. 서울 대학로 스튜디오76에서 개막한 연극 <개처럼 순례하라>는 실험 정신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오는 10월 29일까지. ⓒ 한강아트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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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문화, 과학 및 예술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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