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기사에는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몬스터 콜>의 한 장면.

ⓒ 롯데엔터테인먼트


가끔 그럴 때가 있다. 영화를 보고 며칠이 지나서야 영화 속 인물의 감정에 동화되는 그런 순간 말이다. <몬스터 콜>이 그랬다. 어리다고 하기엔 너무 크고 어른이라고 하기엔 너무 작은 주인공 코너가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은, 그 아이의 삶을 목격했던 관객의 처지가 아니라 한때 비슷한 시기를 넘어왔던 한 사람의 마음으로서 마주하기 힘들다.

소년이 몬스터를 불러왔다는 흥미진진한 외피를 두르고서는 현실로부터 도망치려고 하지 않는 이야기. 그리고 이 이야기는 절망의 절벽에서 떨어지려는 이를 붙잡고는 이겨낼 수 있다고 나지막이 속삭인다. 동화 같지 않은 동화. 코너의 이야기지만, 사실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12살 소년, 괴물을 만나다

 영화 <몬스터 콜>의 한 장면.

ⓒ 롯데엔터테인먼트


12살 소년 코너가 놓인 상황은 척박하기 그지없다. 학교에서는 투명인간 취급을 받다가 폭행을 당하고, 그나마 안락해야 할 집에는 투병 중인 엄마가 있다. 같은 악몽을 계속 꾸다 보니 제때 잠을 이루지도 못한다. 코너는 엄마와 함께 영화 <킹콩>을 보면서 거대 괴수가 가진 힘을 부러워한다.

작은 바람 때문이었을까. 밤 12시 7분, 창가에 비치던 주목이 거대한 몬스터로 변하여 코너에게 찾아간다. 그리고는 말한다. '네가 나를 불렀다' 고. 몬스터는 다짜고짜 코너에게 세 개의 이야기를 들려주겠다고 한다. 그리고 이야기가 다 끝나면 네 번째 이야기는 코너의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한다고 한다. 그건 바로 코너가 매일 꾸는 악몽이다.

몬스터가 들려주는 세 가지 이야기는 흔하디흔한 이야기인 것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어둡고 암울한 진실을 담고 있다. 한없이 정의롭고 착할 것 같은 동화 속 왕자는 자신의 정의를 위해 어둠의 길로 들어서는 걸 자청했고, 동화 속 늙은 약사는 자신의 선의를 매도한 신부의 믿음을 꺾었으며, 동화 속 투명인간은 사람들에게 보였으나 아무도 알아차려 주지 않았다. 어린이들에 어울리지 않을 법한 이야기. 사실은 어른들도 고민하게 만드는 우울하고 어두운 이야기다. 그리고 이 세 이야기는 코너가 품고 있는 뾰족한 진실과 맞닿아 있다.

어리다고 하기엔 너무 크고, 어른이라고 하기엔 너무 작은 코너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성장할 것이다. 그러나 코너는 흘러가는 시간을 거부한다. 할머니의 집에 있는 증조할머니의 시계를 부수는 것은, 코너의 내면이 과거에 붙들려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하다. 몬스터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코너는 성장을 거부한다. 그래서 이미 알고 있는 뼈아픈 현실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것이다. 진실을 말하는 것은 결국 어른이 되어버리는 성장을 의미하니까.

어른이 되면 마음 한쪽에 조금씩 준비해야 하는 진실이 있다. 언젠가 찾아올 부모와의 이별 말이다. 어른이 되어도 받아들이기 벅찬 진실인데 코너에게는 더욱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다. 역행할 수 없는 시간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소중한 존재를 떠나보내야 하는 거부감은 무의식에 깔렸던 몬스터를 부른다. 결국, 코너의 눈앞에 나타난 몬스터는 산타는 없다고 믿을 나이의 소년이 자신을 보호하고 치유하기 위해 불러낸 일종의 바람인 셈이다.

우리 모두의 성장

 영화 <몬스터 콜>의 한 장면.

ⓒ 롯데엔터테인먼트


<몬스터 콜>은 소년의 성장에서 그치지 않고 어른의 성장과 가족애를 이야기한다. 코너의 외할머니를 지켜보자. 그녀는 일찍이 남편을 잃었고, 이젠 자신의 딸마저 떠나보낼 준비를 해야 한다. 그녀가 어머니의 시계를 소중하게 여긴 이유는, 자신 또한 코너처럼 누군가에게 보호받길 원하는 마음에서 기인한 것이다. 코너가 시계를 박살 내고 갈등이 깊어지면서 할머니 또한 성장한다. 코너의 엄마로 연결된 두 사람은 진실을 맞이하고 마침내 성장한다. 코너는 진실을 말하는 용기를 가진 어른으로, 외할머니는 그런 코너를 돌보는 어른이 된다.

현실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아픈 과정을 거치고 코너는 어른이 된다. 하지만 이것은 코너 스스로 해낸 것이 아니다. 코너의 유년시절에 찍었던 홈비디오, 그리고 코너가 마지막에 펼쳐본 동화책들을 보자. 코너의 내면에서 태어난 몬스터는 어디에서 왔을까.

코너가 펼쳐보았던 책은 어렸을 때부터 리지가 그려왔던 드로잉 북이다. 그리고 드로잉 북에는 작은 소녀를 어깨에 올려놓고 걷는, 코너의 몬스터가 그려져 있다. 그렇다. 코너의 엄마 또한 일찍이 아버지를 떠나보내야만 했었다. 코너와 비슷한 시간을 보냈을 적, 그녀를 보호하고 치유했던 몬스터는 시간이 지나 그녀의 아들도 보호하고 치유한다. 리지는 어른이 되어 자기 아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면서 말하곤 했었다.

"이게 우리의 몬스터야."

화를 내도 괜찮다고, 자신도 화가 난다고 말하는 리지는 그 누구보다 코너가 겪고 있는 내적 갈등과 고통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다. 부숴야 할 것이 있다면 반드시 부수라고 말하는 리지는 그 방법으로 자신의 몬스터를 코너에게 전했다. 숨을 거두기 직전, 코너에게만 보였던 몬스터를 지그시 바라봤던 것이 그 이유 때문이었을 테다.

우리는 때때로 아픈 진실보다 위로가 되는 거짓을 원한다. 코너가 자신의 엄마를 치유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동화 속에나 존재할 법한 몬스터를 부른 것처럼 말이다. 코너를 위한 동화이지만 사실은 어른이 된, 혹은 어른이 되지 못한 우리를 위한 이야기. 받아들이기 벅찬 현실을 부정하려 안간힘을 쓰는 이 어린 소년을 지켜봤으면 한다. 그리고 위로해 줬으면 한다. 결국엔 그 위로는 다시 돌아와 우리를 위로해 줄 테니까.

 영화 <몬스터 콜>의 한 장면.

ⓒ 롯데엔터테인먼트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건의 시민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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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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