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20세기 티저 포스터

우리의 20세기 티저 포스터 ⓒ 그린나래미디어(주)


<우리의 20세기>. 이 영화의 원제는 <20세기의 여인들>(20th Century Women)이다. 국내 개봉 제목을 '여자'에서 '우리'로 바꾼 것은 여성을 전면에 내세운 것에 대한 남성주의적 사고의 반발인가, 아니면 굳이 일부러 젠더를 분리하지 말자는 평화주의적 소신인가. 아니면 '여자'라는 민감한 단어 선택을 피해 영화가 작품 외적으로 공격받는 것을 피하자는 영리한 마케팅 전략인가.

아무튼 이 영화는 20세기를 살았던 세 명의 여자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 역시나 도로시아의 남편 차 포드 갤럭시가 불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플래시백 된 장면에서도 도로시아의 남편이자 제이미의 아빠는 얼굴조차 등장하지 않는다. 함께 주식시세를 맞춰보고 등이나 긁어주는 남편, 생일에 선글라스를 선물해준 아빠, 즉 추억 속의 인물로만 그려진다.

그러나 제목과 달리 이 영화는 여성 영화라기보다는 가족영화라 하는 게 더 맞을 수도 있겠다. 결국 이 영화는 20세기를 지난하게, 그러나 각자의 인생에서는 치열하게 살았던 여자들,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며 그들의 갈등과 화해를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성장 플롯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토킹 헤즈와 블랙 플래그의 팬이냐를 두고 싸우고(우리가 핑클과 SES를 두고 그랬듯이) 닉슨과 카터를 겪고, 스케이트 보드와 록앤롤, 히피 등의 문화를 경험하며 20세기를 살았던 우리들에 대한 이야기다.

 실제 58년생 배우 아네트 베닝은 이 영화에서 24년생 도로시아 필즈를 연기했다.

실제 58년생 배우 아네트 베닝은 이 영화에서 24년생 도로시아 필즈를 연기했다. ⓒ 그린나래미디어(주)


24년생 도로시아 필즈(아네트 베닝) 

대공황 때 태어나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살아온 인물이다. 남편과의 추억 때문에 아침마다 아들과 주식시세를 확인한다. 40세에 낳은 아들을 끔찍이 사랑하며, 아들의 인생을 지배하려 하기보다는 그의 친구나 선생이 되어주려고 노력한다. 일이 잘못되어가는 것을 참지 못하며, 건강에 덜 나쁘다며 담배도 '세일럼'만 피는 여자다. 파티를 좋아하며, 험프리 보거트 주연의 <카사블랑카>를 즐겨본다. 고양이와 아들을 키우며, 세입자들을 배려하고 그들과 동화되기를 원하는 따뜻한 여자다.

영화는 1999년에 폐암으로 죽은 도로시아의 내레이션으로 주로 진행된다. 중간중간 플래시 포워드를 통해 이미 도로시아의 미래가 어떤지를 보여주고, 21세기인 현재에는 존재하지 않는 도로시의 시점으로 영화가 진행된다. 이런 독특한 서사 전개 방식은 역시나 아네트 베닝이 출연한 <아메리칸 뷰티>와 유사하다.

<발몽> <벅시> <러브 어페어> <대통령의 연인>의 아네트 베닝은 이제는 주름 가득한 할머니가 되었다. 아직은 사랑스러운 미소가 얼굴에 남아있는 그녀는 이 영화에서 시종일관 절제된 톤과 다른 배우들과의 앙상블을 이루는 연기를 선보이며 영화의 중심을 잡는 역할을 한다. 이 영화에서의 훌륭한 연기 덕에 그녀는 2017년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코미디-뮤지컬 부분 여우 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엘르 패닝은 더 이상 다코타 패닝의 동생이 아니다.

엘르 패닝은 더 이상 다코타 패닝의 동생이 아니다. ⓒ 그린나래미디어(주)


62년생 줄리 햄린(엘르 페닝)

상처입은 영혼 줄리는 쇼핑몰에서 일을 하며, 집을 나와 제이미와 한 침대에서 잠을 자고 가고는 한다. 수많은 남자들과 섹스를 즐기는, 스스로를 자기파괴적인 인물이라 칭하는 줄리는 제이미와는 우정을 유지하며 오로지 잠만 함께 자는 사이다. 무례한 남자 때문에 원치 않는 임신에 대한 공포를 겪고, 산타 바바라를 떠나고 싶어한다. 카메라는 이 연약한 캐릭터를 관조적으로 바라보며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거나 그녀로부터 멀어진다. 다른 인물들과는 달리 줄리를 다룰 땐 클로즈업이 없고, 유난히 점프컷이 많이 쓰인다.

엘르 패닝은 이제 더 이상 다코타 패닝의 동생으로 불리지 않는다. 이 98년생 배우는 오히려 언니의 커리어를 훌쩍 뛰어넘으며 <네온 데몬> <리브 바이 나이트> <매혹당한 사람들> 등에서 주연을 맡으며 활발한 연기 활동을 하고 있다.

 실제 83년생 그레타 거윅은 이 영화에서 55년생 애비를 연기했다. 독특한 헤어스타일과 패션, 그리고 연기 스타일은 [이터널 선샤인]의 케이트 윈슬렛을 연상시킨다. 그녀의 다음 작품들이 기대된다.

실제 83년생 그레타 거윅은 이 영화에서 55년생 애비를 연기했다. 독특한 헤어스타일과 패션, 그리고 연기 스타일은 [이터널 선샤인]의 케이트 윈슬렛을 연상시킨다. 그녀의 다음 작품들이 기대된다. ⓒ 그린나래미디어(주)


55년생 애비 포터(그레타 거윅)

자궁경부암을 앓고 있는 사진작가 애비는 자신에게 미안함과 불편함을 느끼는 엄마를 떠나 도로시아의 집에 하숙을 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녀 작품의 대상은 립스틱, 브라, 피임약, 엄마의 사진, 수잔 손택의 저서 등이다. 그녀는 한 집에 사는 윌리엄과 섹스를 하고, 클럽에서 록을 즐기며 제이미의 멘토가 되어준다. 결국 그녀는 임신이 불가능할 거라는 의사의 예상과 달리 한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된다.

최근 각광받고 있는 그레타 거윅은 이 영화에서도 탁월한 연기와 존재감을 뽐낸다. 국내에서도 <프란시스 하> <재키> <매기스 플랜>으로 많은 팬들을 확보하고 있다. 이 영화로 그녀는 37회 런던비평가 협회상과 22회 크리틱스 초이스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영화의 주제는 가족이다.

영화의 주제는 가족이다. ⓒ 그린나래미디어(주)


이 영화의 감독을 맡은 마이크 밀스는 이미 국내에 <비기너스>의 감독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영화의 상당부분은 마이크 밀스의 자전적인 이야기라고 한다. 실제 그의 삶에 영향을 주었던 많은 인물들이 영화 안 캐릭터에 투영되어 있다.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이야기를 다양한 시점과 복잡한 구성방식을 통하여 이야기 층위가 두터워 보이게 만들었다.

다만 구성과 더불어 이야기 전개의 연속성에 있어서 산만하고 관객들이 헷갈려 할 수 있는 지점들이 있다. 인물을 잡는 카메라는 한 걸음 떨어져서 그들을 잡고(그래서 클로즈 업이 거의 없다), 편집은 호흡이 한 박자 느리다. 장면 전환이나 신 이동에 있어선 편집점이 짧고 숏이 빠르게 전환되다 보니 구성상 헷갈리는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 영화에서 인물을 잡을 땐 카메라가 천천히 줌-인 앤드 아웃을 한다. 인물에게 다가가는 게 조심스럽다는 듯이. 그녀들의 삶에 어떤 편견도 개입하지 않고 주관을 강요하지도 않은 채 그녀들의 삶을 담담히 보여준다.

주인공들이 살았던 20세기의 시대를 보여주는 많은 정보들이 다큐멘터리 화면, 정지화면의 형태로 지나간다. M. 스캇 펙의 <아직도 가야 할 길> 등의 도서나, 갓 프레이 레시오의 <코야니 스카시> 등의 영화가 삽입되는데 영화의 주제나 반복되는 간헐촬영 등은 이러한 영향을 받은 듯하다. 영화 내에서 자동차를 타고 이동할 때마다 간헐촬영으로 빠르게 보여주는데 마치 격변의 20세기로 타임 워프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 영화로 그는 8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에, 74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뮤지컬-코미디 부분 작품상 후보에 올랐다.

 제이미가 20대에 들었으면 좋겠다는 음악을 제이미에게 들려주며 함께 춤을 추는 애비.

제이미가 20대에 들었으면 좋겠다는 음악을 제이미에게 들려주며 함께 춤을 추는 애비. ⓒ 그린나래미디어(주)


촬영을 맡은 숀 포터는 이 영화를 Arri 알렉사 미니로 촬영하였는데 2:1의 독특한 화면 사이즈와 따뜻하고 선명한 색감을 보여준다. 최근 스칼렛 요한슨 주연의 <레이디스 나잇>의 촬영을 마쳤다.

제이미 역의 루카스 제이드 주만은 몇몇 TV시리즈와 아동영화에 출연한, 이 영화가 데뷔작이나 마찬가지인 신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서 인상깊은 연기를 선보이며 앞으로의 활동이 기대되는 유망주로 떠오르고 있다.

빌리 크루덥은 이 영화의 유일한 성인 남자 캐릭터 윌리엄을 연기했는데 사랑을 하지 못하고 공허한 삶을 사는 이 윌리엄이란 인물은 빌리 크루덥이 아니었으면 그 누구도 소화해내기 어려웠을 거라 생각할 정도로 훌륭한 연기를 선보였다. <에일리언: 커버넌트> <재키> <스포트 라이트> <올모스트 페이머스> 등 수많은 영화에서 다양한 캐릭터를 선보인 연기파 배우다.

 매력적인 두 배우 그레타 거윅과 엘르 패닝

매력적인 두 배우 그레타 거윅과 엘르 패닝 ⓒ 그린나래미디어(주)


2016년도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뒤늦게 개봉한 게 아쉬울 따름이다. 700만 달러의 저예산 영화지만 탄탄한 각본과 배우들의 열연 덕에 뛰어난 완성도를 자랑하는 작품이다. 국내에선 9월 27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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