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스페셜 <땐뽀걸즈> 이승문 피디

KBS 스페셜 <땐뽀걸즈>를 연출한 이승문 피디. 그는 자칫 KBS스페셜로 한 번 방송되고 말 다큐멘터리를 영화관에까지 걸게 한 장본인이다. ⓒ 이정민


'대체 얼마나 대단한 다큐멘터리인 거야?' 영화 <땐뽀걸즈>에 대한 궁금증은 그렇게 출발했다. 처음 < KBS스페셜>로 만들어 TV에서 한 번 방송됐던 다큐멘터리가 SNS에서 입소문을 타더니 작은 영화제에서 상영됐다. 급기야 이 다큐멘터리는 오는 27일 전국 극장에 걸리게 됐다. 분명 드문 일이다.

조선소 산업이 중심인 거제에 있는 거제여자상업고등학교의 '댄스스포츠반'(땐뽀반)을 다룬 영화 <땐뽀걸즈>를 보고 다큐멘터리를 만든 이승문 피디를 찾았다. 이승문 피디는 우연히 찾은 거제여상 '땐뽀반' 특유의 에너지에 매료돼 이 다큐멘터리를 찍게 됐다고 말했다.

 땐뽀걸즈 스틸

땐뽀걸즈 스틸. 거제여상 '땐뽀반' 학생들과 선생님. ⓒ 상상마당

"땐뽀반 친구들을 보고 그 땐뽀반을 지도하는 선생님을 뵀는데 그 풍경 자체가 서울에서 한 번도 맛보지 못했던 에너지로 넘쳤다. 이 '우애로운' 아이들의 이야기를 찍고 싶다는 생각을 그때 했다."

그의 말처럼 다큐멘터리 속 고등학생들은 18세 특유의 생생한 에너지와 땐뽀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차있다. 그리고 카메라는 이들의 땐뽀를 어떤 왜곡과 과장도 없이 충실히 담아내고자 노력한다. 학생들은 '차차차'나 '자이브'를 추는 손짓 하나 내딛는 몸짓 하나에 모든 걸 담는다. 생계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발 끝으로 '땐뽀'의 스텝을 내딛는 장면에서는 애틋함마저 느껴진다. 마치 "일본 성장영화"(이승문) 같지만 어디까지나 '다큐멘터리'인 <땐뽀걸즈>는 때로는 '이 땐뽀반이 실제하는 걸까?'라는 느낌마저 준다.

카메라는 학생들을 최대한 멀리서 담는다. 눈물 짓게 하는 사연이 나올 때도 갈등이 고조될 때도 학생들은 카메라와 멀찍이 떨어져 있다. 관객들은 감정을 강요당하지 않은 채로 자연스러운 관찰자이자 땐뽀반을 응원하는 관중으로 남는다.

<땐뽀걸즈>는 < KBS스페셜 >에 합류한 이승문 피디의 첫 작품이다. 대체 어떻게 첫 작품부터 이렇게 큰 반향을 얻을 수 있었던 걸까.

거제에서 시작된 '춤바람'이 전국으로

 KBS 스페셜 <땐뽀걸즈> 이승문 피디

'댄스스포츠 자체를 좋게 보지 않거나 음란하게 보는 일부 시선'에 대해 이승문 피디는 "그렇게 보려는 사람이 있으면 그것까지 내가 어떻게 할 수는 없겠다 싶었다"고 솔직하게 밝혔다. "다리 찍을 때 조심하자? 아니다. 다리도 춤에서 중요한 요소다. 힘 있게 다리를 내딛는 모습이라든지 그런 에너지를 충실하게 담는 것이 중요했다"고 말했다. ⓒ 이정민


처음부터 거제여상의 '땐뽀반'을 찍을 계획은 아니었다. 사실 땐뽀를 배우는 아이들이 있는 줄도 몰랐다. 이승문 피디가 처음 담고 싶었던 건 2016년 6월 '망해간다는' 거제 조선소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첫 기획안의 제목은 '거제, 200일의 기록'이었다. 이승문 피디는 "어떤 걸 찍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일단 저기 있는 사람들의 삶을 담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거제에 갔다.

처음 거제에 간 이승문 피디는 조선소 노동자들을 만났다. 거제 조선소와 관련된 여러 사람들을 인터뷰하다가 그의 눈에 우연히 거제여자상업고등학교가 들어왔다.

"여상? 요즘은 다들 정보고등학교나 인터넷고등학교로 이름을 바꾸는데 여상이 아직도 있네? 거제여상을 나오면 지역 경제에 바로 투입될 텐데 거제 조선소랑 여상이 관련이 있을까? 싶어 거제여상 교감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교감 선생님께서는 '여기 있는 아이들이 조선소로 당장 취업을 나가야 하는데 가장 큰 피해자다'라고 말씀하시더라. 새로운 이야기를 담을 수 있겠다 싶어 거제여상으로 가 아이들을 만났다."

그러다가 이승문 피디는 우연히 거제여상의 '명물'이라 알려진 '땐뽀반'을 만나게 된다. 그는 '땐뽀반'을 잠시 지켜보다가 그 분위기에 매료된다. 사전 조사를 마치고 서울로 온 이 피디는 KBS 내부 피디들을 설득했다.

"거제여상 땐뽀반을 담아 '한국의 빌리 엘리어트'를 찍겠다'고 말했다. (웃음) 사실 자신감은 없었다. 당시에는 학생들의 사연도 몰랐고. 막연하게 '뭔가 조선소 이야기랑 관련이 있을 거야 생각만 했다."

 KBS 스페셜 <땐뽀걸즈> 이승문 피디

<땐뽀걸즈>를 만든 이승문 KBS PD. 처음부터 '땐뽀반' 촬영 동의를 받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는 '스며들었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거제여상 땐뽀반) 친구들은 나를 삼촌이라고 부른다. 옆에 계속 있으면서 '찍습니다'가 아니라 '스며들었던 것' 같다." 그렇게 그는 '땐뽀반' 학생들과 반 년을 함께 지냈다. ⓒ 이정민


그의 우려는 다큐멘터리 제작을 시작하면서 잦아든다. 많은 거제여상 학생들이 졸업한 후에 조선소로 취업을 나가기도 하고 실제 땐뽀반에는 조선소에 다니다 관둔 아버지를 둔 학생도 있었다. '땐뽀반'과 전혀 상관 없는 듯 하지만 사실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거제 조선소 풍경이 영화 속에 여러 차례 등장한다.

"이 친구들이 춤추는 자체로도 많은 사람들이 보고 들을 만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좀 더 멀리서 보면 아이들도 거제 안에 있는 것이지 않나. 거제 조선소의 풍경을 보여주고자 했다. 이를 테면 아이들이 시내로 회식을 하러 나가는데 옆으로 조선소 노동자들이 퇴근을 한다든지. '아이들이 걸어다니는 공간에도 (조선소 풍경이) 계속 묻어있구나' 싶었다. 무엇보다 이들 개인사에서 아버지 문제라든가 자기 취업 문제가 있지 않나."

방송이 나가고 나자

 땐뽀걸즈 스틸

땐뽀걸즈 스틸 ⓒ 상상마당

< KBS스페셜>이 전파를 타고 <땐뽀걸즈>가 영화로 만들어지게 되자 일이 커졌다. 한 번 방송으로 나가고 마는 건줄 알았는데 학생들은 거제 시내에 있는 영화관 '씨네세븐'에서 자신들의 포스터를 보게 되고만 것이다. <땐뽀걸즈>의 영화화는 학생들에게 '대형사건'이었다.

하지만 이승문 피디는 느긋하게 웃으면서 "<땐뽀걸즈>는 원래 영화화를 계획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거제여상 '땐뽀반' 학생들을 촬영할 때도 영화 촬영용 카메라로 촬영을 했다." 결국 그의 바람은 이루어졌다. "계속 생각하고 있으면 되긴 되는구나. (웃음) 포기하지 않으면 되는구나 생각했다." < KBS스페셜>과 달리 영화 러닝타임은 30분 정도 추가가 됐고 땐뽀반 학생들의 일상이 그 30분을 채우게 됐다.

 KBS 스페셜 <땐뽀걸즈> 이승문 피디

이승문 피디는 폴란드의 영화 감독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의 인터뷰를 보면서 "어떤 사람의 진짜 깊은 곳까지 들어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은 다큐멘터리를 찍다가 어떤 인물의 '진짜 눈물'을 찍었는데 '못 찍겠다'고 생각했다고 하더라. 나는 반대로 진짜 눈물이 뭔지 궁금했다. 그리고 옆에서 그걸 한 번 느껴보고 싶었다." ⓒ 이정민


그는 다큐멘터리를 위해 '땐뽀걸즈'라는 이름의 음악도 따로 제작을 했다. 윤중 음악감독과 가수 김사월이 참여해 만들어진 '땐뽀걸즈'는 다큐멘터리 마지막에 잔잔하게 삽입된다.

"쭉 편집을 끝내놓고 보니 너무 복잡미묘한 감정이 느껴지더라. 다큐멘터리가 밝지도 않고 그렇다고 슬프지도 않고 덤덤한 것도 아니고. 어떤 애매모호한 감정이 남았다. 그래서 이를 음악을 풀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 KBS스페셜>을 만들 때 음악을 따로 제작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 KBS스페셜>에서 다루는 다큐멘터리 중에 인간의 감정을 다루는 다큐멘터리가 거의 없다. 나는 이들의 감정을 다루는 다큐를 제작한 거고 그래서 음악을 만들기로 마음 먹었다."

그는 여러 가지 새로운 시도가 KBS 내부에 자극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KBS나 지상파는 특히 방송을 '나가게 하는 것'에 모든지 맞춰진 시스템이다. 매체가 다양해지고 온라인 플랫폼을 이야기하는데 회사 자체는 유연화가 되지 않는다. 피디 사회에서도 나더러 영화 한 편 상영한다고 '감독이라서 '쪼리' 신고 오냐?' 이런다. 피디가 본업이지 극장에 영화가 걸린다고 감독이 되는 건 아니라는 공통적인 정서가 있다. 나는 다큐를 만드는 게 본업이고 어떤 형식으로 납품할지는 좀 더 열릴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런 고민이 필요하다고 본다. 시청률 안 나오고 사람들 다 떠났다고 한탄해봤자 이 시장은 끝인 거다."

 KBS 스페셜 <땐뽀걸즈> 이승문 피디

"살다 보면 한 두 시간 정도는 편하게 있다 갈 수 있지 않나? 소소한 감정을 가진 영화들도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연 극영화에서 자극적인 소재나 거대한 연출이 본령인가? 난 그건 아닌 것 같다. 그냥 내가 만든 작은 작품을 마음 놓고 편하게, 그리고 좀 가늘지만 긴 감정으로 느끼면서 살아남는 영화가 있었으면 좋겠다. 충분한 스펙터클도 큰 감정도 없다. 하지만 그냥 한 경험으로 존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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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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