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영화사 연두


배우 문소리의 이력은 화려하다. 2000년 <박하사탕>으로 연기를 시작해 <바람난 가족> <가족의 탄생>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하하하> <아가씨>에서 이창동, 임상수, 김태용, 임순례, 홍상수, 박찬욱 감독과 작업했고, 2002년엔 <오아시스>로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현재 문소리는 우리나라 영화계를 대표하는 배우라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언제나처럼 문소리가 새 영화로 관객을 찾아왔다. 그런데 <여배우는 오늘도>에선 문소리가 감독, 주연, 각본을 도맡았다. 문소리 감독? 분명 많은 이가 낯설게 느낄 대목이다. 그러나 부산국제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미장센 단편영화제 등 영화제를 즐겨 찾는 분이라면 문소리 감독이 생소하지 않을 것이다.

문소리가 걸어온 길

문소리가 연출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는 출산과 육아로 한동안 영화 현장에서 멀어졌던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별다른 이유 없이 찾아온 무력감으로 배우로서의 자존감이 떨어졌던 문소리는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영화 공부를 해보자고 결심하고 대학원에 진학해 연출을 배웠다고 한다. 그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잉태된 영화가 <여배우는 오늘도>다.

<여배우는 오늘도>는 장편으로 시작했던 작품은 아니다. 영화는 국내외 유수 영화제에 초청되어 호평을 받은 <여배우> <여배우는 오늘도> <최고의 감독>을 모아 옴니버스로 묶었다. 3편의 단편 영화는 하나로 합쳐지면서 1막, 2막, 3막이란 새로운 이름이 붙여졌다.

영화는 문소리의 다양한 얼굴과 말로 가득하다. 당연히 자전적인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든다. 이것에 대해 문소리 감독은 "다 만들어낸 이야기이고 연출한 장면으로 실제로 똑같이 겪었던 일은 없다"며 "살면서 비슷하게 느낀 것을 영화적인 신으로 재구성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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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막에선 여배우가 느끼는 슬픔이 나타난다. 캐스팅 과정에서 탈락했다는 전화를 받은 문소리는 친구들과 북한산에 오르며 원인이 무엇일까 이야기한다. 그리고 자조 섞인 한 마디, "배우에게 중요한 건 연기력이 아니야. 매력이 중요해"를 내뱉는다. 연기력보다 예쁜 외모를 선호하는 풍조 앞에서 그녀는 한탄한다.

이어지는 술자리에서 우연히 합석한 남자들은 추태를 일삼는다. 외모를 평가하고 기분 나쁜 말을 농담이랍시고 던지는 그들에겐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풍경이 겹쳐진다. 영화 속 문소리는 대중매체가 만든 이미지, 또는 사람들이 마음대로 규정한 편견에 속절없이 재단 당한다. 그 속엔 얼굴이 알려진 직업인 연예인이 겪는 비애가 묻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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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막에 들어서면 배우 문소리, 아내 문소리, 엄마 문소리, 며느리 문소리, 딸 문소리의 일상이 펼쳐진다. 해결되는 일은 없는데 할 일은 산더미인 문소리의 압박감은 갑자기 내달리는 장면(다른 막과 달리 좌우가 긴 2.35:1 화면비를 선택한 이유도 달리는 모습 때문으로 보인다)으로 폭발한다. 여기엔 도망치고 싶은 마음과 힘껏 달려야 하는 마음이 뒤섞여 있다. 은행 대출을 받으며 하는 사인과 팬이 요청하는 사인도 이중적인 장치로 기능한다. 이런 묘사법으로 영화는 배우 문소리와 인간 문소리란 양면성을 잡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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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막은 과거 영화 작업을 함께했던 감독의 장례식에 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인물들이 옥신각신하며 다투며 파국으로 치닫던 순간, 문소리 감독은 놀라운 솜씨로 갈등을 봉합한다. 극 중 문소리가 감독의 아들과 영상을 보는 장면은 영화가 지닌 기억, 영화 현장이 준 추억, 영화가 품은 꿈을 <시네마 천국>의 마지막 장면처럼 영사하며 '영화적인 순간'을 직조한다.

이전보다 몇 걸음 진보한 작품

<여배우는 오늘도> 전에 '여배우'를 소재로 삼았던 영화로는 <여배우들>과 <나나나: 여배우 민낯 프로젝트>가 있었다. <여배우들>은 카메라 바깥의 여배우들을 진짜와 허구가 혼재한 다큐멘터리로 담았으나 결국은 남성 감독이 연출한 '리얼리티 쇼'였다. <나나나: 여배우 민낯 프로젝트>는 여배우의 고민을 솔직하게 들려주었었지만, 구성이 산만한 통에 완성도가 습작 수준에 머물렀다.

<여배우는 오늘도>는 <여배우들>과 <나나나: 여배우 민낯 프로젝트>에서 몇 걸음 나아갔다. 남성이 만든 영화도 아니며 무엇을 보여줄 것인지, 어떤 걸 말할지 방향도 명확하다. 문소리 감독은 "나도 위로하고 서로 위로해주고 영화를 통해서 위로받기도 하고, 그러자고 예술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관객과 위로를 나누고 싶은 감독의 바람은 <여배우는 오늘도>의 마지막 장면, 사람들이 함께 걸어가는 뒷모습에 잘 녹아있다.

배우와 영화에 관한 수줍은 연애편지 내지 과감한 자기탐구인 <여배우는 오늘도>. 극 중엔 "문소리는 한국의 메릴 스트립"이란 대사가 나온다. 영화를 보고 나니 이렇게 바꾸고 싶어졌다. "문소리는 한국의 조디 포스터다" 배우 문소리도 놀랍지만, 감독 문소리도 대단하다.

문소리 성병숙 윤상화 전여빈 이승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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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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