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70일 파업. 그 후 5년이 지났습니다. 이 시간에도 MBC 구성원들은 싸움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쫓겨나고, 좌천당하고, 해직당하고, 징계받으면서도 끊임없이 저항했습니다. 끝도 없이 추락하는 MBC를, 누구보다 가슴 아프게 지켜보면서도 싸움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이제 그만 '엠X신'이라는 오명을 끝내고, 다시 우리들의 마봉춘, 만나면 좋은 친구 MBC로 돌아오고 싶다고 말합니다.

<오마이뉴스>는 다시 싸움을 시작하는 MBC 구성원들의 글을 싣습니다. 바깥에서 다 알지 못했던 MBC 담벼락 안의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첫 번째 글은 2012년 파업 이후 입사한 마지막 공채 아나운서, 박창현 아나운서입니다.

 170일간 진행된 MBC노조 파업이 끝난 뒤 사측이 '분위기 쇄신'을 이유로 PD수첩 작가 6명을 전원 해고시킨 가운데,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MBC 사옥 앞에서 한국방송작가협회 소속 작가들이 결의대회를 열고 PD수첩 작가의 해고사태를 규탄하며 원상복귀를 요구하고 있다.
이날 집회는 지난 1970년 협회가 설립된 이후 최초로 드라마, 예능, 교양, 라디오 등 모든 부분의 방송작가들이 대거 참여해 PD수첩 작가들의 전원복귀와 책임자 문책 등을 요구했다.

170일간 진행된 MBC노조 파업이 끝난 뒤 사측이 '분위기 쇄신'을 이유로 < PD수첩 > 작가 6명을 전원 해고시킨 가운데, 지난 2012년 8월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MBC 사옥 앞에서 한국방송작가협회 소속 작가들이 결의대회를 열고 < PD수첩 > 작가의 해고사태를 규탄하며 원상복귀를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2013년 3월. MBC 아나운서 선배들은 치열하게 공정방송을 외치며 파업에 참여한 죄로 각종 유배지에 있었다. 나는 그 무렵, 그토록 동경하던 MBC에 입사했다. 

비록 유례 없던 최장기 파업을 겪으며 망가졌다 해도 여전히 훌륭한 선배들이 있는 곳이었기에 머지않아 MBC가 회복되리라 참 순진한 생각을 하던 때이기도 했다. 하지만 파업 이후 더욱더 처절하게 망가지는 MBC를 아나운서국을 입사 후 계속 지켜봐야만 했다.

돌이켜 보면 이명박 정부는 제법 교묘했다. 4대강, 언론 길들이기, 국정원 정치개입 등을 둔감한 사람들에게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정도로 비치게 만들었다. 뒤이어 들어선 박근혜 정부는 더 노골적이었다. 최순실 국정농단, 블랙리스트, 언론 탄압 등 이제는 둔감한 사람들마저도 그 부당함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러고 보면 MBC 또 아나운서국의 수난사도 두 정부의 그것과 함께했다.

수습 기간이 끝날 무렵 뿔뿔이 유배지로 흩어졌던 아나운서 선배들이 대부분 제자리로 돌아왔다. 하지만 선배들은 더 이상 마이크 앞에 설 수 없었다.

방송 안 주고, 방송 안 한다고 저성과자 낙인 찍고  

신동진 MBC아나운서 '손석희, 박원순 인터뷰 했다고 사측 압력' MBC아나운서 27명이 김장겸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과 신동호 아나운서 국장 사퇴를 촉구하며 22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사옥앞에서 ‘방송거부-업무거부 돌입 기자회견’을 열었다. 2012년 파업 당시 한국아나운서협회장을 맡았던 신동진 아나운서가 손석희 JTBC사장(MBC출신), 박원순 시장, 해직언론인 등을 다룬 협회지 ’아나운서 저널’을 보여주며, 이 내용을 이유로 사측의 압받을 받아야 했다고 폭로했다. 업무거부에 돌입한 아나운서는 변창립, 강재형, 황선숙, 최율미, 김범도, 김상호, 이주연, 신동진, 박경추, 차미연, 한준호, 류수민, 허일후, 손정은, 김나진, 서인, 구은영, 이성배, 이진, 강다솜, 김대호, 김초롱, 이재은, 박창현, 차예린, 임현주, 박연경 이상 27명.

▲ 신동진 MBC아나운서 '손석희, 박원순 인터뷰 했다고 사측 압력' MBC아나운서 27명이 김장겸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과 신동호 아나운서 국장 사퇴를 촉구하며 지난 8월 22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사옥앞에서 ‘방송거부-업무거부 돌입 기자회견’을 열었다. 2012년 파업 당시 한국아나운서협회장을 맡았던 신동진 아나운서가 손석희 JTBC사장(MBC출신), 박원순 시장, 해직언론인 등을 다룬 협회지 ’아나운서 저널’을 보여주며, 이 내용을 이유로 사측의 압받을 받아야 했다고 폭로했다. 업무거부에 돌입한 아나운서는 변창립, 강재형, 황선숙, 최율미, 김범도, 김상호, 이주연, 신동진, 박경추, 차미연, 한준호, 류수민, 허일후, 손정은, 김나진, 서인, 구은영, 이성배, 이진, 강다솜, 김대호, 김초롱, 이재은, 박창현, 차예린, 임현주, 박연경 이상 27명. ⓒ 권우성


 4일 오전 마포구 상암동 MBC사옥에서 열린 언론노조 MBC본부 서울지부 조합원 총파업 결의대회에서, 연대발언 중인 타 방송사 노조위원장의 익살에 웃음을 터뜨리고 있다.

4일 오전 마포구 상암동 MBC사옥에서 열린 언론노조 MBC본부 서울지부 조합원 총파업 결의대회. 네번째 줄 가운데에 박창현 아나운서가 보인다. ⓒ 권우성


MBC의 얼굴이자 목소리였던 선배들은 철저하게 시청자들로부터 격리되었다. 자꾸 '위에서 결재가 안 난다', '아직은 시기가 아니다' 같은 이유로.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었다. 선배들이 파업의 주동세력으로 찍혔기 때문이었다. 회사의 만행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인재의 외부 유출을 막고 우수한 사원들에게 혜택을 준다는 명목 하에 5등급의 인사 평가제가 도입되었다. 제법 그럴듯한 이유로 등장한 인사 평가제는 곧바로 부역자들에게는 승진과 금전적 혜택을 주었고, 눈 밖에 난 이들에게는 '저성과자'라는 낙인을 찍었다.

R(최하등급)을 받는다는 것은 주홍글씨와 같았다. 방송에서 철저히 배제하고는, 방송하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능력이 없다' 평가했다. 그리고 '당신이 받지 않으면 다른 선후배가 받아야 한다'며 선배들에게 의무적으로 R등급이 찍혔다. 그렇게 한 해가 지나고 R등급을 받은 선배들이 방에서 쓸모가 없다는 이유로 쫓겨났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르고는 아예 평과결과와는 무관하게, 그냥 권력자의 눈 밖에 나면 별 이유 없이 쫓겨났다. 도대체 나를 전출 시키는 이유가 뭐냐 묻는 선배에게 국장은 '그런 건 이야기 해주지 않아'라고 했다고 한다. 그런 곳에서 생활하는 하루하루가 숨 막혔다. 그 무렵 쓴 일기장에는 이런 고민이 가득했다.

"어느 날 방에 앉아 있다가 고개를 들었다. 숨소리조차 조용한, 아무도 이야기 나누지 않고 각자 조용히 벽만 바라보거나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는 풍경. 이곳이 정말 아나운서들이 생활하는 공간인가 싶었다. 회사가 방송에서 우리에게 침묵을 강요했고 이제는 이곳에서마저도 침묵이 일상화가 되었구나." - 2016년 9월 일기 중

 권성민 MBC PD가, 징계 시절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가 사측에서 문제로 삼았던 웹툰.

권성민 MBC PD가, 징계 시절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가 사측에서 문제로 삼았던 웹툰. ⓒ 권성민


나보다 1년 먼저 MBC 예능국에 입사한 권성민 PD와는 대학 때부터 친구였다. 2012년 파업 당시, 나는 아직 준비생이었고, 그때부터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성민이는 "평상시에 예능은 시청자들에게 웃음과 휴식, 위안을 줄 수 있지만 지금처럼 사회가 비정상일 때 예능은 자칫 그 비정상을 덮고 가리는 도구로 사용될 수도 있다"는 고민을 종종 털어놨다. 성민이는 새내기 PD 시절에도 그런 문제의식을 가진 친구였다.

2013년, 나는 꿈에도 그리던 MBC에서 '설마 MBC에서 그런 일이?',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싶은 일들을 직접 목격했다. 하나둘 선배들이 회사를 떠났고 쫓겨났다. '세월호 보도 참사'가 벌어졌던 그 무렵, 성민이에게 전화를 걸어 한참 회사 욕을 하며 한풀이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날 새벽, 성민이는 인터넷에 '엠X신 피디입니다'라는 글을 썼다. 내용은 처절한 자기반성이었다. 정작 반성해야 할 사람들이 반성하지 않자, 입사 3년차 피디가 시청자들에게 사과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성민이는 예능국에서 쫓겨났다. 유배지로 부당전보 당했고, 유배지 생활을 그림으로 그려 SNS에 올렸다가 결국 해고됐다. 우리는 같은 생각을 했는데, 그는 당당하게 '틀렸다'고 외쳤을 뿐이었다. 정작 언론의 입이 되어야 할 아나운서인 나는 침묵하고 있었다. 창피하고 부끄러웠다. 하지만 난 그 시절, 겁쟁이었다.

친구의 해고, 선배의 징계... 나는 겁쟁이가 됐다

 회사를 상대로 한 정직 및 해고 무효 소송 1심에서 승소한 MBC예능국 권성민 PD가 25일 오전 마포구 MBC상암사옥 언론노조 문화방송본부 사무실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권PD는 지난해 <오늘의 유머>에 세월호참사 관련 보도를 비판한 '엠병신 PD입니다'는 글을 올렸다 정직 6개월 징계를 받았고, 이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예능국 이야기>(일명 유배툰)를 올렸다가 해고를 당했다.

회사를 상대로 한 정직 및 해고 무효 소송 1심에서 승소한 MBC예능국 권성민 PD가 지난 2015년 9월 25일 오전 마포구 MBC상암사옥 언론노조 문화방송본부 사무실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권PD는 지난해 <오늘의 유머>에 세월호참사 관련 보도를 비판한 '엠병신 PD입니다'는 글을 올렸다 정직 6개월 징계를 받았고, 이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예능국 이야기>(일명 유배툰)를 올렸다가 해고를 당했다. ⓒ 권우성


성민이가 해고까지 당하자 더 견디기 힘들었다. 그래서 가장 믿고 따르던 선배인 오승훈 아나운서에게 내 고민을 털어놨다. 그때 선배는 내게 "잊지 말자"고 했다. 그리고 "늘 깨어있자"고 했다. 비록 지금 당장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더라도 끊임없이 생각하며 옳고 그른 것에 대해 말할 수 있도록 고민하자고 했다. 그렇게 선배에게 위안을 받으며, 나는 내 용기없음에 나름의 정당성을 부여했다.

며칠 뒤 승훈 선배는 회사 게시판에 경영진을 향해 '권성민 PD의 해고를 재고해 달라'는 글을 썼다. 날카로웠지만 정중했고, 품위 있는 글이었다. 하지만 선배는 그 글로 인해 빨갱이로 낙인 찍혔고, 결국 아나운서국에서 쫓겨났다. 선배가 쫓겨나던 날 밤, 승훈 선배를 붙잡고 하염없이 울었다. 하지만 정작 선배는 "괜찮다"고 했다. 가장 힘든 건 선배였을 텐데, 나는 고작 미안함과 상실감에 울었다. 그렇게 나는 또다시 겁쟁이가 되었다. 

손정은 선배는 마주치지도 못했던 고위 임원에게 인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방송에서 철저히 배제됐고, 이후 아예 아나운서국에서 쫓겨났다. 라디오국 이대호 선배(PD)는 사내 게시판에서 보도부장의 글에 반박 글을 달았다가 비제작부서로 쫓겨났다. MBC에서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전부 옮겨 적을 수 없을 정도로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동시에 "아버지는 잘 지내시니?"라는 안부 인사가 권력에 아부하는 자들 사이에서 오갔다. 권력자와 부역자들은 주거니 받거니 그들만의 잔치를 반복했다. 난 그 속에서 침묵한 대가로 험한 꼴을 면했다. 하지만 그들은 겁쟁이조차 분노하게 했다. 나는 분노를 넘어 패배감을, 자괴감을, 창피함을 느꼈다. 5년 동안 침묵했던 겁쟁이도, 닫힌 입을 열고 떠들게 했다.

난 참 많은 빚을 졌다. 회사 동료들에게, 아나운서 선배들에게, 그리고 시청자들에게.

 박창현 아나운서

ⓒ 박창현

더는 이런 비극이 MBC 안에서 벌어져서는 안 된다. 이제 와 용기 냈다고, 지난 부채의식을 던질 수는 없다. 지난 5년의 침묵은 부채의식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부터라도 함께 싸우며, 조금이라도 갚아나갈 것이다. 먼저 용기 내 상식을 이야기했다는 이유로 탄압받은 동료들을 위해, 당당한 MBC 구성원으로서의 주어진 역할을 다 할 것이다.

* 박창현 아나운서는 2013년 MBC에 입사해 오전 5시 뉴스, 경제매거진M 등을 진행했습니다.

MBC 파업 박창현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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