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il tetto > 스틸

▲ 영화 < il tetto > 1956년 이탈리아 영화. 감독 비토리오 데 시카, 출연 가브리엘라 팔로테, 조르지오 리스투치, 가스통 렌젤리 ⓒ Gala Film Distributors


"그 영화가 우째 내 이야기 같아서 찡하더라. 처제 덕분에 좋은 영화 봤네요. 고맙구메."

영화를 보고 나온 형부가 그렇게 말하자 내 마음이 놓였다. 예전에 나온 흑백영화라서 혹시 마음에 차지 않았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오히려 영화를 잘 봤다며 치사까지 해주지 뭔가. 역시 명화는 시대를 불문하는 매력이 있나 보다.

형부가 놀러 왔다. 경상도에서 강화도까지 몇 백 킬로미터를 운전해서 왔으니 형부도 또 우리도 놀랄 만했다. 사실 그 정도 거리를 운전하는 건 수도권에 사는 우리에겐 별 일이 아닐 수도 있지만 경상도를 벗어난 적이 별로 없는 형부에겐 모험이자 용기를 내야 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더구나 다리뼈가 부러져 수술까지 한 사람이 장거리 운전을 했다니, 반가움에 앞서 걱정부터 되었다. 그러나 늘 일에 치여 바삐 사느라 마음 놓고 며칠씩 쉬어본 적이 없던 형부는 이참에 멀리 사는 처제 집에 놀러가기로 마음을 먹었던 것 같다.

"영화가 우째 내 이야기 같네"

영화를 보러 간 것은 우연이었다. 모처럼 형부가 왔는데 하필이면 늦장마가 오기라도 한 것처럼 계속 구질구질 비가 내렸다. 비가 오니 마땅히 갈 만한 곳도 없었다. 몸이 성하다면야 어딘들 못 가겠는가. 하지만 다리를 다쳐 깁스를 한 데다 목발까지 짚고 다니는 형편이니 되도록이면 걷기에 안전한 곳이어야 했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영화관이었다.

그날 우리가 본 영화는 이탈리아의 유명 감독인 '비토리오 데 시카'가 만든 <지붕>(Il Tetto)이었다.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은 평범한 민중들의 애환을 담아내기로 유명하다. 특히 2차 대전 이후의 낙후된 이탈리아를 가감 없이 담은 <자전거 도둑> <두 여인> <밀라노의 기적> <지붕> 등의 영화를 만든 명감독이다. 특히 <지붕>은 우리나라에서도 1958년도에 개봉되어 사람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지붕>이라는 제목만 봤을 때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지 감이 오지 않았다. 더구나 1956년에 나온 작품이라니 지금 시대와는 맞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옛날 고전 영화들은 이야기의 흐름이 지금 영화에 비해 느린 경우가 많다. 빠른 영상 문화에 익숙한 요즘 세대들에게는 답답하고 지루한 인상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바쁠수록 쉬어가라는 옛 말도 있지 않는가. 비 오는 늦여름의 한때를 흑백영화에 취해 보는 것도 꽤 운치 있는 일일 듯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의 이탈리아는 경제적으로 많이 궁핍했다. 먹고살 길이 막막한 사람들은 수도인 로마로 몰려들었고, 따라서 각종 사회적 문제들이 발생했다. 그중 이 영화에서는 주택난을 보여준다.

 영화 < il tetto > 스틸

영화 < il tetto > 스틸 ⓒ Gala Film Distributors


비토리오 데 시카가 그린 민중들의 삶

두 젊은이가 사랑 하나만 믿고 결혼을 한다. 가진 게 없는 그들은 결혼한 누나의 집에 얹혀사는데 그 집에는 이미 객식구가 세 명이나 들어와 살고 있는 형편이다. 즉 주인공의 부모님과 여동생도 얹혀살고 있었다. 방 두 개짜리 좁은 집에 누나네 식구 네 명에 군식구인 친정 식구 다섯 명까지, 총 아홉이나 되는 사람들이 복작되며 산다. 

당연히 개인의 사생활을 보장 받을 수 있는 공간은 없다. 거실에도 침대가 있고 화장실 역시 순서대로 들어가야 한다. 신혼부부는 자기들만의 공간을 간절히 원하지만 현실은 부모님에 여동생까지, 모두 한 방에서 지낼 수밖에 없다. 밤이면 침대에 누워 서로를 갈망하며 바라보다가 집 밖으로 나와 끌어안는 모습은 안타깝다 못해 처연하기까지 하다.

 영화 < il tetto > 스틸

영화 < il tetto > 스틸 ⓒ Gala Film Distributors


당시 이탈리아에서는 무허가 건물일지라도 지붕과 문만 제대로 있으면 허물지 않고 봐주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빈 터에 집을 짓기 시작하지만 단속반이 와서 허물어 버린다. 단속반이 출동하지 않는 밤사이에 집을 지어 완성하면 허물지 않지만, 말이 쉽지 그게 어디 될 소린가. 아무리 빨리 지어도 하룻밤 사이에 집을 완성할 수는 없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집짓기에 도전했다가 채 지붕을 올리기 전에 단속에 걸려서 오히려 빚만 지게 되는 상황에 빠진다. 없는 사람이 돈을 빌려 집을 지었을 텐데, 그 집을 완성하지 못하게 되면 오히려 평생 빚의 굴레에 갇힐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도 부부는 도전한다. 다행히 새신랑은 벽돌을 쌓는 기술자였고, 그들을 도와줄 사람들도 많았다. 그래서 벽돌과 시멘트, 모래 등을 트럭과 말에 싣고 봐두었던 빈 터로 간다. 기차 길과 맞닿아 있는 철로변 공터지만 집이 없는 그들에게는 찬밥 더운 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사람들이 달려들어 집을 짓기 시작하지만 역시 무리였을까. 부옇게 날은 밝아오는데 아직 창문과 지붕을 완성하지 못했다. 큰일 났다. 이제 곧 단속반이 올 텐데, 만약 단속에 걸려 집이 헐리게 된다면 집 짓느라 빌린 돈은 어떻게 다 갚을 수 있을 것인가. 사람들은 한 마음으로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시간을 끌기 위해 일부러 싸움을 해서 단속반을 붙잡아두는 한편 이웃집의 아기 엄마는 포대기에 쌓여 있는 아기를 신혼부부에게 얼른 안겨주며 방 안에 들어가 있으라고 한다. 단속반의 인정에 호소하기 위해서였다. 설마 아기까지 있는 사람을 내쫒기야 하겠는가.

 토끼장 같은 작은 집이지만 그래도 내 집이 있다는 게 어디입니까? 지붕은 간신히 얹었지만 창문은 달지 못했네요.

토끼장 같은 작은 집이지만 그래도 내 집이 있다는 게 어디입니까? 지붕은 간신히 얹었지만 창문은 달지 못했네요. ⓒ Gala Film Distributors


무허가건물이라도 지붕만 얹으면...

영화 속 이야기는 이제 내 이야기가 되었다. 영화를 보는 모든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젊은 부부를 응원하였다. 빨리 지붕을 얹어, 집이 헐리지 않기를 한 마음으로 빌었다.

영화가 끝나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두 박수를 쳤다. 조마조마 간을 졸이며 영화를 봤는데, 행복하게 끝나서 다행이었다. 비록 발로 차면 툭 넘어질 것 같은 엉성한 집이지만 그래도 찬 이슬을 피할 수 있는 집이 생겼다. 이제 그 부부는 둘만의 공간에서 마음껏 사랑하며 살 수 있을 것이다. 

영화를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 부부와 형부는 내내 영화 이야기만 했다. 그 영화는 형부와 언니 이야기이기도 했다. "아따, 단속반이 올 때 얼마나 조마조마하던지, 지붕 올리는 이야기가 꼭 내 이야기 같더라고. 우리도 집 지으며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영화가 꼭 내 이야기 같아서 마음이 찡하네." 형부는 연신 감탄했다.

집 없이 살던 언니와 형부는 집을 지어야 겠다고 마음먹었다. 빌려 살던 집을 또 비워줘야 할 처지에 빠졌던 것이다. 이제 나이도 환갑을 넘었는데, 언제까지 남의 집을 빌려 살 것인가. 그래서 궁리에 궁리를 하며 집짓기에 들어갔다.

지난봄부터 시작된 언니네 집짓기는 다 돼 간다는 소리를 몇 번씩이나 번복하면서 9월까지 진행되었다. 없는 돈으로 집을 지으려니 애로사항이 어디 한두 가지일까. 안 봐도 그림이 그려진다.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 모아서 집짓기에 들어갔는데 늘 복병이 튀어나와 공사를 멈추어야 했다. 푹 꺼진 땅이라 땅을 돋우느라 복토를 하는 것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고 측량이며 건축 설계도 등등에 또 몫돈이 들어갔다. 3~4천만 원으로 집을 짓겠다며 호기롭게 나섰지만 벽돌을 올리기도 전에 1천만 원 이상의 돈이 들어가 버렸다.

무일푼으로 집짓기에 도전하다

형부는 당황했을 것이다. 문짝이며 창호 등은 리모델링하는 집에서 내놓은 것을 얻어다 놨고 일 잘하는 목수는 하루 일당을 반만 받고 해주겠다고 했다. 현역에서 은퇴를 하고 쉬고 있던 팔순 가까운 나이의 목수는 형부와의 인간적인 관계로 다시 팔을 걷어붙였다.

집 짓는 데 오죽 손이 많이 필요할 것인가. 하지만 자금이 없는 형부는 오로지 자신의 몸을 밑천으로 난관을 헤쳐 나갈 수밖에 없었다. 돈이 떨어지면 공사는 중단되었다. 산림 관계 쪽 공사를 맡아 일을 하던 형부는 다시 산판으로 가서 돈을 벌었다. 얼마간 자금이 모이면 또 집짓기에 돌입하고, 그렇게 하다 말다를 반복했으니 언니네 집짓기는 봄이 다 가고 여름이 지나도록 끝날 줄을 몰랐다.

사실 집짓기 시작은 작년부터였다. 땅 한 평 없는 언니네가 집을 지을 수 있었던 것은 문중의 도움 덕분이었다. 형부는 꽤 큰 가문 출신이다. 그 집안은 조선 시대에는 벼슬을 높이 한 사람을 여럿 배출한 양반 가문으로 일족이 모여 사는 동네에는 문화재로 지정된 집이 여러 채 있을 정도이다. 그런 집안이니 문중 소유의 부동산도 많은 듯했다. 언니네가 집을 지은 땅도 문중 소유의 부동산인데, 그곳에 집을 지을 수 있도록 해준 것이다.

친정아버지는 언니가 형부와 중매를 볼 때 "옛날 같으면 우리 집안과는 혼반도 안 맺을 좋은 집안이다"라며 매우 흡족해했다. 우리 집안 역시 인근에서는 알아주는 성씨였는데도 형부네 집안은 더 윗길이었던 것이다. 지금 세상에서는 통하지 않을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옛 세대 사람들에게는 집안이며 가문이 중요했고 자녀들의 배우자를 고를 때도 그런 것이 매우 중요한 기준이 되기도 했다.  

형부는 지역의 농협에 다녔다. 그대로 살았다면 큰돈은 못 벌더라도 별 어려움 없이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형부는 꿈이 있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직장을 그만 두고 무리한 투자를 했다. 계산상으로는 뻔히 돈이 될 것 같았지만 막상 시작해보니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형부의 사업은 망했고 언니네는 빚더미에 올라앉고 말았다.  

최선을 다해 빚을 갚아나가는 세월이 장장 10년도 더 넘었다. 아직도 갚을 빚은 있지만 그래도 한 고비는 넘겼다. 안 먹고 안 입고 죽을 똥 살 똥 일을 해서 자녀들을 공부시켰고 빚도 갚아나갔으니, 비록 집도 절도 없는 무일푼 신세이지만 지역에서 신망은 잃지 않았다.

지금까지 십 년 이상 남의 집을 전전하며 살았다. 시골의 비어있는 집을 얻어 대충 고쳐서 살았다. 비어있는 집들이 오죽 하겠는가. 보일러도 들이고 닦고 쓸어 살만하게 고쳐놓으면 주인이 비워 달라고 했다. 그러면 또 이삿짐 보따리를 끌고 다른 집을 얻어 또 고쳐 살았다. 그렇게 전전한 집이 대충 잡아도 대여섯 군데는 된다.

 산 밑 양지바른 곳에 집을 짓고 있네요. 이 집에서는 또 어떤 꿈이 자랄까요.

산 밑 양지바른 곳에 집을 짓고 있네요. 이 집에서는 또 어떤 꿈이 자랄까요. ⓒ 이승숙


언제까지 남의 집에 살 것인가

최근까지 살았던 집이 남의 손에 팔려서 또 비워주게 되었다. 언니는 적당한 집을 얻어 이사 가자고 했지만 형부의 생각은 달랐다. 남의 집을 전전하는 생활에 끝을 맺고 싶었다. 환갑이 넘도록 내 집 한 칸 없이 산다는 게 이제는 진절머리가 났던 것이다. 헌 집을 얻어 고쳐가며 사는 것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문중의 종손에게 찾아간 형부는 땅을 빌려줄 것을 청했고, 종손은 흔쾌히 허락했다. 그래서 언니네 집짓기는 시작될 수 있었다.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지붕도 올리고 내부 공사도 시작해서 거의 다 집을 지었을 무렵이었다. 사다리에 올라가서 작업을 하던 형부가 떨어져서 다리뼈가 부러졌다. 수술을 하고 목발을 집고 다니는 신세가 되었으니 다리가 다 나을 때까지 자연 집짓기는 중단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어찌 생각하면 오히려 잘 된 일인지도 모른다. 봄부터 여름까지 형부는 온 힘을 다해 집을 지었다. 저러다가 탈이 나겠다며 이웃들이 걱정할 정도로 몸을 아끼지 않고 일을 했다. 만약 다리를 다쳐 쉬게 되지 않았다면 어쩌면 더 큰 화가 닥쳐왔을지도 모른다. 원치 않은 사고였지만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이참에 형부는 그동안의 노독을 빼며 쉬고 있다.

그런 형부가 우리 집에 놀러왔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 형부가 고맙고 대단해 보였다. 사업이 망해 언니를 고생시켜 미웠던 적도 있었지만 한 편으로 생각하니 형부가 더 딱하고 안 돼 보였다. 인물 좋고 집안 좋은 형부가 쫄딱 망해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했을 테니 얼마나 자존심도 상하고 힘들었을 것인가. 그렇게 생각하니 형부가 안 돼 보였고 늘 안타까웠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 형부가 고마웠다

그런데 뚝심 있게 일을 진행해서 마침내 번듯한 집을 지었으니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지 모른다. 사실 남의 집을 얻어 사는 언니가 늘 안타까웠다. 나이는 한 살 두 살 먹어 가는데, 다 늙어서까지 남의 집을 전전하며 살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딱했다. 젊어서야 험한 집에 살아도 이겨낼 수 있지만 다 늙어서까지 그렇게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집 한 채 짓자면 못해도 수천만 원의 돈이 들 텐데, 돈 한 푼 없이 시작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 것인가. 안 봐도 눈에 훤하다. 돈을 쟁여놓고도 집 짓는 일은 힘들다는데 집 지을 돈을 벌어가며 했으니 얼마나 대단한가. 나는 형부가 고맙고 또 고마웠다.

영화를 보고 나오니 비가 그쳐 있었다. 늦장마가 왔나 싶을 정도로 내내 질금거리던 비가 어느새 멈추고 하늘에는 해가 나와 있었다. 

영화관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우리는 좀 전에 봤던 영화 이야기를 했다. 역시 좋은 영화는 시대를 초월하는 힘이 있나보다.

비토리오 데시카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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