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5월 발생한 강남역 살인사건을 모티프로 삼았다고 알려진 영화 <토일렛>은 엄청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작년 5월 발생한 강남역 살인사건을 모티프로 삼았다고 알려진 영화 <토일렛>은 엄청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 스토리제이


여기, 논란이 된 영화 두 편이 있다.

한 편은 <토일렛>이다. 영화 포스터에 '모든 것은 우발적이고 즉흥적인 분노 때문이었다'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포스터만 보면 정말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릴러 영화 같기만 하다. 그런데 이 영화가 논란이 된 것은 작년 5월 발생한 강남역 살인사건을 모티프로 삼았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비판이 거세지자 감독은 강남역 살인사건과 전혀 무관한 영화라고 해명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단지 홍보사의 실수라고 했다. 그런데도 논란은 종식되지 않았다.

다른 한편은 세월호 사건을 직접 다룬 <세월호>다. 2018년 개봉을 목표로 크라우드 펀딩을 받고 있던 도중 영화 제작 소식과 시나리오가 SNS상에 공개되었다. 이후' '한국사회의 대표적인 비극을 자극적인 블록버스터로 영화화한다는 지적이 줄을 이었고, 결국 펀딩이 중단되었다. 한국사회의 대표적인 비극을 자극적인 블록버스터로 영화화한다는 지적이 줄을 이었다.

영화가 재난과 비극 앞에서 지녀야 할 태도

 여성을 향한 남성의 가해가 ‘여성혐오 범죄’라는 이름을 얻을 수 있게 된지 오래되지 않은 지금, 그런 범죄에 ‘우발적’,‘즉흥적’이라는 수사를 붙이는 것은 책임소재를 불분명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줄 수도 있다.

여성을 향한 남성의 가해가 ‘여성혐오 범죄’라는 이름을 얻을 수 있게 된지 오래되지 않은 지금, 그런 범죄에 ‘우발적’,‘즉흥적’이라는 수사를 붙이는 것은 책임소재를 불분명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줄 수도 있다. ⓒ 스토리제이


세상에 없는 (혹은 없었던) 일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면, 모든 예술은 그것을 참고했다 언급을 했건 안 했건 간에 수용자 입장에서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원본'이 존재한다. 그럴 때 대부분 예술이 맡은 역할은 '재현'이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현실에 존재하는 원본을 어떤 방식으로 재현을 했는가 문제가 되겠다.

사실 <토일렛>과 <세월호>가 비난받는 이유는 '슬픈 일로 돈벌이한다'라는 지점이 큰 듯한데, 그것은 큰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세월호>를 예를 들자면 이미 세월호를 주제로 만든 영화들이 존재한다. 흥행 여부와 무관하게 어쨌든 영화관에 걸린 세월호 관련 영화는 존재한다. 결국, 문제는 세월호라는 현실의 비극을 어떻게 재현했는가에 대한 것이다.

재현이란 결국 '그대로 모사함'을 뜻하는데, 현실의 모든 것을 다 담을 수는 없다. 오히려 예술에서의 재현은 현실의 삶을 '반영'할 따름이다. 그래서 철학자 레비나스는 재현은 그 자체로 폭력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요컨대, 당대의 사회문화적인 인식을 뛰어넘을 수 없는 개인이 현실을 보고 반영할 수 있는 범위와 내용은 한정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결국, 재현은 타자화와도 연결된다는 점을 레비나스는 지적한다. 다시 <토일렛>과 <세월호>로 돌아가 보자. 단순히 화장실에서 살인이 일어났기 때문에 네티즌들이 <토일렛>을 강남역 살인사건과 연관 짓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여성을 향한 남성의 가해가 '여성 혐오 범죄'라는 이름을 얻을 수 있게 된 지 오래되지 않은 지금, 그런 범죄에 '우발적','즉흥적'이라는 수사를 붙이는 것은 책임소재를 불분명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줄 수도 있다.

<세월호>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 포스터에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참사'라는 문구가 있었으며 당시 감독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남을 배려하는 정의로운 승객과 철저히 자신만 살기 위해 다른 사람을 짓밟는 승객이 존재하는 현실을 극명하게 나누어 보여줄 예정'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참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과연 이것이 피해 당사자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숙고했었는지 의문이다.

폭력을 재현할 방법

 <브이아이피>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이러한 '정치적 올바름'의 문제를 예술가의 입을 틀어막는 행위라고 보기보다는 다른 방식의 묘사를 생각해낼 수도 있는 상상력의 기회로 생각해보면 어떨까?

<브이아이피>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이러한 '정치적 올바름'의 문제를 예술가의 입을 틀어막는 행위라고 보기보다는 다른 방식의 묘사를 생각해낼 수도 있는 상상력의 기회로 생각해보면 어떨까?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최근 개봉한 <브이아이피>을 둘러싼 논란은 유명하다. 여성 출연자를 모두 '여자시체  역'으로 표기한 것. 비판을 받자 '여자 역'으로 바꿨다. 여자시체역과 여자 역이 다르다고 생각을 한 걸까? 물론 제작진은 이렇게 항변하고 싶을 것이다. 영화에 성폭행 장면이 들어갈 수도 있는 거 아니냐. 출연한 배우가 여자라서 여자 역이라고 쓴 건데 그게 무엇이 문제란 말이냐.

결국, 이것 역시 재현의 윤리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영화의 서사구조 상 여성이 폭력에 노출될 수는 있다. 그리고 충분히 '일어날 법한 일'이기도 하고. 하지만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폭력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느냐가 그들이 영화에서 어떻게 소비되었는가에 반영되기 마련이다. <브이아이피>에서 여성이 죽는 일은 하나의 사건을 구성하기보다는 남성 등장인물을 묘사하기 위해 넣는 하나의 '장면'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극악무도한 사이코패스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굳이 넣어야 할 이유도 없었다. 이것이 여성 당사자에게는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사실 재현의 윤리는 위에서 말했듯 기본적으로 폭력이 될 수밖에 없는 것에 대한 윤리이기 때문에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 영화에서는 여성이 살해당하면 안 되는가? 실제 일어난 비극은 영화화하면 안 되는가? 피해 당사자나 사회적 약자의 눈치를 봐야 한다면 결국 만들 수 있는 건 없지 않은가? 하지만 '재현의 윤리'라는 덕목은 예술가의 입을 틀어막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부분은 굳이 이렇게 만들 필요는 없지 않을까?', '이 부분에서는 조심해야 할 지점이 있지 않을까'라는 성찰은 당연히 필요한 부분이고 그러다 보면 다른 방식의 묘사를 생각해낼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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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히 읽고 보고 쓰고 있습니다. 사회학을 공부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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