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휴일>의 한 장면 이만희 감독이 1968년에 만든 영화 <휴일>은 당시엔 검열에 걸려 상영이 되지 못했다. 이후 2005년 8월에 한국영상자료원에서 필름이 발견되어, 그해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됐다. 이후 2010년에 컬러로<이만희 컬렉션: 휴일>로 다시 제작되었다.

▲ 영화 <휴일>의 한 장면이만희 감독이 1968년에 만든 영화 <휴일>은 당시엔 검열에 걸려 상영이 되지 못했다. 이후 2005년 8월에 한국영상자료원에서 필름이 발견되어, 그해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됐다. 이후 2010년에 컬러로<이만희 컬렉션: 휴일>로 다시 제작되었다.ⓒ 한국영상자료원


"아프니까 청춘"이란다. 삼포세대(연애, 결혼, 출산)에 이어 오포(집, 경력) 그리고 칠포(취미, 인간관계)로 점점 늘어만 간다. 그런데 이 N포세대는 1960년대에도 존재했었다.  

대한연합영화사에서 1968년도에 제작한, 이만희 감독의 <휴일>은 당시 검열에서 개작 명령을 통보받았으나 거부한 죄로 사장되었다. 이후 2005년 8월에 한국영상자료원에서 필름을 발견, 그해 10월 열린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서 무려 37년 만에 비로소 스크린에 비춰질 수 있었다. 신성일(허욱 역), 지윤성(지연 역), 김성옥, 김순철, 안은숙 등이 출연한 이 흑백필름 영화는 한국영상자료원에서 DVD 흑백으로 2006년 <휴일>, 컬러로 2010년에 <이만희 컬렉션: 휴일>이란 제목으로 다시 만들어졌다.  

가장 뒤에 나온 컬러필름으로 <휴일>을 봤다. 상영하는 곳의 여건상 스크린 대신 TV 화면과 헤드셋 관람이라 몰입도가 떨어진 점 외에, 영화 자체에 대해서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물론 배우의 억양은 지금과 많이 달라 어색하고, 연기도 과장되어 보였다. 하지만 허접해 보이지 않았다. 몸뻬바지를 입은 모델의 당당함이라고나 할까. 특히 영화에서 제시하는, 당시 1960년대 말 서울에 거주하는 청춘들의 여러 유형은 2017년 지금과 너무나 흡사하여, 마치 배경만 바뀐 것처럼 생각될 정도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청춘은 크게 여섯 부류로 나뉜다. 첫 번째는 주인공인 허욱. 허욱은 허세만 지닌 빈궁한 백수로, 내세울 것은 얼굴밖에 없다. 그에겐 미래에 대한 희망, 계획조차도 지갑 안처럼 텅텅 비었다. 현재의 N포세대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나마 연애는 한다. 하지만 이 연애도 '일요일' 하루로만 제약된다.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에 출생한 일본의 산토리세대(さとり世代)와는 또 다른 양상이다. 여긴 아예 무욕의 경지이니, 허세라도 부리려는 허욱과는 다르다. 그는 담배를 산다며 타던 택시를 멈춘 뒤, 기사에게 담배가게에서 잔돈으로 받으라고 거짓말을 하며 안도하는 위인이다. 그럼에도 인부들이 담배를 나눠달라 하자 아낌없이 준다. 빛 좋은 개살구 인생 그 자체이다.   

허욱이야 그렇지만, 지연은 그나마 꿈은 있으되 현실에 순응하고 나름 노력하여 적응하는, 인간이다. 초라한 판잣집에 홀아버지와 사는 처지이건만, 일요일 데이트를 위해서 핸드백에 치마, 구두로 차려입는다. 커피값도 없어 다방 '앞'에서 애인을 기다림에도, 남들은 돈이 없어서 여기 서있는 거라 생각하지 않을 거라며 웃는다. 그리고 택시비를 사기 치고도 무용담처럼 이야기하는 허욱에게 "허세를 부리지마. 항상 털털이면서"라 말하는 솔직함을 보인다. 혹자는 남자 기를 죽이는 거라 비난할 수도 있지만. 그러나 캔디형 그녀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거야. 그 표정은?"이라는 애인의 말에 참았던 희망을 토로하며 탄식한다. "무슨 이야기를 할까요? 우리의 현재에 대해서... 결혼식은 교회당에서... 집은 빨간 벽돌집, 마당에 꽃은 심어야죠... 말해봐요. 아무 말하지 않는 거죠?"

임신한 지 벌써 6개월째인 지연은 이도저도 못하고 그저 시간만 보내는 허욱과 달리, 과감하게 낙태를 결심한다. 암담한 현실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것밖에 없었다. 생활력이 강한 똑순이는 못되었다. 수술비를 구해 달라는 말에 허욱은 "몇 천원 못 구하겠어?"라며 또 허세를 부리고, 매서운 바람에 기다리는 여자가 추울까봐 코트를 던져 주고 떠난다. 그래도 착한 심성과 의리는 남아있는 개살구 남자이다.

허욱이 먼저 달려간 곳은 유부남 친구. 세 번째 유형으로 임기응변 처세술로 원초적 욕망만을 추구하는 인물이다. 그는 영화관에서 처음 만난 여자와 외도하는 장면을 들키자, 태연하게 곧 '결혼할 사이'로 응수한다. 하지만 여자가 술을 사러 나가자마자 '여편네에게 들키면 안 되는 괴물'이라 바꾼다. 그리고 낙태 비용을 빌려달라는 친구에게 "그 여자 배에 든 애가 누구 애인지 알고?"라며 바람둥이다운 의심을 한다.

<휴일>의 스틸컷 백수 허욱과 지연은  일요일에만 만나는 연인으로, 둘은 돈이 없어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 지연은 허욱에게 낙태하겠다고 말하며 수술비를 구해달라 말한다.

▲ <휴일>의 스틸컷백수 허욱과 지연은 일요일에만 만나는 연인으로, 둘은 돈이 없어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 지연은 허욱에게 낙태하겠다고 말하며 수술비를 구해달라 말한다.ⓒ 한국영상자료원


이러한 쾌락주의자 유형의 변형에 자포자기가 첨가된, '케 세라 세라(Que sera sera. 될 대로 되라)'도 있다. 차와 경양식을 파는 '살롱'에서 허욱이 만난 이름도 나이도 모르는 여인. 그녀는 일요일에 만나는 남자는 다 마찬가지로, "우울하고 말이 없고, 아무 이야기도 약속도 없이 사라져"라고 평가한다. 그러면서도 또 유혹하는 '일요일의 남자'를 거부하지 못하고 따라나선다. 그래서 다시 똑같은 우울한 일요일을 경험한다. 

유부남에 이어 찾아간 친구 억만은 비관형 '케 세라 세라'에 '진상'이 추가된 유형이다. 그는 술집에서 "중학에서 수재를 했고 대학도 나왔는데 사회에서는 낙제"라며 신세한탄을 하다가 나중엔 괜히 시비를 걸어 몸싸움까지 한다. 수술비를 빌리려는 친구에게 이 남자가 하는 말은 "수술할 돈이 있거들랑 내 외상술이나 마셔." 이 대사로 억만의 미래가 빤히 보인다.        

마지막 부류는 금(은)수저 달고 나와, '심심하지 않을' 재미거리만을 찾아 헤매는 인물이다. 규재에게 일요일은 심심한 데다, 친구를 만나면 커피값만 내야 되는 고역의 날이다. 그래서 친구를 만나는 대신 택한 방법이 추운 날에 집에서 목욕을 6번이나 하며 시간 보내기. 혼자 살며 가사도우미를 두고, 그 시절에도 온수를 펑펑 쓸 수 있을 만큼 돈이 넘쳐나는 청년이다. 단지 무료한 것이 가장 비극이다. 이에 친구가 돈과 시계를 갖고 도망간 것을 알자 "심심한 판에 잘되었다. 망할 자식"이라 중얼거리며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그에게는 우정보다는 돈이, 돈보다는 재미가 더 우선인 사람이니까.

지금과 비교해 봐도 이 1968년산 캐릭터들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지 않는가. 그래서 잘 만든 영화라 단언한다. 게다가 이 영화는 매우 친절하게도 영화 도입부에서 결말에 대해 노골적으로 암시해 준다. 허욱이 길에서 '새'가 골라주는 점괘를 보는데, "여자를 가까이 말라. 그렇지 않으면 손재를 본다"라고 노파가 풀이한다. 이에 그는 "이미 5원을 손재"했다며 웃어넘기며 그녀를 만나러 간다. 그리고 엄청난 비극과 마주한다. 제작비가 얼마나 들었는지 모르나, '가성비 갑'의 노련한 표현을 갖춘 것만은 확실하다.

이 가성비 갑다운 표현은 허욱이 살롱의 여인과 만나 돌아다니는 과정에서도 드러난다. 둘은 고급 경양식 살롱에서 소규모 일식집, 왕대포를 거쳐 허름한 술집, 포장마차까지 무려 5차를 한 후 건물 공사현장으로 향한다. 이 6단계의 장소 이동은 점점 추락하는 그들의 인생을 예견하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에 술에 취한 두 남녀의 어지러운 환각적 상태는 뱅뱅 도는, 1960년대 유행한 사이키델릭 풍의 배경음악으로 나타내었다.   

이만희 감독 이만희 감독은 1931년 10월 6일에 태어나 1975년 4월 13일에 사망했다. 데뷔작인 1961년 <주마등> 을 비롯하여 15년 동안 50편의 다양한 장르 영화를 만들었다.

▲ 이만희 감독이만희 감독은 1931년 10월 6일에 태어나 1975년 4월 13일에 사망했다. 데뷔작인 1961년 <주마등> 을 비롯하여 15년 동안 50편의 다양한 장르 영화를 만들었다.ⓒ 한국영상자료원


이 영화에는 재미난 장면도 있다.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라 불리던 1960년대에 만들어진 영화답게, 주인공 허욱이 길에서 얼핏 구경하던 벽은 수많은 영화포스터로 도배가 되어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허욱 역을 맡은 배우는 바로 당대의 인기스타 신성일. 그는 1960년 <로맨스 빠빠>로 데뷔했는데, 1967년도에 찍은 영화만 무려 50편, 68년에도 48편에 달한다. 그래서 문득 든 생각은, 어쩌면 그 벽에 있는 포스터들에 분명 허욱의 얼굴이 있었을 거라는 확신이... DVD를 정지시켜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아야 했다.

그런데 끊임없이 인물들의 대사를 통해 '지금은 일요일'이라고 시간적 배경을 콕콕 집어서 세뇌시키듯 알렸으면서, 정작 제목은 '일요일'이 아닌 '휴일'로 정했다. 추측컨대 일요일의 한자 '日曜日'에 담긴 '태양'의 밝고 희망찬 느낌과 달리, 영화는 암울하고 비극적인 분위기인 것을 고려한 게 아닐까. 또한 자의든 타의든 할 일이 없는, 무기력하거나 무료한 청춘의 모습에는 '쉴 휴(休)'가 더 제격이기도 하고. 안타깝게도 어찌 제목을 <휴일>로 했냐고 이만희 감독에게 물어볼 수는 없다. 1931년 10월 6일에 생의 무대에 오른 이만희 감독은, 첫 데뷔작인 1961년 <주마등> 등 15년 동안 50편의 다양한 장르 영화를 올리고, 1975년 4월 13일에 일찍 무대 뒤로 사라졌기 때문이다.

한편, 이 영화와 동명인 작품들이 있다. 김진무 감독의 <휴일>(2010), 베르나데테 크놀러 감독의 독일 영화 <휴일>(2015). 함께 비교해 보며 감상해 보는 것도 무료한 날을 달래기에 좋을 성 싶다. 이번 일요일에 <휴일>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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