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범자들 포스터. <자백>의 최승호 PD 두 번째 작품이다.

▲ 공범자들 포스터. <자백>의 최승호 PD 두 번째 작품이다. ⓒ (주)엣나인필름


정권이 바뀌었다. 그러나 공영방송사는 그대로다. 세월호 침몰 참사를 비롯해 지난 정권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사건들 가운데서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린다며 지탄받아온 KBS와 MBC가 언제쯤 제 모습을 찾을지 많은 이가 관심을 두고 있다. 이들 방송사 사장과 이사장을 향해 국민이 아니라 지난 정권에 충성했다며 손가락질하는 이도 한둘이 아니다.

돌아보면 틀린 말이 아니다. 공영방송을 망가뜨린 자들의 어제를 기록하고 오늘을 추적해 역사의 심판대 위에 세우려는 최승호 감독의 다큐멘터리 <공범자들>은 그 모든 비판에 합당한 이유가 있음을 증명한다.

최승호 감독은 MBC PD수첩에서 2005년 황우석 박사 줄기세포 논문조작 사건, 2010년 스폰서 검사 사건 등을 파헤치며 명성을 떨친 MBC 시사 교양국의 간판 PD 출신이다. 이명박 정권 아래서 4대강 의혹 보도를 준비하다 비제작 부서로 강제 전출을 당하기도 했던 그는 지난 2012년엔 27년간 몸담은 MBC로부터 파업참여 등을 사유로 해고통보를 받았다. 이후 세 번째 시즌을 맞은 독립언론 뉴스타파에 전격 합류, 조세회피처 문제 등 한국사회를 뒤흔든 사건들을 사회에 고발해왔다.

MBC와 뉴스타파를 거치며 탐사 보도에 있어 한국에서 가장 이름 있는 언론인 가운데 한 명이 된 그는 지난해 <자백>에 이어 올해 <공범자들>을 다큐멘터리영화로 내놓으며 새로운 언론의 가능성을 시험하고 있다. 27일 일요일까지 <공범자들>이 모은 관객은 14만 명으로 전작 <자백>에 든 총관객 수와 맞먹는다. 시사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가운데선 역대 가장 빠른 수준의 흥행세다.

MBC와 KBS를 망가뜨린 범인은?

공범자들 공영방송이 장악당한 시기, 많은 기자가 펜을 들 수 없었고 많은 아나운서가 마이크를 잡지 못했다. 같은 기간 그들이 취재하고 대변했어야 할 가치 있는 목소리도 그대로 사라졌다.

▲ 공범자들 공영방송이 장악당한 시기, 많은 기자가 펜을 들 수 없었고 많은 아나운서가 마이크를 잡지 못했다. 같은 기간 그들이 취재하고 대변했어야 할 가치 있는 목소리도 그대로 사라졌다. ⓒ (주)엣나인필름


<공범자들>은 공영방송이 지켜온 역사와 가치를 무너뜨린 공범자들을 고발하는 작품이다. 언론을 망친 주범, 즉 권력의 핵심인물을 조명하는 대신 이에 동조한 공범자들을 지목한다. 영화에 등장한 공범자들은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KBS 김인규·길환영 전 사장, 고대영 현 사장, 유재천 전 이사장, MBC 안광한·김재철 전 사장, 김장겸 현 사장, 방송문화진흥회 김우룡 전 이사장, 고영주 현 이사장, 유의선 현 이사 등이다. PD수첩 광우병 편을 수사·기소한 검사 5명(정병두, 전현준, 박길배, 김경수, 송경호)도 권력 부역자로 이름이 올랐다.

민감한 사안에 연루된 이들의 얼굴과 실명 등이 그대로 공개되는 탓에 <공범자들>은 개봉 전부터 논란을 빚었다. 김장겸 사장 등 전·현직 MBC 임원 5명이 제기한 영화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영화가 동의 없이 자신들의 얼굴과 음성을 공개했다며 초상권과 퍼블리시티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이들이 공인이며 영상 역시 사전에 공개된 것이라는 이유 등을 들어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일각에선 이런 논란이 도리어 영화의 흥행에 힘을 실어주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초반부 영화가 다룬 내용은 지난 수년간 KBS와 MBC를 관심 있게 지켜봐 온 사람이라면 충분히 알고 있는 문제들이다. 영화는 이를 체계적으로 묶어 지난 정권들이 어떻게 공영방송을 장악했는지, 그것이 미친 해악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차근히 풀어간다. 정권이 임기가 끝나지 않은 공영방송 사장을 부당하게 몰아내고 그 자리에 낙하산 인사를 임명했으며, 다시 그 사장이 정권 입맛에 맞는 보도를 하기 위해 부당한 인사조처를 감행했다는 게 주된 내용이다. 이들은 눈엣가시 같은 기자·PD·아나운서 등을 보도와 관련 없는 비제작 부서로 발령했고 그중 일부에 대해서는 해고조치도 서슴지 않는다.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부당한 문제를 고발하는데 전력을 기울여야 할 공영방송 구성원들이 소속된 회사에 맞서 파업을 벌이고 피켓을 들어야 하는 순간의 당혹스러움은 익히 상황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도 화를 불러일으킬 만한 장면이다. 이 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동안 크고 작은 도둑이 나라의 재산을 축냈고 수많은 개인과 가정, 기업이 허망하게 주저앉았다. 마땅히 알리고 경계해야 할 일이었으나 가장 앞장서야 할 언론은 내내 다른 곳만 보고 있었다. 세월호 침몰 참사의 한가운데서 벌어진 언론 참사가 예고된 인재였던 건 이 때문이다.

평범한 사람이 싹틔운 거대한 악

공범자들 영화 내내 최승호 감독은 공영방송을 망친 공범들을 찾아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이댄다. 김재철 MBC 전 사장이 최 감독의 질문에 응대하는 방식과 그 내용은 관객의 헛웃음을 자아낸다.

▲ 공범자들 영화 내내 최승호 감독은 공영방송을 망친 공범들을 찾아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이댄다. 김재철 MBC 전 사장이 최 감독의 질문에 응대하는 방식과 그 내용은 관객의 헛웃음을 자아낸다. ⓒ (주)엣나인필름


<공범자들>의 가장 큰 미덕은 영화를 본 모두가 알고 있듯이 공범자들에 직접 카메라와 마이크를 가져다 대고 질문을 던지는 순간에 있다. 공범자들이 어째서 그 같은 행동을 했는지, 그들은 과연 어떤 사람인지를 영화가 낱낱이 보여준다.

이들은 카메라와 마이크에 대고 진실을 말하지 않지만 그로써 진실의 한 단면이 드러나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다. 한나 아렌트가 명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지적한 것과 같이 역사 속 기록할 만한 악행은 광신자나 반사회성 인격 장애자들에 의해서 발생하지 않는다. 대신 국가와 체제에 순응하고 자신들을 보통의 사람이라고 여기는 자들에 의해 행해진다. 영화는 이 사실을 전면에 드러낸다.

그러나 과연 이것이 끝일까. 영화의 미덕은 곧 영화의 한계로 이어진다. 과연 이들만이 공영방송을 망친 공범자들일까? 모두가 알고 있는 것처럼 결코 이들만이 공범자들인 게 아니다. 실제 공범자들은 그보다도 훨씬 더 많다. 공영방송을 바로잡기 위한 내부자들의 투쟁은 어떻게 저지됐는가. 어떻게 소외되고 힘을 잃어갔는가를 생각해보면 답은 명확해진다.

내부자들의 투쟁은 투쟁에 함께하지 않은 이들과 대체인력의 수급을 통해 금세 메워졌다. 영화에서 김민식 PD가 이야기했듯 회사가 파업에 나선 이들을 향해 "너희는 그렇게 대단하지 않아"하고 말하는 듯했다. 다른 많은 노동조합 투쟁현장에서와같이 비정규직 대체인력이 뉴스와 방송을 제작했고 진행했다. 뉴스는 전과 같은 꼭지로 만들어졌고 다른 프로그램 역시 마찬가지였다. 겉으로 봐서는 아무런 문제도 없는 듯했다. 조용히 제거됐고 조용히 채워졌으므로.

미덕만큼 명백한 한계

공범자들 공영방송을 망가뜨린 주범을 최승호 감독은 끝내 대면한다.

▲ 공범자들 공영방송을 망가뜨린 주범을 최승호 감독은 끝내 대면한다. ⓒ (주)엣나인필름


영화가 지목한 공범자들이 매우 안전하고 좁게 설정된 것은 그 때문이다. <공범자들>이란 제목에 기대감을 안고 들어선 이라면 주범에 가까운 공범만이 등장하는 모습에 실망을 감추기 어려울 것이다. 대체 어디까지가 공범자인가. 개뼈다귀 몇 개 얻자고 공영방송 망가뜨리는데 일조한 이들, 숨죽이고 모른 척 제 배만 불린 자들, 주변 일엔 관심 두지 않고서 발길 재촉하던 바깥사람들, 박차고 일어나 행동하지 않고서는 마음만은 응원한다고 속삭이던 우리까지.

영화는 보다 문제적일 수 있는, MBC를 망가뜨리는데 책임 있는 모든 사람을 겨냥하고 책임을 물었어야 했다. 화해가 필요하다면 그 뒤에 이뤄져야 마땅한 일이었다.

그러나 영화가 선택한 길은 그보다 훨씬 안전한 것이었다. 물론 그 선택으로 공영방송 내부에 내재했던 많은 문제가 터져 나올 위험도 있었을 테다. 이를테면 파업의 중심에 선 정규직 직원들이 눈 감고 있었을 방송가의 비정규직 문제와 같은 것들 말이다.

하지만 문제 전체를 직시한 후에야 제대로 된 답이 나올 것이 아니겠는가. 그저 연대기 순으로 당시 있었던 문제를 되짚고 몇몇 유명인의 어제와 오늘을 들여다보는 정도에서 막을 내리기엔 최승호 PD의 이름값이, <공범자들>이란 제목이, 그의 영화에 지불된 내 푯값이 너무 아깝지 않은가.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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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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