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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9월 22일 오후 5시 50분]

김종관 감독의 영화 <더 테이블>은 한 카페의 창가에 있는 테이블을 클로즈업한다. 테이블 위 투명한 유리컵 속 새하얀 꽃잎과 오전의 반짝이는 햇살, 창가를 노크하는 시원한 여우비는 몽환적이면서 나른한 음악과 어울려 공간에 깊이를 더한다.

테이블로 여배우가 된 유진(정유미 분)과 전 남자친구 창석(정준원 분)이 온다. 얼굴의 절반을 가리는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한 유진은 창석을 보자 얼굴을 조심스럽게 드러낸다. 유진을 알아본 행인들은 카페로 들어와 다짜고짜 사인을 요청한다. 창석은 유진에게 떠도는 뒷소문에 관해(소문 중에는 사실도 있다며) 묻는다. 성형설, 열애설을 듣고 해명하는 유진은 성 추문에 이르자 표정이 일그러진다. 유진 몰래 카페 바깥에서는 창석의 동료들이 둘을 지켜보고 있었다.

창석의 행위, 뒷소문은 유진을 이용하는 오락거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요리잡지 기자 경진(정은채 분)과 실업자 민호(전성우 분)가 테이블로 온다. 인도와 유럽을 다녀온 민호는 여행기를 말한다. 내밀한 기록이 없다. 해외여행을 막 마치고 온 조금 들뜬 마음, 그녀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여배우 유진처럼 경진은 테이블을 떠나려고 했지만, 무엇이 경진을 잡는다. 민호는 경진을 얻으려고 만든 허영기 있는 소문으로 찬 여행기를 버리고, 그녀와 함께하고 싶은 마음을 여행지에서 산 담소한 선물과 함께 고백했다.

허영으로서, 오락거리로서…. 그 소문들 중에는 일말의 사실에 근거하는 게 있을지도 모른다. 소문이 추문으로 틀어지고 사실로 드러나 크고 작은 여론과 법정재판의 대상이 되는 수가 빈번하므로.

결혼 사기꾼 은희(한예리 분)와 가짜 엄마 숙자(김혜옥 분)가 테이블로 온다. 은희와 숙자는 범죄의 사실이 드러나지 않은 사기꾼이다. 소문이 나고 사실로 입증돼 처벌로 이어진다면 범죄피해를 방지할 수 있다. 그러나 사기꾼 이전에 지금 은희는 사기꾼이라고 보기 어렵다. 사기꾼이 아니라고 하기도 어렵다. 결혼 사기를 치려다 사랑에 빠진 것이다. 거짓말에서 사랑이 시작되어 위태롭다.

은희와 그녀의 연인 이외의 이들이 그들의 관계에 대해서 논쟁하는 건 소모적이다. 그런데도 한다면 은희는 지금도 사기꾼이 아닌가. 사랑해서 하는 결혼이라 해도 가짜 엄마 숙자는 생물학적 엄마가 아니다. 은희의 배경에는 블라인드가 내려졌다. 속이는 것이다. 그런데도 한다면 당사자인 은희의 연인과 은희가 먼저 판단할 일이다.

저녁이 되자 약혼녀 혜경(임수정 분)과 그녀의 친구 운철(연우진 분)이 테이블로 온다. 이성 친구와의 오묘한 관계 그 안에서 나타나는 감정은 통제하기 쉽지 않다. 서로 감정이 있다면 더구나. 혜경은 자신을 잡아달라고 하고 운철은 거부한다. 카페를 나서며 운철이 자신을 잡아달라고 하자 혜경이 거부한다.

사실을 클로즈업하는 것이 소문이다. 사실이 부풀어 다른 사실들을 보이지 않게 하는 사실 혹은 거짓이다. 결과는 배반과 부정이 아니지만 혜경은 약혼한 연인을 배반했다, 운철은 부정을 저질렀다. 보는 시각에 따라 달라지는 사실들. 나아가 만일 앞말이 성립하려면 엄정·엄격해야 한다. 블라인드가 상시 개방되어야 한다.

그 앞에서 죄인이 아닌 사람이 있겠는가.

나와 안면이 없는 그의 뒷소문은 이롭지 않다. 누군가의 판단으로 그를 재창조하는 작업은 그리 이롭지 않다.

더 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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