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이글스 베테랑 투수 배영수(36)가 부정투구 논란에 대하여 결국 사과했다. 배영수는 지난 20일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 열린 롯데와의 경기 도중 부정투구에 해당될 수 있는 동작을 취했다. 배영수는 본인의 허벅지에 로진백 가루를 묻힌 뒤 공을 문질렀는데 이는 KBO 야구 규칙 8조 2항에 따라 명백히 부정투구에 해당되는 행위였다.

하지만 당시 심판도, 상대팀인 롯데도, 아무도 이를 제대로 적발하지 못하여 조용히 묻혀질뻔했던 이 장면은 눈썰미가 좋은 야구팬들이 TV 중계를 통하여 부정투구 의혹을 제기하면서 뒤늦게 공론화됐다. 여론이 악화되자 결국 KBO도 자체 조사결과 배영수의 동작이 부정투구임을 확인했고 야구관련 방송 프로그램에서도 이 내용을 다루며 사건은 일파만파로 확대됐다. 사건이 벌어진지 벌써 며칠이 흘렀지만 아직도 '배영수 부정투구'라는 단어가 온라인 검색어에서 상위권을 차지할만큼 야구팬들의 관심은 뜨거웠다.

"불필요한 행동" 인정 배영수, 고의성은 '부정'

배영수도 23일 수원 케이티위즈파크에서 부정투구 논란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스스로" 마운드 위에서 불필요한 행동을 했다"라고 인정했지만 고의성에 대해서는 강하게 부정했다. 여론이 악화되며 이 사건으로 그동안 자신의 프로 생활 전체가 부정당하는 분위기에 대하여 착잡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 사건은 모두에게 씁쓸한 상처만을 남겼다. 일단 논란의 당사자인 배영수는 이번 사건으로 어쩌면 야구인생에 두고두고 주홍글씨가 될수 있는 큰 오점을 남겼다. 배영수 측은 논란이 커지자 뒤늦게 사과 의사를 표시했지만 애초에 이 사건을 단순한 '실수'정도로 취급하면서 오히려 팬들의 여론을 더 자극한 측면이 있었다.

배영수는 올해로 프로무대인 19년차 베테랑 투수다. 보크나 사구도 아니고 명백한 부정투구 행위를 실수라고 표현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았다. 설령 정말로 고의성이 없는 실수였다고 해도, 그렇다면 과거에도 이런 행동이 부정행위인지 본인도 인지하지 못하면서 상습적으로 공을 던졌냐는 의혹이 나올 수 있는 대목이다.

야구팬들은 배영수의 삼성 시절 경기까지 거론하며 부정투구로 의심되는 장면들을 찾아내는가 하면, 지난 4월 롯데전에서 배영수가 세트 포지션에서 왼쪽 발을 몇 차례 흔든 뒤 투구했던 장면도 재조명되고 있다. 당시 롯데 벤치 측에서 반칙투구라며 항의를 했으나, 심판이 경고 한 번을 준 뒤 경기가 계속 진행됐다. 이제는 단순히 부정투구 유무를 떠나 배영수가 '언제부터, 얼마나' 부정투구를 상습적으로 해왔는지, 야구 커리어 전반의 순수성에 관한 의구심으로 논란이 커지고 있다.

팬들의 실망감이 더 큰 것은 그가 다름아닌 '배영수'이기 때문이다. 배영수는 현역 최다인 134승을 거둔 KBO의 레전드급 투수다. 그동안 부상과 부진 등 숱한 위기를 이겨내고 지금까지 살아남는 오뚝이같은 야구인생 스토리도 많은 야구팬들에게 감동을 안겨줬다. 삼성 시절에는 '푸른 피의 에이스(삼성의 유니폼 색깔)'라는 별명과 함께, "아무리 부진해도 배영수만큼은 비판해서는 안된다."는 팬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배영수의 땀과 노력을 누구보다 사랑해오던 팬들에게 더 깊은 상처를 줬다. 물론 배영수의 주장처럼 모든 경기에서 부정투구를 했다고 비약하는 것은 섣부르지만, 어쨌든 이번 사건으로 배영수에 대한 야구팬들의 신뢰와 위상에 큰 흠집을 남기게 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KBO 최다승의 주인공 송진우 전 한화 코치  역시 은퇴후 현역때 바셀린으로 글러브를 닦아왔다는 내용을 고백하며 부정행위 논란에 휘말린 바 있다. 송진우는 이에 대하여 결백을 주장하고 있지만 야구팬들 사이에서는 지금까지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혹으로 남아있는 꼬리표가 된 바 있다.

배영수의 현 소속팀인 한화로서도 당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화는 올시즌 성적부진에 이어 주축 선수들의 줄부상 등 가뜩이나 여러 가지 악재로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그런데 배영수까지 불미스러운 사건에 휘말리며 구단 이미지에 또다시 먹칠을 한 셈이 됐다. 

배영수는  김성근 전 감독 시절인 2015년 FA로 삼성을 떠나 한화에 입단했다. 당시 전성기가 지난 퇴물 취급을 받고 있던 배영수에게 한화는 마지막 돌파구였다. 첫 2년간은 부상과 부진으로 팀에 거의 기여하지 못하며 '먹튀' 취급을 받다가, 올시즌 6승을 거두며 무너진 한화 선발진에서 그나마 분투하고 있는 투수로 꼽혔다.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배영수의 올시즌 활약마저 '부정투구' 의혹이라는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됐다. 애꿎은 한화로서는 송은범에 이어 배영수마저 'FA 잔혹사'의 한 페이지로 남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배영수가 이번 사건으로 상처받은 팬들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한동안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번 사건은 KBO와 각 구단들에게도 중요한 문제의식을 전해준다. 이번 사건은 어쩌면 심판이나 KBO 같은 야구 전문가들이 먼저 적발하고 엄격하게 처리했더라면 해프닝으로 끝날 수도 있었던 사안이었다. 그러나 배영수의 부정투구를 짚어내고 공론화시킨 것은 바로 팬들의 힘이었다. 단순한 무능이건 의도된 침묵이었든 팬들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껴야 할 대목이다.

팬들은 스포츠이기에 더욱 엄중한 공정성과 스포츠맨십을 기대한다. 이번 사건이 왜 팬들 사이에서 유독 논란이 되었는지, 왜 '실수'나 '경고'같은 안이한 대처에 만족하지 못하는지 되새겨봐야 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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