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AFC 아시안컵>에서 4골을 기록중인 구자철

2011 AFC 아시안컵에서 4골을 기록한 구자철 ⓒ MBC SPORTS+


구자철이 포지션 변경을 선언했다. 우리에게 익숙한 공격형 미드필더가 아닌 수비형 미드필더로 2017·2018시즌을 시작했다. 

크게 낯설지는 않다. 본래 구자철은 최전방 공격수 아래 위치해 공격을 지휘하고, 득점을 책임지는 선수가 아니었다. 프로 생활을 시작한 제주 유나이티드에서 포백 보호와 공수 연결고리 역할을 맡아 K리그 정상급 미드필더로 올라섰고, 홍명보 감독이 이끌던 U-20 대표팀에서도 허리의 중심축 역할에 충실했다.

구자철이 공격적 재능을 드러낸 것은 2011 카타르 아시안컵이었다. 당시 국가대표팀을 지휘한 조광래 감독은 주전 스트라이커 박주영의 공백으로 약해진 공격력을 보완하기 위해 구자철의 포지션 변경을 시도했다. 최전방 스트라이커 지동원의 바로 아래 위치해, 박지성, 이청용과 함께 화력을 더하는 역할이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구자철은 숨어있던 공격 본능을 폭발시키며, 2011 카타르 아시안컵 득점왕을 차지했다. 그 덕에 독일 분데스리가 볼프스부르크로 이적해 유럽 무대에 도전했다. 이어 2012 런던 올림픽 동메달과 아우크스부르크 잔류 신화 등을 이뤄내며,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2017·2018시즌은 구자철이 유럽에서 보내는 여덟 번째 시즌이다. 여전히 공격형 미드필더가 어울린다. Vfl 볼프스부르크와 마인츠 05 시절, 수비형 미드필더를 맡았던 적이 있지만,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공격형 미드필더와 최전방 공격수를 오가는 모습이 훨씬 익숙하고, 좋은 결과도 만들어냈다. 

구자철은 '왜' 포지션 변경을 선택했을까

우선, 아우크스부르크의 팀 내 사정을 봐야 한다. 지난 시즌 아우크스부르크의 중원을 책임진 도미닉 코어가 바이어 04 레버쿠젠으로 임대 복귀했다. 수비에 안정감을 더하고, 공격을 전개할 수 있는 미드필더가 사라졌다. 3선에 위치한 경험이 많고, 풍부한 활동량을 바탕으로 공수를 오갈 수 있는 구자철의 포지션 변경이 불가피했다.

UEFA 유로파리그 지난 25일(현지시각) 영국 리버풀 안필드에서 열린 리버풀 FC와 FC 아우크스부르크의 UEFA 유로파리그 32강 경기에서 아우크스부르크 소속 구자철이 리버풀의 필리페 쿠티뉴를 상대하고 있다.

▲ UEFA 유로파리그 지난 2016년 2월 25일(현지시각) 영국 리버풀 안필드에서 열린 리버풀 FC와 FC 아우크스부르크의 UEFA 유로파리그 32강 경기에서 아우크스부르크 소속 구자철이 리버풀의 필리페 쿠티뉴를 상대하고 있다. ⓒ 연합뉴스/EPA


아우크스부르크에서 2년 차 시즌을 맞이한 마누엘 바움 감독의 변화 의지도 구자철의 포지션 변경을 불러왔다. 지난 시즌 아우크스부르크는 좌우측 풀백의 공격 가담을 최소화하고, 중원을 수비에 가담시켜 두터운 수비벽을 구축하는 데 능했다. 

공격은 수비에서 한 번에 길게 넘겨주는 패스로 일관하는, 일명 '뻥축구'에 의존했다. 지난 시즌 팀 내 최다 득점자가 측면 공격수와 미드필더를 오갔던 하릴 알틴톱(6골)이었고, 수비수 콘스탄티노스 스타필리디스(4골)와 마르틴 힌테러거(3골) 등이 그다음에 자리했다. 득점력이 매우 취약하고, 세트피스를 활용한 공격에 의존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개선이 필요했다. 중원을 거치지 않는 '뻥축구'로는 반복되는 생존 경쟁을 피할 수 없었다. 아우크스부르크 축구에 특화된 '주포' 라울 보바디야도 묀헨 글라드바흐로 떠나가면서, 변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볼을 지켜내는 데 능숙하고, 전진 패스와 정확한 킥력을 갖춘 구자철이 3선에 필요했다. 

본인도 포지션 변경을 원했다

구자철은 전방에서 몸을 아끼지 않는 투지가 트레이드마크다. 거친 몸싸움을 피하는 일이 없고, 몸을 날려 공격 기회를 살려내는 모습이 익숙하다. 그래서일까. 그는 유럽에서 머문 7시즌 동안 리그 30경기 이상을 소화한 적이 없다. 매 시즌 부상과 힘겨운 싸움을 해야 했고, 지난 시즌처럼 일찌감치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일도 잦았다.

구자철의 부상 장면을 돌아보면, 상대 페널티박스 부근에서 쓰러진 경우가 많았다. 그는 부상이 우려되는 상황에서도 득점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았다. 수비가 밀집한 지역에서 자신이 직접 볼을 소유하고, 드리블해 나아가는 습관까지 생겼다. 구자철의 슈팅이 실점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상대 입장에서는 거친 태클을 해서라도 막을 수밖에 없었다.

구자철이 3선에 위치한다면, 이전보다 부상 위험을 줄일 수 있다. 그는 중원 지역에서 상대의 압박을 이겨내는 데 탁월하고, 공간을 활용한 패스에 능하다. 후방에서 플레이하는 시간이 길어진다면, 거친 태클을 마주할 가능성이 낮아진다. 다만, 불필요하게 볼을 오래 잡아두는 습관은 개선이 필요하다.

구자철의 수비형 미드필더 전환 효과는 2017·2018시즌 개막전부터 드러났다. 3선에 위치한 구자철이 팀을 패배 위기에서 구해내지는 못했지만, 아우크스부르크는 이전과 달라진 축구를 선보였다. 한 경기에서 패스 300번 이상을 시도한 적이 없었던 지난 시즌과 달리, 올 시즌 개막전에는 무려 469번의 패스(성공률 78%)를 기록했다.

자신들의 수비 지역에서만 볼을 돌린 것이 아니었다. 짧은 패스를 통해 공격이 이루어지기 시작했고, 그 중심에 구자철이 있었다. 아직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아우크스부르크는 지난 시즌보다 효율적이고, 공격적인 축구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마지막 2연전을 앞둔 신태용호에도 희소식이다. '주장' 기성용이 부상으로 인해 출전이 어려운 만큼, 수비형 미드필더로 돌아온 구자철이 반갑다.

공격 본능을 억제하고, 자신과 팀을 위해 변신을 선언한 구자철. 그의 변신이 아우크스부르크와 한국 축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축구팬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독일 분데스리가 아우크스부르크의 지동원(왼쪽 두번째)과 구자철(왼쪽 네번째)이 지난 15일 광복절을 맞아 아우크스부르크 구단 SNS 한국계정을 통해 팀 동료들과 태극기를 들고 있는 사진을 공개했다. [아우크스부르크 페이스북 캡처=연합뉴스]

독일 분데스리가 아우크스부르크의 지동원(왼쪽 두번째)과 구자철(왼쪽 네번째)이 지난 15일 광복절을 맞아 아우크스부르크 구단 SNS 한국계정을 통해 팀 동료들과 태극기를 들고 있는 사진을 공개했다. [아우크스부르크 페이스북 캡처=연합뉴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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