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재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남자농구대표팀은 최근 레바논에서 열린 2017 국제농구연맹(FIBA) 아시아컵에서 3위를 기록했다. 대표팀은 4강진출이라는 1차 목표를 달성했을 뿐만 아니라 짜임새있는 패싱게임과 공격농구로 성적·재미·세대교체라는 세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호평 일색이었던 이번 대표팀에서 유일하게 웃지 못한 선수가 있었으니, 바로 KBL 최고 몸값을 자랑하는 '연봉킹' 이정현(전주 KCC)이었다. 주장 오세근(KGC 인삼공사)과 함께 대표팀의 최고참이자 해결사로 기대를 모았던 이정현이지만 이번 대회에서 꾸준히 주전으로 기용되고도 평균 18.9분 출장에 7.4점, 3.3어시스트라는 저조한 성적에 그쳤다. 야투율은 31.4%(16/51), 3점슛도 31.6%(12/38)에 머물렀다. KBL에서 잘 통하던 돌파와 파울 유도에 의한 '자유투 끌어내기'도 잘 먹히지 않으면서 11개의 자유투만을 얻어내 8개를 성공시키는데 그쳤다.

이정현이 이번 대회에서 두 자릿수 득점을 올린 것은 팀이 대승을 거둔 카자흐스탄(19점)과 필리핀전(11점) 뿐이다. 하지만 이 2경기는 이정현이 잘해서 이겼다기보다는 팀 전체가 고르게 폭발하며 비교적 쉽게 이긴 경기였고, 이정현의 득점도 한 쿼터에 잠깐 '몰아치기'로 쌓은 것에 불과했다. 그나마 카자흐-필리핀전을 제외하면 나머지 5경기에서 이정현의 득점은 평균 4.4점. 3점슛 성공률은 17.3%(4/23)까지 뚝 떨어진다. 심지어 공격도 공격이지만 이번 대회 내내 이정현은 수비에서도 사실상 가장 큰 구멍 수준이었다. 한마디로 빅매치와 중요한 순간에서는 전혀 제몫을 해주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공교롭게도 이번 대회에서 한국이 패배했던 레바논전(66-72)과 이란전(81-87)에는 모두 중요한 순간마다 이정현의 부진이 팀 패배에 결정적인 빌미를 제공했다. 레바논전에서 이정현은 6개의 야투를 모두 실패하며 무득점에 그쳤고, 2점차까지 추격하며 상승세를 타던 4쿼터 승부처에서는 이정현이 노마크 3점슛을 놓친데 이어 실책과 파울로 인한 바스켓 카운트까지 헌납하며 레바논에 다시 흐름을 넘겨주는데 일등공신이 됐다.

이란과의 준결승전에서는 접전이 펼쳐지던 4쿼터 오세근과 콤비를 이뤄 한 두차례 좋은 플레이를 선보이기도 했으나 무려 5개의 턴오버를 저질렀고 이중 3개가 중요한 승부처인 경기 막판에 몰리면서 다잡은 승리의 기회를 날리고 말았다.

이정현이 저지른 실책의 대부분이 상대의 수비가 좋았다기보다는 충분히 잡을수 있었던 볼을 흘리거나 패스 타이밍을 놓치는 등 본인의 집중력 부족에서 비롯된 실수였기에 더욱 뼈아팠다. 대표팀이 이번 대회 내내 최고의 경기력을 선보이며 결승진출에 대한 기대감이 어느 때보다 높았기에, 이란전 패배 이후 농구팬들 사이에서 이정현의 답답한 플레이는 집중적인 비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동갑내기인 오세근이 이번 대회에서 평균 16점, 5.7리바운드, 야투율 62.3%(48/77)에 이르는 맹활약으로 대회 베스트 5에까지 선정된 것과 비교하면 초라해질 수밖에 없다. 심지어 이정현의 성적은 벤치멤버였던 또다른 슈터 자원인 허웅(9.9점 3점슛 47.1% 16/34)- 전준범(7점. 3점슛 46.7% 14/30)같은 후배들 보다도 떨어졌다.

두 선수는 평균 15분 내외의 짧은 출전시간과 많지 않은 볼 소유시간에도 불구하고 투입 때마다 확률높은 결정력으로 외곽 공격의 활로를 열어줬다. 이정현을 선발로 내보내서 초반 부진하다가 전준범과 허웅을 투입한 이후에 오히려 경기력이 살아나는 경우가 많았다. 이정현이 베스트 5였음에도 평균출전시간이 20분이 채 되지못했던 이유도 계속된 부진으로 승부처에서 거의 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정현은 2015년 창사 아시아선수권(아시아컵의 전신) 이후로 꾸준히 국가대표로 선발되고 있다. 문태종-조성민 등 베테랑들이 은퇴하거나 노쇠한 대표팀 슈터진의 계보를 이을 선수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KBL 무대에서 보여준 톱클래스 슈터로서의 경쟁력이 국제대회에서는 좀처럼 나오지 않고 있다.

이정현은 사실 KBL에서도 아주 정교한 슈터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통산 야투 성공률이 42.1% 3점슛이 고작 33.5%에 불과하다. KBL에서 이정현의 최대 장점은 국내 선수로서는 탄탄한 체격을 바탕으로 슛이 안들어가더라도 2대 2플레이나 돌파-포스트업을 통하여 골밑 득점이나 파울을 유도하여 자유투를 얻어내는 능력이었다.

그런데 이정현보다 동 포지션에 더 크고 빠른 선수들이 넘쳐나는 국제대회에서는 아시아무대에만 나가도 이정현의 장점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 이른바 '으악' 기술로 통하는 이정현 특유의 파울유도용 할리우드 액션도 국제 대회의 심판들은 철저히 외면했다. 

전준범과 허웅이 볼 소유시간이 길지 않아도 효율적인 결정력을 보여준데 비하여 이정현은 '캐치앤 슛'보다는 소속팀에서 항상 자신이 공을 들고 직접 공격을 시도하는 플레이에 익숙한 것도 대표팀의 패싱게임 스타일과는 맞지 않았던 대목이다. 한마디로 KBL에서 통하는 선수와 국제대회의 기준이 요구하는 선수간에 분명히 차이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 바로 이정현의 부진이었다.

이정현의 부진은 11월부터 시작되는 농구월드컵 예선을 앞두고 허재 감독에게도 또다른 고민거리를 안겼다. 어쨌든 현재 KBL에서 이정현보다 더 뛰어난 활약을 보이고 있는 2번 자원을 찾기란 쉽지 않다. 몸값만 비싼 '국내용' 선수라는 오명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이정현 스스로가 자신의 플레이스타일에 대한 각성이 필요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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