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별리그(레바논·카자흐스탄·뉴질랜드)도 통과하기 어렵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희망을 꽃피운 '2017 FIBA 아시아컵'이었다.

허재 감독이 이끄는 한국 농구대표팀(남자)이 21일 새벽 0시 30분(한국 시각)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열린 '2017 FIBA 아시아컵' 3-4위전 뉴질랜드와 경기에서 80-71로 승리했다. 우리 대표팀은 이란과 치열했던 준결승전을 치른 지 24시간이 채 지나지 않았지만,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하며 유종의 미를 거두는 데 성공했다.

피로가 풀리지 않은 탓인지 출발은 좋지 못했다. 높이를 앞세운 뉴질랜드에 골밑을 내주면서, 5-13까지 점수 차가 벌어졌다. 하지만 허재호는 포기를 모르는 팀이었다. 허웅이 3점슛 3개를 폭발시키며 경기를 뒤집었고, 이정현과 최준용도 외곽에서 화력을 더했다. 몸 풀린 오세근이 골밑을 장악했고, 김종규의 덩크슛까지 터지면서, 25-17로 1쿼터를 마무리했다.   

기세는 이어졌다. 최준용이 포인트가드로 손색없는 경기 운영과 패스, 득점력을 뽐냈고, 이종현과 이승현의 골밑 활약이 더해졌다. 뉴질랜드가 반격을 시작한 3쿼터, 6점 차까지 점수가 좁혀지기도 했지만, 오세근의 점프슛으로 리드를 이어갔다. 승부가 결정되는 4쿼터, 우리 대표팀은 뉴질랜드의 수비에 막혀 5분간 3득점에 머물렀지만, 오세근의 골밑 공략과 김선형의 속공, 전준범의 3점슛 등을 앞세워 승리를 따냈다.

허웅이 3점슛 5개를 포함해 20득점을 올렸고, 오세근(14득점 8리바운드)의 활약도 눈부셨다. 이번 대회 최고의 수확으로 손꼽히는 최준용은 14득점, 7리바운드, 7어시스트, 2스틸, 2블록슛 등 트리플더블급 활약을 선보였다. 김선형도 13득점, 6리바운드, 7어시시트, 5스틸을 기록하며, 대표팀이 유종의 미를 거두는 데 앞장섰다.

이란과 준결승전이 아쉬웠지만, 우리 대표팀은 기대 이상의 성과를 이뤄냈다. 우선, 세대교체에 완벽하게 성공했다. 농구대잔치 세대 이후 한국 농구를 이끌어온 양동근과 조성민, 김주성 등의 빈자리를 확실하게 메웠다. 

양동근의 빈자리는 김선형이 메웠다. 김선형은 국내 최고 수준의 드리블과 스피드를 앞세워 속공을 주도했고, 드라이브인을 통해 장대 숲을 헤집었다. 안정적인 경기 운영과 외곽슛 능력을 자랑했고, 스피드를 활용한 공격적인 수비력도 뽐내면서, 대표팀의 중심 역할을 확실하게 해냈다.

최준용은 한국 농구 역사에서 볼 수 없었던 '2m 가드'의 등장을 알렸다. 그는 골밑이 어울리는 2m의 신장이지만, 가드로 맹활약을 선보였다. 단신 선수 못지않은 스피드와 드리블을 뽐냈고, 과감한 골밑 돌파와 외곽슛 적중률도 자랑했다. 특히, 수비에서 빛났다. 3-2 드롭존 수비의 중심에 서서 상대 가드진을 봉쇄했고, 하메드 하다디와 같은 장신 선수에게는 재빠른 도움 수비 능력도 선보였다.

전준범과 허웅은 '슈터 갈증'에 시달리던 한국 농구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이들은 기회가 생길 때마다 정확한 외곽슛 능력을 자랑하며, 공격 농구에 힘을 보탰다. 이란과 뉴질랜드전이 증명하듯, 중요한 순간마다 3점슛을 성공시키는 스타성도 입증했다. 장대 숲으로 돌진하는 과감함을 갖췄고, 한 발 더 뛰는 수비를 선보이는 등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다만, KBL 최고의 몸값(9억 2천만 원)을 자랑하는 이정현은 조별리그 두 번째 경기였던 카자흐스탄전을 제외하면, 존재감이 적었다. 이번 대회에서 전준범, 허웅과 비교해 아쉬운 활약상을 남긴 만큼, 앞으로는 분발이 요구된다.

골밑의 중심은 김주성에서 오세근으로 옮겨졌다. 오세근은 2016·2017시즌 프로농구 최고의 선수답게 대표팀의 골밑을 사수했다. 백발백중의 미들슛을 앞세워 공격에 힘을 실었고, 포스트업과 2:2 플레이, 속공 등에서도 눈부신 활약을 보여줬다. 수비에서도 몸을 아끼지 않는 투혼을 선보이며, 대표팀의 선전에 중심 역할을 해냈다.

이승현과 이종현의 활약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KBL에서 이승현은 외국인 선수를 일대일로 막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선수다. 197cm·105kg으로 신체 조건이 뛰어난 편은 아니지만, 타고난 힘과 엄청난 훈련량을 앞세워 국제무대에서도 진가를 드러냈다. 특히, '218cm·120kg의 거구' 하다디를 수비하면서 한 발짝도 물러남이 없던 괴력은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공격에서도 정확한 미들슛과 3점슛 능력을 자랑하며, 대표팀의 핵심 선수임을 증명했다.

이종현은 8강 결정전에서 만난 일본과 경기에서 부상을 당했지만, 투혼을 발휘했다. 신장(203cm)이 큰 편은 아니지만, 223cm의 '윙스팬'(양팔을 벌린 길이)을 자랑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다만, 상대에게 '일대일로는 막을 수 없다'라는 인상을 심어준 오세근과 비교해 노련함과 기술이 아쉬웠다. 이제 막 프로 2년 차를 향해 나아가는 선수인 만큼, 골밑 기술과 점프슛 등을 보완해 스스로 득점을 만들 수 있는 선수로 성장해야 한다.

달리는 '빅맨' 김종규도 마찬가지다. 가드 못지않은 스피드를 앞세워 속공에 가담하고, 팀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화려한 덩크슛은 감탄사를 자아냈다. 하지만 경기가 풀리지 않을 때마다 쉽게 집중력을 잃는 모습은 개선이 요구된다. 기본이라 할 수 있는 포스트업과 박스 아웃을 통한 리바운드도 발전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2011년과 2013년 대회에서 잇달아 3위에 올랐지만, 직전 대회였던 2015년에는 6위에 머물렀다. 양동근과 김주성을 대체할 중심을 찾지 못했고, 슈터 기근에 시달리며, 장기인 3점슛 능력까지 잃었었다. 대표팀이 추구하는 농구가 무엇인지, 색깔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2017 FIBA 아시아컵'을 통해 세대교체에 성공했다. 무조건 3점슛만 노리는 것이 아닌, 빠르고, 확률적인 농구가 가능해졌다. 여전히 센터의 신장은 아쉽지만, 장신 가드와 슈터를 발굴하며, 평균 신장이 높아졌다. 주전과 후보의 기량 차이가 컸던 과거와 달리, 누가 코트에 나서든 꾸준한 경기력을 유지했다.

한국 농구에 희망을 안긴 '2017 FIBA 아시아컵'. 대회는 마무리됐지만, 허재호의 도전은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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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컵 허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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