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와이드 릴리즈㈜


일본의 극장가에서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이 자취를 감춘 것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와 지브리의 작품이 기록적인 흥행 성공을 남겼으나, 일본 극장 애니메이션은 점차 일정한 팬을 보유한 만화, 게임, TV 애니메이션을 원작으로 삼는 제작 방식으로 변해갔다. 현재 극장 애니메이션에서 오리지널 작품으로 주목받는 감독은 <너의 이름은>의 신카이 마코토, <늑대아이>의 호소다 마모루, <마음이 외치고 싶어해>의 나가이 타츠유키 정도가 기억난다. 오리지널 극장 애니메이션이 희귀한 시대에 <낮잠 공주 : 모르는 나의 이야기>는 불쑥 찾아온 작품이다.

<낮잠 공주: 모르는 나의 이야기>는 카미야마 켄지가 원작, 각본, 감독을 맡았다. 배경 미술 스태프로 애니메이션 영화계에 입문하여 <시티 헌터> <아키라> <마녀 배달부 키키> <달려라 메로스> 등으로 경력을 쌓은 카미야마 켄지는 2002년 <공각기동대>의 TV 애니메이션 시리즈인 <공각기동대 STAND ALONE COMPLEX>의 연출을 맡으며 유명세를 탔다. 이후 그는 <정령의 수호자> <에덴의 동쪽> <009 사이보그>를 연출하며 SF 판타지 애니메이션계의 거장으로 자리를 굳혔다.

판타지 애니메이션계의 거장, 소매를 걷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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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애니메이션에서 잔뼈가 굵은 카미야마 켄지가 오리지널 극장 애니메이션 <낮잠 공주: 모르는 나의 이야기>를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카미야마 켄지는 니혼TV의 오쿠다 세이지 프로듀서가 건넨 "내 딸한테 보여주고 싶은 영화를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란 한마디가 계기였다고 밝혔다.

여기엔 뒷이야기가 있다. 그즈음 카미야마 켄지는 '애니메이션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스스로 고민했다고 한다. 그는 "지금까지 만든 작품의 주인공은 누가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주인공은 몇 번이나 세계를 구했지만,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을 겪은 후에 이러한 세계관을 만드는 것에 불안을 느꼈다"며 "평화 속에서 어떤 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그려도 현실에 존재하는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는, 마치 거짓말을 하며 작품을 만드는 기분이 들었다"고 당시 심정을 고백한다.

그런 느낌에 휩싸여 있을 때 오쿠다 세이지 프로듀서가 지금까지 해온 것과 다른 내용의 작품을 만들어보지 않겠냐고 제안하자 '밝은 이야기, 모두가 호감을 느낄 만한 주인공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낮잠 공주: 모르는 나의 이야기>를 시작했다고 카미야마 켄지는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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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마을에서 작은 자동차 수리공장을 운영하는 아빠 모리카와 모모타로(에구치 요스케 목소리)와 단둘이 사는 여고생 모리카와 코코네(타카하타 미츠키 목소리). 고등학교 마지막 여름방학을 앞두고 그녀는 자신과 닮은 소녀가 나오는 꿈을 계속 꾼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빠가 경찰에 체포되고 갑자기 나타난 낯선 남자들은 아빠의 태블릿PC를 빼앗으려고 혈안이다. 코코네는 친구 모리오(미츠시나 신노스케 목소리)와 함께 아빠를 구하기 위해 나선다. 그녀는 반복되는 꿈속에 사건을 해결한 열쇠가 있음을 깨닫는다.

감독의 꿈, 일본의 꿈

<낮잠 공주: 모르는 나의 이야기>는 꿈을 매개체로 현실 세계인 '일본'과 꿈의 세계인 '하트랜드'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구조를 지닌다. 현실의 코코네는 꿈에서 하트랜드의 공주 에인션이고 아빠 모모타로는 꿈에서 괴물에 맞서는 엔지니어 피치이며 코코네가 아끼는 인형 조이는 꿈에서 마법의 힘을 빌려 움직이는 존재다. 현실과 꿈의 경계를 허물어뜨리는 화법은 <퍼펙트 블루> <파프리카>로 유명한 콘 사토시의 영향을 받은 인상이다.

카미야마 켄지 감독은 꿈과 현실을 넘나드는 형태를 "원래 아이디어를 꿈이란 형태로 반영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며 "처음엔 SF적 요소로 가득한 전혀 다른 이야기였고 좀 더 현실적인 이야기로 써보는 등 우여곡절을 겪다가 현실과 그것이 겹치는 것 같은 꿈속 세계인 두 가지 이야기를 병행해서 풀어가자는 발상이 떠올랐다"고 설명한다.

<낮잠 공주: 모르는 나의 이야기>는 꿈의 세계인 하트랜드의 정체와 의문의 세력이 태블릿PC를 노리는 이유를 차근차근 보여준다. 이야기의 비밀이 하나씩 풀리면서 현실과 꿈이 점차 하나로 합쳐진다. 현실과 꿈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이야기의 맛은 진해지고 글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마법적인' 재미가 곳곳에 넘실거린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하트랜드는 기계가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해준다고 믿는 나라로 나온다. 주인공 코코네가 사는 현실의 시간대는 2020 도쿄올림픽을 3일 앞둔 시점이다. 이런 설정은 의미심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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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일본은 1964년 도쿄 올림픽을 통해 물질 중심의 경제 발전을 꾀한 바 있다. 그러나 동일본 대지진은 과거의 영광을 일거에 무너뜨렸다. 영화 속에 나오는 괴물이 물질로 대표되는 탐욕을 상징한다면 맞서는 병기 엔진헤드는 의지와 사랑, 곧 인간을 형상화한 것이다. 이런 전개를 통해 영화는 2020년 도쿄 올림픽이란 내일은 사람이 중심이라고 강조한다. 영화가 깨진 가족 관계를 복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내 속의 '나'와 '너'를 이해하고 '우리'를 회복하는 여정을 보여준 카미야마 켄지 감독에겐 소노 시온의 <러브 앤 피스>의 마지막 장면, 사랑만이 해답이라는 대목이 겹쳐진다. <낮잠 공주: 모르는 나의 이야기> <러브 앤 피스>처럼 <신고질라>와 <너의 이름은.> 역시 자신만의 방식으로 동일본 대지진을 영화로 수렴하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희망의 손길을 내민다. 영화는 이렇게 시대를 이야기하고 대중을 위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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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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