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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질문을 못 하게 하면 나라가 망합니다."

지난주 불타는 금요일, 아는 후배와 함께 서현역 메가박스에서 심야로 영화 <공범자들>을 봤다. <공범자들>은 MBC PD수첩과 황우석 사태로 유명한 최승호 PD가 만든 다큐멘터리형식의 영화다. 상업영화가 아닌 탓에 상영관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심야임에도 불구하고 영화 <공범자들>의 객석은 만원이었다. 관객층은 다양했지만 얼핏 보기엔 삼사십대가 주를 이루었다. 영화는 지난 십 년 동안 '이명박근혜' 정권을 거치면서 진실과 정의 공정한 보도를 해야 할 공영방송인 KBS와 MBC, 그리고 뉴스 전문보도 채널인 YTN이 권력자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점령을 당했는지 그리고 그 안에서 언론장악을 위해 협력한 공범자들이 누구인지를 밝히는 과정을 보여준다.

다수의 사실과 하나뿐인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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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안이든 그 조직의 내부자가 되지 않는 이상은 진실은 잘 모를 수 밖에 없다. 설사 안다고 해도 외부자들은 그 조직의 가려진 진실의 겉만 알 수 있을 뿐이다. 사실과 진실은 엄연히 다르니까. 사실은 여러 개가 있을 수 있지만, 진실은 오직 하나다. 그러나 사람들은 대부분 '다수의 사실과 하나의 진실' 사이에서 자신이 알고 싶은 사실만 확인하고 말뿐이다. 그것도 아주 자극적인 사실만을 말이다. 우리가 정말로 알아야 할 진실은 결국 묻히고 만다.

지난 십 년 동안 권력자들에 의한 공영방송의 언론장악은 성공했고 우리는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그 사실을 잊어버렸다. 그 결과로 정권에 비판적이던 KBS '시사투나잇'이 사라졌고 MBC 'PD수첩'이 사라졌다. YTN의 '돌방영상'도 사라졌다. 그리고 새로운 권력자들이 전하는 이상한 뉴스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세월호 전원구조'라는 오보도 결국 방송장악의 결과다. 박근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도 마찬가지다.

방송장악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었던 사람들에겐 이 영화를 보는 동안 새로운 사실은 물론 잊고 있던 기억을 되살리는 장면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다. 어느 날 갑자기 익숙했던 아나운서들이 공영방송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그들은 점점 내 기억 속에서 잊혔다. 그런데 우리가 잊고 있던 사이 그들은 그 안에서 싸우고 있었다. 잊힌 그들은 촛불이 뜨겁던 광장에서 그리고 방송사 사옥 앞에서 자신들을 비난하는 시민들의 소리를 들으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나운서가 방송하지 못하면 그건 자신의 존재 이유가 사라지는 거예요."

기억 속에서 잊혔던 아나운서 중 한 명이 영화 속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그들은 공정방송을 위하여 파업했다는 이유로 비제작 부서로 발령을 받았고 스케이트장을 관리해야 했다. 또 다른 출연진은 현재 암 투병 중이다. 방송에서 보았던 그의 모습은 열정적이고 패기 넘쳤지만, 지금은 많이 야윈 상태로 조용한 시골에서 투병 중이다.

권력자들은 공중파를 어떻게 점령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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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공범자들>은 상연 전에 재미있는 상황을 연출했다. 영화의 주연배우들이 법원에 '영화상영금치가처분'을 냈기 때문이다. 물론 법원에서 기각되었지만. 영화는 공영방송이 권력자들에게 침탈당하고 무너지는 순간들을 시간순으로 전해준다. 워낙에 진지한 분위기라 영화 속에서 웃을 수 있는 장면들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최승호 PD가 방송을 장악했던 주요 인물들을 쫓아다니며 인터뷰를 시도하는 장면에선 관객들 사이에서 의도하지 않은 웃음(실소)이 터지기도 했다. 특히 예고편에서도 나오는 김재철 MBC 전 사장과의 엘리베이터 인터뷰 장면이 압권이다.

"당신의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대상에 충분히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승호 PD가 영화의 주인공들에게 마이크를 갖다 대며 인터뷰를 시도하는 장면을 보면서 '로버트 카파'의 말이 떠올랐다. 본인들은 결코 출연하고 싶지 않았을 주연배우와의 짧은 인터뷰를 위해서 복도나 계단, 문 앞에서 기다렸을 시간이 얼마였을까?

"MBC 사장이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어요?"
"언론이 질문을 못하게 하면 나라가 망합니다."

최승호 PD에게 MBC 사장이었던 김재철씨는 웃으면서 그 자신만이 알고 있던 사실을 말한다. 자신은 결코 그런 사실이 없다고. 그는 MBC 사장을 하면서 모든 일을 아주 공정하게 했다고. 그러면서 정권의 영향을 벗어나기 위해선 MBC가 민영화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말은 사실일 수도 있다. 최소한 화면 속의 그는 진심을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실은 여러 개일 수 있지만, 진실은 오직 하나다. 정권은 언론을 장악했고 언론은 그들의 나팔수가 되었다. 그리고 정말로 나라가 망할 뻔 했다.

<공범자들>의 또 다른 주연 '배신남매'는 어디에?

사실 이 영화를 보기 전 MBC의 주요 출연진 중 '배신남매'(배현진·신동호 아나운서)로 유명한 배우들이 어디에서 등장할지 궁금했었다. 언론을 비롯한 모든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선 상층부만 가지고선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들을 돕는 충실한 마름. 즉 그들 밑에서 수족이 되어 갖은 잡일을 해줄 사람들도 필요한 법이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까지 기대했던 배우들은 등장하지 않았다.

촛불 혁명의 승리로 정권은 바뀌었지만 언론 권력은 여전히 건재하다. 현재의 정권이 지난 시절의 정권이 했던 방식으로 공영방송사의 수장을 쫓아내려고 한다면 결국 그들과 다를 게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대로 두고 볼 수도 없는 일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언론장악에 맞서 싸웠던 기자와 아나운서,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공영방송은 다시 본래의 자리를 찾아야 한다.

돌아오라 마봉춘, 돌아오라 고봉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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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십 년의 언론장악으로 인해 망가질 대로 망가져 버린 공영방송의 PD와 아나운서, 그리고 기자들이 다시 공정방송을 외치며 제작거부에 돌입했다. 왜 그랬냐고? 왜 그동안 숨어있다가 정권이 바뀐 인제야 나서냐고? 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들리지만, 그보다는 그들에게 아직도 당신들을 기억하고 있어요? 라는 응원의 목소리도 필요하지 않을까? 진실만을, 오직 진실만을. 다수의 사실이 아닌 단 하나의 진실을 쫓기 위해서. 그리고 우리가 공영방송에서 기대를 저버렸던 공정한 방송과 기자와 아나운서를 방송에서 다시 만나기를 바란다면.

MBC 김장겸은 물러나라. KBS 고대영은 물러나라. 그리고 '돌마고', 돌아오라 마봉춘, 돌아오라 고봉순!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인철 시민기자의 페이스북과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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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 뉴스 시민기자입니다. 진보적 문학단체 리얼리스트100회원이며 제14회 전태일 문학상(소설) 수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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