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택시운전사>의 한 장면

영화 <택시운전사>의 한 장면 ⓒ 쇼박스


1980년 5.18 광주민중항쟁을 다룬 <택시운전사>가 20일 오전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1988년 <오! 꿈의 나라> 이후 30년이 흘러 천만 관객 영화에 5월 광주가 자리 잡게 된 것이다. 한국 현대사에서 가슴 아픈 비극이었던 5.18 광주항쟁은 한국 민중 운동사에서 그 이전과 이후로 나눌 만큼 큰 전환점이었고, 진보적 영화 운동에서도 마찬가지였다.

80년 광주는 1988년부터 꾸준히 영화화가 시도된 현대사의 주요 소재였다. 그러나 암흑과 같았던 군사독재정권 시대에 상영은커녕 제작도 큰 결단이 필요할 만큼 금기시된 소재이기도 했다. 그만큼 만들고 상영하려던 사람들은 시련도 많이 겪어야 했다. 하지만 영화인들의 집념과 도전은 꾸준히 이어졌고, 마침내 <택시운전사>를 통해 천만 관객을 넘어서게 됐다.

<택시운전사>의 천만 관객은 아직도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진상 규명과 함께 5.18 광주민중항쟁의 진실을 알리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학살자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시대에서 영화가 전달해주는 역사적 사실의 환기는 울림이 크다. 

5.18 광주민중항쟁을 소재로 한 영화들은 대부분 사회적인 주목과 함께 흥행 성적에도 나쁘지 않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정치 사회적으로도 80년 5월과 학살의 주범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있는 것도 공통점이다. 그간 여러 작품이 제작됐는데, <택시운전사>의 천만 관객은 긴 시간 그 노력이 오래 쌓여 나온 결실이라는 점에서 상징적이다. 

[1980년대] 9년 만에 만들어진 첫 광주영화 <오! 꿈의 나라>

 광주항쟁을 다룬 첫 영화<오! 꿈의 나라>의 한 장면

광주항쟁을 다룬 첫 영화<오! 꿈의 나라>의 한 장면 ⓒ 장산곶매


5.18 광주항쟁을 다룬 영화의 첫 출발은 1988년 12월 완성된 영화 운동단체 '장산곶매'가 제작한 16mm 장편영화 <오! 꿈의 나라>가 시작이었다. 87년 6월 항쟁 이후 민주화 열기와 국회 광주 청문회 등 뜨거웠던 사회적 변화의 흐름을 타고 현 명필름 이은 대표와 <접속>(1997년) <가비>(2012년) 장윤현 감독, <이웃집 남자>(2010년) 장동홍 감독 등이 함께 연출자로 나섰다. 시나리오는 <이태원 살인 사건>(2009년)의 고 홍기선 감독과 <알포인트>(2004년) <GP506>의 공수창 감독이 함께 썼다. 지금은 한국 영화계에서 비중 있는 평가를 받는 영화인들이 당시 공동창작 형태라 만든 작품이었다.

광주항쟁이 무력으로 진압된 후 수배자 신세가 된 야학교사였던 전남대 학생이 동두천으로 와서 미군 부대 주변에 사는 고향 선배와 미군 상대 여성들을 보면서 광주에서 아픈 기억이 떠올라 갈등하는 내용을 줄거리로 하고 있다.

<오! 꿈의 나라>는 최초의 영화로서 주목받았지만 만만치 않은 탄압을 받아야 했다. 제작신고와 심의를 받지 않으면서 극장 상영이 어려웠던 영화는 당시 신촌의 소극장이었던 '예술극장 한마당(대표 유인택)'에서 1989년 1월 간신히 상영될 수 있었다.

하지만 예상대로 군사독재정권의 상영중단압박이 이어졌다. 당시 문공부는 제작진을 영화법 위반으로 고발했고, 서대문구청 역시 유인택 대표를 공연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필름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 영장이 청구됐는데, 법원이 영화에 "반사회성이 없다"며 이를 기각하면서 도리어 언론의 주목을 크게 받게 된 것이다. 덕분에 영화는 서울과 부산의 대학가와 광주 등지에서 상영됐고, 관객이 몰리며 흥행에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장산곶매 대표였던 홍기선 감독과 예술극장 한마당 유인택 대표는 불구속기소 돼 벌금형을 선고받는 수난을 감수해야 했다. 유인택 대표의 경우 심의를 안 받았다는 공연법 위반. 소식지 하나 만들었다고 정기간행물법 위반, 소극장 허락을 받지 않았다고 건축법 위반 등의 혐의가 적용되기도 했다. 결국 위헌심판제청 등 7년간의 소송 끝에 승소할 수 있었다.

[1990년대] 검열 속 광주의 희생과 상처 전달

 <부활의 노래>와 <꽃잎>의 한 장면

<부활의 노래>와 <꽃잎>의 한 장면 ⓒ 새빛영화제작소, 미라신코리아


두 번째 영화는 1989년 제작에 들어가 1990년 완성돼 1991년 개봉한 이정국 감독의 <부활의 노래>였다. 광주항쟁의 중심인물로 들불야학 운영자였고 도청에서 산화한 윤상원 열사와 야학 동료였던 박기순 열사, 감옥에서 옥사한 전 전남대 총학생회장 박관현 열사 등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었다. 윤상원 열사와 박기순 열사는 영혼결혼식을 통해 '임을 위한 행진곡' 세상에 나오게 만든 주인공들이기도 하다.

<부활의 노래>는 당시 20~30대였던 80년대 영화세대들이 동인 형식으로 만든 영화사인 새빛영화제작소가 만든 영화였다. 당시 을지로에 있던 중앙극장에서 개봉됐는데, 5.18 광주를 다룬 첫 상업영화였다는 의의가 있다.

하지만 검열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당시 공연윤리위원회는 심의를 받지 않고 현상소 시사실과 대학가 통일 관련 행사에서 상영했다는 이유로 심의를 거부했다. 이후 청소년관람 불가와 대폭 삭제를 전제로 광주항쟁 전야의 횃불시위 장면 등 25분을 잘라내 영화를 만신창이로 만들었다. 이후 촬영과 편집을 거쳤으나 재심의에서도 끝내 3분 분량이 잘려나가야 했다. 광주학살의 주역 중 하나인 노태우가 대통령인 시대적 한계를 넘기는 어려웠다.

이어진 작품은 1996년 개봉한 <꽃잎>이다. 충무로의 대표적 사회파 감독이었던 장선우 감독이 연출했다. <꽃잎>은 광주항쟁 당시 무차별 총격으로 엄마를 잃고 그 충격으로 미친 한 소녀에 대한 이야기다.

공사장 인부 주변에 머물며 강간과 폭력 속에서도 고통의 현장을 떠나지 않고 악몽과 헛소리를 하는 소녀의 사연을 통해 그날의 비극을 전달하는 영화로 소녀 자체가 80년 5월 광주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당시 광주학살이 개인에게 남긴 아픔과 상처가 얼마나 크고 깊은지를 생생히 전달해 주는 작품으로 꼽힌다. 

<꽃잎>은 작품성을 인정받은 영화였다. 그해 대종상 심사위원 특별상과, 음악상을 받았고 소녀 역을 연기한 이정현은 신인여우상을 수상했다. 주연 배우로 공사장 인부 역을 맡은 문성근은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단관극장에서 개봉하던 시절 서울에서만 21만 관객을 동원했다.

[2000년대] 광주를 금기시했던 시대에 대한 아름다운 복수

 <화려한 휴가>와 <26년> 포스터

<화려한 휴가>와 <26년> 포스터 ⓒ 기획시대, 청어람


2000년대 들어 만들어진 첫 광주영화는 2007년 개봉한 <화려한 휴가>가 대표적이다. 열흘간 이어진 광주항쟁의 과정을 세세하게 담아냈다는 점에서 주로 주변부 상황을 통해 광주에 접근했던 기존 작품들과는 큰 차이가 있는 영화였다. 항쟁의 시작부터 도청에서의 마지막까지 그려내고 있는데, 폭발적 흥행에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직접 관람하기도 했다.

<화려한 휴가>는 김지훈 감독이 연출했으나 기획시대 유인택 대표가 제작자라는 점이 더 주목된 영화였다. 첫 광주 영화였던 <오! 꿈의 나라>의 상영관을 제공해 고초를 겪었던 유인택 대표는 10년 뒤에 제작자로서 광주 영화를 만들어 흥행에 큰 성공을 거두며, 88년의 수모를 갚았다. 단지 상영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온갖 죄를 뒤집어씌웠던 구시대에 대해 아름답게 복수한 셈이다. <화려한 휴가>는 손익분기점인 430만을 뛰어넘어 685만 관객을 기록했다.

2012년 만들어진 <26년>은 광주학살의 희생자 자녀들이 힘을 합쳐 학살의 주역을 응징하려는 영화다. 그날 이후 아픔과 고통을 겪은 부모 세대의 복수를 위해 26년이 지나 자녀들이 나서는 이야기로 강풀의 만화를 원작으로 했다.

<26년>은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2008년부터 제작을 시도했다. 그러나 번번이 제작이 막히면서 어려움을 겪다가 한국 장편 상업영화로는 최초로 소셜 펀딩을 통해 제작됐다. 1만 5천명의 시민들이 7억여 원을 모아 완성돼 시민참여 영화가 됐다. 296만 관객을 동원해 흥행에도 성공을 거뒀다. 

이후 5년이 흘러 <택시운전사>는 이 흐름을 이어받았다. 개봉 19일 만에 천만 관객을 넘기며 새로운 5월 광주 영화로 우뚝 서게 됐다. 지난 5월 3기 민주 정부인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지 100일을 넘긴 시점이다. 

5월 광주 택시운전사 화려한 휴가 오! 꿈의 나라 2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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