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택시운전사>의 포스터. '천만영화'가 목전이다.

영화 <택시운전사>의 포스터. '천만영화'가 목전이다. ⓒ (주)쇼박스


월세 단칸방에서 어린 딸과 단둘이 살며 개인택시를 하는 김만섭(송강호 분)은 밀린 월세가 4개월 치 10만 원이나 된다. 1980년에 버스요금은 100원, 자장면은 500원이었다. 공장이 많았던 서울시 영등포구에서는 1980년대 전반에 비숙련 남성 노동자의 초임이 15만 원이 안 되는 경우가 많았다.

명목화폐를 기준으로 할 때, 1980년 물가는 지금의 10분의 1 수준이었다. 김만섭이 밀린 월세 10만 원은 지금으로 치면 100만 원이 넘는 금액이다.

10만 원이 없어 고심하던 김만섭은 '서울에서 광주까지 왕복으로 태워주면 10만 원을 주겠다는 외국인을 곧 만날 거다'라는 다른 택시 운전사의 말을 기사 식당에서 훔쳐 듣는다. 그러고는 무작정 그 외국인을 태우러 간다. 그 택시 운전사가 식사를 마치기 전에 얼른!

상식을 넘은 과도한 금전에는 독이 묻어 있기 쉽다는 간단한 진리를 떠올리기에는, 4개월 치 월세가 주는 압박이 너무 컸다. 그래서 김만섭은 독일인을 무작정 태웠다. 그가 독일인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토마스 크레취만 분)를 택시에 태운 날은 1980년 5월 18일경.

김만섭은 외국인 손님이 뭐 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고, 또 광주까지 갔다 오는 데 10만 원이나 주겠다는 이유도 모른 채, 신나게 광주로 달렸다. 광주 입구마다 바리케이드가 처져 있고 무장 군인들이 막고 있었지만, 그런 분위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확인조차 하지 않았다. "잠깐 들어갔다가 나오겠다"고 군인들을 설득해 기어이 광주로 들어가고 말았다.

시내로 들어간 뒤 한참이 지나서야 김만섭은 돈 10만 원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시민군과 계엄군의 공방 속에서 택시는 물론이고 자기 목숨까지 위험에 처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린다. 어린 딸을 고아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파악한 것이다.

처음에 그는 시민군을 멀리했다. 오로지 돈 10만 원을 받고 집으로 돌아갈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도 심장이 있었다. 뛰는 가슴이 있었다. 온몸으로 퍼지는 혈관이 있었다. 계엄군이 무고한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는 광경을 보고 피가 솟구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시민군과 한편이 되어 힘을 보탠다. 잠깐이나마 시민군과 인간미 넘치는 추억도 쌓는다. 전두환 정권의 보도 통제를 뚫고 광주의 진실을 세상에 알리겠다는 외국 기자를 돕고 있다는 사실에도 은근히 기쁨을 느낀다.

하지만 딸이 보고 싶었고 집이 그리웠다. 자기 목숨도 소중했다. 그래서 잠자는 독일 기자를 바로 옆에 두고 새벽에 몰래 광주를 빠져나온다. 여기저기 고장 난 택시를 타고 미안한 마음을 억누른다. 그렇게 광주를 빠져나오자 영화는 갑자기 평온한 분위기로 전환된다. 한적한 시골 장터가 나오고 토속의 냄새가 풍기는 음식점도 나온다.

참극에서 빠져나오다

 1980년 5월 광주. 서울시 서대문구 현저동의 서대문형무소에 전시돼 있던 사진.

1980년 5월 광주. 서울시 서대문구 현저동의 서대문형무소에 전시돼 있던 사진. ⓒ 김종성


우리 한국인들도 1980년 광주의 참극을 그렇게 빠져나왔다. 전두환 시대의 공포정치를 그렇게 빠져나왔다. 광주 시민들만큼은 아니어도 그 시대 우리 국민은 누구나 다 박정희 시대 못지않은 전두환 정권의 공포정치를 경험했다. 그래서 1980년 5월은 광주 시민뿐 아니라 전 국민의 공동 경험이었다. 그런 공동 경험으로부터 영화 속 김만섭은 물론이고 우리 한국인들 전체도 빠져나왔다.

영화 속 택시운전사가 광주를 빠져나온 것처럼, 한국 국민은 전두환 시대로부터 빠져나오고자 1987년 6월항쟁을 일으켰다. 그 결과, 전두환 정권의 6·29 선언을 끌어내고, 억압적 상황으로부터 몸을 빼는 데 성공했다.

광주를 빠져나와 시골 장터에서 끼니를 때운 김만섭은 서울로 달렸다. 조금 달렸다. 더 이상 가지 못했다. 뭔가 덜 풀린 데가 있었다. 어딘가 찜찜했다. 그래서 더 이상 액셀을 밟지 못했다. 우리 국민도 그렇다.

6월항쟁을 통해 전두환 정권의 항복을 받았지만, 아직도 1980년 5월을 생각하면 어딘가 허전하다. 1995년 12월 3일 새벽 경남 합천에서 전두환을 체포해 감옥에 집어넣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어딘가 빈 느낌이다. 전두환의 부인인 이순자의 자서전 <당신은 외롭지 않다>에 따르면, 김영삼 정권이 급파한 수사관들은 12월 3일 새벽 6시 34분경 잠옷 입고 잠들어 있는 전두환을 깨워 경찰 차량에 태웠다. 이 장면을 생각하면 통쾌하지만, 우리 가슴 한구석은 아직 먹먹하다.

1980년 5월과 전두환 시대를 빠져나온 한국 국민은 1987년에 이어 20년 만에 또다시 시민혁명을 성사시켰다. 그 결과, 전두환의 상관의 딸을 구속했다. 이를 통해 박근혜 정권의 부조리는 물론이고, 전두환 앞 시대인 박정희 정권의 부조리까지 척결할 기회를 잡게 되었다. 그런데도 1980년 5월만 생각하면 여전히 어딘가 찜찜하고 먹먹하다. 거기서 분명히 빠져나왔는데도 그렇다.

그것은 우리가 거기서 빠져나오기만 했을 뿐, 뒤처리해놓고 나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영화 속 김만섭도 그랬다. 그의 어깨에는 막중한 짐이 얹혀 있었다. 기자 손님을 김포공항까지 모셔야 할 책무, 그렇게 해서 광주의 진실이 세상에 알려지도록 도와야 할 책무가 그의 어깨에 놓여 있었다. 그는 그런 책무를 내려놓고 새벽에 광주를 빠져나왔다. 자기 몸과 택시는 무사히 건져냈지만, 그런 짐들을 그대로 놔둔 채 광주를 빠져나왔다.

우리 국민도 그랬다. 1987년 6월항쟁으로 전두환 정권을 굴복시켰지만, 그들의 죄악을 제대로 청산하지는 못했다. 그해 12월 대선에서는 전두환 정권에 패해 노태우 당선까지 지켜봐야 했다.

1990년 1월 22일에는 노태우 정권의 민정당이 김영삼의 통일민주당과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을 끌어들이는 3당 합당으로 거대한 민주자유당을 출범시키고 국민의 뜻을 우롱하는 모습마저 지켜봐야 했다. 이런 일들로 인해 우리 국민은 6월항쟁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1980년 5월과 전두환 시대를 청산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1995년에 전두환의 제5공화국 청산 즉 5공 청산을 명분으로 전두환·노태우를 구속하고 이듬해 이들에게 유죄를 선고했지만, 이때도 1980년 광주의 한은 제대로 풀리지 못했다. 5·18의 진실이 온전히 규명되지 못했고, 5·18을 조롱하고 폄하하는 세력이 여전히 지배층의 지위를 고수했다.

광주 학살을 참회하며 평생 속죄하고 살아도 시원찮을 전두환이 여전히 고개를 뻣뻣이 들고 사는 데서도 그런 모순이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전두환 회고록 1: 혼돈의 시대> 서문에서 이 책의 저자는 시인 서정주의 <자화상>에 나오는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지 않을란다"를 인용하면서 "나의 회고록은 참회록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뒷공론을 나는 개의치 않으련다"고 뻔뻔하게 말했다. 국민이 아무리 뒷담화를 해도 자기는 참회할 이유가 없다고 당당하게 말한 것이다.

전두환이 여전히 힘을 가질 수 있는 원인 중 하나는, 5공 청산을 주도한 김영삼 정권이 완벽하게 국민의 편이 아니었던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 국민은 김영삼 정권의 5공 청산을 열렬히 지지했지만, 정작 그것을 주도하는 김영삼 정권한테는 딴마음이 있었다.

이순자는 자서전에서 1995년 6월 지방선거에 패배한 김영삼이 민주자유당 내부의 전두환·노태우 계열을 물갈이하고 자파 중심으로 정계를 개편한 뒤 차기 총선을 치를 목적으로 5공 청산 분위기를 띄우고 남편을 구속했다고 불평했다. 김영삼 정권이 이런 목적으로 일을 벌였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이런 정권이 역사 청산을 맡았으니, 1980년 5월의 한이 제대로 풀릴 수 없었다.

그래서 2017년이 된 지금까지도 1980년 광주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영화 속의 택시운전사가 위험을 무릅쓰고 택시를 유턴시켜 광주로 돌아간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영화 속 김만섭은 스스로 사지에 뛰어들어, 하루 전에 사귄 동료들과 함께 계엄군에 맞서 싸운다. 계엄군의 총알이 사실상의 전 재산인 자기 택시를 뻥뻥 뚫는 데도 개의치 않는다. 그 순간 그는 시민군일 뿐이었다.

그렇게 용감히 싸운 뒤 그는 독일 기자를 태우고 광주를 빠져나와 김포공항까지 태워준다. 손님을 김포공항까지 모실 계약상의 책무와 광주의 진실을 알리는 데 동참해야 할 국민의 책무를 동시에 이행한 것이다.

1980년 그리고 2017년

 지난 겨울, 서울 광화문 촛불집회.

지난 겨울, 서울 광화문 촛불집회. ⓒ 김종성


시민혁명·촛불혁명을 성사시킨 2017년의 우리 한국 국민들도 '택시'를 유턴시켜 1980년 광주로 돌아가고픈 욕망을 느끼고 있다. 지금의 이 힘으로 밀린 숙제를 해결하고 싶은 욕구를 느끼고 있다.

광주로 돌아가서, 5·18 진실의 정확한 규명과 더불어 꼭 해야 할 것이 있다. 나라의 주인인 국민한테 총과 대검을 들이대고 국민이 주인임을 부정한 자들의 말로가 어떻게 될 것인지를 똑똑히 보여주는 것이다.

박정희·전두환·박근혜 그리고 최순실 같은 사람들은 속으로는 국민주권을 비웃는다. 개·돼지들한테 뭔 주권이 있느냐고 코웃음을 친다. 이 나라 권력을 누가 쥐고 있는가? 우리가 쥐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우리들의 나라이지 개·돼지들의 나라일 수 있느냐고 말한다.

악당한테 집을 빼앗겼다 해서 집주인이 소유권을 잃는 것은 아니다. 악당한테 빼앗긴 사람이 진짜 주인이고, 빼앗은 악당은 가짜 주인이다. 박정희·전두환·박근혜 등이 주권을 강탈했다 해서 그들이 이 나라의 진짜 주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가짜 주인이다. 지금은 주권을 갖고 있지 못하지만, 원래는 갖고 있어야 할 국민이 진짜 주인이고 합법적 소유자다.

2017년의 우리 국민이 '김만섭의 택시'를 타고 1980년 광주로 돌아간다면, 주인인 국민한테 총을 들이대고 주인을 참칭한 자들의 최후가 얼마나 비극적인가를 명백히 보여줘야 한다. 전두환은 주군 박정희를 죽인 김재규를 배은망덕한 패륜아라고 욕했지만, 전두환은 주군인 국민을 학살했으므로 김재규보다 훨씬 더 배은망덕한 패륜아다. 그런 패륜아가 앞으로 다시는 등장할 수 없다는 것을, 1980년 광주로 돌아가서 명확히 보여줘야 한다.

서울에서 광주 금남로까지 택시를 타고 가면, 25만 원 정도의 요금이 나온다. 그 정도 돈을 들이고라도 영화 속의 택시를 타고 광주로 돌아가는 것은 수지맞는 장사다. 그것은 잘못된 과거를 되돌려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길이다. 절대 아깝지 않은 지출이다. 그렇게 해서 '독일 기자'를 김포공항까지 태워다 주는 것이 1980년 광주의 역사를 제자리에 돌려놓는 길이다.

택시운전사 광주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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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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