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치. 학교를 떠난 후 나란 인간은 줄곧 그랬다. 대학에서, 직장에서 평균치. 우정과 성실과 사랑에서 평균치. 섹스에서도 의심할 여지 없이 평균치였다. (중략). 평균치 인생, 평균치 진실, 평균치 윤리관." - 소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중에서


여기 평균치의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하는 한 노인이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그런대로 무난한 직장 생활을 마치고, 결혼과 이혼을 겪었지만, 전처와의 관계도 무난하고, 결혼에서 얻은 딸에게도 아버지 노릇을 그럭저럭하는 남자가 있다.

전후 영국이 낳은 가장 지성적인 작가라고 일컬어지는 줄리언 반스는 1946년생으로, 여러 유명한 소설들을 써왔는데, 노년에 이르러 늙음에 대한 깊은 통찰이 담긴 소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The sense of an ending)>을 발표했고 2011년 이 소설로 맨부커상을 받는다. 소설을 읽는 지적 즐거움과 놀라운 반전을 가진 단단한 플롯과 더불어, 노년에 삶에 대한 묘사는 이 소설을 능가할 만한 작품이 드물 것이다. 반스는 '살다 보면 처량하리만큼 인생의 변수가 줄어드는 때'인 노년에 이른 어떤 노인, 평균치의 삶을 살아왔다고 회고하는 토니 웹스터라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그렸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영화 포스터.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영화 포스터. ⓒ CGV아트하우스


줄리언 반스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가 개봉되었다. 소설의 감동이 영화로 어떻게 구현되는지 궁금했다. 영화는 각색을 많이 했는데, 특히 노년에야 알게 된 거대한 진실 앞에 놓인 노인의 막막함과 쓸쓸한 회한을 걷어내고 따뜻한 포용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큰 차이다. 필자로서는 소설의 묵직함을 날려버린 듯한 결론이 아쉽다. 영화감독으로서는 평범하게 살아온 노인이 40년이 지난 후에 이르러, 과거의 진실을 기억해내고 고통받는 것이 가혹하다고 여겨서 그렇게 각색했는지도 모르겠다.

영화는 소설과 큰 줄기는 그대로 따라간다. 토니의 절친한 친구 에이드리언이 어느 날 토니가 사귀던 여자친구 베로니카랑 데이트해도 되는지 물어왔다. 토니는 '본인은 모든 것을 유쾌하고 즐겁게 받아들이고 있다'면서 덕담을 담은 편지를 보낸 거로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친구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접한다. 자살 이유는 모른다. 그저 그렇게 총명하던 친구가 왜 죽었는지 애석해하다가 세월이 흐르며 그 기억은 묻혀 버린다.

세월이 흘러 40년이 지난 후에야 토니는 우연히 자신이 썼던 편지를 돌려받는다. 그 내용은 그가 기억하는 것과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는 비열함 가득한 저주의 편지에 충격을 받는다. 소설에서는 토니가 느꼈던 회한의 감정을 적확히 묘사한다.

"회한(remorse)이란 말은 어원적으로 한 번 더 깨무는 행위를 뜻한다." - 소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중에서


영화의 매력은 토니 웹스터라는 보통 노인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낸 데 있다. 고집이 세고 꼬장꼬장하면서도, 혼자서 보내는 시간이 많고, 가족이 있어도 점차 소외되어 가고 깊이 이해받기 어려워지는 게 노인의 삶이다. 영화에서는 토니가 마주한 과거의 진실을 통해, 자신의 실수와 상처를 드러내며 가족에게 더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우리 인생이 영화에서처럼 따뜻하게 마무리되면 좋겠지만, 많은 경우에 그렇지 못할 것이다. 누구라도 후회할 일들이 있을 것이고, 노년에 이르러 홀로 남겨지지 말란 법도 없다. 그렇지 않기 위해서라도 가급적 자주 주변을 돌아보고, 무심코 하는 행동이나 말이 우리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는 건 아닌지 세심히 봐야 할 것이다. 한평생 평범하게만 살면서, 정작 삶의 본질은 예감하지 못하며 허송세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영화와 더불어 소설로도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만나보길 권한다. 잠시 멈추어 서서 인생을 돌아보는 귀한 시간이 될 것이다. 늙고 나서 뼈아픈 후회를 하지 않도록….

"인생에 대해 내가 알았던 것은 무엇인가. 신중하기 그지없는 삶을 살았던 내가. 이긴 적도, 패배한 적도 없이, 다만 인생이 흘러가는 대로 살지 않았던가. 흔한 야심을 품었지만, 야심의 실체를 깨닫지도 못한 채 그것을 위해 섣불리 정착해버리지 않았던가. 상처받는 게 두려웠으면서도 생존력이라는 말로 둘러대지 않았던가. 고지서 납부를 하고, 가능한 한 모든 사람들과 무난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살았을 뿐, 환희와 절망이라는 말은 얼마 지나지 않아 소설에서나 구경한 게 전부인 인간으로 살아오지 않았던가. 자책을 해도 마음속 깊이 아파한 적은 한 번도 없지 않았던가. 이 모든 일이 따져봐야 할 일이었고, 그러는 동안 나는 흔치 않은 회한에 시달렸다. 그것은 상처받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큰소리쳤던 인간이 비로소 느끼게 된 고통, 그리고 바로 그랬기 때문에 느끼게 된 고통이었다." - 소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중에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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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산책하는 삶을 삽니다. 2011년부터 북클럽 문학의 숲을 운영하고 있으며, 강과 사람, 자연과 문화를 연결하는 사회적협동조합 한강의 공동대표이자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한강'에서 환대의 공동체를 만들어나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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