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균


2007년, 기타 제조 회사 콜트/콜텍으로부터 부당 해고를 당한 콜트/콜텍 기타노동자들은 지금도 복직을 향한 투쟁을 멈추지 않고 있다. 투쟁 초기, 콜트/콜텍 해고 노동자들의 복직을 지지하는 여러 뮤지션들의 연대를 통해 복직 투쟁을 알려온 콜트/콜텍 노동자들은 복직 투쟁이 장기화하여가던 2012년 말, 기타 노동자 밴드 '콜밴'을 조직하여 활발히 활동 중이다. 그리고 2013년에는 연극집단 '진동젤리'와 함께 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을 각색/축약한 <구일만 햄릿>이라는 연극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김성균 감독의 2014년 작, <내가 처한 연극 Ver 2.0>(아래 <내가 처한 연극>)은 생애 최초로 연극에 도전한 대전 콜텍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기타 만들던 손으로, 기타를 치다

기타를 만들 줄만 알았지, 연주할 줄은 몰랐던 대전 콜텍 해고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더욱 쉽게 알리기 위해 기타를 잡고 노래를 부른다.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투쟁과 뮤지션들의 연대를 담은 김성균 감독의 2010년 작 <꿈의 공장>이 제작될 당시만 해도, 노래 부르는 뮤지션들 뒤에서, 선전지를 나눠주는 것에 만족했던 기타 노동자들이 밴드를 조직한 계기는, 연대에 참가한 한 밴드의 제안 때문이었다.

ⓒ 김성균


"형님(콜트/콜텍 노동자)들이 진작에 밴드를 만들었으면, 사람들에게 투쟁 상황도 쉽게 알리고 (투쟁을 지속할 수 있는) 돈도 벌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그 뒤로 임재춘, 김경봉, 이인근, 장석춘 등 대전 콜텍 해고 노동자를 위시한 4명은 밴드를 만들고 거리에서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셰익스피어 희곡 <햄릿>에 콜트/콜텍 상황을 첨가해서 각색한 <구일만 햄릿>으로 배우로 데뷔도 하였다. 이 중 임재춘, 김경봉, 이인근 노동자는 이란희 감독의 단편 영화 <천막>(2016)에도 출연하여, 전주국제영화제, 미쟝센 영화제 등 한국을 대표하는 주요 영화제를 휩쓸더니, 끝내 제17회 대구단편영화제에서 영예의 연기상을 수상 하기도 했다. 기약 없는 장기 복직 투쟁이 콜트/콜텍 기타 노동자들을 시대의 예술가로 만든 셈이다.

노래, 연주, 연기 등 안 해 본 것이 없는 만능 엔터테이너가 된 대전 콜텍 노동자들의 꿈은 명망 있는 예술가가 아니다. 이들의 꿈은 오직 하나, 그들이 일했던 콜트/콜텍 공장 노동자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렇다고, 콜트/콜텍 공장에서의 대우가 좋았던 것도 아니다. 열악하기 짝이 없는 작업 환경에서 묵묵히 일했던 노동자들은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었고, 회사를 상대로 해고무효 소송을 내기도 했지만, '이명박근혜'로 압축되는 지난 9년간의 대한민국 법원은 가진 자(회사 사장)의 편이었다.

지난 2012년 2월 콜트/콜텍 노동자 해고무효 소송을 고등법원으로 파기 환송한 대법원 판결을 시작으로, 이야기가 펼쳐지는 <내가 처한 연극>은 대전 콜텍 노동자들이 출연한 <구일만 햄릿>의 막을 중심으로, 지난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콜트/콜텍 노동자들에게 일어난 일들을 교차 편집을 통해 보여주고자 한다. <내가 처한 연극>이 만들어지고 3년이 지난 지금도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복직 투쟁은 이어지고, 이전 정권과 달리 친노동자 정권을 약속한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100일이 지났지만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복직은 요원해 보인다. 도무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콜트/콜텍 해고 노동자들의 상황은 상당히 절망적으로 비친다.

절망적이지만, 꿈은 포기하지 않는다

ⓒ 김성균


그런데도 콜트/콜텍 노동자들은 복직을 향한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토록 원하던 꿈에서 한 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 기타를 치고 노래도 부르고, 팔자에도 없을 것 같은 연기에도 도전했다. 당연히 연기를 전문적으로 배운 적이 없는 대전 콜텍 노동자들의 연극 도전기는 어설프기 짝이 없다. 대사 외우는 것조차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오랜 연습을 통해 극 중 햄릿이 처한 상황이 회사로부터 해고를 당한 자신들의 처지와 비슷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 해고 노동자들은 극에 서서히 몰입하게 되고, 관객들에게 멋진 연극을 선사한다.

특히, 대전 콜텍 노동자들은 아버지를 죽이고 왕위에 오른 것에 모자라, 어머니까지 차지한 숙부에 대한 복수심을 계획하는 아들 햄릿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의 어머니(왕비)와의 관계에서 복직 투쟁을 이해는 하지만, 지지는 않는 가족들의 사연을 종종 떠올리곤 한다. 이렇게 대전 콜텍 노동자들은 연극 햄릿과 하나가 되어가고, 셰익스피어의 희곡이 아닌 콜트/콜텍을 둘러싼 자신들의 이야기로 승화해 나간다.

어느덧, 이들의 투쟁이 4000일을 앞두게 되었다. 늘 절망으로 가득했던 콜트/콜텍 노동자들에게 밝은 내일이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콜트/콜텍 기타 노동자들이 원하는 꿈은 다시 콜트/콜텍 공장으로 돌아가 제대로 된 노동권을 보장받고, 멋진 기타를 만드는 것이다. 지난 2007년부터 지금까지 10년 넘게 장기 투쟁을 지속하고 있는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복직을 해결하는 것이 노동자들이 노동할 권리를 제대로 보장하지 못했던 구시대와의 결별을 고하는 적폐 청산의 시작이 아닐까 싶다. 부디, 조만간 복직을 염원하는 콜트/콜텍 해고 노동자들이 콜트/콜텍 기타 노동자로 돌아가는 좋은 소식이 들렸으면 한다.

덧붙이는 글 지난 2013년, 대전 콜텍 기타 노동자들의 연극 <구일만 햄릿> 도전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내가 처한 연극 Ver 2.0>은 18일 오후 4시 30분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상영합니다.
내가 처한 연극 VER 2.0 콜트 콜텍 콜밴 노동자 영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바로 지금 여기에서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