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택시운전사> 개봉을 맞아, 5.18을 배경으로 한 다른 영화들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편집자말]
"너를 알게 된 후 / 사랑하게 된 후부터 /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변해가네 / 나의 길을 가기보다 / 너와 머물고만 싶네 /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변해가네" - 김광석 노래, <변해가네> 중에서

헤겔은 말하길, 사랑은 "하나가 되는 결합"이라고 했다. 반면 바디우는 사랑을 "둘이 되는 경험"이라고 표현했다. 상대와 결합해 하나가 되든, 상대와 더불어 둘이 되든 이것만은 같다. 사랑하는 상대로 인하여 '나'는 변한다는 것이다.

영화 <오래된 정원>과 <스카우트>는 사랑 때문에 변하게 된 두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다. 사랑으로 인해 한 남자는 그간의 운동가로서의 삶에 회의를 겪는다. 한편 사회에 무관심했던 남자는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역사의 현장에 깊이 개입한다.

회한, <오래된 정원>

 영화 <오래된 정원>(2007)의 한 장면. 현우(지진희 분)와 윤희(염정아 분)

영화 <오래된 정원>(2007)의 한 장면. 현우(지진희 분)와 윤희(염정아 분) ⓒ 롯데시네마


"그때는 자기만 행복하면 왠지 나쁜놈이 되는 시대였거든. 그래, 바보 같았던 거지." - <오래된 정원> 대사 중에서

현우(지진희 분)는 학생운동가다. 80년 광주의 도청을 지켰으나, 죽음의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도망쳐 나왔다. 이후 수배령을 피하고자 갈뫼 시골에 도피하는 과정에서 윤희(염정아 분)를 만나고, 둘은 점차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런데 현우와 달리, 윤희는 사회에 무관심한 인물이다. 그녀는 운동가들에 대한 냉소마저 갖고 있다. 그녀는 시대를 위해 개인을 희생하는 것은 낭비와 같다고 말한다. 어차피 시대는 흘러가는 것이지만, 개인의 삶은 다시 오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치 차이에도 불구하고 둘은 뜨거운 사랑을 나눈다. 하지만 그도 잠시, 다른 동지들이 연달아 체포됨에 따라, 광주에서의 죄책감을 느끼고 있던 현우는, 두 번 도망치지 않기 위해, 도피 생활을 접고 윤희를 떠나 서울로 올라간다. 그리고 당국에 의해 체포된다.

징역형을 선고받은 현우는 17년 만에 출옥한다. 그러나 그사이 윤희는 죽었다. 세상은 많이 바뀌었지만, 세상이 자신에게 남긴 것은 주름과 흰 머리뿐이다. 현우는 후회한다. 자신의 삶은 바보 같았다고, 자신은 틀렸고 윤희의 말이 옳았다고.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세상이야 어떻게 흘러가던지 현우는 윤희와의 사랑에 충실한 삶을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세월은 지나고 윤희는 죽었다. 그런 현우에게, 사랑이란 살아온 삶을 후회하게 된 이유이자, 못다 이룬 회한이었다.

각성, <스카우트>

 영화 <스카우트>(2007)의 한 장면. 세영(엄지원 분)과 호창(임창정 분)

영화 <스카우트>(2007)의 한 장면. 세영(엄지원 분)과 호창(임창정 분) ⓒ CJ엔터테인먼트


"미안해, 미안해…." - <스카우트> 대사 중에서

대학교 야구부 직원인 호창(임창정 분)은 고교야구 투수 선동열을 섭외하기 위해 광주로 내려간다. 광주에서 우연히 대학 시절 연인이었던 세영(엄지원 분)을 만나게 된다. 오랜만에 옛 연인을 만나게 된 호창은 당시를 회상한다.

대학생 때 호창은 세영의 선배였다. 서울 남자와 시골 여자라는, 서로의 다른 매력에 빠져 둘은 연애를 시작했다.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나눴지만, 어느 날 세영의 일방적인 이별 통보를 받고 둘은 이별하게 된다.

호창은 7년이 지나서도 그날 이별의 이유를 알지 못했다. 광주에서 재회한 세영에게 그 이유를 묻지만, 세영은 답해주지 않는다. 알고 보니, 학내 시위를 진압하라는 학교 지시를 받고 투입된 야구부 호창이 학생들을 폭행하는 것을, 운동권이었던 세영이 목격했다.

뒤늦게 이유를 알게 된 호창은 눈물을 흘린다. 호창에게도 그날은 잊고 싶은 기억이었다. 세영을 찾아가 용서를 빌고자 하지만, 광주에서도 야학과 시위를 주도한 세영은 경찰서에 수감돼 있었다. 시국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던 호창은 세영 구출 작전을 펼친다.

결국, 세영을 구출하는 데는 성공한다. 그러나 자신은 경찰에 잡힌 채 폭행을 당한다. 이날이 1980년 5월 18일, 바로 광주항쟁의 전초였다. 그날 사랑하는 이를 구하기 위해 역사의 현장에 자신을 내던졌던 호창. 그에게 사랑은 각성이었다.

시대는 사랑을 싣고

현우와 호창의 공통점은 시대의 비극 탓에 이별을 맞게 됐다는 것이다. 광주에서의 부채감 탓에 도피 생활을 접었던 현우는 독재정권에 의해 갇혔고, 야구부였던 호창은 시위 학생을 진압하라는 학교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각 사건으로 인해 둘은 사랑을 잃게 됐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가치관에 있어서 각자 연인과는 다른 출발점에서 시작했지만, 사랑이 끝난 시점에 와서는 같은 자리에서 만나게 됐다는 것이다. 운동가였던 현우는 사회참여에 냉소적이었던 윤희를 따라, 출소 후 운동가였던 자신의 삶을 조롱한다.

사회에 무관심한 채, 시위 학우들을 진압했던 호창은 세영과의 기억을 반추하는 과정에서 시대의 상황에 눈을 뜨게 됐다. 그리고 그녀를 구출하기 위해 광주의 현장에 깊숙이 개입했다. 현우에게 오월의 광주가 탈피해야 할 출발점이었다면, 호창에게 오월 광주는 사랑을 위한 도착점이었던 것이다.

시대와 개인의 간극. 개인은 사랑을 바라지만, 시대는 개인을 놓아두지 않는다. 시대 속에 놓일 수밖에 없는 개인의 사랑은 비극일까. 아니면, 원동일까.

5.18영화 스카우트 오래된 정원 택시운전사 광주항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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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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