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만화가의 사려 깊은 고양이'

ⓒ Where the story ends


꿈, 이 한 글자를 앞에 두고 고민해보지 않은 청춘이 있을까.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의 괴리를 느껴보지 않고 30대가 된 어른이 있을까? 꿈이 뭐기에 이렇게 나를 괴롭게 할까. 그저 일하고, 음식을 먹고, 오늘 하루도 별 탈 없이 마무리하며 살아가면 되는 것을. 무엇이 입안에 까슬까슬하게 들어와 있는 모래알 같은 존재감으로 남아, 그걸 신경 쓰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드는 걸까. 꿈을 꾸는 것이 나를 이토록 괴롭게 만든다면 꿈을 꾸는 데에 의미가 있는 걸까?

잡히지 않는 꿈을 향해 달려야 하는지, 아니면 돈을 벌어야 하는지, 그 어디쯤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는 나의 갈등은 끝날 것 같으면서도 좀처럼 끝나지 않았다. 쉽게 포기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꿈을 위해 몰두할 수도 없는 20대였다. 하고 싶은 일로는 돈을 벌 수 없었다. 대학 졸업 후 적게는 100만 원, 많게는 160만 원쯤 받으며 하루 9시간 이상 직장에서 신경을 곤두세워 일하고 오면 머릿속이 텅 비며 몸이 축 늘어졌다.

꿈이라는 건 일종의 순수한 형태의 욕망이었다. 나 자신에게 기쁨을 주는 일을 하고 싶고, 그 결과물을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데에 쓰고 싶다는 갈망 같은 것이었다. 내 삶에 뭔가 아직은 특별한 것이 남아 있으리라는 믿음을 희미하게 붙잡은 채, 언제쯤 꺼내볼 수 있을지 모를 꿈의 조각을 나는 울적한 마음으로 들여다보곤 했다.

어느 날 귀를 기울이게 된 노래


그런 날, W의 '만화가의 사려 깊은 고양이'라는 노래의 가사를 귀 기울여 듣다 보면, 결코 희망차다고는 말할 수 없는 만화가의 긴 밤이 묘한 동질감과 함께 위로를 주었다. 나도, 내 고양이의 사려 깊은 눈빛에 위로받은 수많은 날이 있었기 때문에.

이맘때쯤 너는 항상 조금씩 말이 없어지네 날 위한 생선 한 조각도 너는 잊어버린 걸까?
밤새 펜촉 긁는 소리 좁은 방 온통 어지러운 스크린 톤
차마 눈치 없이 너를 조를 수 없었네

비 내리는 아침

어느새 가득 웅크린 채 잠든 너의 곁에
가만히 난 누웠네 반짝 빛나던 네 손 끝에 흘러가는 꿈 한 자락
나는 너를 믿을게 나는 널 기다릴게

높게 귀를 세우고 동그란 나의 눈으로

변함없이 착하게 나는 널 기다릴게

가사에 귀 기울여 노래를 듣다 보면, 생선 한 조각도 조르지 않고 만화가를 지켜보는 고양이의 시선을 따라가게 된다. 그리고 그 사려 깊은 시선 끝에 있는 젊은 만화가의 고독이나 고뇌 같은 것을, 고양이처럼 오도카니 지켜보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고양이로서는 아마도 알 수 없을 그 우울감의 뿌리를 우리는 그 시선을 통해 알아차릴 수 있다. 정말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되는 것일까, 가진 건 꿈밖에 없는 시절의 먹먹함을 상상하거나 혹은 돌이켜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어둠 속에 등불 하나를 켜두고 펜과 어지러운 스크린 톤과 그리고 홀로 자신과 싸우는 만화가의 밤은 길고 또 초조했을 것이다.

고양이는, 아침이 되어서야 잠든 만화가의 웅크린 청춘에 대해서 이해했을 수도, 어쩌면 몰랐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때에 사람에게 필요한 건 그저 적절한 순간에 몸을 맞대어주는 일이라는 것을, 고양이는 아마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 같다. 고양이는 사람을 그저 밥 주는 덩치 큰 친구 정도로 생각한다는 말도 있지만, 어쩌면 정말 사려 깊게 우리를 살피고 있는지도 모른다.

고양이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고 주인을 따르지 않는다고 보통 생각하지만, 반려동물로서의 역사가 개에 비해 길지 않을 뿐 고양이는 나름대로 방법으로 애정을 표현한다. 집에 돌아오면 현관까지 마중을 나오고, 누워 있으면 품에 올라와서 잠든다. 특히 고양이가 유난히 수다스럽고 말이 많다면 그건 고양이의 명백한 관심 표현이라고 한다. 사실 고양이는 자기들끼리는 말로 의사 표현을 하는 동물이 아니다. 고양이가 야옹거리며 자꾸 말을 건다는 건 사람의 의사 표현을 따라 하는 것, 즉 사람에게 무언가 할 말이 있다는 뜻이란다. 고양이 입장에서는 사람의 방식을 표방하여 노력하고 있다, 나와 소통하기 위해.

그런 점들을 생각해 보면 고양이가 주인을 못 알아본다든가, 사람에게 관심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비록 표현하는 방법은 다르지만, 고양이도 그 나름대로 나를 주의 깊게 지켜보고 감정의 무게를 나눠준다는 걸 느낄 때가 많다.

부담스럽지도, 무겁지도 않게

 W '만화가의 사려 깊은 고양이'

ⓒ Where the story ends


고양이의 시선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보일까? 어쩌면 우리는 고양이의 만화가처럼, 모두 각각 길고 어두운 새벽을 보내고 있다. 새벽의 시간은 일그러진 채 흘러서 길이를 가늠할 수 없을 때가 많다. 그 짙은 공기를 어찌할 바 몰라 잠을 청하고 마는 새벽이 나에게도 몇 번인가 있었다. 오즈를 따라가는 도로시의 노란 벽돌 길처럼, 내 앞에 놓인 미래는 눈앞에 또렷하게 보였다가도 갑자기 끊어지기가 일쑤였다. 평범한 도로시들은 지혜로운 허수아비나 용감한 사자, 마법을 부려줄 뾰족한 모자 없이 다시 홀로 길을 찾아내야만 한다.

때로 어떤 격려는 너무 부담스럽고, 어떤 위로는 오히려 짐처럼 무거웠다. 그래서 나는 오랫동안 다른 사람에게 내 고민거리를 털어놓지 못했다. 너는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위로는 내게 와 닿지 않았고, 또 누군가 나의 고민이나 사소한 문젯거리에 진심으로 관심을 가질 리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좁은 방에 온통 어지러운 스크린 톤' 같은 고민은 내가 아니라도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므로.

그리고 사람과 나누기 어려운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말없이 펼쳐 보이기에 반려동물만큼 적절한 파트너는 없었다. 경계심 많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이 동물이 내 앞에서 배를 다 드러내고 자거나 목덜미를 쓰다듬는 내 손길에 눈을 지그시 감는 것을 보면 문득 가슴이 벅찰 만큼 기뻤다. 단단하고 의심할 여지 없는 나에 대한 믿음이 실체가 되어 보이는 듯했다. 그 자체가 하나의 기둥이 되어서 나의 희미한 밤들을 지탱해주었다.

나 역시 '만화가의 사려 깊은 고양이'라는 노래 속 청춘의 뒷모습을 섣불리 위로할 수 없었다. 다만 이 만화가의 앞에 구만리쯤 놓인 길이라도 그가 오롯이 홀로 걷지는 않으리라는 것, 손끝으로 그려내는 꿈 한 자락을 만화가의 고양이가 내내 지켜보리라는 것만은 알 수 있다.

그러니 고양이의 만화가가 가끔은 책상 위에서 고개를 들고 기지개를 켰으면 좋겠다. 그리고 방의 한 모퉁이에서 잠자코 그를 지켜보는 고양이의 시선을 마주했으면 좋겠다. 그를 무조건 좋아한다고 약속하며 꿈을 함께 걷고 있는 고양이에게 생선 한 토막을 챙겨주며 힘을 얻고, 고개를 끄덕여준 뒤 다시 펜을 사각사각 움직였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내 인생의 BGM' 공모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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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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