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전선 위의 새: 레너드 코헨>의 포스터 및 스틸 이미지.

ⓒ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영화를 구성하는 중추적 요소 중 가장 강력한 두 가지는 클로즈 업과 음악이 아닐까 생각된다. 벨라 발라즈(Bela Balaz, 영화학자)는 "좋은 클로즈업은 시(時)적"이며 "그것을 인식하는 눈이 아닌 심장과도 같은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Good close ups are lyrical: it is the heart, not the eye that has perceived them).

클로즈업을 바라보는 발라즈의 시선은 적확하다. 좋은 클로즈업은 인물의 영혼과 시간을 머금는다. <살인의 추억>에서 마지막 장면 송강호의 정면 클로즈업은 사건 이후 수년이 흐른 후 현장에서 다시 조우한 공포와 망각의 틈바귀에서도 차근차근 자라왔던 시간의 아집(tenacity)을 응축하는 강렬한 종지부 같은 것이었다.

영화에 쓰이는 음악도 비슷한 맥락이 아니겠는가. 전략적으로 선택된 프레임 안에서 하나의 생(生)을 재현하는 배우/피사체들의 영혼을 장면으로부터 장면으로 밀어내는 미디엄은 음악이 아니고서 가능하지 않은 영화의 한 기능이다. 이 과정에서 음악은 영화 속 세계를, 그리고 그것이 관통하고자 하는 세속의 공기를 전달한다. 아도르노(Theodor Adorno, 사회학자)는 아이즐러(Harms Eisler)와 쓴 공저 <영화를 위한 작곡(Composing for the Films)>(1947)에서 영화가 문학과 구별되는 가장 큰 지점 중 하나는 영화를 위해 음악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며, 그 영화를 위해 작곡된 음악은 작곡가가 영화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산물로써 이것은 영화라는 세계 위에 또 다른 세계가 덧입혀지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음악과 클로즈업의 완벽한 조화

 영화 <전선 위의 새: 레너드 코헨>의 포스터 및 스틸 이미지.

ⓒ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이 두 가지가 완벽하게 조합한 영화가 있다. 캐나다 태생의 전설적인 가수이자 시인, 레너드 코헨이 1972년에 했던 한 달여 간의 유럽 투어를 기록한 <전선 위의 새: 레너드 코헨> (토니 팔머, 2010). 이 영화는 대부분이 코헨의 '시적인' 클로즈업과 그의 세계관을 담은 명곡들로 채워진 다큐멘터리이다.

다큐멘터리가 그려내는 시점의 한 해 전인 1971년, 코헨의 커리어는 바닥을 치고 있었다. 그의 앨범 <사랑과 증오의 노래들(Songs of Love and Hate)>이 미국 내 차트 146위를 기록하면서 완전히 실패한 것이다. 전속 레코드사인 CBS는 그를 레이블에서 떼어내려고 계획하고 있었고, 코헨은 CBS가 입은 재정적 손해에 대한 책임을 져야만 했다. 가수보다는 시인으로 인식되고자 했던 코헨은 평소 투어 공연을 피했던 것으로 유명했지만, 결국 '유럽 한 달 투어 계약'에 사인 하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코헨은 이 유럽 투어를 통해 미국에서도 전례가 없던 숫자의 관객 수를 끌어모으게 된다.

영화 시작부터 카메라는 어지러울 정도로 그의 얼굴에 집착한다. 기자와 인터뷰를 하다가 녹음이 안 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황당해하는 그의 표정과 마음에 드는 여자 팬을 만나게 되어 "오늘 밤 뭐하냐?"는 전형적인 멘트로 유혹하는 얼굴까지 <전선 위의 새: 레너드 코헨>에는 그의 표정이 담겨있지 않은 장면이 없다. 영화가 담아내는 갖가지 클로즈업들 중 가장 압권은 후반부의 이스라엘 (유럽 투어 마지막) 공연에 담겨 있다. 공연이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아 코헨은 노래를 멈추고 관객에게 "오늘은 도저히 노래할 상태가 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그의 노래를 전달할 스피릿이 갖춰지지 않았으니 대기실로 돌아가서 가다듬어 해보겠지만 만약 끝까지 무대로 나오지 않으면 다들 귀가하라는 다소 황당한 공표를 한다.

그의 정서적 추락은 이스라엘 공연 전 베를린에서 있었던 '환불 소동'에서 기인한 것이다. 엠플 고장으로 공연에 만족스럽지 않았던 관객 몇 명이 무대를 나가는 코헨에게 정면으로 도전했고 코헨은 본인의 지갑에서 돈을 꺼내 직접 환불 해 주었다. 누군가 에게는 해프닝일 이 사건이 코헨에게는 상처 이상의 트라우마 였던 것이다. 사건 이후, 코헨은 기타를 잡고 "레너드 코헨은 그의 노래를 할거야, 분노와 절망에 관한 그의 노래를"이란 즉석 연주를 계속 읊조리기도 한다.

공연 도중 대기실로 도피한 코헨은 동료들에게 도저히 공연을 못 하겠다는 고백을 한다. 완강한 코헨을 종용하던 동료들도 거의 포기해갈 즈음, 관객들이 부르는 코헨의 노래가 희미하게 들려온다. 그의 노래처럼 "분노와 절망"으로 잠식당했던 코헨의 표정이 관객석의 노래가 커지면서 서서히 밝아진다.

명곡과 표정이 만났을 때

 영화 <전선 위의 새: 레너드 코헨>의 포스터 및 스틸 이미지.

ⓒ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영화 속에 담긴 모든 에피소드의 희로애락이 코헨의 표정, 즉 클로즈업을 중심으로 그려진다. 특히 관객석의 노래가 퍼질 때 환희 어린 코헨의 표정과 감격의 눈물은 극영화가 만들어 내는 규격화된 감동과는 비견할 수 없는, 압도적이면서도 미세한 심연의 울림을 준다.

아울러 영화의 가장 큰 선물과도 같은 부분은 코헨이 라이브로 부르는 명곡들이다. 'Avalanche', 'Suzanne', 'Tonight Will Be Fine', 'Passing Through', 'Sisters of Mercy', 'Who By Fire?', 'Story of Isaac', 'One Of Us Can't Be Wrong', 'The Partisan', 'Chelsea Hotel', 'Nancy', 'Famous Blue Raincoat', 'Hey', 'That's No Way To Say Goodbye', 'So Long', 'Marianne', 'Bird On A Wire' 등의 노래가 공연마다 다른 관객들 안에서 각기 다른 정서적 테마와 톤을 가진 "세속의 공기"를 전한다.

무당에게 신이 들어올 때 손에 쥐고 있는 방울이 흔들리는데 그것을 신령(神鈴)이라 부른다고 한다. <전선 위의 새: 레너드 코헨>이 보여주는, 그리고 들려주는 삼라만상의 얼굴과 음악의 조우가 바로 이 신령의 순간이 아닌가 싶다. <전선 위의 새: 레너드 코헨>은 올해 8월 10일부터 15일까지 열렸던 13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에서 상영된 작품이고, 현재로서는 국내 개봉이 확정되지 않았다. 극장에서 이 다큐멘터리를 볼 수 있게 되기 전까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레너드 코헨이 그의 내면에 구겨 넣은 '삼라만상'을 조분조분 밀어내듯 불렀던 명곡들을 하나씩 꺼내 들어보는 일이 아닐까 싶다.

 영화 <전선 위의 새: 레너드 코헨>의 포스터 및 스틸 이미지.

ⓒ 제천국제음악영화제



레너드 코헨 제천국제음악영화제 다큐멘터리 전선위의 참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