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정상 궤도를 달리고 있는 KIA 타이거즈는 쉬어 갈 곳이 보이지 않는 살인 타선이 가장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개인의 팀 기여도로 따진다면 에이스 양현종의 존재감을 숨길 수가 없다. 양현종은 8월 15일 경기에 선발로 등판하여 7이닝 1실점의 퀄리티 스타트 플러스(7이닝 이상 3실점 이하 투구) 피칭으로 승리투수가 되면서 시즌 17승(3패) 째를 기록했다.

이리하여 양현종은 개인적으로 한 시즌 최다승 기록을 경신했다. 종전 기록은 2010년과 2014년에 기록했던 16승이었고, 양현종은 2014년에는 제 1회 최동원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다승 뿐만 아니라 2016년에는 2007년 류현진(당시 한화 이글스, 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이후 처음으로 한국인 투수 200이닝을 돌파하기도 했다.

양현종은 지난 7월 13일 NC 다이노스를 상대로 승리투수가 되면서 개인 통산 100승 고지도 점령했다(류현진 KBO리그 98승). 이리하여 양현종은 타이거즈 역사상 최초의 왼손 100승 투수가 됐다. 이 점에서 양현종은 이미 타이거즈 왼손 투수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최다 우승 타이거즈, 20승 왼손 투수 배출한 적은 없어

KIA는 전신인 해태 타이거즈 시절을 포함하여 무려 10번의 한국 시리즈 챔피언을 차지한 팀이다. KBO리그에서 타이거즈보다 한국 시리즈 챔피언을 많이 차지한 팀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이 부문 2위 삼성 라이온즈는 8번의 한국 시리즈 챔피언을 차지했지만, 1985년은 전반기와 후반기 통합 우승으로 한국 시리즈가 열리지 않았음을 감안하면 모두 2000년대에 들어와서 우승했다.

가장 많이 왕좌에 올랐던 팀인 만큼 타이거즈는 역사적인 투수들의 배출도 많았다. 사전 등재 순서로 따져봤을 때 선동열(현 국가대표 감독), 이강철(현 국가대표 투수코치), 이대진(현 타이거즈 투수코치), 조계현(현 타이거즈 수석코치)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인물들이 모두 타이거즈 출신이었다.

이들 중 선동열은 타이거즈 선발투수 시절(1992년 이후 불펜 전환) 4번의 다승왕과 3번의 20승 시즌(1986 24승, 1989 21승, 1990 22승)을 만들었다. 이강철과 조계현의 경우 15승 이상 시즌은 여러 차례 있었지만 20승 시즌은 한 번도 없었다. 현재까지 타이거즈 역사상 20승 시즌을 만들었던 투수는 선동열 뿐이었다.

다만 선동열의 기록들은 순수하게 선발로만 등판해서 나온 기록은 아니었다. 당시에는 토니 라 루사(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CBO)가 선발-중간-마무리의 역할 분담을 정립하기 이전의 시대였고, 선동열은 선발과 중간 마무리를 가리지 않고 각종 기록들을 세웠다.

이로 인하여 선동열은 1986년에는 6세이브, 1989년에는 8세이브, 1990년에는 4세이브 등 20승 시즌에도 마무리로 등판하는 날이 많았다. 앞에서 언급한대로 선발과 계투, 마무리 분업이 안 되어 있어서 말이 마무리투수지 경기 중반부터 등판하는 경우도 많았다. 게다가 1986년에는 19번의 완투(1위)라는 엽기적인 기록까지 있다.

그러나 선동열 이후 타이거즈는 20승 투수를 배출하지 못했다. 타이거즈 역대 용병 최다승 기록을 갖고 있는 다니엘 리오스의 최고 기록도 2004년 222.2이닝 17승에 그쳤다. 이강철과 이대진, 조계현도 16~17승까지 간 적은 있지만 20승의 문턱은 너무 높았다.

양현종, 타이거즈 2번째 20승 투수 등극하나

이러한 대선배들이 선수로 활약했을 때는 정규 시즌 경기가 현재에 비하면 상당히 적었다. 시즌 144경기로 늘어난 시점은 kt 위즈가 1군 시즌에 참가를 시작한 2015년부터다. 이에 따라 5인 로테이션 기준으로 선발투수들은 평균 28~29경기 정도를 등판할 수 있다. 잔여 경기 일정들을 활용하면 30경기 이상 선발 등판도 가능하다.

15일 경기까지 포함하면 양현종은 올 시즌 23경기에 등판했다. 소속 팀 타이거즈는 106경기를 치렀고 38경기가 남아있다. 남은 일정들을 감안하면 최소 7~8경기 정도의 선발 등판이 가능하다. 양현종의 현재 페이스로 볼 때 20승 도전도 무리는 아니다. 일정에도 무리가 없기 때문에 김기태 감독 역시 양현종의 등판 간격을 최대한 지켜주는 등의 배려를 해 줄 수도 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면 양현종은 선동열에 이은 타이거즈 역사상 2번째 단일 시즌 20승 투수가 되며, 왼손 투수로는 첫 20승 투수가 된다. 타이거즈의 역사를 장식했던 선동열, 이강철, 이대진, 조계현 등의 투수들은 모두 오른손 투수였다. 양현종이 타이거즈 왼손 투수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것이다.

리그 전체로만 봐도 왼손 투수 20승은 1985년 김일융(당시 삼성 라이온즈)과 1995년 이상훈(LG 트윈스 피칭 아카데미 원장)이 전부다. 물론 두 선수 모두 투수 분업화가 이뤄지기 전 시대에 기록한 20승으로, 분업화 이후의 왼손 선발투수 순수 20승 도전은 양현종이 최초다.

한화 이글스가 송진우(KBO리그 역대 최다승), 구대성, 류현진 등 역사에 남는 왼손 투수들을 많이 배출한 것에 비해 타이거즈는 유독 왼손 투수가 희귀했다. 2007년에 데뷔한 김광현(SK 와이번스)이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토미 존 서저리)로 올 시즌을 쉬고 있기 때문에 현역 왼손 투수들 다승 기록에서도 양현종이 김광현(108승)의 기록에 거의 근접하고 있다.

사실 타이거즈는 전성기 이후 2000년대에 들어서도 수많은 특급 투수 유망주들을 많이 키웠다. 2002년에 김진우가 데뷔했했고, 2005년에 윤석민, 2006년에 한기주가 데뷔했으며 2007년에 양현종이 데뷔했다. 이들이 모두 건강했다면 타이거즈는 선동열-이강철-조계현-이대진 시대를 잇는 또 한 번의 투수 왕국을 만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김진우는 개인적인 방황과 가정사 등으로 현재는 겨우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으며, 윤석민은 어깨에 웃자란 뼈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아서 올 시즌 복귀 여부가 불투명하다. 한기주는 고교 시절부터 논란이 된 혹사로 인하여 2010년에 토미 존 서저리, 2013년에 어깨 회전근 수술을 받았으며 올 시즌은 아직 퓨처스리그에서 재활 등판을 하고 있다.

팀 동료 헥터와 다승 경쟁, 시너지 얻는 타이거즈

그나마 양현종은 큰 부상 없이 커리어를 보내고 있다. 본격적인 풀 타임 선발투수가 된 2009년부터 양현종은 2012년과 2013년을 제외하고 28~32경기를 꾸준히 등판하고 있으며 최근 4년 연속 선발 10승 이상을 꾸준히 달성하고 있다.

양현종은 팀 동료인 용병 헥터 노에시와 함께 다승 경쟁을 벌이고 있다. 시즌 초반에는 전반기까지 14승 무패를 기록한 헥터가 다승 경쟁에서 앞서는 듯 했으나, 헥터는 5월 말부터 페이스가 살짝 꺾여서 평균 자책점이 2.18에서 3.33까지 점차 올라가고 있다.

전반기까지 헥터의 최대 장점 중 하나였던 이닝 소화력도 헥터의 후반기 페이스가 꺾이고, 양현종의 페이스가 점점 올라가면서 시즌 누적 이닝도 서로 비슷하게 경쟁하고 있다. 양현종과 헥터 좌우 에이스가 이탈 없이 꾸준히 활약하고 타이거즈의 막강한 타선에 힘입어 두 선수는 다승 랭킹에서 나란히 1,2위에 올라있다(3위 그룹 12승).

그 결과 타이거즈는 15일까지 2위 그룹과 7경기 이상의 넉넉한 승차를 확보하고 있다. 비록 불안불안한 불펜으로 인하여 심리적으로 느끼는 승차는 7경기보다 적어 보이지만 현재 리그 최강의 원투 펀치가 있기 때문에 시즌이 끝날 때까지 선두를 지키는 데에는 아직까지 큰 무리가 없다.

양현종이 한국 시리즈 챔피언을 경험한 2009년은 아직 그가 팀의 주축으로 자리잡기 전이었다. 그가 주축으로 자리잡은 이후 타이거즈는 2013년과 2014년에 창단 최초로 2년 연속 8위 굴욕을 기록하는 등 암울한 시기를 보내야만 했다. 양현종이 2014년에 제 1회 최동원 상을 수상하긴 했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상이었고, 그 해 겨울에는 포스팅 시스템 응찰을 받아들이지 않는 등 시련을 겪었다.

포스팅 시스템에서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를 받았던 양현종은 그 이후 더욱 강한 투수가 됐다. FA 시장에서 100억 이상의 대박을 터뜨릴 수도 있었지만 양현종의 해외 진출 의지도 강했고, 팀의 우승에 기여하겠다는 의지도 강했기 때문에 1년 계약 후 자유계약선수가 되는 데 합의했다.

양현종에게는 2017년이 그래서 중요하게 됐다. 개인적으로도 해외 진출을 위해 최고의 성적을 기록해야 하는 시기이고, 팀의 입장에서도 김기태 감독의 계약 마지막 해로 우승을 위해 전력을 쏟아붓는 시즌이다.

양현종이 팀 동료 헥터와의 다승 경쟁에서 이기면 타이거즈 최초로 왼손 투수 다승왕이 된다. 그렇게 된다면 왼손 다승왕, 왼손 20승이라는 점에서는 타이거즈의 역사를 새로 쓰게 되며, 최동원 상 수상 확률도 크게 오르면서 최초의 2회 수상 영예도 안을 수 있다. 리그 최고의 투수로 성장한 양현종이 왼손으로 쓰는 타이거즈의 새로운 역사를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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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널 브랜더/서양사학자/기자/작가/강사/1987.07.24, O/DKU/가톨릭 청년성서모임/지리/교통/야구분석(MLB,KBO)/산업 여러분야/각종 토론회, 전시회/글쓰기/당류/블로거/커피 1잔의 여유를 아는 품격있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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