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재 감독이 이끄는 남자농구 대표팀이 8강 진출에 성공했다. 대표팀은 지난 15일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열린 2017 FIBA 아시아컵 8강 진출 결정전에서 일본을 81-68로 물리치고 '광복절 승전보'를 전달했다. 대표팀은 17일 새벽 필리핀과 4강행을 놓고 다투게 된다.

대표팀은 이번 대회를 앞두고 4강을 목표로 내세웠다. 첫 경기에서 개최국 레바논에 덜미를 잡히며 불안하게 출발했으나 카자흐스탄-뉴질랜드에 이어 일본까지 제압하고 쾌조의 3연승을 내달리며 상승세를 타고 있다.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전매특허인 3점슛과 속공, 다양한 변칙 수비 전술로 높이와 득점력의 열세를 극복하며 선전하고 있다. 허재 감독은 12인의 로스터를 최대한 고르게 가동하며 변화무쌍한 라인업으로 상대에게 혼란을 주는 한편, 선수들의 체력 안배에도 효과를 거두고 있다.

빅맨들의 선전은 특히 고무적인 부분이다. 한국은 국제대회마다 높이의 열세로 고전해왔다. 그런데 이번 대회만 놓고보면 한국은 리바운드 평균 기록은 참가국 중 9위(38.3개)에 머물고 있지만 정작 상대국과의 맞대결에서는 리바운드 싸움에서 거의 밀리지 않거나 오히려 근소하게 우위를 점하는 경기가 많았다.

대표팀의 에이스로 등극한 오세근(13.8점, 5.5리바운드, 야투 성공률 69.4% 25/36)을 필두로, 이승현(7.5점, 3.3리바운드), 김종규(8.8점, 3.3리바운드), 이종현(8.5점, 4.3리바운드) 등이 나올 때마다 고르게 제몫을 해주고 있다. 여기에 골밑 수비가 가능한 2미터의 장신 스윙맨 최준용을 중심에 세운 드롭존 수비전술로 상대팀에는 큰 부담을 주고 있다. 다만 아직 이란-중국-호주 등 진정한 아시아 정상권으로 꼽히는 '끝판왕'들과는 아직 만나지 않았다는 점은 감안해야한다.

정교한 패싱게임은 이번 농구대표팀의 최대 강점이다. 한국은 4경기에서 총 105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경기당 26.25개로 참가국 중 최다 어시스트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은 이번 대회 내내 상대국들보다 어시스트 숫자와 패스 성공률에서 우위를 점했다. 활발한 패스플레이에도 불구하고 경기당 턴오버는 12.8개로 참가국 중 요르단-뉴질랜드에 이어 세 번째로 낮다. 그만큼 조직적인 플레이가 잘 이루어지고 있다는 증거다.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평균 84.8점으로 전체 5위를 기록 중이며 야투 성공률은 50.4%로 3위에 올라있다. 야투 성공률이 50%를 넘긴 팀은 호주, 레바논과 한국 세 팀뿐이다. 한국이 전통적으로 외곽 의존도가 높은 팀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기록이다. 그만큼 이번 대회에서 빅맨들의 확률 높은 공격 가담이 두드러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양궁 농구 성향이 강한 필리핀(3점슛 42%-야투 44%)과 일본(3점슛 43.2%-야투 45.3%)은 야투와 3점슛의 성공률 격차가 크지 않았다. 반면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3점슛 성공률이 36%로 다소 아쉽지만 2대 2게임에 의한 골밑 공략, 빅맨들의 적극적인 중거리슛 등으로 공격 루트를 다양화 해 효율성을 높일 수 있었다.

하지만 역시 아쉬운 부분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프로 정예 선수들로 구성된 대표팀답게 조직력과 전술로 그럭저럭 전력의 열세를 메우고 있지만, 선수들 개인의 기술력이 떨어진다는 문제점은 여전하다. 아시아 농구의 평준화로 강팀과 약팀의 격차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감안할 때 시간이 지날수록 우려할 만한 대목이다.

8강 결정전에서 만난 일본의 경우 빅맨진의 높이와 파워에서는 여전히 한국의 우위가 분명했다. 하지만 가드진의 볼 핸들링이나 슈팅 능력 등에서는 오히려 국내 가드진에 전혀 밀리지 않았다. 일본 가드들이 화려한 개인기로 한국 선수들을 농락하는 모습도 여러 차례 나왔다. 한국은 비록 이번 경기에서는 일본에 이겼지만 내용면에서는 적지않게 고전했다. 이미 여자농구 대표팀을 비롯하여 남자 프로와 대학 선발 등에서는 올 한해 일본팀들에 줄줄이 연패하며 한일농구 간의 격차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모습이 두드러진다. 이번에 이겼다고 결코 안심할 수 없는 이유다.

문태종이나 조성민같은 확실한 해결사의 부재도 아쉽다. 현재까지는 오세근과 김선형이 그나마 공격의 활로를 풀어주고 있지만 정작 대표팀의 주포로 기대를 모았던 이정현의 부진은 큰 고민거리다.

이정현은 이번 대회에서 7.3점, 야투 성공률 29.6%(8/27), 3점 30%(6/20)이라는 저조한 성적에 머물고 있다. 그나마 61점 차로 대승했던 카자흐스탄전에서만 박찬희의 지원을 등에 업고 19점(3점 5개)을 몰아넣은 것을 빼면, 나머지 3경기에서는 총 10점에 그쳤다. 3점슛은 11개를 던져 고작 1개를 성공시켰을 뿐이다. 일본전에서도 14분을 뛰며 고작 2점에 머물며 승부처에서는 아예 기용되지 못했다. 몸값만 9억 원에 이르는 국내 최고의 슈터라는 명성이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이정현의 부진은 현재 대표팀의 전술이나 국제대회의 특성과는 맞지않은 플레이스타일에 있다. 이정현은 사실 전형적인 3점슈터라기보다는 본인이 공을 들고 공격을 주도해나가는 유형에 가깝다. KBL 무대에서는 슛이 들어가지 않아도 돌파나 2대2를 통하여 공간을 만들어내거나 파울을 이끌어내서 자유튜를 유도할 수 있지만 국제무대에서는 이런 플레이가 전혀 먹히지 않고 있다. 볼을 오래끌지않아도 효율적인 득점을 올려주던 문태종이나 조성민보다 한 수 아래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대표팀은 오히려 식스맨으로 예상되었던 허웅(7.5점 3점슛 40% 6/15)이나 전준범(5.8점, 3점슛 50% 7/14)이출전시간 대비 더 실속 있는  플레이를 보여주고 있다.

한국의 다음 상대는 필리핀이다. FIBA 랭킹 27위로 한국(30위)보다 높은 필리핀은 이번 대회 조별리그에서도 3연승을 거둬 8강에 직행했으며 특히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대회 최다 우승국 중국을 96-87로 제입하는 이변을 연출하며 강력한 다크호스로 급부상했다. 한국은 필리핀과의 상대전적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2010년대 이후 맞대결에서 매번 접전을 벌어디가 근소하게 이기거나 패하는 양상이 반복되었을만큼 결코 쉽지않은 상대다. 허재 호가 이번에도 또 한번의 고비를 슬기롭게 넘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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