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태용 축구대표팀 감독이 지난 14일 오전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2018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 이란전과 우즈베키스탄전에 나설 태극전사 26명의 명단을 발표하고 있다.

신태용 축구대표팀 감독이 지난 14일 오전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2018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 이란전과 우즈베키스탄전에 나설 태극전사 26명의 명단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2018 러시아월드컵 본선행의 운명을 좌우할 '신태용 사단'이 마침내 윤곽을 드러냈다. 신태용 감독은 지난 14일 오전 축구회관에서 2018월드컵 최종예선 이란-우즈베크와의 마지막 2연전에 나설 대표팀 명단 26인을 발표했다.

새로운 대표팀 구성은 신태용 감독이 일찌감치 제시했던 '가이드 라인'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완성됐다. 신 감독은 대표팀 사령탑에 부임한 이후 자신이 추구하는 축구의 색깔과 선수 발탁의 방향에 대해 나름의 원칙과 기준을 꾸준히 제시해왔다.

신태용 감독은 이번 대표팀에서 "K리거는 무조건 10명 이상 뽑겠다"라고 공언했다. K리거들을 과소평가했던 전임 홍명보·슈틸리케 감독 시절과 차별화를 예고한 대목이다. 발표된 신태용호 1기 명단에는 총 11명의 K리거가 이름을 올렸다. 불혹을 바라보는 노장 이동국(전북 현대)을 비롯해 염기훈(수원 삼성), 이근호(강원 FC) 등 베테랑에서부터 21세의 영건 김민재(전북 현대)까지 소속팀에서 절정의 기량을 과시하고 있는 K리거들이 대거 이름을 올렸다. K리그 최강팀 전북 선수들만 6명이나 이름을 올린 것도 눈에 띈다.

대거 탈락한 유럽파... 다시 떠오른 K리그

신 감독은 "소속팀이나 선수의 이름값과 상관없이 현재 최고의 기량을 보여줄수 있는 선수들을 뽑겠다"라고 약속했다. 권경원(톈진)이나 조현우(대구FC), 김민재처럼 대표팀 경험이 아예 없는 선수들도 처음 승선한 반면, 이청용(크리스탈 팰리스), 박주호(도르트문트), 지동원(아우크스), 석현준(포르투)처럼 큰 경기 경험이 많은 유럽파들이 대거 탈락하는 이변이 나왔다.

이란-우즈베크전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그래도 유럽파'를 어느 정도 중용하지 않겠느냐는 일각의 예상을 과감히 깬 대목이다. 탈락한 선수들 모두 소속팀과 대표팀에서 최근 좋은 활약을 보이지 못했거나 컨디션이 떨어진 선수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전임 감독들 체제에서 유럽파들은 경기력이 좋지 않아도 신뢰를 얻는 경향이 있었던 것과 차별화됐다는 평이다.

물론 신태용 감독이 이름값을 마냥 배제한 것은 아니다. 신 감독은 "상황에 따라 컨디션이 좋지 않거나 소속팀에서 한동안 출전하지 못한 선수라도 '신태용 축구'에 맞는다면 뽑을 수 있다"라면서 여지를 남겨두기도 했다. 부상 회복에 아직 의문부호가 붙는 기성용-손흥민의 발탁을 일찌감치 예고하거나, '중국파' 수비수들에 대한 신뢰가 대표적이다.

기성용은 지난 여름 무릎수술을 받았고 손흥민도 6월 카타르전에서 입은 팔 골절 부상으로 수술 후 재활에 전념해왔다. 선수 보호 차원에서 두 선수 모두 이란-우즈베크전에 합류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비관적인 전망도 나왔다. 하지만 신 감독은 기성용과 손흥민만큼은 대체불가한 자원이라고 못박고 대표팀 발탁을 기정사실화했다. 이들이 차지하는 팀내 비중을 감안할 때 경기출전 가능성은 물론이고 정신적 지주로서의 역할까지 감안한 선택이다. 논란을 감수하고라도 '꼭 필요한 선수'는 뽑겠다는 소신을 보여준 장면이다.

다행히 손흥민은 지난 토트넘의 프리미어리그 개막전에서 교체 출장해 무난한 활약을 선보이며 컨디션에 문제가 없음을 알렸다. 기성용도 회복속도가 빨라 대표팀 합류에는 지장이 없을 전망이다. 주장과 에이스의 복귀는 최상의 전력을 구축하려는 신태용호에 큰 호재다.

중국 리그 출신의 수비수들은 최근 대표팀의 수비 불안 문제와 더불어 경기력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중국화'라는 웃지못할 신조어가 떠돌기도 했다. 하지만 신태용 감독은 이번 대표팀에 김기희(상하이 선화), 김주영(허베이 화샤), 김영권(광저우 에버그란데), 정우영(충칭 리판), 권경원까지 무려 5명의 중국파를 발탁했다. 권경원 외에는 모두 대표팀 경험이 있는 선수들이다. 베테랑 곽태휘(서울)까지 제외되면서 이번 대표팀 중앙수비진의 중심은 다시 중국파로  채워지게 됐다. 일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신 감독은 '중국파 선수들의 개인 기량에는 문제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다만 중국파 선수들을 옹호하면서 "몸값이 비싸니까 좋은 선수"라는 식의 변명은 궁색했다. 언변이 부족하면 그냥 '신태용 축구에 맞는 자원들' 정도라고만 했어도 충분했을 것이다. 그래도 이번 대표팀은 K리거와 아시아 무대에서 뛰는 선수들은 조기 소집이 가능해진만큼 남은 기간 수비 조직력을 끌어올리는 것으로 어느 정도 문제를 개선할 수 있다는 기대다.

중앙수비 자원이 이번에도 중국파 위주라면 좌우 풀백은 K리거들로 채워졌다. 왼쪽에 김민우(수원 삼성)와 김진수(전북), 오른쪽에 고요한(서울)과 최철순(전북)은 모두 슈틸리케호 시절에도 대표팀에 승선했던 선수들이다.

박주호, 윤석영(가시와), 오재석(감바) 등 해외파들의 활약이 저조한 상황에서 최근 꾸준한 경기감각을 유지하고 있는 K리거에게 신뢰를 보낸 것이다. 또한 골키퍼는 슈틸리케호에서 주전 수문장으로 활약하던 권순태(가시마)가 제외되고 기존의 김승규(비셀 고베), 김진현(세레소 오사카)에 조현우가 새롭게 가세한 구도다.

이동국-염기훈 발탁... 어떤 효과 있을까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의 사활이 걸린 월드컵 최종예선 9~10차전을 앞두고 신태용(47) 축구 대표팀 감독이 '라이언킹' 이동국(38)을 2년 10개월 만에 대표팀에 호출했다. 사진은 지난 6일 전북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전북 현대와 울산 현대의 경기에서 이동국이 상대 수비수와 볼을 다투는 모습.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의 사활이 걸린 월드컵 최종예선 9~10차전을 앞두고 신태용(47) 축구 대표팀 감독이 '라이언킹' 이동국(38)을 2년 10개월 만에 대표팀에 호출했다. 사진은 지난 6일 전북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전북 현대와 울산 현대의 경기에서 이동국이 상대 수비수와 볼을 다투는 모습. ⓒ 연합뉴스


이동국을 비롯한 베테랑들의 과감한 발탁은 이번 대표팀에서 가장 큰 이슈가 됐던 부분이다. 신태용 감독은 "이동국-염기훈 같은 노장이라도 실력이 있으면 충분히 대표팀에 뽑을 수 있다"라고 선언한 바 있다. 신 감독이 구체적으로 실명을 언급한 노장은 이 두 명이 유일했다. 당시만 해도 상징적인 의미가 강한 '립서비스' 정도로 보는 반응이 더 많았다. 하지만 신 감독은 이동국과 염기훈을 모두 대표팀에 발탁하며 약속을 지켰다. 강원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이근호 역시 지난 카타르전에 이어 다시 한 번 대표팀 이름을 올렸다.

신 감독의 베테랑 중용은 '리더십의 분담'과 '건강한 경쟁' 구도를 모두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된다. 그동안 대표팀에서 기성용이 주장 역할을 잘 맡아왔지만 어려운 상황에서 혼자 리더십을 발휘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이동국-염기훈-이근호는 월드컵 본선 등 큰 경기 경험이  풍부하고 태극마크의 중요성을 잘 이해하고 있는 선수들이다. 노장에게는 나이를 먹어도 충분히 대표팀을 꿈꿀 수 있다는 희망을, 젊은 선수들에게는 나이든 선배들도 저렇게 열심히 뛰는데 따라가지 않을 수 없는 솔선수범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물론 상징적인 의미만이 전부는 아니다. 신태용 감독은 노장들의 발탁 기준에 대해 "실력이 우선"이라고 단언한 바 있다. 이동국은 돌파력이 좋은 황희찬(잘츠부르크), 고공플레이에 강점이 있는 팀동료 김신욱과는 또다른 유형의 플레이를 보여줄 수 있는 공격수로 발탁됐다. 신 감독은 K리그에서 더 많은 골을 넣고 있고 나이도 젊은 양동현(포항)을 두고 굳이 이동국을 선발한 이유에 대해 안정적인 플레이와 연계능력을 꼽았다. 소속팀 전북에서는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투톱에서의 움직임이나 후반 조커로서의 활약도 나쁘지 않다.

염기훈은 국내 최고의 크로스 능력, 이근호는 활동량과 공간 침투 능력에서 확실한 강점이 있다. 김신욱을 활용한 공중전을 가동할 때 염기훈의 택배 크로스가 더 유용한 옵션이 될 수 있고, 이근호는 지난 두 번의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여러 번 결정적인 순간마다 득점포를 가동하며 해결사 역할을 해냈다.

신태용 감독은 이번 대표팀 명단을 통해 자신이 예고한 공약을 거의 99% 가깝게 이행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아직 남은 1%가 훨씬 더 중요하다. 이제는 이란-우즈베크를 넘고 한국축구를 러시아 월드컵 본선으로 이끌겠다는 마지막 공약을 이행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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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태용 이동국 월드컵 국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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