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기사는 영화 <택시운전사>의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영화는 홀로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기사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택시운전사인 만섭(송강호 분)은 홀로 딸을 키우는 홀아비다. 그는 사우디에서 돈을 벌어왔지만 병든 아내의 치료비로 대부분 쏟아부었다. 아내의 마지막 부탁에 자신에게 남은 돈으로 개인택시를 마련한다.

그럼에도 아내의 죽음 이후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그. 술에 취해 하루하루 보내던 그는 죽은 아내의 옷을 붙잡고 울고 있는 어린 딸을 발견한다. 그 이후로 술을 끊고 택시 핸들을 잡기 시작했다.

그러나 세상은 녹록지 않다. 친구 집에 월세를 살며 그 월세조차 밀린다. 그러다 외국 손님을 태우고 광주를 갔다 통금 전에 오면 거금 10만 원을 주겠다는 말을 엿듣고 새치기 운행에 나선다. 운 좋게 새치기를 하며 신이 난 그는 콧노래를 부른다. 하지만 그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노 광주 노 머니."

광주 입구에 서 있는 바리케이드. 총구를 겨누며 거친 욕설을 쏟아내는 군인들. 순간 만섭은 뭔가 잘못됐다고 직감한다. 차를 돌리려 하나 돈을 안 주겠다는 위르겐 힌츠페터(토마스 크레취만 분)의 말. 그는 어쩔 수 없이 택시비를 받기 위해 광주로 진입한다.

광주 시내를 들어서는 순간 더욱 어이가 없는 상황이 눈앞에 나타난다. 폐허가 된 도시. 그 속에서 빨갱이라고 불리던 폭도들이 그저 선량하고 어리숙한 시민들과 학생, 그리고 노인들이라는 사실에 그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정말 필요했던 뉴스, 전혀 보도 안 된 뉴스

"뉴스예요. 뉴스. 우리 소식을 알리겠다고 서울에서 여기까지 택시 타고 오셨어라."

광주에 도착한 만섭과 힌츠페터는 시민들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는다. 사람들은 "여기가 뉴스에 나오지 않아요. 꼭 뉴스에 내 보내주세요"라며 그들에게 간절한 기대를 하고 희망을 품는다. 재식(류준열 분)의 길 안내로 만섭은 힌츠페터와 함께 사람들이 말한 광주의 상황을 목격하게 된다.

사방이 아수라장이고 아비규환인 상황. 그럼에도 그들의 상황을 보도하는 뉴스는 없다. 단 한 줄의 신문뉴스도 방송뉴스도 보이지 않는다. 헬기에서 뿌려대는 군인들의 삐라만 거리에 가득하다. 더군다나 방송 뉴스는 그들을 폭도들로 내몰아간다. 현장에 있는 기자들도 취재만 할 뿐 당장 한 줄의 기사도 내보내질 못한다. 자신들의 진실을 알려줄 뉴스가 간절한 그들. 그 아이러니한 상황은 시민들도, 택시운전사인 만섭도 이해하지 못한다.


다음날 그는 위험한 상황에서 힌츠페터를 두고 서울로 도망간다. 그런 그를 알면서도 보내주는 힌츠페터. 오히려 그는 가는 만섭에게 광주 택시기사 태술(유해진 분)을 통해 약속한 돈까지 전해준다. 만섭은 그렇게 현실에 눈감고 광주를 슬쩍 빠져나간다. 서울로 돌아가려는 그의 입에서는 흥겨운 노래가 흘러나온다.


강물은 흘러갑니다.
제3한강교 밑을 당신과 나의 꿈을 싣고서
마음을 싣고서

젊음은 갈 곳을 모르는 체 이 밤을 맴돌다가
새처럼 바람처럼 물처럼 흘러만 갑니다.

흥겨운 멜로디는 어느새 목이 멘다. 그는 눈을 지그시 찡그리고 다시 광주로 차를 돌린다. 자신의 가장 소중한 딸과의 약속까지 미룬 채. 돌아간 그는 더 처참한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여기까지가 이 영화의 대략적인 초중반부의 이야기다.

평범한 이들이 가장 고통 받는 평범하지 않은 현실

 옛 전남도청앞에 위치한 금남로 앞 분수대

옛 전남도청앞에 위치한 금남로 앞 분수대 ⓒ 박정훈


이 영화는 택시운전사가 주인공이다. 영화는 이렇게 내내 평범한 택시운전사 만섭을 위기로 몰아넣는다. 또, 평범한 광주시민들이 위기로 내몰리는 상황을 그린다. 그 평범한 이들이 폭도로 오도되고 빨갱이로 몰리는 상황을 여과 없이 담아낸다.

영화 택시운전사는 어떠한 영웅 없이 그저 외부자의 시선으로 서술된다. 그 평범함을 헤칠세라 가장 핵심적 인물인 위르겐 힌츠페터조차 주목받게 서사 되지 않는다. 평범한 이들이 많아질수록 오히려 영화 속 평범한 이들은 점점 위기로 빠져들어 간다.

영화는 5·18 주역들의 거창한 대사가 들리지도 않고 스크린에 등장하지도 않는다. 그저 평범한 시민들이었던 이들의 통곡하는 울음소리와 생존의 외침만이 스크린을 채운다. 영화 속 시민들은 선동하는 커다란 목소리는커녕 군인들의 총탄에 쓰러진 시민들을 구하기에도 벅차다. 그렇게 영화는 외부자인 택시운전사인 만섭과 평범한 광주시민들의 시각으로 우리를 5·18과 마주하게 한다.

"모르겄어라. 우덜도 우덜한테 와 그라는지."

영화는 1980년 광주를 거칠게 조명한다. 그럼에도 그 주변 상황에 대해 친절히 설명하지 않는다. 군사정권이 왜 어떻게 광주를 그렇게 했는지 자세한 설명이 없다. 그건 영화 속 시민들의 대사처럼 광주에 존재한 그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택시운전사인 만섭을 중심으로 평범한 시민들의 시각으로 거칠게 달려간다. 그들의 눈으로 37년 전의 사건을 137분 동안 응시한다.

영화 후반부 스크린을 가득 채운 비명과 울음소리가 가득하다. 선혈이 낭자하고 폭력이 가득한 화면은 오히려 시각이 무감해질 정도다. 오히려 날카롭게 날이 선 고통의 숨소리와 마른 눈물들이 무겁게 버거워진다.

가혹하고 고통스러운 장면보다 영화 속 평범한 이들의 시선이 더 무겁게 느껴지는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과거의 고통스러운 사건이 결코 평범한 우리에게 다시 일어나지 않으리란 안도를 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평범한 이들이 아무 이유도 알지 못한 채 죽어가는 것처럼 영화는 평범한 이들이 언제든지 위기로 내던져질 수 있다는 사실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빠가... 손님을 두고 왔어"

영화 후반부 만섭의 미안함이 가장 많이 담긴 그의 말. 그가 광주로 다시 돌아가고 몇십 년이 지난 후 영화는 만섭이 웃으며 운전하는 픽션을 담았지만, 실제 그의 생사는 어땠을지 알 수 없다. 위르겐 힌츠페터가 그토록 찾아도 못 찾았다는 것이 오히려 우려스럽기조차 하다. 하수상한 시절에 과연 그가 어떻게 살아갔을지도.

다만 확실한 것은 픽션에 존재하는 만섭을 통해 마음속 깊이 그의 낮은 목소리가 남아있다는 것이다. 영화 속 택시운전사인 만섭이 자신의 딸에게 그날의 광주와 힌츠페터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듯. 아직도 상처와 고통은 진행형이고 현실은 계속되고 있다.

영화 속 택시기사인 만섭은 잠시 손님을 두고 왔지만, 우리는 37년여가 지난 지금 무엇을 광주에 두고 왔는가? 도망갔다 돌아간 만섭보다 현실의 우리는 과연 떳떳하고 당당하다 할 수 있을까?

 그날의 모습을 남겨놓은 옛 전남도청 사진

그날의 모습을 남겨놓은 옛 전남도청 사진 ⓒ 박정훈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경기미디어리포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택시운전사 518 유해진 류준열 송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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