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태용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지난 7월 28일 오후 서울 마포구 신라 스테이에서 열린 K리그 CEO 워크숍에서 축구 국가대표팀 소집 협조를 요청하기 전 기자들과 만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오른쪽은 김호곤 기술위원장.

신태용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지난 7월 28일 오후 서울 마포구 신라 스테이에서 열린 K리그 CEO 워크숍에서 축구 국가대표팀 소집 협조를 요청하기 전 기자들과 만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오른쪽은 김호곤 기술위원장. ⓒ 연합뉴스


한국 축구의 명운이 걸린 '2연전'을 앞둔 남자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신태용의 선택은 '경험'이었다. 경험이 이번 명단의 주요 테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신태용 감독은 단순히 경험있는 선수들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경험이 있는 실력 있는 선수'들을 선발했다.

14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신태용호 1기 명단 발표가 있었다. 신태용 감독은 이번 명단에 포함된 선수들을 활용해 이번 달 말부터 펼쳐지는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운명의 2연전'을 치러내야 한다. 축구대표팀은 다가오는 31일 홈에서 이란과 9차전 경기를 가지고, 곧바로 짐을 꾸려 원정길에 올라 9월 5일 최종전 우즈베키스탄과 격돌할 예정이다.

축구대표팀은 현재 최종 예선 A조 2위에 위치해 자력으로 월드컵 진출이 가능한 상황이지만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홈에서는 A조의 최강자인 이란을 상대해야 하고, 쉽지 않은 원정길에서는 한국 대표팀과 끝까지 2위 경쟁을 하고 있는 우즈베키스탄을 상대해야 한다. 우즈베키스탄과 최종전에서 패하면 3위로 추락할 정도로 위험스러운 상황이다.

# 경험

월드컵 본선 진출에 빨간불이 들어온 만큼 신태용 감독은 고심 끝에 경험이란 카드를 꺼내들었다. 경험을 중시하는 멤버 구성은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능했다. 신태용 감독은 지휘봉을 잡자마자 K리그 경기를 관람하면서 베테랑 선수들의 발탁을 암시하는 발언을 자주 해왔다. 신태용 감독의 바람에 부응하듯 베테랑 선수들은 앞다퉈 힘을 냈고, 결국 신태용 감독은 예상대로 다수의 경험 많은 선수를 '운명의 2연전'으로 초대했다.

신태용호 1기에 발탁된 26명의 선수들은 대부분 A매치 경험이 풍부한 선수들이다. 이번 발탁을 통해 처음으로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게 된 김민재와 권경원, 줄곧 국가대표팀에는 뽑혔지만 A매치 경험이 없는 조현우만이 신선한 얼굴이다. 부상으로 2연전에 모두 참여할 수 없다고 알려진 기성용을 선발했을 정도다. 신태용 감독은 경험의 가치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 것으로 판단된다.

신태용 감독은 기성용 발탁에 대해서 "대표팀 주장으로서 그동안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줬다. 대표팀 멤버들이 바뀌었는데 이런 것을 (정신적으로) 잡아줄 수 있는 선수다"라며 주장 기성용의 존재 자체의 가치를 높게 평가했다. 이어서 신태용 감독은 "(기성용의 부상이) 상당히 호전돼서 경기에 출장할 수도 있다. 훈련 중에도 통증이 없다고 하고 재활이 상당히 잘 되고 있다"며 기성용 선수의 경기 출장 가능성을 암시하기도 했다.

신태용 감독은 기성용 이외에도 이동국, 염기훈, 이근호와 같은 베테랑 선발에 관해서는 "좋은 선수들이다. 이 선수들은 배고플 때 축구를 했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후배들에게 귀감이 될 것이라 판단된다"고 말했다. 한국 축구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노련미 있는 선수들이 젊은 선수들의 정신력을 고취시킬 필요가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이번 최종 예선에서 한국 대표팀은 경험이란 측면에서 취약점을 드러냈다. 국민들의 절대적인 지지와 응원이 있는 홈 경기장에서는 4전 전승을 거뒀지만, 악조건이 가득한 원정 경기에서는 1무 3패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아시아 원정길에서는 항상 잔디 상태, 더위, 보이지 않는 텃새 등이 존재했고 경험이 없는 선수들은 종종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부진했다. 가장 최근에 있었던 카타르 원정 경기에서 베테랑 이근호만이 빛났던 것을 우연이라 하기 어려워 보인다.

무엇보다도 이 세 선수는 대표팀이 앞둔 운명의 2연전보다 더욱 무게감 있는 경기에서 활약했던 선수들이다. 이동국은 월드컵 본선에만 두 번이나 참가했고, A매치 경기는 100경기 이상 소화했다. K리그에서는 200호골 점령이 얼마 남지 않았을 정도로 경험이 넘쳐 흐르는 공격수다. 이근호는 지난 2014 브라질 월드컵 러시아 경기에서 득점을 터뜨리기도 했고, 다수의 아시아 최종 예선에서 맹활약한 경력이 있다. 염기훈 또한 다수의 아시아 국가와 경기를 치른 경험이 있고, 2010 남아공 월드컵 주전 멤버로서 활약한 기억도 있다. 세 선수의 A매치 경험의 합(231경기)이 이번에 선발된 수비진 8명 A매치 경험의 합(127경기)의 두 배에 가까이 될 정도다.

# 실력

신태용 감독이 베테랑 선수들을 뽑았다고 해서 그들이 단순히 경험의 무기만으로 대표팀에 합류한 것은 아니다. 먼저 2년 10개월여 만에 대표팀에 돌아온 이동국이 있다. 1979년 생으로 만 38세의 노장 공격수 이동국은 쟁쟁한 후배 공격수들을 제치고 명단의 한 자리를 차지했다. 경험 많은 공격수보다는 젊고 유망한 공격수를 선호했던 전(前) 감독 슈틸리케였다면 선발되지 않았을 선수다.

명단 발표 이전부터 일각에서는 기성용의 선발처럼 공격진의 정신적 리더로서 이동국을 발탁할 것이란 예상이 있었다. 하지만 신태용 감독은 명단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이런 시선을 정면으로 부정했다. 신태용 감독은 이동국의 발탁 이유에 대해 "정신적 리더 역할을 위해서가 아니라 골을 넣지 못해도 많은 공격포인트를 올릴 수 있는 선수다. (대표팀에) 상당히 도움을 줄 수 있는 선수다"라고 밝혔다. 즉, 이동국 투입으로 기존 선수들의 정신력 강화보다는 당장의 물리적인 경기력 상승을 원한다는 말이다.

이 점에 있어서 K리그 토종 공격수 중에 가장 많은 득점(15골)을 터뜨린 포항 스틸러스의 양동현 대신 이동국을 선택한 점은 약간의 의문감을 남길 수 있었다. 신태용 감독은 양동현에 대해 "양동현은 내가 선호하는 스타일의 선수가 아니다. 포항 스타일에 맞게끔 최적화된 선수라 생각한다"는 생각을 밝혔다. 양동현보다 이동국의 플레이 스타일이 신태용 축구의 적합하다는 판단이다.

이동국은 전보다 득점력은 떨어졌지만 최전방 공격수로서 공을 받아주고 동료 선수들에게 연계하는 능력은 K리그 최고 수준이다. 2선 공격 자원이 풍부한 한국 대표팀 입장에서는 포기하기 어려운 카드인 것이다. 반면 양동현은 상당히 날카로운 공격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현재의 득점력은 포항의 전폭적인 공격 지원 덕이라는 평가가 중론이다.

또한 이동국의 활용 가치가 양동현보다 높을 공산이 크다. 여러 가지 측면을 고려해 봤을 때 최전방 공격수로서 이동국이 선발로 나설 가능성은 낮다. 이동국은 다른 최전방 공격수와 교체 혹은 공존을 통해 짧은 시간 동안 경기장을 밟을 공산이 크다. 마침 올 시즌 이동국은 현재 소속팀인 전북에서 선발 출장보다는 동료인 에두, 김신욱과 교체 혹은 공존을 통해 존재감을 보이고 있다. 때문에 황희찬이 스타팅 멤버가 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선발 투입이 익숙한 양동현보다는 교체 투입되어서도 활약상이 좋은 이동국이 선발된 것으로 보인다.

이근호와 염기훈도 경험을 제외하더라도 최근의 실력만으로도 충분히 발탁이 가능한 선수들이다. 이근호는 이번 시즌 K리그에서 많은 득점을 기록하지는 못했지만, 왕성한 활동량과 돌파로 강원FC 공격의 '에이스'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수원 삼성의 염기훈은 여전한 '왼발 킥'으로 K리그 클래식 도움 2위에 위치 중이다. 신태용 감독은 풍부한 A매치 경험과 뜨거운 현재의 실력을 동시에 갖춘 선수를 외면할 수 없었다.

K리그 베테랑 3인방 이외에도 국가대표팀에서 잔뼈가 굵은 선수들이 다수 포함이 됐다. 그 사이에서도 진짜 '실력'만으로 선발된 선수들도 있어 눈길이 간다. 가장 관심을 끄는 선수는 역시 전북 현대의 김민재다. 1996년 생 김민재는 최고참 이동국과 17살 차이가 날 정도로 어린 선수지만 실력 하나만큼은 확실하다. 이번 시즌이 데뷔 시즌인 김민재는 '절대 1강' 전북에서 당당히 주전 수비수로 활약 중이다. 압도적인 피지컬을 바탕으로 빠른 발을 보유해 1대1 승부에 능하고, 투지까지 겸비하고 있어 '괴물 수비수'로 불리고 있다. 김민재의 괴물과 같은 '실력' 덕에 전북은 현재 K리그 클래식 최소 실점 팀으로 군림하고 있다.

전북 출신이자 현재 중국의 텐진 콴잔에서 활약 중인 권경원의 선발도 눈길을 끈다. 권경원은 한국 무대에서는 큰 인상을 남기지 못했지만, 2015년 알 아흘리로 이적해 단숨에 아시아 최고 수준의 수비수로서 성장 및 평가를 받았다. 올 초에는 한국인 역대 이적료 2위에 해당하는 130억원의 이적료를 통해 텐진 콴잔으로 이적했다. 텐진 콴잔의 감독이자 이탈리아 전설적인 수비수 파비오 칸나바로의 권경원을 향한 강력한 러브콜이 있었을 정도로 '실력'을 보유한 선수다. 김민재, 권경원 두 선수 모두 A매치 경험이 전무하기에 오로지 '실력'만으로 신태용 감독의 마음을 홀렸다는 판단이 가능하다.

A매치 첫 경기부터 대단히 어려운 경기를 치러내야 하는 난관이 예상됨에도 신태용 감독의 선택을 받을 정도로 두 선수의 실력은 확실하다. 두 선수 모두 출장 여부 자체가 미지수이기 하지만, 두 선수의 선발 자체로 이번 신태용호 1기의 테마가 단순히 '경험'에만 치우쳐 있지 않다는 것이 증명된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부상이라는 큰 변수가 없는 한 신태용의 선택을 받은 26명의 태극전사들이 한국 축구를 수렁에서 건져내야 하는 중책을 맡았다. '경험+실력'이라는 합당하면서도 다소 보수적인 선택을 내린 신태용 감독. 신태용 감독과 한국 축구의 미래를 좌우할 2연전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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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태용호 1기 이동국 이근호, 염기훈 김민재 권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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