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이 록을 '과거의 음악'이라고 말한다. 그 말에 동의하고 싶지 않다. 지금도 많은 밴드가 힘 있는 음악들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록이 대중음악 시장의 주도권을 잃어버린 것만큼은 분명하다. 록스타의 자리를 DJ, 래퍼가 대체하고 있다는 것은 현실이다. 음악 트렌드를 따라 페스티벌 시장도 변화하고 있다. 2013년에는 록 페스티벌이 우후죽순 생겨났다면, 2016년에는 EDM 페스티벌 과포화 현상이 벌어졌다.

지난 7월, 지산 밸리 록 뮤직 앤 아츠 페스티벌은 고릴라즈, 시규어 로스 등을 내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역대 최저 관객을 동원했다. 설 자리가 줄어들고 있는 록 팬들에게 마음의 위안이 되는 곳이 있으니, 바로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이다. 펜타포트는 2006년 이후, 단 한 차례도 거르지 않고 그 자리를 지켜 온 록 페스티벌이다. 사실 올해 라인업이 발표되었을 때, 작년보다 부실한 라인업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필자 역시 그런 생각을 했지만, 지금까지 펜타포트가 선사한 행복한 기억들을 믿어보기로 했다. 지난 토요일, 두근거리는 마음을 품고 인천 송도로 향했다.

 2017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에서 공연하고 있는 써카 웨이브스.

2017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에서 공연하고 있는 써카 웨이브스. ⓒ 이현파


메인 무대에 도착하자마자, 써카 웨이브스(Circa Waves)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써카 웨이브스는 NME에 의해 영국 글래스톤베리 최고의 공연으로 뽑히기도 한 밴드다. 'Get Away', 'Young Chasers' 등, 시원하고 직선적인 개러지 록이 사람들을 춤추게 했다. 대표곡인 'T-Shirt Weather'를 부를 때는 팬들이 미리 준비한 종이비행기를 날려 보내는 장관이 펼쳐지기도 했다. 문득 3년 전에 보았던 트래비스(Travis)의 내한 공연이 떠올랐다. 써카 웨이브스의 공연이 끝나자마자 메탈코어 밴드인 Issues의 무대를 보기 위해 국민카드 스테이지로 향했다. 더운 날씨였지만 관객들은 뛰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시원한 물대포, 그리고 무대를 감싸안은 무지개

 2017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을 가득 채운 물 폭탄.

2017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을 가득 채운 물 폭탄. ⓒ 이현파


그 사이, 메인 스테이지에서는 더욱 강렬한 공연이 준비되고 있었다. 데뷔 16년을 맞은 한국 록밴드 피아의 순서가 온 것이다. 더운 날씨 탓에 맥주를 마시면서 휴식을 취하려고 했지만, 보컬 옥요한의 그로울링을 듣고 있자니 앉아있을 수 없었다. 페스티벌을 페스티벌답게 만드는 슬램과 헤드뱅잉이 이어졌다. 특히 마지막 곡인 '자오선'이 연주될 때는, 심지의 신디사이저 연주에 맞춰 사람들이 춤추는 모습이 멋졌다.

피아에서 주로 멘트를 맡고 있는 베이시스트 기범은 올해 했던 공연 중 최고의 공연이라며 관객들을 추켜 올렸다. 피아의 대표곡인 '소용돌이'가 연주될 때쯤, 관객들은 무대 옆에 있는 살수차를 향해 '소방차! 소방차!'를 연호했다. 옥요한의 사인을 받은 것인지, 대기하고 있던 살수차는 노래에 맞춰 관객들에게 호스로 물을 뿌렸다. 더위는 시원하게 식히되, 분위기는 더욱 뜨겁게 만들어주는 양념이었다.

 2017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에서 DNCE가 공연을 마치고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2017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에서 DNCE가 공연을 마치고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 이현파


"한 번 놀아볼까? 제대로 놀아볼까!"

미국 밴드 DNCE의 기타리스트 이진주가 팬들에게 모국어로 인사를 건넸다. 그녀가 인천 출신인 만큼, 인천에서 내한 공연을 하게 된 감회가 새로웠을 것이다. 사자탈을 쓰고 등장한 DNCE는 토요일 공연 중 가장 흥겨운 순간을 만들어냈다. 팬들 역시 'Body Moves', 'Toothbrush' 등 DNCE의 노래들을 따라 부르며 춤췄다. 아직 해가 지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고정 팬이 워낙 많은 덕분에 가장 많은 인파가 모인 듯 보였다.

프론트맨인 조 조나스는 기대 이상의 노래 실력을 과시했다. 시원한 목소리는 물론, 아이돌 출신답게 카메라를 다루는 센스 역시 능숙했다. 기타리스트 진주는 펑키한 기타 연주를 선보이며 무대 이곳저곳을 누볐다. 베이시스트 콜 휘틀은 연주와 묘기를 동시에 해내는 퍼포머였다. 몸을 거꾸로 뒤집은 채 기타를 연주하는 모습은 모두의 탄성을 끌어냈다. 레드 핫 칠리 페퍼스(Red Hot Chili Peppers)의 플리(Flea)가 떠오를 정도의 무대 매너였다. DNCE의 공연은 올해 필자가 본 공연 중에서도 가장 재미있었다.

DNCE의 공연에서도 어김없이 살수차가 등장했다. 최신곡인 'Kissing Stranger'에 댄스 파티가 벌어지는 동안, 시원한 물줄기가 다시 한번 관객들을 강타했다. 물줄기가 햇빛과 만나면서 무지개가 공연장을 감쌌다. 이들의 뜨거운 공연은 히트곡 'Cake By The Ocean'과 함께 절정으로 치달았고, DNCE 멤버들은 태극기를 흔들며 무대를 떠났다. 한편, 국민카드 스테이지에서는 악동뮤지션이 신곡 'Dinosaur', 'Give Love' 등을 부르며 관객들을 웃음 짓게 만들었다. 아직 록 페스티벌에 익숙하지 않은 남매였지만, 록 팬들은 이들의 긍정적인 에너지에 호응했다.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에서 공연하는 장기하와 얼굴들.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에서 공연하는 장기하와 얼굴들. ⓒ 이현파


하늘이 어둑어둑해질 무렵, 장기하와 얼굴들이 무대에 올랐다. 필자는 작년에도 이들의 공연을 본 적이 있는데, 선곡이나 멘트는 작년과 거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을 알면서도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공연이었다. 관객들을 지휘하는 장기하의 모습에는 동네 청년, 록스타, 교주가 공존했다. .'ㅋ', '내 사랑에 노련한 사람이 어딨나요' 등 비교적 최신곡부터 '달이 차오른다 가자', '풍문으로 들었소'까지, 스탠딩 존을 뜨겁게 채우는 떼창이 터져 나왔다. 얼마나 흥겨웠는지 관객들은 기차놀이를 하면서 스탠딩 존을 헤집고 다녔다.

오후 10시를 향해 달려가는 시간, 영국 팝 밴드 바스틸(Bastille)이 메인 헤드라이너로서 무대에 올랐다. 바스틸은 영국 브릿 어워드에서 최우수 신인상을 받고, 'Pompeii'를 빌보드 싱글차트 5위에 올린 소위 '핫한 밴드'다. 보컬 댄 스미스(Dan Smith)는 무대에 올라 저음의 목소리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했다. 'Send Them Off'로 무대를 연 바스틸은 2집 < Wild World >와 데뷔작 < Bad Blood >의 수록곡들을 골고루 나누어 들려주었다.

우리는 월요일을 버틸 힘을 얻어간다

 2017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 바스틸의 공연.

2017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 바스틸의 공연. ⓒ 이현파


바스틸의 공연은 확실히 군더더기 없는 공연이었다. 연주력은 물론, 보컬 댄 스미스의 컨디션도 좋았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들의 공연을 보고 떠오르는 단어는 '동어 반복'이었다. 바스틸의 음악은 주로 신시사이저와 둔탁한 드럼, 코러스를 통해 웅장함을 강조한다. 듣기에는 근사한 팝이다. 그러나 이런 '앤썸' 분위기의 곡들이 공연 내내 반복되다 보면 흥미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물론 'Pompeii'처럼 듣고 싶었던 곡들이 연주될 때만큼은 즐겁게 '떼창'에 참여했다. 그러나 전체적인 공연에 대한 만족도를 따지자면 장기하와 얼굴들, DNCE가 헤드라이너에 더 가까웠다.

헤드라이너의 공연이 끝난 후에도, 사람들은 쉽게 페스티벌 장을 떠나지 않았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하이네켄 스테이지로 달려갔다. 수백 개의 전구와 장식들로 꾸며진 무대였는데, 이승열이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승열은 그는 필자가 생각하는 한국 대중음악의 '고수'다. 방송 출연을 즐기지 않다 보니 대중적인 인지도는 낮지만, 그는 끊임없이 자신의 음악적 변화를 모색하는 예술가다. 그래서 그를 '음악의 구도자', '음악 수행자'라고 부르는 팬들도 적지 않다.

이날 밤 이승열은 '지나간다', 'Vulture' 등 신보 <요새드림요새>의 수록곡들을 팬들에게 선사했다. 훌륭한 공연 내용에도 불구하고, 메인 스테이지에 비해 음향 상태가 몹시 좋지 않아 공연을 온전히 즐길 수 없었던 점은 아쉬웠다. 베이스 사운드가 과하게 울려 몰입을 방해했다. 이승열은 섬세한 사운드를 중요히 여기는 뮤지션인만큼 더 안타까운 상황이었다. 물론 최근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이 줄어든 예산 때문에 고전했다고는 해도, 음향은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부분 아니겠는가? 만족스러운 이 페스티벌에서 몇 안 되는 불만이 바로 작은 스테이지들의 음향 상태였다.

올해 펜타포트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그 어떤 해보다 가족 단위의 입장객이 많이 보였다는 점이다. DNCE가 무대 위를 뛰어다닐 때 중년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흥겹게 춤을 추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다섯 살 남짓 되어 보이는 아이가 부모님과 함께 장기하의 노래에 맞춰 손뼉을 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이런 훈훈한 풍경들을 계속 보기 위해서라도 '펜타포트'가 장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의 말처럼 록은 이미 과거에 영광을 두고 왔는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처럼 밴드 음악이 고전하고 있다면 더욱 그 말이 아프게 다가온다. 그러나 펜타포트에서 록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가슴을 벅차게 하는 밴드 사운드가 있고, 지칠 때까지 놀 줄 아는 관객들이 있다. 내년에도 수많은 사람이 이곳에서 월요일을 견딜 힘을 얻어가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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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음악과 공연,영화, 책을 좋아하는 사람, 스물 아홉.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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