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애나벨: 인형의 주인> 포스터

▲ 영화 <애나벨: 인형의 주인> 포스터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2013년 226만 관객을 모으며 공포영화 흥행 순위를 다시 쓴 <컨저링>의 스핀오프 두 번째 시리즈 <애나벨: 인형의 주인>이 선전을 거듭하고 있다. 개봉 첫날 <군함도>와 <슈퍼배드 3>를 제치며 출발, 나흘 연속 박스오피스에서 <택시운전사> <청년경찰> 다음 가는 순위에 버티고 섰다. 전작보다 훨씬 빠른 흥행속도를 고려할 때 역대 외국 공포영화 흥행 순위 1, 2위를 기록하고 있는 <컨저링> 시리즈의 위업에 도전장을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쏘우>와 <컨저링>의 기록할 만한 흥행으로 제일가는 공포영화 감독으로 떠오른 제임스 완은 2014년 <컨저링> 속 섬뜩한 인형 애나벨을 내세운 스핀오프 시리즈 제작에 전격 착수했다. 자신은 <컨저링> 속편을 직접 감독하고 <애나벨>은 <인시디어스> 시리즈에서 촬영을 맡으며 연을 맺은 존 레오네티에게 맡긴다는 계획으로 리 워넬, 대런 린 보우즈만, 케빈 그루터트 등이 포함된 제임스 완 사단의 확장을 내다본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촬영과 연출은 서로 다른 재능을 요구하는 영역이었다. <애나벨>은 억지 설정과 엉성한 개연성, 흐지부지한 결말을 순차적으로 내보이며 공포영화 팬들에게조차 외면받았다. 소리와 영상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공포영화는 이미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제임스 완이 직접 메가폰을 잡은 <인시디어스> <컨저링> 시리즈의 성공과 측근 모두가 기획·연출·각본 작업에서 나름의 성과를 거둔 <쏘우> 시리즈와 비교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는 결과였다.

제임스 완은 끈질겼다. <엑소시스트> 시리즈 이후 40년 만에 성공한 공포영화 라인업을 구축하고자 하는 워너 브러더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애나벨> 속편 제작에 나선 것이다. 전작의 실패를 거울삼아 <라이트 아웃>으로 공포물 연출에 재능을 검증받은 다비드 산드베리에게 감독을 맡겼다.

제임스 완 그룹의 새 멤버, 다비드 산드베리

<애나벨: 인형의 주인> 전작과 마찬가지로 인형에 든 악령이 사람을 잠식한다는 설정으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 <애나벨: 인형의 주인> 전작과 마찬가지로 인형에 든 악령이 사람을 잠식한다는 설정으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라이트 아웃>은 지난해 제임스 완이 직접 제작을 맡은 저예산 공포영화로 제임스 완에게 제작비의 스무 배가 넘는 전 세계 1억 달러 흥행수익을 가져다 준 작품이다. <라이트 아웃> 제작비가 490만 달러였고 <애나벨: 인형의 주인>에 들어간 돈이 1500만 달러로 평가되는 것을 고려하면 산드베리는 1년 만에 3배가 넘는 규모의 예산을 만지게 된 것이다. <애나벨: 인형의 주인>은 지난주 함께 개봉한 미국에서만 3600만 달러가 넘는 수익을 올린 것으로 파악된다.

공포영화가 설 자리 없는 한국에서와 달리 미국에선 공포영화만큼 돈이 되는 장르도 드물다. <13일의 금요일> <나이트메어> <할로윈> <엑소시스트>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등 성공한 공포영화 시리즈가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제임스 완은 바로 이 장르에서 지난 십수 년을 통틀어 가장 성공한 영화인이다. 공포영화의 전형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면서도 신선한 설정과 파격적인 전개로 자기만의 영역을 구축했다는 평가가 그에게 뒤따른다. 앞에 언급한 것처럼 그와 함께하며 성공을 거머쥔 영화인이 벌써 여럿이며 주변에 끊임없이 기회를 주는 그의 성향으로 볼 때 할리우드에서 그의 영역은 더욱 확장되어 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제임스 완에게 당면한 프로젝트는 공포의 영역에 있지 않다. 2015년 <분노의 질주: 더 세븐>을 연출하며 블록버스터 액션물로 외도했던 그는 자신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워너 브러더스의 DC코믹스 히어로물 <아쿠아맨>을 연출하기로 계약을 마친 상태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3부작 이후 이렇다 할 성공작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워너 브러더스가 공포물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제임스 완의 색깔을 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팀 버튼과 크리스토퍼 놀란 같은 색깔 있는 작가의 탄생을 바라는 듯도 하지만 제임스 완이 익숙하지 않은 장르에서 성공을 거머쥘지는 미지수다.

만원 극장에서 집단적 공포체험 어떠세요?

<애나벨: 인형의 주인> 린다 역을 맡은 아역 룰루 윌슨은 공포영화만 내리 네 번째 출연했다.

▲ <애나벨: 인형의 주인> 린다 역을 맡은 아역 룰루 윌슨은 공포영화만 내리 네 번째 출연했다.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제임스 완이 새로운 도전에 나선 사이 다비드 산드베리가 공포영화 프로젝트를 떠받칠 기둥으로 활약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애나벨: 인형의 주인>에서 다시금 공포영화의 전성시대를 열 가능성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제임스 완이 직접 연출한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자극적인 음향과 영상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공포를 자아내는 데 집중한다. 본질에서 오락적인 공포영화인 것이다.

극장을 찾은 관객들은 공포를 느끼고 움츠러드는 만큼 그 상황 자체를 유쾌하게 즐긴다. 온라인상에선 이 영화와 관련해 '(오줌을) 지리니 팬티 하나를 더 챙기라'라거나 '팝콘을 먹지도 못하고 다 던져버리니 사지 말고 주워 먹으라'는 등 재치 있는 리뷰가 넘쳐난다. 실제 극장에서도 비명만큼이나 많은 웃음이 나온다. 같은 공간에서 함께 느끼는 공포가 재미의 씨앗이 되고 있는 것이다. 영화 역시 이야기가 궤도에 오른 뒤부턴 마치 롤러코스터를 운행하듯 쉬지 않고 몰아친다.

만원 극장은 감상의 장으로 남아 있는 대신 집단적 체험의 장으로 진화한다. 돌이켜보면 크리스토퍼 놀란만 관객을 체험하게 하는 게 아니다. 1980년대 선풍적인 인기를 끈 할리우드 공포영화들이 영화가 체험일 수 있음을 일깨운 바 있다. 8편까지 나온 <13일의 금요일>시리즈, 7편까지 개봉한 <나이트메어>시리즈, 9편까지 이어진 <할로윈> 시리즈가 모두 그와 같은 영화였다. 관객은 두려움이란 감정 자체에 집중하는 대신 오락적 틀 안에서 공포를 소비하기 위해 극장을 찾았다.

이후 블록버스터의 전성기가 열리며 공포영화의 소강상태가 이어졌으나 제임스 완을 비롯해 그와 뜻을 같이하는 공포영화 작가들이 과거의 영광을 되살리고자 분투하고 있다. <애나벨: 인형의 주인>은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오락적 공포영화다. 걸작이라 불리긴 어렵겠으나 목적에 충실한 썩 괜찮은 영화임이 분명하다. 무엇보다 만원 극장에서 공포영화를 감상할 기회를 다른 영화를 통해 찾기란 어려운 일이다. 주저 없이 이 영화를 추천하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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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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