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축구는 종료 휘슬이 울리기 전에 함부로 속단할 수 없는 마력의 스포츠다. EPL(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 새 시즌 첫 경기부터 믿기 힘든 축구 극장이 만들어진 것이다. 현지 시각으로 금요일 밤 축구장을 찾아온 5만9387명 팬들은 7골 잔치상을 앞에 두고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즐거워했다.

아르센 벵거 감독이 이끌고 있는 아스널 FC가 12일 오전 3시 45분(이하 한국 시각) 런던에 있는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2017-2018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1라운드 레스터 시티와의 홈 경기에서 후반전 교체 선수 둘(아론 램지, 올리비에 지루)이 만들어낸 극적인 2골에 힘입어 4-3으로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다.

제이미 바디 2골, 아스널 휘청거리다

지난 6일 밤 잉글랜드 축구의 성지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프리미어리그 챔피언 첼시 FC를 승부차기 끝에 물리치며 시즌 새 출발을 앞두고 좋은 징조를 보여준 아스널 FC. 가장 먼저 치른 EPL 개막전에서도 활짝 웃었다.

그라운드는 예상보다 일찍 뜨거워졌다. 경기 시작 2분만에 아스널의 새 골잡이 알렉상드르 라카제트가 벼락같은 선취골을 터뜨렸기 때문이다. 오른쪽 측면에서 모하메드 엘네니가 올려준 논스톱 크로스를 스탠딩 헤더로 방향만 슬쩍 바꿨다.

하지만 홈팬들의 환호성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지난 시즌 EPL 12위 레스터 시티도 기지개를 켰다. 3분만에 동점골이 나온 것. 왼쪽 코너킥을 짧게 연결한 레스터 시티는 길게 크로스를 올렸고 수비수 맥과이어의 헤더 패스를 받은 일본 국가대표 오카자키 신지가 정확한 헤더 슛으로 1-1을 만들었다.

여기까지는 예상 못한 경기 초반 흐름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전반전 중반이 넘어가면서 아스널 선수들은 짧고 빠른 연결로 자신들이 준비한 공격 흐름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문제는 섬세한 마무리 능력이었다. 빌드 업 과정은 아스널 팬들의 찬사를 들을 수 있었지만 시원한 해결사가 아쉬웠던 것이다.

그래서 프랑스 리그1 올림피크 리옹에서 거액을 주고 알렉상드르 라카제트를 데려와 뛰게 했지만 공격수 제이미 바디와 오카자키 신지까지 수비에 가담시켜 1선과 3선의 간격을 최대한 좁혀서 수비하는 레스터 시티의 저항을 뿌리치기 어려웠다.

와중에 아스널은 레스터 시티의 역습 한방을 맞고 크게 흔들렸다. 29분, 믿었던 수비형 미드필더 그라니트 샤카의 패스 미스가 나왔을 때 레스터 시티의 왼쪽 측면 역습이 훌륭했던 것이다. 올브라이튼의 얼리 크로스를 향해 검증된 골잡이 제이미 바디가 빠르게 달려들어가며 오른발 슛을 성공시켰다.

제이미 바디는 이 역전골(아스널 1-2 레스터 시티)도 모자라 후반전 초반에 한 골을 더 달아나며 아스널 팬들을 침울하게 만들었다. 56분, 리야드 마레즈가 왼발로 올려준 오른쪽 코너킥 세트 피스 기회에서 재치있게 빠져들어가며 헤더 슛을 성공시킨 것이다. 아마도 후반전 벵거 감독의 과감한 결단이 없었다면 제이미 바디의 2골이 이 경기 최고의 순간으로 꼽혔을 것이다.

벵거 감독 '신의 한 수'

전반전 추가 시간 2분도 거의 다 끝나갈 때 '메수트 외질-알렉상드르 라카제트'로 이어진 가운데 공격이 주효한 덕분에 콜라시나츠의 헌신적인 패스를 받은 대니 웰벡이 2-2 동점골을 만들어냈다.

포기하지 않은 아스널 선수들 덕분에 6만 명에 가까운 런던 홈팬들은 후반전을 더욱 기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11분만에 제이미 바디에게 다시 끌려가는 추가골을 얻어맞았으니 그 충격이 매우 크게 다가왔다.

시간도 하염없이 흘러 관중석 곳곳에서 탄식이 들리기 시작했다. 이에 아스널의 벵거 감독은 67분에 과감한 선수 교체를 단행했다. 가운데 미드필더 모하메드 엘네니를 빼고 날개 공격수 아론 램지를, 실수가 몇 개 눈에 보였던 수비수 롭 홀딩을 빼고 골잡이 올리비에 지루를 들여보낸 것이다.

그리고는 83분부터 단 2분 사이에 2골을 몰아넣으며 개막전 드라마를 완성시켰다. 거짓말처럼 벵거 감독이 선택한 바로 두 선수가 나란히 극적인 동점골과 믿기 힘든 재역전 결승골을 터뜨린 것이다.

83분, 왼쪽 코너킥 세트 피스 기회를 잡은 아스널 FC는 흘러나온 2차 공격 기회에 집중했다. 그라니트 샤카의 왼발 아웃사이드 패스를 아론 램지가 잡아놓고 오른발 대각선 슛으로 3-3을 만든 것이다.

아스널은 이 기세를 몰아 2분 뒤에 놀라운 재역전 결승골까지 뽑아냈다. 오른쪽 코너킥 세트 피스 기회에서 그라니트 샤카가 왼발로 감아올린 공을 슈퍼 서브 올리비에 지루가 헤더 슛으로 방향을 바꿨다. 이 순간 지루의 이마를 떠난 공은 카스퍼 슈마이켈 골키퍼가 지키고 있는 레스터 시티 골문 크로스바 하단에 맞고 골 라인 안쪽에 떨어졌다.

슈마이켈이 그 공을 손으로 쳐냈지만 이미 건너편 부심은 골 라인을 넘어갔다는 판정을 내리고 중앙선을 향해 뛰어가는 중이었다. 이 극장골에 스타디움은 뜨거운 용광로로 변했다. 그 이후 후반전 추가 시간이 5분이나 이어졌지만 아스널 FC 선수들은 냉정한 역습을 펼치면서 레스터 시티의 마지막 공세를 무디게 만들었다.

지난 시즌 잉글리시 FA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지만 프리미어리그 5위에 그치면서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놓친 아스널 FC 팬들 중 일부는 아르센 벵거 감독의 퇴진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세계 최고의 날개 공격수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알렉시스 산체스는 이번 개막전에도 운동복이 아닌 양복을 입고서 관중석에 앉아 있었다.

이렇게 아스널 FC 팬들은 그 어느 때보다 불안하게 시즌을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록 인상적인 재역전승을 이끌어내기는 했지만 프리미어리그 시스템이 완비된 이후 1997-1998 / 2001-2002 / 2003-2004 시즌에 이르기까지 3회 우승의 기억이 더 희미해지기 전에 특별한 결과를 갈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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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2017-2018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개막전 결과(12일 오전 3시 45분, 에미레이츠 스타디움-런던)

★ 아스널 FC 4-3 레스터 시티 [득점 : 알렉상드르 라카제트(2분,도움-모하메드 엘네니), 대니 웰벡(45+2분,도움-세아드 콜라시나츠), 아론 램지(83분,도움-그라니트 샤카), 올리비에 지루(85분,도움-그라니트 샤카) / 오카자키 신지(5분,도움-해리 맥과이어), 제이미 바디(29분,도움-마크 올브라이튼), 제이미 바디(56분,도움-리야드 마레즈)]

◎ 아스널 선수들
FW : 대니 웰벡(75분↔시오 월콧), 알렉상드르 라카제트, 메수트 외질
MF : 알렉스 옥슬레이드-체임벌린, 그라니트 샤카, 모하메드 엘네니(67분↔아론 램지), 엑토르 베예린
DF : 세아드 콜라시나츠, 나초 몬레알, 롭 홀딩(67분↔올리비에 지루)
GK : 페트르 체흐

◎ 레스터 시티 선수들
FW : 제이미 바디, 오카자키 신지(72분↔다니엘 아마테이)
MF : 마크 올브라이튼(88분↔데마라이 그레이), 윌프레드 은디디, 매티 제임스(82분↔켈레치 이에나초), 리야드 마레즈
DF : 크리스티안 푸흐스, 해리 맥과이어, 웨스 모건, 대니 심슨
GK : 카스퍼 슈마이켈
축구 아르센 벵거 레스터 시티 아스널 FC 프리미어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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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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