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택시운전사>를 들었을 때 감독이 장훈이라는 말에 조금 의아했다. <의형제>와 <고지전>이라는 두 작품에서 그는 남북 관계를 다뤘고 특히 <고지전>은 각종 영화제에서 수상하는 등 평단의 높은 평가를 받았던 작품이었다. <고지전>의 마지막 회백색 엔딩을 몇 번이나 돌려보며 '왜 이 작품이 300만도 못 채웠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게 남았다. 그러면서 때문에 장훈이라면 당연히 차기작도 남북관계를 다룰 것이란 편견이 있었다.

그의 네 번째 작품인 <택시운전사>는 그의 필모그래피에 새 기록을 세우고 있다. 지난 10일 600만 명을 돌파했다. <고지전>의 아쉬움을 해소하듯 긴 공백 후 돌아온 작품의 흥행은 어마어마하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팬심일 뿐, 사실 <택시운전사>는 전작들에 비한다면 몇 년 뒤 명절특집으로 한 번 상영할 평작에 가깝다. 주인공은 가장, 시작은 웃기고 중반에는 분노하고 마지막으로 '눈물짜기'까지, 이를테면 <택시운전사>는 한국 천만 영화 흥행 공식을 고스란히 따라간 작품이다. 잘 만들었고 너무 평범한 안전수칙을 철저히 지키는 '택시운전사'였다.

 <택시운전사>

<택시운전사> ⓒ (주)쇼박스


여러 논란에 휩쓸린 <군함도>의 반사이익을 톡톡히 보고 있는 것을 보면 분명 <택시운전사>가 못 만들었다는 것은 아니다. 후반부 검문소 중사(엄태구 분)나 카체이싱에서 판이 튀는 불협화음이 보이지만 넘겨줄 만한 부분이다. 혜은이의 '제3한강교'를 서럽게 부르는 송강호 표정을 생각하면 신의 기적이라도 바라야 했던 순간이었으니까.

광주 사람 아닌 외지인이 주인공

<택시운전사>는 여타 다른 광주 민주화 운동 영화와는 달리 외지인이 주인공이라는 점을 주목하고 싶다. 가령 <화려한 휴가>의 경우 주인공 강민우(김상경 분)는 '광주에 사는' 택시기사이며 진압군에 맞서는 광주 시민이었다. <26년>의 경우 주인공은 광주 희생자의 자식들이었다. <박하사탕>은 주인공 영호는 과거 광주 진압군이었고, <꽃잎>에서 소녀는 5.18 광주의 피해자였다. 이를테면 기존의 5.18 영화는 지식인들의 자기 죄의식이 담긴 영화였고, 관객들은 영화 내에서 5.18 사건과 1:1의 관계를 맺어야만 했다.

그러나 <택시운전사>의 두 주인공은 모두 외지인이다. 한 명은 국적마저 한국이 아니었다. 이들은 5.18에 직접적인 가담을 하는 것도 아닌 한 발 떨어져 기록해야만 하는 사람들이었다. "여긴 걱정 마시고~"라는 황태술의 대사에서 영화는 두 주인공은 다른 조연들과 선긋기를 한다. <화려한 휴가>에서 민주주의를 지키는 행위가 가족과 이웃을 지키는 행위와 등치된다면 <택시운전사>는 이 둘이 갈등을 불러일으킨다. 영화 속 백미인 서울과 광주의 이정표 앞 '제3한강대교'를 부르는 만석의 내적갈등은 다른 5.18 영화에선 다룰 수 없는 것이었다.

1980년 5월 18일이 어느덧 37년 전 이야기가 됐다. 이명박-박근혜 보수정권 9년 동안 5.18은 '제창'과 '합창' 같은 복잡한 함수가 돼버렸고 대중은 '굳이 복잡한' 문제를 고민하는데 지쳐버렸다. 인터넷에선 5.18이 조롱의 대상이 됐고 이를 지적하면 '씹선비'나 '진지충'이 돼버렸다. 이전과 똑같이 5월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세대인 것이다. 이 때문에 집에 혼자 있는 딸과 광주에 두고 온 손님이란 저울질이 관객들에게 크게 공명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영화 <택시운전사> 한 장면.

영화 <택시운전사> 한 장면. ⓒ 더 램프


영화 포스터가 웃고 있는 만석의 얼굴을 집중하고, 홍보 영상이 등장인물들의 어설픈 영어를 담은 것은 의도적으로 5월 광주를 숨겨 관객들의 부담을 줄이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10만원에 속사정도 모르고 'OK! 렛츠고 광주'를 외친 것처럼 관객은 송강호만 보고 따라 탄 승객이었다. 이후 가이드와 함께 광주에서 하룻밤 지내면서 '광주민주화운동'을 지켜보게 본다.

영화가 그리는 광주의 모습은 2016년 겨울 광화문과 다를 바 없었다. 평범한 일상과 일반적인 시민들이 있었고 영화는 사건 중심에서 조금 멀리서 천천히 균열을 내는 정도에서 그친다. 그리고 광주를 탈출하면서 광주에 두고 온 죄책감이 영화 밖에서도 유효하게 한다. 위르겐 힌츠페터가 실존인물이고 영화가 사실에 기반했다는 점에서 말이다. 이를테면 사파리처럼 5월 광주민주화운동 체험기인 것이다.

즉 새로운 세대는 광주에 대한 죄의식도, 가해자를 향한 응징적 복수심도 남아있지 않은 세대인 것이다. 광주는 어느 덧 머나먼 옛이야기가 되고, 대중들 각자에겐 끝난 사건인 것이다. 9년 보수 정권이 광주를 어떻게 만들어놨는지 생각해볼 부분이다.

<택시운전사>는 <화려한 휴가>의 관객수 680만을 뛰어넘고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할 영화가 될 것으로 보인다. 영화가 대중적이고 범작이라는 말은 취향을 타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600만의 선택, 나아가 천만까지 기대해본다면 이 영화는 5.18을 바라보는 새로운 세대의 인식을 짚어보는 지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택시운전사>

<택시운전사> ⓒ (주)쇼박스



택시운전수 장훈 송강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