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진주 교수 바이올리니스트 백진주 교수는 800여개의 영화음악에 참여했다. 세계를 누비며 버스킹 활동도 이어가고 있다.

바이올리니스트 백진주 교수는 800여개의 영화음악의 연주와 작곡에 참여했다. ⓒ 백진주


할리우드 영화음악 연주자로 왕성하게 활동한 백진주 교수(바이올리니스트). 그를 딱 떨어지는 하나의 수식어로 소개하기는 힘들어 보였다. 고정적인 틀에 가둘 수 없는 그는 자유로운 활동가였고, '바이올린 하나로 이렇게 많은 일들을 할 수도 있구나' 싶어 신기할 정도였다. 그가 하는 활동들 중 세계 곳곳에서 펼치는 버스킹은 그의 가치관을 가장 잘 드러내는 일처럼 보였다.

백진주 교수는 픽사(월트디즈니의 자회사)의 전속 연주자로 10년 넘게 활동하며 <아바타> <해리포터> <스타워즈> <반지의 제왕> <캐리비안의 해적> 등 800여 편의 영화음악 연주와 작곡에 참여했다.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 등에서 현악과 교수로 재직하기도 한 그는 선화예고를 다니다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고 그곳에서 활동했다. 지난 2013년 한국에 영구 귀국한 그는 "영화음악도 이제는 컴퓨터가 다 해줘서 사람이 필요 없는 시대가 됐고, '내 길을 가야겠다' 싶어서 귀국했다"고 밝혔다. 지금은 서초의 한 스튜디오에서 강의와 세미나 등을 열며, 전국 방방곡곡과 세계를 누비며 연주 버스킹을 한다.

청와대에 피아노가 없다니... 이해 안 돼

"이제는 청와대에 피아노 하나 있으면 좋겠습니다."

몇 년 전(년도는 밝히지 않았다) 청와대로부터 연주자로 초청받은 백진주 교수는 청와대에 피아노가 없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고 한다. 하는 수 없이 피아노를 직접 공수해 가서 연주했다며 "사라장부터 정명훈까지 세계적 음악인들을 다수 배출한 나라에서 청와대에 피아노 한 대 없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시청에도 피아노가 없더라며 "좋지 않은 피아노라도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백진주 교수는 음악을 전공하는 우리나라 학생들이 꽉 막힌 방음 연습실에서 연습하는 것도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집에서 편안하게 할 수 있길 바란다며, 이웃의 악기 소리는 층간소음이 아니라고 힘주어 말했다. 듣는 사람이 힐링 받을 수 있고, 값진 연주를 공짜로 감상할 수 있는 건데, 여유가 없어서 그렇게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고 했다. 한 일화로, 백진주 교수가 한국에 와서 아파트에 살 때 아침마다 베란다에서 창문을 열고 바이올린을 연습하는데 어느 날은 반대편 동에서 한 여성이 "'립스틱 짙게 바르고' 연주해주세요!"하고 목청껏 요청했단다. 물론 백진주 교수는 주저 없이 그 곡을 연주했다.

미국에 살 때는 이태리 할아버지가 옆집에 살았는데 백진주 교수가 아침에 바이올린을 연습하면 할아버지가 마당을 쓸면서 그걸 늘 감상했다. 그는 "제 음악을 기대하시며 할아버지가 '오늘 아침에는 연습 안 해?' 물으실 때면 실망 안 드리려고 매일 연습했다"며 "웬만한 연주소리는 마음을 열고 들으면 소음이 아니다"라고 역설했다.

'윤식당' 해변에서 버스킹할 거예요

백진주 교수 바이올리니스트 백진주 교수는 800여개의 영화음악에 참여했다. 세계를 누비며 버스킹 활동도 이어가고 있다.

백진주 교수는 세계를 누비며 버스킹 활동도 이어가고 있다. ⓒ 백진주


"꽃가게를 하시는 어떤 분이 제 연주회에 오고 싶었는데 시간이 안 나 못가서 속상했다고 전해들은 적이 있어요. 지나가는 길에 우연히 그 꽃집이 보이기에 들어가서 연주했어요."

백진주 교수는 "바빠서 연주회에 못가는 사람이 너무 많다"며 "그 자리를 뜰 수 없다면 우리가 가면 된다"며 쿨하게 말했다. 어디든 장소를 가리지 않고 찾아가 버스킹을 하는 이유다. 사실 더 큰 이유가 있었다. 바로 할아버지의 유언이다.

"누가 너의 연주를 듣고 싶어 하면 바로 해줘라."

할아버지의 이 유언은 지금까지 그를 이끌어온 한 마디다. 세상에 나눠주기 위해 하늘로부터 받은 재능을 아껴둬서 대체 뭐 할 거냐 하는 생각이다. 이 생각은 굳이 무대 위가 아니더라도 언제 어디에든 그의 연주가 힘이 되는 곳이라면 서슴없이 악기를 꺼내들게 만든다.

"지나가다가 버스킹 해줄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눈을 크게 뜨고 그가 물었다. "우리는 내년 2월에는 발리섬으로 버스킹 투어를 떠날 거예요. <윤식당>이란 TV프로그램에 나왔던 해안가를 따라 열흘 정도 버스킹을 하려고요."

그가 말한 '우리'는 그가 이끄는 버스킹 팀의 이름이기도 하다. "'우리'라는 단어는 아프리카 사람들도, 일본 사람들도 다 발음할 수 있다"며 "한국에서 쓰는 남다른 '우리'의 의미가 좋다"고 설명했다. '우리'는 20대~30대 젊은 여성 제자들과 백진주 교수가 함께 꾸린 팀이다.

이들은 주로 어떤 음악을 연주할까? 그의 전문분야인 영화음악부터 팝, 한국가요들 이를테면 빅뱅의 노래나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테마곡 'My Destiny' 같은 OST를 연주한다. 우리가 평상시 부르는 노래들, 듣는 사람이 즐거운 곡을 연주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내가 음악회를 가도 졸리는데, 작품을 모르는 상태에서 조용히 있어야 하는 관객들은 얼마나 재미가 없을까" 하고 되물었다.

"연주할 때 동전 좀 떨어뜨리면 어때요. 아기가 좀 울면 어떻고요. 갑자기 문이 확 열려서 비오는 소리가 좀 들려도 되는 거 아닌가요."

방글라데시에선 '무당'대접, 인도에선 '여신'대접

아프리카 빼고 다 가봤을 정도라는 백진주 교수는 방글라데시에 갔을 때 무당으로 오인 받은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생전 처음 바이올린을 보는 방글라데시 사람들은 '인순이 헤어스타일'을 하고 나무를 만져 소리를 내는 그를 무당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낮에 연주를 들은 한 아이 엄마가 문간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다가 다짜고짜 아기를 제게 안겨줬어요. 저는 별다른 생각 없이 '아기 잘 크게 해주세요' 하고 기도했는데, 순식간에 엄마들이 몰려와 줄을 막 서는 거예요. 그곳엔 8개월을 못살고 죽는 애들이 많거든요. 백신이 없고, 집에서 태어나기 때문에 감염되고, 파상풍 걸려서 죽는 아이들이 제일 많아요. '저 여자가 우리 아이를 만져주면 우리 아이가 살 수도 있어'라는 생각으로 줄을 선 거였어요."

백진주 교수는 그곳 상황을 좀 더 이야기했다. 여덟 가족이 칸만 나뉘어졌을 뿐 거의 한 집에 같이 사는데 누가 임신을 하면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게 부지기수다. 위생상태도 엉망이라 희한한 병에 많이 걸리기 때문에, 우리나라 선교사들이 거기 가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이 "한 아빠에 한 엄마여야 해"하고 설명하고 집을 분리하며 호적등록을 하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에피소드는 끝이 없었다. 인도에 가서는 '여신' 대접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역시나 바이올린 소리를 처음 듣는 현지인 여성이 인도의 사리를 입고 연주하는 백진주 교수를 보고 여신이라며 그의 사진을 집에 걸어놓았다고. 저 사람은 신이 아니라고 거듭 설명했지만 "음악을 이렇게 아름답게 연주하는데 어떻게 신이 아니냐'고 되물었다고 한다. 인도에 있는 지인 말에 따르면, 그 사진이 지금도 걸려있다고. 그래서 "아직도 설득 중"이라고 한다.

나의 즐거움, 바이올린 통해 전해지길

 백진주 교수

백진주 교수는 자신의 바이올린 소리를 원하는 이가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 상관 없이 악기를 꺼낸다. ⓒ 백진주


"내가 즐겁게 사는 것이 바이올린을 통해 나갔으면 좋겠어요."

백진주 교수는 왜 이토록 여러 가지 활동을 이어가는 걸까. 특별한 가치관 같은 게 있는지 물었더니 위와 같이 답했다. 또 다음의 생각들을 덧붙였다.

"자기한계를 넘어서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이만큼 공부했다고 그만큼만 가지고 살면 성장이 멈추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이런 것을 만들고 저런 것을 만들 수도 있는 것 같아요. 한계 안에 머물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머물면 물이 썩잖아요. 물은 계속 흘러야해요. '우리' 팀원들에게 그래서 머리색도 다양하게 해보라고 권해요."

이날 인터뷰에서 백진주 교수의 머리 역시 독특했다. 끝으로 갈수록 색깔이 강해지는 염색이 여름에 잘 어울렸고, 자유분방한 그의 성격을 그대로 반영하는 듯했다.

백진주 교수는 바이올린 하나로 여러 경우의 수의 도전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국내 섬에 관심이 많다는 그는 <나, 섬에 가면>이란 이름의 공연도 준비하고 있다며, 독도에서 공연을 꼭 하고 싶다고 말했다.

백진주 바이올리니스트 픽사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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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23년차 직원. 시민기자들과 일 벌이는 걸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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