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 올림픽을 꿈꾸던 태권도 소년은 배우가 됐다. 열두 살 그는 대회에 나가기만 하면 금메달을 따왔다. 자신이 있었다. 실력으로 짐작해봤을 때 같은 체급에서 자신과 붙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도 생각했다. 어느 날 그는 돌연 태권도를 그만 둔다. 소년이 태권도를 그만 둔 이유는 하나다. '엄마가 공부하라고 해서.'

하지만 그 다짐도 잠시 공부를 하라던 엄마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소년은 배우가 됐고 그 소년의 동생은 그보다 먼저 아이돌 가수가 됐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연예인이 된 두 형제의 진로에 엄마의 불만은 없었느냐는 말에 어느새 6년차 배우가 된 청년은 웃는다.

 KBS2 금토드라마 <최고의 한방>의 배우 동현배가 2일 오후 서울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내 동생(빅뱅의 태양)이 잘됐으니까 불만은 없다. 오히려 내가 우리 집의 '불안요소'지. 고정수입도 없고 일도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을 아시니까. 나이도 있고 자립도 해야 할 것 같은데 불안한 거다."

그는 예의 익숙한 웃음을 지었다. 많이 들어본 질문에 대한 체념 섞인 웃음처럼 보였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고 했다. 배우 동현배를 2일 서울 압구정에서 만났다.

배우 동현배의 홀로서기

배우라는 꿈을 막연히 꾸기 시작했을 때, 그 꿈을 구체화시켜준 건 다름 아닌 연기 선생님이었다. 그는 지인의 소개로 본격적으로 연기 선생님을 만나 연기의 맛을 보았다. 인터뷰마다 동현배가 다짐하는 "결국 좋은 사람이 좋은 배우가 된다"는 말도 처음 연기 선생님에게서 들었다. 선생님은 "그렇게 돼야 오래 버티고 사람들에게 오래 찾아갈 수 있는 배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늘 혼나는 학생이었다. 연기 레슨 시간이 11시라 11시에 연습실에 도착하면 선생님은 화를 냈다. "새끼야 너는 배우가 레슨 시간보다 먼저 와서 몸도 풀고 주변 상황이 어떤지 확인도 해야지!" 그는 선생님의 말씀 그대로 지금도 현장에 일찍 오는 배우가 됐다. 촬영장에 도착하면 그날 몸 상태가 어떤지 체크도 하고 사람들에게 안부도 묻는다. 사람들은 그에게 "또 일찍 왔어?"라고 묻는다고. "물론 지각을 하는 날도 있다"며 동현배는 와하하 웃는다.

 KBS2 금토드라마 <최고의 한방>의 배우 동현배가 2일 오후 서울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그는 배우로서 자신의 장점에 대해 '얼굴에 특징이 없다'는 걸 꼽았다. TV 드라마에서는 최근 끝난 <최고의 한방>의 MC드릴처럼 순수하면서 밝은 에너지를 줄 수 있는 캐릭터를 주로 맡아왔지만 영화에서는 정반대였다. 동현배가 스스로 말하기를 '센캐'(강한 캐릭터)를 많이 맡아왔단다. "아빠인데 양아치나 장기 파는 나쁜 놈 같은 역할을 맡았다. 영화로 넘어가면 나쁜 놈 해도 잘 어울릴 것 같으니 쓰시는 것 같기도 하고 반면 TV 드라마 오디션을 보러가면 유쾌한 분 같다는 코멘트를 많이 받았다. 양면적인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좋다. 얼굴에 뭐가 없으니까." (웃음)

"네가 CF하면 우리 성공한 거다"

"현배야 나는 드릴이(극 중 동현배의 배역)가 랩을 좀 잘했으면 좋겠어."

프로듀서인 차태현의 말 한 마디에 무턱대고 레슨을 끊었다. "랩을 잘해야 하니까." 대사에 등장하는 랩 부분을 연습해서 갔다. 차태현이 다시 물었다. "현배야 랩 부분이 달라졌다. 잘 하면 안 돼. 전에 네가 했던 게 더 좋아."

동현배의 간절함이 랩을 먼저 배웠다는 것에서 드러났다면 그가 연기한 MC드릴의 간절함은 무대공포증으로 인해 랩을 망치는 에피소드에서 잘 드러난다. 잔뜩 긴장한 채로 임했던 오디션 장면에서 MC드릴은 랩을 시작해야 하는 타이밍을 계속 놓치고 결국 한 마디 내뱉어보지도 못한 채 탈락하게 된다.

"오디션 장면은 정말 떨렸다. 스태프만 있는 게 아니라 연습생이라고 인사한 친구들도 나와서 객석에 앉아 있었다. 실제 평가받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지금 제대로 하고 있는 게 맞나 싶고. 사람들은 웃기게 봤을지도 모르지만 난 진지했다. 사실 방송에서는 서서 랩을 시도하는 모습밖에 안 나왔지만 그 무대에서 앞구르기도 하고 객석으로 뛰어 들어가도 보고 정말 별 거 다 찍었다. 차태현 감독님이 가끔 요구하시는 게 있다. '컷' 되면 객석에서 빵 터지고 그랬다. '객석에 계신 여러분이 재밌으면 그걸로 됐습니다'라고 말했다. (웃음) 그 정도로 매 신 잘해내고 싶었다."

 KBS 2TV <최고의 한방>에서 MC드릴(동현배)은 고질적인 무대 공포증 때문에 중요한 오디션을 망치게 된다. 간절했던 무대에서 실력발휘를 하지 못했을 때 그 기분은 어떨까. 랩을 시작해야 할 타이밍을 잡지 못하고 계속 땀을 흘리는 MC드릴의 모습에 많은 시청자들이 공감했다.

KBS 2TV <최고의 한방>에서 MC드릴(동현배)은 고질적인 무대 공포증 때문에 중요한 오디션을 망치게 된다. 간절했던 무대에서 실력발휘를 하지 못했을 때 그 기분은 어떨까. 랩을 시작해야 할 타이밍을 잡지 못하고 계속 땀을 흘리는 MC드릴의 모습에 많은 시청자들이 공감했다. ⓒ KBS


<최고의 한방>은 동현배에게 "너무 감사한 작품"이다. 2017년 동현배의 목표 중 하나는 드라마를 찍는 것이었고 그는 드라마 제목처럼 '최고의 한방'을 날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하며 웃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 드라마는 실패했다"는 말을 했다.

"차태현 감독님이 우리 드라마 최고의 성공은 내가 CF 하나 찍는 거라고 그랬다. (웃음) '우리 작품은 현배가 CF 찍으면 됐어! 성공했어!'라고. 그리고 계속 물어봤다. '오늘 CF 들어왔어? 아 왜 안 들어오지? CF 찍어야 하는데!' (웃음) 그래서 이번 작품은 차태현 감독의 실패다. CF가 안 들어왔기 때문에. 그 정도로 내게 애정이 있었다. 다른 현장에서 촬영하고 왔다고 말하면 어땠는지 물어보고. 빨리 CF 찍으라고 독촉하고. 그래야 본인이 성공한 것 같다고."

그렇다면 <최고의 한방>이 끝나고 가장 많이 변화한 것이 무엇이냐 물었다. 그는 "동현배라는 명찰을 떳떳하게 달고 나올 수 있다는 정도"라고 답했다.

"'동현배라는 배우가 여기 있습니다. 지금까지 모르셨죠?' 나는 이게 큰 수확이라고 생각한다. 모르는 사람이 훨씬 많으니까. 스스로 '연기하는 동현배라고 합니다'라고 떳떳하게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할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한다."

 KBS2 금토드라마 <최고의 한방>의 배우 동현배가 2일 오후 서울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동현배 최고의 한방 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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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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