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방송된 MBC <뉴스데스크> 의 한 장면.

8일 방송된 MBC <뉴스데스크> 의 한 장면. ⓒ MBC


"한밤 중 고속도로에서 수입차 석 대로 시속 2백km 넘는 '광란의 레이싱'을 하다 사고까지 낸 일당이 붙잡혔습니다. 그 날 출고된 새 차 성능을 뽐내려 벌인 일인데, 그 새 차는 폐차됐고 지나가던 애먼 운전자가 크게 다쳤습니다. 최경재 기자입니다." (<'시속 230km' 광란의 질주하다 '쾅'…애먼 사람만 중상>)

"차 뒷좌석에서 안전띠 낯설다고 매지 않는 분들 여전히 많은데요. 사고가 나면 본인은 물론이고 옆좌석 또 운전자들에게까지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고 합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이주훈 특파원입니다. (<뒷좌석 안전벨트 미착용, 동승자에게도 큰 위험>)

"자전거 교통사고 사망자 네 명 중 세 명이 노인으로 나타났습니다. 전부 차도에서 교통법규를 지키지 않았다가 난 사고였습니다. 최유찬 기자입니다."(<자전거 사고 사망자 '네 명 중 세 명' 노인…주의 필요>)

막 채널을 돌린 시청자들이라면 8일 하루 특이한 '교통 사고'가 연달아 일어났다고 착각했으리라. 뒤이어 <적자 '눈덩이'…기로에 선 노인 '무임승차'>라는 '뉴스플러스' 리포트까지 잇따라 보도됐다. 이쯤 되면, MBC <뉴스데스크>가 아니라 MBC <교통데스크>라고 불러 줘야 할 듯 싶다.

지난 8일 방송된 MBC <뉴스데스크>는 이렇게 정작 중요한 '사고' 소식은 쏙 뺀 채 LA 특파원까지 동원해 딴 '사고' 소식으로 채웠다. 이날 언론노조 MBC본부가 공개해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MBC판 블랙리스트'(관련 기사 : '충성도 등급' 분류된 MBC 기자들 "우린 소고기 아냐")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문무일 새 검찰총장 사과를 필두로 검찰과 경찰, 군의 '사건사고' 소식을 선두에 배치했고, '불법도박사이트' 관련 보도까지 총 다섯 꼭지에 걸쳐 다소 일상적인 사건사고로 다섯 꼭지를 '때웠다'. 사실 '수입차 질주'나 '자전거 교통사고'와 같은 뉴스는 이날 KBS와 SBS, JTBC 역시 사회면 꼭지로 다룬 아이템인 것은 맞다. 물론 MBC처럼 연달아 '주요' 보도한 곳은 없었다.  

이미 '비오는 날에는 소시지 빵이 잘 팔린다'는 일명 '소세지 뉴스'를 창시했고, '세월호 장사'를 비롯한 각종 왜곡·편파보도로 유명해진 '망가진' MBC <뉴스데스크>라곤 하지만, 이날은 솔직히 기대(?)를 가졌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어김없었다. 뉴스를 보도하지 않고, 자신들이 뉴스를 생산하고 있는 이 MBC가 최소한 방송·언론계의 희대의 뉴스인 'MBC 블랙리스트'에 대해서는 일말의 언급이라도 있을까 기대를 품었던 게 실수였다. 그렇다면, 다른 방송은 어땠을까.

MBC는 'MBC 블랙리스트' 언제 보도 할까

 'MBC 블랙리스트' 내용을 다룬 언론노조 MBC본부 노보 표지.

'MBC 블랙리스트' 내용을 다룬 언론노조 MBC본부 노보 표지. ⓒ 언론노조 MBC본부


"이런 가운데 MBC 노조가 사측이 기자 '블랙리스트'를 만들었다면서 문건을 공개해 논란이 커지고 있습니다. 영상취재기자들을 대상으로 파업 참여 여부와 회사 충성도 등을 기준으로 해서 등급을 매겼다는 겁니다."

MBC <뉴스데스크>가 '교통 사고' 관련 보도로 뉴스를 '때우던' 그 엇비슷한 시각, 'MBC' 출신 손석희 앵커는 8일 JTBC <뉴스룸>에서 이 'MBC판 블랙리스트'를 보도하고 있었다. <뉴스룸>은 "MBC 언론노조는 사측이 2012년 파업 이후 사원들을 등급별로 분류해 인사 평가와 인력 배치에 활용했다고 전했습니다"라며 문건 내용까지 영상으로 갈무리했다.

예상했겠지만, JTBC를 제외한 KBS와 SBS는 보도하지 않았다. 그 보다 쉽게 예상가능한 건 비단 카메라 기자만 소고기처럼 등급을 매겼을 리 없는 사측의 대응이었을 것이다. 이날 MBC 사측은 반박 보도자료를 냈다. '허위 사실 유포'와 '명예 훼손', '형사'와 '민사' 등 이러한 폭로 이후 뒤따라오는 낯익은 표현들이 다수 등장했다. (MBC는 9일엔 "진상조사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알지도 못하는 정체불명의 '유령문건'으로 허위 사실을 유포해 회사의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경영진과 보도본부 간부들의 명예를 훼손한 인사들에 대해서는 형사와 민사 등 모든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이다(중략). '유령 문건'으로 허위 사실을 유포한 매체들에 대해서도 강력한 법적 대응을 할 것."

심지어 타 매체까지 '허위 사실 유포' 운운하며 겁박한 김장겸 사장을 비롯한 MBC 사측. 이에 대해 암투병 중인 것으로 알려진 이용마 MBC 해직기자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블랙리스트가 과연 카메라기자에게만 한정되었을까?"라며 문제를 제기했다.

"김장겸이 취재기자인 만큼 취재기자는 대충 자신이 알지만 카메라 기자에 대해서는 정보가 없어서 만들도록 지시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 이후 인사에 이 내용이 많이 반영된 걸 보면 그렇다. 블랙리스트가 과연 카메라기자에게만 한정되었을까? 사원 10퍼센트의 지지도 받지 못하는 불한당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다른 부문 직원들에 대해서도 광범위한 성향 파악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철저한 수사를 통해 진실을 밝히고 김장겸을 비롯해 관련자들을 처벌해야 한다."

대한민국 국민의 두 부류, 문재인 대통령과 김장겸 MBC 사장

지금 대한민국 국민은 두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다. "공영 방송이 지난 10년간 참담하게 무너졌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전자를 대표하는 인물은 문재인 대통령이요, 후자는 현 MBC 김장겸 사장이 대표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둘 다 자신의 생각을 바꿀 생각이 없는 듯 보인다.

우선 문재인 대통령은 8일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의 임명장 수여 자리에서 "지난 10년 간 우리 사회에서 무너진 게 많은데 가장 심하게, 참담하게 무너진 부분이 우리 방송, 특히 공영방송 쪽이 아닐까 싶습니다"라며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던 공영방송 정상화의 의지를 재확인했다. 특히 문 대통령은 이날 "지난정권의 무리한 방송 장악 시도"라는 구체적인 이유와 "방송을 정권이 장악하려는 일이 다시는 되풀이 되면 안 된다"는 평소 철학을 강조하고 나섰다.

그 반대편엔, 불러도 대답 없는 '기자 출신' MBC 김장겸 사장이 위치한다. 그 '사장님'을 위해 MBC 본부 노조원들은 9일 오전부터 김장겸 사장 퇴진을 요구하며 시위를 이어갔다. 당사자인 카메라 기자들은 제작 거부에 돌입했다는 소식이다. 정치권도 가세했다. 이날 자유한국당을 제외하고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바른정당은 이 MBC 블랙리스트에 대해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그리고, 하필이면 이날 김장겸 사장이 주요한 '캐릭터'로 출연하는 영화 <공범자들>이 언론배급시사회를 갖고 정식으로 세상에 공개됐다. 이명박 정권으로부터 시작된 정권의 방송 장악 10여년사를 다룬 이 작품은 MBC 해직PD 출신 최승호 PD가 연출했다. 김장겸 사장과 김재철 사장 등 MBC 전현직 경영진 5인은 이 작품의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낸 상태다. 이날 최승호 PD는 기자간담회에서 '선배' 김장겸 사장에게 이렇게 조언(?)했다.

"영화의 주연급 배우이자 비판대상인 김장겸 현 MBC 사장을 비롯해, 김재철 안광한 전 MBC 사장, 백종문 부사장, 박상후 시사제작 부국장 등 5명이 법원에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영화 내용이 자신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초상권과 퍼블리시티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오는 11일 오후 3시 서울 중앙지법에서 이 문제 관련된 재판이 열린다. 저희가 기대하기로는 11일 당일 가처분에 대한 확실한 결정 이나길 기대한다. 그 결정은 물론 당연히 기각 돼야 할 것이다. 겸허한 마음으로 그 결정을 기다릴 것이다(중략).

지난 10년동안 모든 국민이 아는 게 영화에 담겨있다. 그들이 했던 모든 행동을 담아낸 것을 상영금지 신청한 것은 그런 모든 경험을 함께해온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어제 오늘, 'MBC 블랙리스트'가 세상에 나왔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이 임기를 시작했다. 이러한 전후 맥락을 세세하게 설명하는 <공범자들>이 시사회를 통해 관객들을, 국민들을 만나고 있다. 이렇게 MBC의 개혁은 시대적 요구로 승화되는 중이다.

이에 대해 MBC 사측은, 김장겸 사장은 뭐라고 답할 것인가. 일단 9일 저녁 <뉴스데스크> 보도를 지켜보도록 하자. 과연 이 'MBC 블랙리스트'를 언급하는지 안 하는지, 오늘은 또 어떤 '사건사고'를 부풀려 뉴스를 때우는지.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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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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