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함도 포스터

▲ 군함도 포스터 ⓒ CJ 엔터테인먼트


<군함도>가 고꾸라졌다. 손익분기점 750만 명을 눈앞에 두고 흥행속도가 급격하게 둔해진 것이다. 누적 관객수 630만 명. 평범한 영화에겐 감히 넘보지 못할 수치겠으나, 천만 감독 류승완이 제작비 220억 원을 들여 연출하고, 4대 배급사 가운데서도 선두를 달리는 CJ 엔터테인먼트가 총력을 기울여 배급한 영화치고는 초라한 모양새다.

개봉 전부터 단역 배우들과 관련한 잡음이 흘러나오고 개봉 직후엔 기다렸다는 듯 스크린 독과점과 역사왜곡 논란이 일었으니 <군함도> 관계자들은 못내 억울할 것도 같다. 돌이켜보면 이 영화에 쏟아진 비판엔 가혹한 측면이 없지 않다. 전국 2600여 개 스크린 가운데 무려 2168개의 스크린을 장악했다는 기사가 포털사이트와 SNS를 통해 퍼져나가며 부정적인 여론에 부채질을 했는데, 사실 이는 정확한 수치도 아니(영화진흥위원회 기준 개봉일 2027개 스크린이 최고기록)었을 뿐더러 악의적인 인용이기도 했다.

스크린 점유율은 한 관에서 하루 한 차례만 상영해도 해당 스크린 수를 집계하는 방식으로 산출된다. 따라서 한 관에서 서로 다른 영화 여럿을 상영할 경우 실제 스크린은 하나인데도 각 영화가 이 스크린을 차지한 것으로 기록되게 된다. 영진위 박스오피스에서 각 영화가 차지한 총 스크린수를 모두 더하면 전체 스크린수를 훌쩍 뛰어넘는 것이다. 특히 <군함도>의 경우 <택시운전사> 같은 경쟁작 개봉에 앞서 최대한의 스크린을 확보하는 배급전략을 폈기에 상영점유율과 스크린점유율의 차이가 크게 날 수밖에 없었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단순계산으로 <군함도>가 전국 스크린의 80% 가량을 차지한 것처럼 기사를 쓴 언론들은 영화기사를 다룰 기본적인 자질이 없다고 판단한다.

실제 <군함도>의 상영점유율을 보면 개봉 후 1주일 간 50%를 조금 넘는 수치를 유지하다 <택시운전사>가 개봉한 뒤 20% 내외로 떨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직전 극장가 최대 흥행작인 <스파이더맨: 홈 커밍> <덩케르크>의 흐름과 큰 차이가 없는 모습이다. <스파이더맨: 홈 커밍>은 <군함도>보다 10% 정도 높은 63%의 최고 상영점유율을 기록했고 <덩케르크>의 최고기록은 41.1%였다. 한 영화가 전체 상영 횟수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게 결코 바람직하지 않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유독 <군함도>에 쏟아진 비판이 날카로웠음 역시 분명해 보인다.

<군함도>에 쏟아진 비판, 지나치다

 유명 배우들을 다수 기용하는 대신 이름 없는 민초들의 고통을 부각시키는데 집중했다면 어땠을까.

유명 배우들을 다수 기용하는 대신 이름 없는 민초들의 고통을 부각시키는데 집중했다면 어땠을까. ⓒ CJ 엔터테인먼트


역사 왜곡 논란 역시 지나친 부분이 상당하다. 이와 관련한 비판은 크게 두 갈래로 일제에 의한 강제징용의 참상을 배경으로 영화적 상상력을 펼친 부분이 과했다는 게 첫째, 조선인 악역을 주요하게 부각시켜 영화의 초점을 모호하게 가져갔다는 게 둘째다.

하지만 극영화인 <군함도>가 영화적 상상력을 어디까지 펼칠지는 오롯이 감독과 제작진에 달린 문제다. 악의적인 왜곡이 아닌 다음에야 역사적 사실의 변주는 다른 역사 창작물도 얼마든지 하고 있는 게 아니던가. 최근 수년 간 개봉한 일제시대 배경 영화를 나열해보면 <귀향> <해어화> <아가씨> <덕혜옹주> <암살> <밀정> 등이 있는데 이 가운데 역사적 사실 그대로를 영화화한 작품이 과연 있는가 말이다.

조선인을 피해자로 놓아두지 않았다는 비판 역시 의미 없긴 마찬가지다. 일제강점기 동안 엄연히 존재했던 동족을 등치고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조선인의 모습은 사실 <군함도>에 처음 등장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수많은 악질 친일파와 비겁한 변절자들을 보아왔다. 앞서 언급한 영화들에도 최소 수명씩의 조선인 악당이 등장하는데 <군함도>라 해서 유독 역사왜곡 논란이 불거질 이유가 없는 것이다.

최근의 분위기를 보면 마치 <군함도>가 금기에 가까운 국민정서를 건드려 비난받고 있는 듯 여겨진다. 하지만 이는 실제와 다르다. 류승완 감독은 금기 근처에 간 일이 없고 갈 생각도 없었기 때문이다. 영화의 배경이 역사적 공간인 군함도일 뿐 감독의 관심은 오롯이 대중적인 오락영화를 만드는 데 맞춰져 있었음에 분명하다. 초반부터 끊임없이 이어지는 유머코드와 밑도 끝도 없이 등장하는 반전, 클라이막스의 장황한 전투 신과 유명배우들의 자기소모적 연기가 모두 이 영화가 대중지향 오락영화임을 가리키고 있다.

재미가 없는 게 문제

 배우들에게 연기를 지도하는 류승완 감독.

배우들에게 연기를 지도하는 류승완 감독. ⓒ CJ 엔터테인먼트


<군함도>가 처한 문제는 역사 왜곡이나 스크린독점보다는 졸렬한 수준의 작품성에 원인이 있다. 이야기 속에서 인물들이 겪는 역경에 공감하지 못하고 극적 재미도 느끼지 못한 관객들이 극장을 나와 비판적인 의견에 힘을 싣고 있다는 뜻이다. 이는 관객의 취향과 감정을 맞추는데 실패한 감독 및 제작진의 실패라 할 만하다. 시나리오 작업과 현장에서의 연출, 편집작업을 거쳐 한 편의 영화가 관객과 만나기까지 이 같은 오차를 파악하지 못한 이들의 실패인 것이다.

류승완 감독에게 이 같은 결과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충격일 게 분명하다. 어디서 본 듯한 장면이 많이 나온다는 비판을 받긴 했으나 전작 <베테랑>이 이룩한 성과는 대단한 것이었다. 그리고 감독은 이 영화에서의 성취를 바탕으로 더욱 커다란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베테랑>과 마찬가지로 전 국민적 공감대를 살 수 있는 이야기, 일제시대 강제징용 피해자의 극적 탈출기를 영화화하기로 한 것이다.

전작에서 잘 먹히는 코드를 적극 활용해 기대 이상의 성취를 거둔 류승완 감독은 <군함도>에서도 비슷한 시도를 감행한다. 적당한 유머와 액션에 더해 가족애와 연대, 반전 장치까지 잘 먹히는 요소를 모두 쏟아부은 것이다. 이러한 의도는 캐스팅에서도 단적으로 엿보인다. 황정민, 소지섭, 송중기, 이경영, 이정현, 김수안 등의 출연배우 대다수가 익히 수차례 반복한 캐릭터를 다시금 연기하고 있는 것이다.

황정민은 서민적 애환을 내보이는 아버지이고 소지섭은 거칠지만 따스한 내면을 간직한 남성이며 송중기는 움직임 하나하나가 광고처럼 보이는 미남 비밀요원으로 그려진다. 이경영은 선과 악 사이에서 흔해빠진 줄타기를 하고 이정현은 악바리 근성으로 역경을 버텨내는 여성상을 보여준다. 김수안은 <부산행> 이후 연기한 모든 캐릭터를 더한 뒤 다시 그 수만큼 나눈 그쯤에 위치한다.

감 떨어진 흥행감독, 절치부심 기대한다

 광복군 OSS 요원 박무영 역으로 출연한 배우 송중기. 그의 모습은 영화 내내 CF 속 한 장면 같았다.

광복군 OSS 요원 박무영 역으로 출연한 배우 송중기. 그의 모습은 영화 내내 CF 속 한 장면 같았다. ⓒ CJ 엔터테인먼트


역시 대중을 지향하지만 그 안에서 새로운 시도를 했다는 평가를 받는 <택시운전사>와 비교하면 이 같은 차이는 두드러진다. <택시운전사>에선 주인공에게 결정적 도움을 주는 군인을 <밀정>의 친일파 역을 맡았던 엄태구가 연기했고 광주의 진실을 보도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지역신문 기자를 <특별시민>의 건달 박혁권이 맡았다. 유해진과 류준열의 배역 역시 이제껏 그들이 연기해온 전형과 같다고 보기엔 무리가 따른다. 전형을 따르면서도 익숙함을 배제하는 작은 변화다.

돌아보면 <베테랑>은 장르영화의 문법으로 한국사회에 실재하는 부조리를 터뜨린 작품이었다. 이를 통해 관객은 현재하는 사회적 분노를 영화를 통해 대리분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군함도>는 그와는 다르다. 오락영화의 수법으로 소모하기엔 지나치게 무거운 주제를 선택했다. 안전하다 생각해 집어든 카드는 익숙하게만 느껴졌다. 유머와 드라마, 반전과 액션 모두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니 관객이 만족할리 만무했다.

이것이야말로 <군함도>가 받는 비판의 근본적 이유다. 류승완 감독에겐 충분히 가혹하게 느껴질 수 있겠으나 <베테랑>을 비롯한 전작들에 쏟아진 찬사를 당연하게 여겼다면 이 영화에 대한 비판 역시 감내할 줄 알아야 한다. 그때 주어진 영광 역시 모두 눈 밝은 이들로부터 비롯된 것만은 아니었으니.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포털사이트에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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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오마이뉴스 스타팀에서 방송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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