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익숙한 대중 문화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자 합니다. [편집자말]
 언니네 이발관

언니네 이발관 ⓒ 블루보이


"이제 저는 음악을 그만 두고 더이상 뮤지션으로 살아가지 않으려 합니다."

지난 8월 7일, 언니네 이발관의 이석원이 은퇴를 선언했다. 이능룡과 전대정은 계속 음악 활동을 할 계획이지만, 이석원의 은퇴는 곧 밴드의 해체나 다름 없는 일이다. 이미 이석원은 6집 발매 전, 이번 앨범이 마지막 앨범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밝힌 바 있다. 예견된 이별이었지만, 막상 현실로 닥치자 팬들이 느끼는 상실감은 생각보다 더 컸다.

항상 벗어나고 싶어 했던 '보통의 존재'

이석원은 언니네 이발관 공식 사이트에 장문의 글을 올리며 팬들에게 인사했다. 그는 은퇴를 결심하게 된 심경을 차분하게 써 내려갔다. 이석원이 지금까지 써 온 일기들을 보면, 그가 상상 이상으로 큰 중압감을 안고 음악을 해 왔음을 알 수 있다. 그가 음악을 만드는 과정은 곧, 스스로를 깎아내는 일과 다르지 않았다.

"미안해요. 나는 아주 오랫동안 이 일을 그만 두길 바래왔어요. 하지만 어딘가에 내 음악을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하면 그런 마음을 털어놓긴 쉽지 않았어요.",

"좋아하는 음악을 할 수 있어서 행복해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저는 음악이 일이 되어버린 게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그래서 항상 벗어나고 싶어했기에 음악을 할때면 늘 나 자신과 팬들에게 죄를 짓는 기분이었습니다. 더 이상은 그런 기분으로 무대에 서고 싶지 않음을.. 이렇게밖에 맺음을 할 수 없는 제 사정을 이해해주면 좋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언니네 이발관은 PC 통신 동호회에서 활동하던 이석원의 허풍으로 시작된 밴드다. 그는 자신을 밴드 '언니네 이발관'의 리더라고 소개했는데, 당시에는 이 밴드는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상황이었다. KBS FM 라디오 '권영혁의 음악세계'에 출연한 이석원이 다시 한 번 스스로를 언니네 이발관이라고 소개하면서, 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다.

친구인 윤병주(노이즈가든의 기타리스트, 현재는 로다운30을 이끌고 있다)의 도움을 받았고, 멤버들을 모았다. 프로와는 거리가 먼 실력의 아마추어들이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밴드는 한국 인디 신을 상징하는 역사적인 밴드가 되었다.

1996년 1집 <비둘기는 하늘의 쥐>를 비롯,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했으나 뒷날 재평가받았던 2집 <후일담>, 인디 신 역사상 최고의 흥행을 거둔 3집 <꿈의 팝송> 등 그들은 헤비메탈 일색의 한국 록계에 영미권의 얼터너티브 록을 수혈했다. 삶에 대한 사색을 시적으로 그려낸 이석원의 시적인 가사도 큰 사랑을 받았다(이석원은 담백한 문체로 사랑받는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언니네 이발관(왼쪽부터 이능룡(기타), 이석원(보컬). 전대정(드럼))

언니네 이발관(왼쪽부터 이능룡(기타), 이석원(보컬). 전대정(드럼)) ⓒ 블루보이


국내외를 막론하고 많은 밴드들이 데뷔 초기만한 작품을 내지 못하고 팬들을 실망시켰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언니네 이발관은 오히려 뒤로 갈수록 더 아름다운 소리를 냈다. '아름다운 것' 한 곡에만 11번의 믹싱을 거듭한 5집 <가장 보통의 존재>는 창작의 절정이었다.

아티스트가 '스스로의 즐거움을 위해서 반드시 1번부터 순서대로 들어주세요'라고 팬들에게 당부할만큼 트랙 간의 유기성을 갖춘 작품이었다. 부드러운 멜로디를 앞세웠지만, 그 안에 공허한 감정을 감추어 놓았다. 이능룡의 기타 역시 일품이었다. 완벽주의가 빚어낸 걸작이었다.

올해로 스물다섯 살인 필자는 '언니네 이발관 세대'가 아니다. 그들이 첫 앨범을 낼 때 나는 세 살 남짓 된 어린 아이였다. 그래서 지난 20여 년 동안 언니네 이발관이 팬들과 형성해 온 유대에 대하여, 그리고 리스너들의 삶에 언니네 이발관이 어떤 의미였는지 온전히 이해하지 못 한다. 그러나 그들의 음악이 필자에게도 큰 위로로 다가왔음은 분명하다. 이석원의 가사는 듣는 이들을 보듬고자 애쓰지 않았다. 복잡한 감정들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기록했다. 나는 어쭙잖은 힐링보다 이런 가사가 더 좋았다.

나는 이런 평범한 사람 누군가의 별이 되기엔
아직은 부족하지 그래도 난 가네
나는 나의 길을 가 소나기 피할 수 없어
구름 위를 따라 어디든지 가
외로워도 멈출 수 없는 그런 나의 길
- '산들산들' 중 (언니네 이발관 5집)

안녕, 언니네 이발관

사랑, 그리고 허무와 외로움을 노래하는 언니네 이발관, 치밀하게 짜여진 그들의 음악은 팬들에게 '듣는다는 것의 행복'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석원의 완벽주의적 기질은 아티스트 스스로를 괴롭게 만들었다. 가수 이승환의 말처럼 음악이 '이동통신사의 부가 서비스'로 여겨지는 요즘 세상에, 이석원은 앨범 한 장, 한 트랙, 가사 한 줄에 자신의 삶을 쏟아붓는 예술가였다. 누가 그의 고통에 대하여 감히 유별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석원은 이번 앨범을 준비하면서 '화염방사기로 지금까지 작업한 음악들을 모두 불태우고 음악계를 떠나고 싶다'는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다행히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고(?) 마지막 앨범 <홀로 있는 사람들>은 멋지게 완성되었다. 이 앨범 역시 5집처럼 콘셉트 앨범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홀로 있는 사람들>은 제목 그대로 홀로 있는 이들의 외로움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결국에는 '연대'와 '희망'을 바라보고 끝맺음하고 있어 감동을 준다.

마지막 앨범의 수록곡들을 라이브로 듣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저 그가 지금보다 행복하기를 바랄 뿐이다. 뮤지션 이석원은 은퇴했지만, 다행히도 그가 빚어낸 소리들이 은퇴하는 것은 아니다. 필자의 나이가 어려서, 이 여정에 빨리 함께할 수 없었던 것이 못내 아쉬울 뿐이다. 새삼 작년 가을밤, 수변 무대에서 춤추는 이석원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먼 훗날, 음악이 그에게 고통으로 여겨지지 않는 때가 온다면 우리는 함께 '혼자 추는 춤'을 추게 될 것이다. 안녕, 언니네 이발관!

노래
언젠간 끝내야 하지만
아직 나는 여기 서 있네
그래
언젠간 끝나고 말겠지
그래도 난 아직 여기에
너와 함께
어디서나 언제까지나
우리 함께 계속 노래해
- '홀로 있는 사람들' 중(언니네 이발관 6집)

언니네 이발관 이석원 이능룡 전대정 홀로 있는 사람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대중 음악과 공연,영화, 책을 좋아하는 사람, 스물 아홉.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