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택시운전사>가 개봉 7일 만에 관객 수 500만을 돌파하며 흥행 중이다. 관객 평점도 포털사이트 기준, 9점대의 호평을 받고 있다. 사전 시사회를 관람한 평론가들로부터 상대적으로 약간 낮은 평가를 받아 개봉 전 우려를 받았던 것과는 대비되는 수치다.

이처럼 대중의 평가와 전문가의 평가가 갈리는 경우는 많다. 영화를 바라보는 대중과 전문가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흔히 대중성을 확보하면 관객 반응이 좋고, 작품성을 획득하면 평론가의 평이 높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택시운전사>는 대중성을 얻되, 작품성에는 미치지 못한 것일까.

전형적이라서 좋았던 작품, <택시운전사>

ⓒ (주)쇼박스




"지나친 전형성이 실화의 힘까지 잡아먹는다." (임수연)

여러 평론가는 이 영화가 전형적이었다고 말한다. 광주민주화운동을 바라보는 기존의 상식적인 관점에 영화가 머문 채, 나아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상식적 관점이란, 신군부와 계엄군이라는 절대 악과 이에 맞서는 탈이념적이고 '순수한' 피해자로서의 광주시민의 대립 구도를 말한다.

실제로 <택시운전사>는 이러한 기존의 관점에 충실한 영화다. 주인공 만섭(송강호 분)은 시위하는 대학생을 배부른 짓이라 비난하고, 그 시절 중년 세대가 가질 법한 애국심과, 생계의 책임감을 가진 지극히 평범한 소시민이었다.

그가 광주를 가게 된 것도, 단지 많은 수고비 때문이었다. 그랬던 만섭이 광주의 참혹한 현장을 목도하면서 망설인 끝에 떠나던 길을 유턴해 다시 광주로 돌아간다. 그리고 시민들과 함께 거리에 나서게 된다. 소시민이 한 사건을 통해 각성하는 전형적인 클리셰다.

그러나 클리셰 이전에, 이는 80년 광주 대부분의 민중들이 겪었던 진실이었다. 광주는 대학생 시위로 시작했으나 곧 시민항쟁으로 발전했다. 그때 시민들이 거리에 나선 것은, 학생지도자의 지도 때문도 '코뮌'을 이룩해야 한다는 이념 때문도 아니었다.

이념과도, 사회과학적 지식과도 거리가 멀었던 대다수의 광주시민은 그 날, 신군부의 행태와 계엄군의 폭력을 직접 보고 겪었다. 바로 옆에 이웃이 자국 군인의 총에 맞고 대검에 쓰러지는 것을 보며, 거리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이 그들의 계기였다.

광주의 시민들은 영화 속 만섭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영화가 전형적이라는 비판은 그만큼 그날 광주시민, 평범한 민중의 전형을 고스란히 담아냈다는 뜻이기도 하다.

전형성은 작품성을 떨어뜨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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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이라서 좋았던 작품, <택시운전사>. 그렇지만 같은 이유로 평론가들에게는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은 것 같다. 그만큼 전형성은 예술의 작품성을 크게 저해하는 것일까? 작품성을 가름하는 주요한 기준은 무엇일까.

알랭 바디우는 영화의 대중예술의 기능에 주목한 현대 철학자다. 그의 철학에서, 영화의 작품으로서의 가치, 즉 작품성을 판단하는 핵심 기준은 영화가 '공백'을 얼마나 잘 보여주느냐이다. 여기서 '공백'이란 우리가 처한 상황의 비어있는 곳, 즉 억압받는 곳, 약자의 자리를 가리킨다.

바디우는 예시로 노동 영화를 든다. 노동자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는, 우리 사회의 '공백'인 노동자의 처지를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이 타자였던 노동자의 입장을 사유하게 한다. 열악한 노동권을 재고하게 만드는 것이다.

5.18 영화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것은 새로움이 아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영화를 통해 우리 사회의 '공백'인 광주학살의 피해자, 더 나아가, 국가폭력 피해자와 숱한 약자들에 대한 처지와 인식에 대해 공감하고 분노하는 것, 진행 중인 폄훼와 왜곡을 막는 것, 그리고 항쟁의 정신을 기억하고 계승하는 것이다.

이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느냐가 신선도보다 더 중요한 작품 판단의 기준이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택시운전사>는 좋은 작품이다. 그날 광주의 현장을 잘 묘사했으며, 여기에 공감한 많은 관객이 슬픔과 분노, 결의를 느꼈기 때문이다.

"영화는 언제나 반복되는 이야기와 함께 도래하지만 그 이야기로는 전혀 설명할 수 없는 무엇인가를 포함할 수 있다." (알랭 바디우)

작품성은 단순히 신선함에서 기인하지 않는다. 새로움에 대한 지나친 강박을 잠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영화의 이야기는 반복되어 도래하지만, 반복되는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중요한 의미를 던질 수 있기 때문이다.

택시운전사 광주민주화운동 송강호 평론가 위르겐 힌츠페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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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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