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유해진, 최귀화와 함께 '500만 인증샷'을 공개한 송강호.

배우 유해진, 최귀화와 함께 '500만 인증샷'을 공개한 송강호. ⓒ 쇼박스


<택시운전사>가 8일 5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이에 맞춰 영화 홍보사 측은 영화 속 소품이었던 '택시미터기'를 들고 찍은 '500만 돌파 인증샷'을 공개했다. 택시운전사를 연기한 송강호와 택시미터기. 이 생활 밀착형 연기의 달인 송강호와 택시미터기의 조합이 꽤나 흥미롭게 다가오지 않는가. 게다가 <택시운전사>는 '5.18 광주'의 한복판으로 관객들을 초대하며 화제 속에 상영 중이다. 

그리고, '5.18 광주'의 책임자이자 <택시운전사>의 감춰진 '빌런'(악당)인 전두환씨 측이 입을 열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 측근으로 알려진 민정기 전 청와대 비서관은 지난 7일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과 통화에서 "(<택시운전사>에) 악의적인 왜곡이나 날조가 있다면 법적 대응을 검토할 여지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민 전 비서관은 또 "택시운전사 장면 중 계엄군이 시위를 벌이는 광주 시민을 겨냥해 사격하는 장면은 완전히 날조된 것이다. 당시 계엄군들이 먼저 공격을 받아 자위권 차원에서 발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지난 4일, 광주지방법원 민사21부(박길성 부장판사)가 5·18기념재단과 5월 3단체, 즉 유족회와 부상자회, 구속부상자회, 그리고 고 조비오 신부 유족 등이 전두환씨와 아들 재국씨를 상대로 낸 <전두환 회고록> 출판 및 배포금지 가처분에 대해 인용 결정을 내린 판결과 관련한 반응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랬거나 저랬거나, 전두환씨 측이 어떤 반응을 보이든 <택시운전사> 관람을 통해 '5.18 광주'에 대해 "이제야 알게 됐다"거나 "더 알고 싶다", "또 다시 고민하게 됐다"는 관객들이 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전두환씨의 반응 자체가 영화의 흥행에 도움(?)을 주는 행위라는 것은 명약관화 한 일이다.

이제는 한 줌 권력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전씨 측이 대중영화를 압박하는 모양새를 취하는 것에 반감을 가지며 영화에 관심을 가질 관객들이 더 많지 않겠는가. 같은 맥락에서, 실제로 (전씨 측이 영화를 본 이후)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과 같은 극약 처방을 한다 해도 그것이 약이 아니라 독이 될 공산이 커 보인다.

그 보다 관심을 가질 대목은 <택시운전사>로 촉발된 '5.18 광주'에 대한 관심이다. 영화와 실제와의 비교와 같은 전통적인 기사와 반응은 물론 <화려한 휴가>, <26년>, <꽃잎> 등과 같은 '5.18 광주' 소재 영화들이 줄줄이 소환되고 있다. 여기에, 배우 송강호의 작품들과 1980년대로 지칭되는 '전두환 시대'와의 관계 또한 흥미롭게 다가온다. 그것은 배우 송강호의 '선배'로서의, 한국 시민으로서의 소신을 엿볼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변호사>와 <택시운전사> 전후 엿볼 수 있는 송강호의 소신 

 영화 <택시운전사>의 한 장면.

영화 <택시운전사>의 한 장면. ⓒ 쇼박스


<택시운전사>에서 송강호가 연기한 택시기사 만섭은 우연에 필연을 거쳐 광주로 내려가, 당시 '5.18 광주'의 진면목과 신군부의 폭압을 목격하며 변해가는 인물이다. 비록 신분이나 계급은 다르지만, 영화 <변호인>에서 드라마틱하게 성장하던 변호사 송우석의 면모와 비교해 볼 수 있는 '변화'를 보여주는 인물이기도 하다.

사실 이 <변호인>야말로 송강호란 배우의 변곡점을 상징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인권변호사로 발돋움하는 과정을 '부림사건'과 엮어 완성한 <변호인> 이후 '현대사'에 있어 '친일파'의 의미를 묻는 <밀정>에 출연했다.

이후 차기작으로 '5.18 광주'의 복판에 선 <택시운전사>를 선택한 것이다. 사극인 <사도>를 제외하고, 그야말로 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인물과 사건을 건드리는 작품들에 연이어 출연한 셈이다.

비록 박근혜 전 대통령과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그리 싫어했다던,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의 정점에 있었던 <변호인>과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서명운동에 참여한 영화인의 한 사람으로서 캐스팅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그의 소신 있는 선택은 <변호인>이 이후 멈춤이 없었다고 볼 수 있다.

헌데, 그건 <변호인> 이전에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택시운전사>와 <변호인> 단 두 편만으로도 송강호는 '전두환 시대'를 상징하는 작품에 출연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한국영화를 상징하는 얼굴이었던 송강호는 일찌감치 '전두환 시대'와 군부독재에 비판적인 작품들에 출연한 바 있다.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이 그랬고, 그 이후 선택한 <효자동 이발사>가 그랬으며, 이창동 감독의 <밀양>은 독보적이다.

유독 '전두환 시대'와 인연이 깊었던 송강호

 영화 <효자동 이발사>의 한 장면.

영화 <효자동 이발사>의 한 장면. ⓒ 청어람


"각하, 머리가 다 자라면 다시 오겠습니다."

1960년대부터 '박정희'를 상징하는 '대통령 각하'의 이발사였던 '효자이발관' 주인 성한모, 1980년대 초 머리가 희끗해진 성한모는 새로 바뀐 청와대 주인의 머리를 깎으려다 말고 위와 같이 말한다. 민머리였던 청와대의 새 주인은 그 말에 기분이 나빴는지, 성한모를 쌀포대에 넣고 멍석말이를 한 뒤 차에 실어 청와대 밖으로 쫓아낸다. 임찬상 감독의 영화 <효자동 이발사>의 후반부 한 장면이다. 

소시민의 눈으로 한국 현대사와 권력을 풍자했던 <효자동 이발사> 속 이 명대사는 성한모, 아니 송강호 특유의 사투리 톤으로 코믹함과 함께 시대의 아이러니를 잘 드러냈다. 물론 그 장면 속에 등장하는 각하는 당시 전두환 대통령을 빗댄 인물이었고, 송강호는 그 장면에서 민머리를 보고는 어찌할 바를 몰라 위와 같은 대사를 말한다. 

"밥은 먹고 다니냐"나 "여기가 강간의 왕국이냐"라는 송강호의 명대사를 남긴 <살인의 추억> 역시 주제는 물론 영화 전체와 디테일 하나하나까지 '1980년대'라는 '전두환 시대'와 군사정권의 족적들과 흔적들을 직설적으로 비판하는 작품이었다.

여기에 이창동 감독의 <밀양>이 방점을 찍는다. '용서'와 '구원'의 문제를 다룬 <밀양>은 소설가 이청준의 단편 <벌레 이야기>를 모티브로 했다고 알려져 있다. 광주 항쟁의 책임자 처벌 문제를 은유하는 이 작품은 '광주 청문회'가 한창이던 1988년, 한 유괴범이 사형 직전 종교로 구원을 받았으니 장기를 기증하겠다고 해 화제를 모았던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이창동 감독은 '5.18 광주'의 상흔에서 비롯된 '용서'와 '구원'의 문제를 영화적으로 변형한 것이다. 그리고 이 화두는 현재 <전두환 회고록>을 출간한 전두환씨와 그의 일가가 늘어놓는 궤변과 무책임함과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무엇을 말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송강호의 소신

 영화 <택시운전사>에 출연한 배우 송강호.

지난 7월 <오마이스타>와 인터뷰한 배우 송강호. ⓒ 쇼박스


영화계 선배로서 '책임감'을 강조하는 송강호. 영화계 관계자들은 종종 그가 <변호인> 이후 영화인으로서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고 입을 모은다. 이렇게 그가 선택했던 작품들의 면면을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 송강호는 지난 7월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관련 기사 : 송강호의 인간론 "투사 아니어도 돼, 도리라도 지키자") 에서 이렇게 밝힌 바 있다. 연기를 '어떻게 잘할 것인가'와 '연기로 무엇을 말할 것인가'의 딜레마 사이에서 "(연기를) 잘 하는 것만 중요한가 아니면 뭔가 의미 있는 얘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늘 고민"한다고 말이다. 

"그런 것들이 20대 초반부터 늘 고민이었다. 세월이 많이 지났고, 많이 부족했지만 그 고민들을 그래도 나름 놓지 않고 오지 않았나. 그래서 지금의 작품으로 나름 성취를 했다고 생각해본다. 그때로 다시 돌아가도 연기를 택할 것이고 같은 딜레마를 고민할 것 같다. 이 직업이 늘 행복한 건 아니지만 말이다. 어떻게 잘할 것인가가 중요한 게 아닌 무엇을 말할 것인가의 문제를 또 고민할 것 같다. (중략)

그런 의미에서 저에 대한 정치적 판단?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다. 일부 그런 편견을 가진 분도 있겠지. 하지만 다수 관객은 저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거고, 나 자신 또한 정치적 프레임을 고민했다면 <택시운전사>나 <변호인> 같은 작품을 못 했을 거다. 예술가의 소신이 있다면 그 소신을 (외부 시선이) 꺾진 못할 것이다. 이 작품을 통해 뭘 말한 건가가 중요하고, 그게 내 마음에 들어오면 하는 거지 외부 시선이 중요한 게 아니다."

사실 '전두환 시대'와의 상관은 흥미 요소일 뿐이다. '천만 영화'의 흥행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택시운전사>는 여러모로 송강호에게 있어 중요한 작품으로 남을 전망이다. 아마도 정권 교체를 예상하지 못하고 촬영하고 배급 시점을 예상했던 이 작품이야말로 '송강호의 소신'을 가장 확실하게 증명하는 작품으로 남을 테니까.

송강호 택시운전사 전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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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오마이뉴스 23년차 직원. 시민기자들과 일 벌이는 걸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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