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기사에는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서른아홉의 로린은 2년 전 사건의 생존자 중 한 명이다. 뉴욕의 한 잡지사 팩트체크팀의 팀장을 맡았던 로린은 그저 남들이 뛰길래 같이 뛰었을 뿐이다. 가수 사라 트위드가 자살한 그 날, 교열부에 있었던 글로리아가 권총을 들고 18명의 직원을 죽거나 다치게 한 바로 그때, 로린은 따라서 뛴 덕분에 다행히 그리고 우연히 살아남았다.

입버릇처럼 잡지사를 때려치우고 싶다고, 로스쿨에 가서 변호사나 될 걸 그랬다고 투덜거리던 그는 사고 이후 정말로 그 길을 가기로 결심했다. 본격적인 로스쿨 준비에 들어가기 전 그 잠깐, 한 TV프로덕션의 임시직을 맡게 된 로린. 그곳은 때마침 2년 전 글로리아 총기 난사 사건을 드라마로 만들려 하고 있었다. 드라마의 원전이 될 책 <글로리아>는 그날의 생존자 중 한 명이자 잡지사 에디터였던 낸이 쓴 작품이다.

로린은 견딜 수가 없었다. 글로리아가 총질을 시작하기 직전, 한 편집자가 위험을 알리는 메일을 같은 편집자들에게 돌렸다. 문을 걸어 잠그고, 자기네 방에서 나오지 않은 덕에 에디터들은 살 수 있었다. 그 문이 방탄유리였나 특수유리였나 했으니까. 그러니까 낸은 실제로 본 것이 전혀 없다. 낸은 글로리아를 알지도 못했다. 총격으로 사망한 인턴 마일즈의 이름이 뭔지도 모르고, 2년 만에 다시 만난 로린도 기억하지 못했다. 죽음, 혼란, 생명, 모성 같은 것들을 버무려서 돈벌이에 이용했을 뿐이다. 제목은 <글로리아>이지만, 실제 '글로리아'는 그 안에 없다.

존재하고 싶은 배우, 정원조 19일 오후, 서울 대학로의 한 교회 1층에 위치한 카페에서 배우 정원조를 만났다. 연극 <글로리아>의 초연에서 '로린' 역을 맡아 열연했던 그는 이번 재연에도 다시 한 번 같은 인물을 연기한다. 인터뷰가 끝난 후, 포즈를 취하고 있는 원조로린. 하트 모양의 메모지는 작품 내에서 소품으로도 등장한다.

▲ 존재하고 싶은 배우, 정원조 19일 오후, 서울 대학로의 한 교회 1층에 위치한 카페에서 배우 정원조를 만났다. 연극 <글로리아>의 초연에서 '로린' 역을 맡아 열연했던 그는 이번 재연에도 다시 한 번 같은 인물을 연기한다. 인터뷰가 끝난 후, 포즈를 취하고 있는 원조로린. ⓒ 곽우신


존재하고 싶은 배우, 정원조 19일 오후, 서울 대학로의 한 교회 1층에 위치한 카페에서 배우 정원조를 만났다. 연극 <글로리아>의 초연에서 '로린' 역을 맡아 열연했던 그는 이번 재연에도 다시 한 번 같은 인물을 연기한다. 인터뷰가 끝난 후, 포즈를 취하고 있는 원조로린. 하트 모양의 메모지는 작품 내에서 소품으로도 등장한다.

▲ 로린이 기억하는 글로리아 "로린이 기억하는 글로리아는, 로린의 대사 그대로라고 생각해요. 반대로 글로리아가 생각한 로린은 어떤 사람인지 모르죠. 글로리아가 어떤 사람인지 받아들이는 건 보는 사람에 따라 다 달라요. 그 여러 가지 면 중에서 로린이 본 게 평범한 면일 뿐인 거죠." ⓒ 곽우신


"내 말은 그냥 평범했다고요. 사람들이랑 잘 어울리지는 않았지만, 그거 말고는 평범했어요. 책도 많이 읽고, 항상 점심을 직접 만들어서 보관 용기에 담아왔는데, 전자레인지에 돌릴 때마다 냄새가 참 좋았어요. 손이 많이 간 게 티가 났달까요. 뭐냐고 물어보면 좀 먹어보겠냐고 되묻곤 했죠. 가을에는 뜨개질에 시간을 굉장히 많이 쏟았어요. 아마도 손재주가 좋았던 것 같아요. 제가 부탁했더니, 한 번은 양말을 떠 준 적도 있어요. 저는 농담으로 얘기했던 건데 진짜로 만들어줬어요. 그 양말은 진짜 오래가고 정말 따뜻했어요. 빨간 옷을 잘 입었어요. 텔레비전을 좋아했고…."

사람들은 총기를 난사한 글로리아를 이상한 사람으로 기억하려고 한다. 성격이 이상했고, 사회성이 뒤처지며, 가정환경이 어려웠고, 취미는…. 그러나 로린이 기억하는 글로리아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런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를, 특수한 것처럼 포장해 드라마로 만드는 걸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게 낸이 쓴 거라면 더더욱. 하지만 방송사 사람들은 로린의 지루한 이야기에 곧 흥미를 잃고, 낸의 이야기를 어떻게 드라마로 만들지 골몰한다. 그 가운데 또다시 누군가는 사람들의 관심과 기억에서 잊힌다.

"어떤 면에서는, 그녀가 그런 일을 했다는 게 그렇게 놀랍지 않아요. 아주 건강한 환경은 아니었으니까. 그러니까 제 말은, 우리 중 누구든 그렇게 했을 수도 있다는 거예요."

연극 <글로리아>는 이렇게, 우리 중 누구나 그런 끔찍한 사건의 가해자이자 피해자일 수 있음을 폭로한다. 1막과 2막을 통틀어 유일한 1인 1역 로린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목격자이자 방관자이며, 피해자이자 가해자이다. 그래서 그는 무던히도 '존재'하려고 발버둥 친다. 지난 7월 19일,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정원조도 그 자리에 그렇게 존재하고 있었다.

초연 그리고 재연

존재하고 싶은 배우, 정원조 19일 오후, 서울 대학로의 한 교회 1층에 위치한 카페에서 배우 정원조를 만났다. 연극 <글로리아>의 초연에서 '로린' 역을 맡아 열연했던 그는 이번 재연에도 다시 한 번 같은 인물을 연기한다. 인터뷰가 끝난 후, 포즈를 취하고 있는 원조로린. 하트 모양의 메모지는 작품 내에서 소품으로도 등장한다.

▲ 하트 모양의 메모지 하트 모양의 메모지는 작품 내에서 인상적인 오브제로 등장한다. 2막에서 임시직인 로린에게, 전산실 직원 데빈은 임시 공용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적어서 준다. 로린은 이를 가슴에 붙이고 소중히 간직한다. 그에게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의 옆에 있는 사람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 곽우신


"평소에도 평범한 사람이 사건을 만든다고 생각해요. 평소 주변에 있는 사람을 보고 '저 사람 살인자 같아'라고 하지는 않잖아요. 로린은 글로리아를 그냥 평범하다고 생각했을 뿐이죠. 그러니까 글로리아에 대한 글 속에서 그녀가 당연히 그럴 법한 사람으로 표현되는 게 싫었고요. 평범한 사람도 정말 극단적인 상황에서 그렇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게 로린이죠.

로린이 봤을 때 글로리아는 어디에나 있을 법한 사람인데, 극단적인 상황으로 이런 일이 벌어진 건데…. 대중의 호기심만 자극해서 극단적인 모습만 편집해 보여주는 걸 로린은 거부해요. 낸이 글로리아를 돈벌이로 사용하는 게 싫다기보다, 사람을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가는 것 자체가 싫은 거죠. 왜 이 사람은 이런 행동을 했으며, 왜 이런 환경이 만들어졌고, 우리 사회의 문제가 뭔지를 생각해야 하는데 자꾸 개인에만 관심을 갖는 게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인 문제는 진짜 문제가 아니잖아요."

2016년 초연에 이어 2017년 재연으로 돌아온 <글로리아>. 지난 7월 14일 서울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3관에서 개막하여 오는 13일, 딱 한 달의 공연을 끝으로 마무리한다. (25일과 26일, 단 이틀간 울산 지방 공연이 추가로 예정되어 있다) 바뀐 캐스트도 있고, 그대로 돌아온 캐스트도 있다. 로린 역을 소화 중인 베테랑 연극배우 정원조는 돌아온 초연 멤버 중 한 명이다. 초연에 이어 재연을 맡았는데, 작년과는 무엇이 다르냐고 물어보았다.

배우로부터 대뜸 "작년과 비교했을 때 뭐가 달라진 것 같으냐"는 반문이 먼저 돌아왔다. 베테랑 배우 앞에 풋내기 기자의 역량이 들통날까 봐 당황했지만, 솔직하게 답했다. 초연 때는 잡지사 직원들이 글로리아를 가식적으로 대했던 것처럼, 로린도 어쩌면 글로리아를 이해하는 척했던 것은 아닐지 고민했다고. 하지만 재연 때는, 로린이 그나마 제일 글로리아를 이해해준 사람처럼 보였다고. 정원조는 긍정도 부정도 아닌 묘한 미소를 지은 후 입을 열었다.

"대본에 쓰인 건 같아요. 하지만 초연 때는 너무 일에 찌들어서 사람들에게 예민하게 반응하는 로린이었다면, 재연에는 자기 자신이 힘든 점을 더 표현하려고 하는 로린? 마음의 출발이 달랐어요. 처음 사무실에 등장할 때 '듣기 싫으니까 조용히 해'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내가 너무 힘드니까 조용히 해줄래'라는 뉘앙스로 말하는 차이 정도랄까요. 초연 때는 연출이 '배우들이 캐릭터를 너무 착하게 표현한다'고 그래서 좀 덜 착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했어요. 이번 재연에는 조금 더 제가 느낀 바를 표현하려고 했죠. 이 사람(로린)도 분명히 힘들 것이라는 걸 생각하고서 말이죠. 2막에 가서도, 초연 때는 애써 노력하는 걸 이전에는 과장해서 보여줬다면, 이번에는 그냥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표현하려고 했어요."

로린의 첫 등장은 굉장히 인상적이다. 편집부의 딘과 켄드라, 애니 등이 뒤섞여서 온갖 말들을 토해내고 있을 때 조용히 등장한다. 로린은 일에 방해가 되니 조용히 해달라고 정중하게 부탁한다. 그 특유의 어눌한 억양으로 대사가 토해지는 순간 객석에서는 웃음이 터진다. 로린 본인은 전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관객은 이처럼 로린을 소심하지만 귀엽고, 평범하지만 매력적인 존재로 인식한다. 그 공은 당연히 로린을 대변해 표현하는 정원조의 몫이다. 연극 <베헤모스> 인터뷰 당시, 연출 김태형은 "원조 형은 딱 그냥 <글로리아>의 로린 같은 사람"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아닌데…. (갸우뚱) <베헤모스> 오 검사도 잘 맞았어요! (웃음) 사실 <글로리아>의 모든 캐릭터에 공감해요. 누구나 오랫동안 힘들게 일하면서 가다 보면, 긍정적인 사람들도 피곤해질 수 있잖아요. 저는 그런 상황에서도 스스로 긍정적으로 보려고 하는 편이라서, 로린과 닮은 점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웃음) 하지만 이해할 수 있어요. 공감도 가요. 굳이 이야기하자면, 저도 적극적인 성격이라기보다는 소심한 면이 많아서 그런 모습이 로린에게 투영되는 것 같아요."

로린의 노력

존재하고 싶은 배우, 정원조 19일 오후, 서울 대학로의 한 교회 1층에 위치한 카페에서 배우 정원조를 만났다. 연극 <글로리아>의 초연에서 '로린' 역을 맡아 열연했던 그는 이번 재연에도 다시 한 번 같은 인물을 연기한다. 인터뷰가 끝난 후, 포즈를 취하고 있는 원조로린. 하트 모양의 메모지는 작품 내에서 소품으로도 등장한다.

▲ 정원조가 준비한 새싹 로린의 책상에 있을 법한 것들을 준비해서 가져와보라고 연출이 말했다. 정원조는 다양한 소품을 준비했고, 그 중에는 태양열을 받아 움직이는 새싹 장난감(노호혼)도 있었다. 연출은 여기에 꽂혔고, 이를 적극 활용한다. 새싹의 상징과 의미에 대해 정원조 배우는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면서도 "로린스러운 건 확실하다"고 평했다. ⓒ 곽우신


1막에서의 로린이 웃음을 유발하며 극의 긴장을 완화하는 역할이라면, 2막의 로린은 좀 더 애처롭고 마음이 쓰이는 인물이다. 물론 새싹 모양의 장난감(노호혼)을 꺼내거나, 하트 모양의 포스트잇을 가슴에 붙일 때는 여전히 로린스러운 매력이 흘러나온다. 하지만 그 행위의 동기가 확연히 다르다. 비록 임시직이지만, 그는 주변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이해하려 하고, 관계 맺기를 소원한다.

"1막에서의 로린은 어쩌다 보니 그 자리에 그렇게 있는 사람인 거죠. '변호사가 될 걸 그랬어'라는 건 현재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은 걸 그냥 표현한 말일지 몰라요. 하지만 2막에서 로스쿨을 준비한다는 건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던지는 말이에요. 완전히 다른 말이죠. 1막의 로린과 2막 로린의 가장 큰 차이는 그 적극성이에요. 초반에는 누구나 그런 적극적인 마음을 가지고 사회생활을 시작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적극성이 떨어지게 되잖아요. 2막에서의 로린은 자신이 호감을 느끼는 사람뿐만 아니라, 그냥 곁에 있는 사람에게도 잘하려는 사람이 됐어요.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려고 하는 모습이 다른 거죠.

누구나 힘든 일은 겪잖아요. 힘든 일을 겪었지만 새롭게 출발하려는 로린의 모습을 보고 관객들도 좋아해 주시는 것 같아요. 누구나 그런 모습을 원하기 때문에? 우리 중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고, 행동이잖아요. 그런 로린의 모습을 중점으로 두고 표현하고 있어요."

로린은 존재하기를 바란다. 그 존재한다는 게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나오지 않는다. 다만 글로리아는 존재하고 싶어 했고, 실패했다. 1막의 잡지사와 2막의 TV프로덕션의 전경이 참 비슷한 것처럼, 1막과 2막의 인물은 분명 다른 사람임에도 어디선가 본 것 같은 것처럼(배우들이 1인 2역 혹은 3역을 소화하면서 이 기시감은 극대화된다) 글로리아와 같은 비극은, 존재의 실패는 반복될 것이다. 그래서 로린은 나름의 방식으로 존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존재한다는 건 '현존한다'는 것이에요. 2막에서의 로린에게는, 자기 생각과 의지가 얼마나 명확하고 적극적인지가 표현되잖아요. 그래서 그 노력이 존재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하고 싶은 게(변호가) 될 수도 있고, 어쩌면 안 될지도 모르죠. 하지만 노력하며 살아간다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노력하는 사람이 존재하는 사람이지 않을까요? 로린은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 걸 선택하는 것뿐이에요."

존재하고 싶은 배우, 정원조 19일 오후, 서울 대학로의 한 교회 1층에 위치한 카페에서 배우 정원조를 만났다. 연극 <글로리아>의 초연에서 '로린' 역을 맡아 열연했던 그는 이번 재연에도 다시 한 번 같은 인물을 연기한다. 인터뷰가 끝난 후, 포즈를 취하고 있는 원조로린. 하트 모양의 메모지는 작품 내에서 소품으로도 등장한다.

▲ 정원조가 가진 것 초연 때는 연출의 디렉션을 참고하여 캐릭터를 구상하고, 그 캐릭터에 맞춰가는 측면이 많았다. 재연에서는 조금 달랐다. 자신이 가진 것을 조금 더 끄집어내는 방향으로 연기했다. 초연 로린과 재연 로린을 모두 사랑하는 관객들은, 이를 어떻게 기억할까. 평가는 언제나 관객의 몫이다. ⓒ 곽우신


1막의 로린도 '나쁜 사람'은 분명 아니었다. 팩트체크팀에서 팩트체크하는 애들이 팩트체크한 걸 팩트체크하는 팩트체크팀장이라고 징징거리지만, 어쨌든 자신이 맡은 일에 대해서는 소임을 다한다. 글로리아의 집들이 파티에 가지 못한 걸 미안해했고, 그래서 사과의 메일이라도 보내려고 했다. 욱해서 소리 지르고 잠깐 난동을 부리긴 하지만, 그래도 자신이 어지르고 실수한 건 본인이 책임지고 정리하려고 한다. 그리고 유일하게, 모두가 글로리아를 뒷말할 때 그를 옹호해 준 사람이다. 그랬던 로린은 글로리아의 사고를 통해 무언가 바뀌었다. 그 변화는 앞으로 로린의 삶을 어떤 식으로 이끌까.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싶긴 하지만, 사람이 변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그것도 사회 시스템 안에서는 나 혼자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시스템이 바뀌지 않았으니까, 우리는 같이 사는 존재이니까, 그런 부분을 생각하면 '로린이 과연?' 하기도 해요. 하지만 그렇게 단정해서 얘기하고 싶지도 않아요. '회사를 그만둘 거야'와 회사를 진짜로 그만두는 건 확실히 다른 거니까요. 로린이라는 사람 자체는 변하지 않았지만, 뭔가가 달라지긴 달라질 거예요. 열심히 해서 또 변화했을지도 모르잖아요. 사람 마음가짐에 따라 다른 거니까…. 그래도 로린이 조금은 바뀌었으니까, 그 조금은 나아진 것일 수 있죠. 또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니까, 로린이 바뀐 만큼 긍정적으로 변하는 부분도 분명 있을 테고요. 그런 부분이 희망적인 것 같아요."

배우 정원조, 그도 노력하고 있다

존재하고 싶은 배우, 정원조 19일 오후, 서울 대학로의 한 교회 1층에 위치한 카페에서 배우 정원조를 만났다. 연극 <글로리아>의 초연에서 '로린' 역을 맡아 열연했던 그는 이번 재연에도 다시 한 번 같은 인물을 연기한다. 인터뷰가 끝난 후, 포즈를 취하고 있는 원조로린. 하트 모양의 메모지는 작품 내에서 소품으로도 등장한다.

▲ 사라 트위드의 음악 극 중 2년 전(1막), 가수 사라 트위드가 사망했다. 죽어서야 존재하게 된 가수, 그녀의 프로필을 팩트체크하는 데 진절머리가 난 로린은 그녀를 싫어했다. 하지만 2막의 마지막, 그는 헤드폰으로 사라 트위드의 음악을 듣는다. "로린에게도 아주 중요한 사건이었으니까 생각이 났겠죠.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돌아왔지만,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상황이잖아요. 그때도 사람들이 글로리아가 있는지 없는지 상관하지 않았듯이, 로린도 그 상황을 비슷하게 느끼지 않았을까요. 2막의 로린은 글로리아 때문에 존재하는 느낌이 드니까요." ⓒ 곽우신


로린이 노력하는 것처럼, 정원조도 존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인터뷰한 당일도 아르바이트하고 왔단다. 아르바이트하지 않으면 연극만으로는 생계가 되지 않으니까. 배우 정원조는 생계 때문에 학교를 졸업한 뒤 잠시 다른 길을 걸었던 사람이다. 하지만 다시 무대로 돌아왔다. 존재하기 위해서. 그는 존재하기 위해 연극을 하고, 또 그 연극을 하기 위해 다른 보조적 생계 수단을 마련했다. "먹고 사는 게 얼마나 중요한 문제냐"라고 이야기하면서도, 동시에 연극을 놓지 못하는 이 배우. 예전에는 아르바이트와 병행하는 게 힘들었지만 지금은 그렇지만도 않다고 한다. 그는 이렇게나 노력하고 있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사실 두려운 일이죠. 꼭 배우라서 그런 건 아니고요. (웃음) 뭐가 됐든 나이가 들어가면서 기회가 더 적어져요. 어릴 때는 뭐가 굳이 없어도 아무렇지 않았는데, 나이가 드니까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아요. 나는 괜찮은데 주변에서, 사회에서 자꾸 물어보는 것들이 있거든요. 이런 얘기를 듣기가 힘들기는 하죠.

그래도 연극을 하는 건…. 관객을 통해 완성되는 그 매력이 있어요. 공연을 완성하는 건 관객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관객이 가장 중요하죠. 관객이 없으면 리허설이나 마찬가지잖아요. <글로리아>는 텍스트의 힘이 강한 극이기 때문에, 관객들의 상황에 따라 받아들이는 게 매번 다를 수 있어요. 그게 또 연극의 매력이 아닐까요? 같은 극이라도 상황과 상태에 따라 정말 미묘하게 달라지잖아요. 매회가 같은 공연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어떤 분은 이번에 제가 연기하는 걸 보고 '아저씨같이 나와서 별로다'라고도 하시더라고요. 얼마 전에 어떤 팬분은 '저희 아버지 닮으셨어요!'라고 해서, 마땅한 답이 안 떠오르더라고요. 그래서 '네, 감사합니다'라고 했어요. 아, 이건 빼주세요! (웃음) 하지만 그것도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이라서…. 그런 거부감은 없어요. 그래도 아직은 젊은 이미지도 가능하다고 생각하는데…. (웃음) 전 배우이고, 배우가 곧 저이니까요."

노네임씨어터컴퍼니의 취향은 확고하다. <히스토리 보이즈>가 그랬고, <수탉들의 싸움>이나 <두 개의 방>이 그랬던 것처럼, <글로리아>도 참 많은 것들을 꽉꽉 눌러 담은 이야기이다. 수없이 되풀이된 폭력의 역사 속에서, 우리는 인종/성별/성적지향/나이/경력 등 무수한 잣대로 인해 때로는 천시되고 때로는 특혜받는다. 예컨대 딘은 '백인' '남성'이라는 점에서 기득권이지만 '게이'라는 점에서는 소수자이다. 켄드라는 '황인' '여성'이라는 점에서 약자이지만, 하버드를 나온 '엘리트'라는 점에서 또 기득권자이다.

자본주의 시스템하에서 미디어의 왜곡, 실종된 직업윤리, 다종다양한 차별, 세대 간 갈등, 인간 소외…. 그 무수한 문제들을 <글로리아>는 한 번에 던져 놓는다. 미국과 한국이, 뉴욕과 서울이 세세한 부분에서는 조금씩 다를지언정 결국에는 대동소이한 문제를 안고 있다. 반전이나 다름없는 글로리아의 총성에 관객이 더 놀라는 건, 그 총구가 향하고 있는 사람이 혹은 그 총을 들고 있는 사람이 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은연중 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 많은 문제의식 중 무엇을 관객이 안고 나갔으면 좋겠냐는 질문에 정원조는 관객들이 그저 각자 느끼는 대로 가지고 나갔으면 좋겠다고만 답했다.

<글로리아>는 그저 이 비관적이고 끔찍한 현실을 폭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바뀐 것은 별로 없지만,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건 아니니까. 여기 이 자리에서 누군가는, 사라 트위드의 음악을 들으며, 전산실 직원의 이름과 사연을 똑똑히 기억하려고 하니까. 우리도 로린처럼, 정원조처럼, 존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글로리아>를 보고 나가는 우리는 로린이 가슴에 하트 모양의 포스트잇을 붙이는 그만큼 노력할 것이고, 그만큼 존재할 것이다.

존재하고 싶은 배우, 정원조 19일 오후, 서울 대학로의 한 교회 1층에 위치한 카페에서 배우 정원조를 만났다. 연극 <글로리아>의 초연에서 '로린' 역을 맡아 열연했던 그는 이번 재연에도 다시 한 번 같은 인물을 연기한다. 인터뷰가 끝난 후, 포즈를 취하고 있는 원조로린. 하트 모양의 메모지는 작품 내에서 소품으로도 등장한다.

▲ 정원조에게 <글로리아>란? 정말 좋아하는 작품만 필모그래피를 적는 란에 남긴다는 정원조. 그에게 <글로리아>는 꽤 당분간 필모에 적어놓을 작품이라고 한다. "<글로리아>를 보면 다양한 사람을 관찰하고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모든 배우들이 자신의 캐릭터를 잘 알고 이끌어가는 작품은 드문데 <글로리아>가 그렇거든요." ⓒ 곽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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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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