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함도' 류승완 감독 영화 <군함도>의 류승완 감독이 2일 오전 서울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 <군함도>를 연출한 류승완 감독은 "다시 선택의 순간으로 돌아간다 해도 이 영화를 찍을 것"이라 강조했다. ⓒ 이정민


예상했다지만 그걸 뛰어넘는 반응과 논란이었다. 일제강점기 강제 징용의 역사를 다룬 첫 영화 <군함도>가 작품성에 대한 갑론을박 직전, 스크린 과점 비판을 받더니 역사 왜곡 논란에까지 휩싸였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분명한데 일부를 미온적으로 묘사하고 친일파 한국인들을 등장시키며 본질을 흐렸다는 게 주된 비판의 근거였다.

직접 연출한 감독 입장에선 속이 타들어 갔을 게 분명하다. 개봉 직후 이례적으로 "영화를 (선과 악의 대결 등) 이분법적으로 그리게 되면 오히려 강제징용 조선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제대로 담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는 입장을 밝힌 그다. 스크린 독과점 문제에 대해서도 "비판받을 문제"라고 한 바 있다. 보다 자세한 설명이 듣고 싶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류승완 감독이 작심한 듯 일련의 상황에 대한 말부터 시작했다. 가급적 류 감독의 말을 전부 살리려 했음을 미리 밝힌다.

비판의 방향성

"스크린 독과점 문제는 이렇게 해서라도(<군함도>로 이슈화가 되더라도) 해결 돼야지. 그리고 역사 왜곡 문제는 예상치 못한 거였는데 논란은 당연히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사실 캐스팅 자체가 순탄치는 않았다. 일본 쪽 에이전시에 대본을 줬는데 만나기는커녕 배우들에게 아예 전달이 안 됐더라. 좀 읽게만 해달라고 사정했는데도 말이다. 자기네 배우들이 불이익 받을 게 예상되니까 그런 것 같다. 그래서 일본인 캐릭터에 한국배우를 쓴 거다. 

2년 전 답사를 갔을 때 도와준 일본 현지 단체가 (당국의) 연락을 많이 받았더라. 한국에서 그런 영화를 찍는다고 하는데 무슨 일이냐고. 그때부터 쉽지 않겠다고 예상했다. 그리고 스포일러가 될까봐 <군함도>가 친일파, 변절자를 다루고 있다는 건 개봉 전까지 일부러 가렸다. 조선인과 일본인 이분법적 구도가 아니다 이 정도만 말한 거다. 극중 민족지도자 윤학철(이경영 분)이 반전 코드라서 가려야 했다. 관객 분들이 보시고 판단해야 했지. 여전히 이 문제에 대해 불편해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청산되지 못한 친일에 대해서 말이다. 처음부터 꽃길을 걸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영화 <군함도>의 한 장면. 해저 광산의 열악한 노동 조건을 성공적으로 재현하고 있다.

영화 <군함도>는 일본의 민간인 강제징용 만행을 다룬 첫 번째 한국영화다. ⓒ CJ엔터테인먼트


- 친일 문제를 다룬다는 점과 징용 문제를 처음으로 영화로 다룬다는 점에서 조선인끼리 싸우는 설정 등은 관객들이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됐다는 의견도 있었다.
"준비가 안 됐다고 편하게 전달하는 것도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할 수 있는 지적이긴 하다. 나 역시 군함도 역사를 2013년에 처음 알았다. 그간 우리나라에 위안부 피해자 분들을 다룬 영화, 강제로 일본군에 끌려간 걸 다룬 건 꽤 있었는데 (민간인의) 강제징용을 다룬 건 없더라. <군함도>는 특이한 게 군인들이 탈출한 게 아니잖나. 노예처럼 살던 사람들이 탈출한 거다. 이 영화에서 신경 쓰며 한 게 일본인들이 조선인들에게 소리도 잘 안 지른다. 발가벗고 군사훈련 받는데 그냥 보기만 한다. 그들 입장에서 조선인은 가축이지.

내가 취재하며 받았던 충격이 있다. 군함도를 다룸과 동시에 이 시대를 다뤄야 했다. 군함도 탄광사고 났을 때 추가 사고를 막기 위해 근처 작업장 사람들을 매몰시킨 건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다. 나가사키 쪽 대규모 공습도 사실이다. 군함도는 일종의 그 시대의 상징이다. 역사적 사실이 아니었으면 존재하지 않았을 캐릭터를 가지고 본격적으로 이야기 해보고 싶었다. 일본에 부역했던 사람들, 사람 취급 못 받은 이들 사이에 존재한 폭력과 임금착취 등 피의 역사에 대해 말이다.

우리가 위안부 피해자들의 존재를 안 게 언제인가? 1990년대에 김학순 할머니가 고백해서지 않나. 그럼 그 45년 동안 위안부 할머님들은 사라졌던 건가? 이미 있었던 거다. 알려고 하지 않았고, 아는 사람들은 쉬쉬했고 피해 본 분들은 죄진 것도 아닌데 숨기고 사셔야 했고. 변영주 감독의 <낮은 목소리>를 통해 사람들이 충격적 실체를 알게 됐고, 할머니들이 용기 내셔서 우리가 알게 된 거지 않나. 이 영화로 그 시대를 다룬다는 건 단순히 특정한 사건만 갖고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이 모든 걸 힘닿는 데까지 묘사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게 이 소재를 택한 감독의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 몇몇 외국인들은 나치를 다룬 2차 대전 영화들과 비교하더라. 그 안에서도 친 나치가 있고 반 나치가 있듯 일본인 앞잡이를 한 조선인 존재는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긴 하다.
"지금 논쟁이 건강한 방향은 아닌 것 같지만 논쟁이 없는 게 이상할 거다. 영화를 안 보신 분들이 어떤 논쟁을 일으키는 모양인데 시간이 지나며 건강한 방향으로 갈 거라고 본다. 시민혁명을 이룬 우리니까 말이다. 솔직히 일제강점기를 다룰 쉬운 방식이 있잖나. 관객을 어떻게 들끓게 하는지 말이다. 근데 그거야말로 선동이지.

일제강점기를 다룰 때 친일문제를 다루지 않으면 안 될 거라고 생각한다. 방금 질문에 나치 얘기가 흥미로운데 <베를린> 촬영 때 흥미로웠던 사실이 있다. 독일의 어떤 공공장소에선 나치를 언급하면 벌금이더라. 여전히 거기엔 나치를 색출하고 법정에 세우는 상설기구가 있다. 홀로코스트 메모리얼도 있는데 그걸 만든 곳이 당시 독가스 제조회사더라.

군함도 탄광사업으로 이익을 취한 일본 사기업이 있다. 대표적으로 미쓰비시지. 지금은 자기네 구조가 바뀌어서 보상 의무가 없다는데 이게 모두 친일파가 청산되지 않아서다. 2차 대전을 다룬 여러 영화를 보자. <나바론 요새> 등을 두고 정부 차원에서 (영화적 설정으로 기관총으로 사살당한) 히틀러가 저렇게 죽은 게 아니라고 비난하진 않잖나. 일본은 정부 차원에서 내 인터뷰 발언을 왜곡해 전달하고 있다. 친일 문제를 다룬 영화가 더 많이 나와야 한다. 반민특위 때 청산됐어야 하는데 정리되지 않은 과거를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계속 문제제기 해야 한다."

- 강제징용 문제에 소극적이었던 정부와 당시 책임자들에 대한 지적, 영화를 만든 이유 중 그것도 있지 않나.
"(웃음) 그 문제는 제가 주장한다고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건 충실히 묘사하는 것이다. 관객들이 그걸 보시고 생각하길 원했다. 자, (유네스코에 등재돼) 그들은 폐광을 관광지로 삼아 돈을 버는데 우리에겐 아픈 역사가 있는 곳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그냥 넘어갈 일인가? 그렇다면 친일은 무엇인가? 이 물음까지 갈 거라고 봤다. 얼마 전에 일본 정부가 사도광산을 유네스코에 등재하려고 신청했다가 거기도 강제징용과 관련 있는 곳이라 그런지 살짝 빼고 다른 곳을 넣었더라. 분명 이 영화의 영향이라고 생각한다."

'군함도' 류승완 감독 영화 <군함도>의 류승완 감독이 2일 오전 서울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왜 황정민이어야 했나

- 영화 이야기를 해보자. 악단, 깡패, 위안부 피해자 등 여러 캐릭터가 나오는데 주요 서사는 일본과 서민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이강옥(황정민)의 시선에서 전개된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이 영화가 탈출이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사진 처음 봤을 때 감옥 같이 보였다. 물론 감옥으로 사용된 건 아니지만 사용자 입장에선 감옥이 아니라고 해도 속아서 간 사람에겐 감옥이지. 감독은 그 시대 사람들 입장을 잘 알아야하지 않나. 그 분들에게 조선 해방이 어떤 의미였을까. 증언들을 보면 먹을 걸 더 달라, 잠자리가 마른 곳이면 좋겠다 이렇더라.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은 거지. 그리고 미군이 나가사키를 공습할 때 조선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했다더라. 일본을 공격하는 건데 왜 그랬을까. 아무도 자길 보호해 주질 않잖나.
그래서 영화에도 그 폭격 소리를 생생하게 넣으려 했다. 증언을 모아보니 이 분들은 살아서 집에 가고 싶은 거였고 그게 해방이었다. 그래서 난 그 분들을 방벽 너머로 보내드리고 싶었다. 순진한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그게 아니면 이 영화를 만들 이유가 없었다.

군함도 탈출 논의 장면을 보자. 박무영(송중기)이 그 토론에 불을 지피는데 사람들이 그에게 동조하진 않는다. 리더 하나가 이끄는 게 아니라 민중들 하나하나가 자신의 의견을 밝히고 대립하면서 스스로 결정해서 나가는 게 중요했다. 박무영은 훈련된 군인이고, 최칠성(소지섭) 역시 깡패니까 신체적 능력 탁월하다. 일반 조선인의 육체와 가장 닮은 게 이강옥이었다. 자기와 자기 딸만 살리려는 사람이 최악의 상황에 오니 변한다. 딸과 자기가 살려면 같이 살아야 한다는 걸 느끼는 게 중요했다.

이강옥이 이끄는 것 같지만 그게 아니다. 방벽 넘는 상판이 무너지면서 이강옥이 욱일기를 찢어 발판을 마련하지만 한 사람이 올릴 수 있는 게 아니잖나. 모두가 같이 해야 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소리를 강조하기 위해 그 장면만 따로 춘천에서 배우 80명을 불러 다시 녹음했다."

- 군함도를 나가기로 하며 민중이 촛불을 드는 장면은 우리 촛불 집회에 대한 상징 아닌가. 조선인을 억압하는 장면에 물대포가 쓰인 것처럼 보인 것도 같은 맥락 같다. 
"물대포 해석이 재밌다. 실제로 파도가 센 곳이다. 접안이 안 되는 섬이었지. 실제로 우리도 촬영할 때 파도를 물대포를 쏴서 만들었다. 촛불 장면은…. 사실 우리 대본이 완성된 게 촛불집회 전이긴 하다. 춘천에서 한창 촬영하는데 시민 집회에 횃불을 들었다는 뉴스를 봤다. 우리 영화에도 횃불이 등장하고, 이거 분명 얘기가 나오겠다고 예상은 했다.

사실 촛불 장면은 중세시대 비밀회의 같은 느낌을 주려고 한 거다. 물론 촛불시위의 역사가 꽤 오래되지 않았나. 저조차도 효순이-미선이 사건 때부터 촛불 들고 시위에 나갔으니 그 해석은 반은 맞고 반은 영화적 상상으로 나온 거라 보시면 되겠다."

'군함도' 류승완 감독 영화 <군함도>의 류승완 감독이 2일 오전 서울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군함도> 속 촛불 장면은 과연 대한민국 국민들이 일궈낸 촛불혁명의 오마주일까. ⓒ 이정민


류승완의 인장

- 영화의 시작과 끝이 모두 흑백으로 처리됐다. 여기에 대한 해석도 분분하다.
"좋은 질문이다. 일단 영화 시작을 위해 자료를 엄청 봤을 거 아닌가. 사진이 가장 정확하니 그걸 많이 참고했는데 다 흑백이었다. 관객 분들에게 처음 영화를 소개하는 방식은 제가 그 이미지를 처음 본 대로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장면에선 일본의 패망과 2차 대전의 끝이지 않나. 그 느낌을 표현하는데 우리 입장에선 전쟁이 끝난 게 아님을 표현하고 싶었다. 살아남은 소녀의 얼굴을 그래서 담은 거다. 여성이면서 아이는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다. 흑백으로 묻히지만 울음을 딱 멈추고 정면을 바라보는 눈빛으로 '난 살아있다 잊지마라' 그런 말을 현재의 우리에게 건네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 동시에 이번 작품에 류승완의 색깔이 너무 없다는 평도 있다.
"그렇게 말씀하는 걸 인정한다. 근데 그 말은 오래 전부터 들었다(웃음). <아라한 장풍 대작전>(2004) 때도 한 소리 들었고, <짝패>(2006) 때도 들었다. 제 안에 여러 면이 있는 거니까 그렇게 이해하셨으면 좋겠다."

-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덩케르크>도 2차 대전과 탈출을 그렸다는 점에서 <군함도>와 비교될 만하다. 실제로 여러 분석이 나왔고.
"역시 그런 의견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근데 <덩케르크>와는 방향이 너무 다른 영화다. 일제의 강제징용을 다룬 건 이게 처음이다. 비슷한 소재의 영화가 있었다면 나도 참고했을 텐데 말이다. 이 거대 예산에서 언제 또 이런 이야기를 다룰 기회가 있을까. 내 입장에선 욕망을 풀어야 했다. 기대치와 다르다고 말씀할 수 있지만 내 입장에선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이 선택을 바꿀 거 같진 않다."

- 스크린 독과점 논란에선 자유로울 수 없다. 감독 입장에서 이 부분에는 의견을 낼 수도 있었을 텐데.
"의견을 내기엔 이미 너무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일본 관방장관 이슈가 있었잖나. 아, 처음 스크린이 잡혔을 때 당일 아침에 제작사 대표와 함께 너무 놀랐다.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이야? 근데 이미 스크린이 나와 버렸고, 개봉 직후 일정이 막 잡혀 있었는데 그 관방장관이 그런 발언(<군함도>는 사실을 다룬 게 아닌 창작의 산물)을 했다. 일본이 꼬투리를 잡는 상황이 더 커보였다.

독과점 문제는 언론 인터뷰가 이미 잡혀있으니 그때 제 입장을 정확히 밝히려 했다. 당연히 비판받아야 하고 비판하는 게 맞다. 그 비판을 잘못됐다고 할 수 없다. 난 감독이니 배급과 아무 상관없다 말하는 건 비겁한 태도고. 언론이 이 문제에 대해 잘 정리해서 설명하면 제 입장을 그때 밝히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타이밍 문제는 아니고, 지금까지 여러 난리가 났는데 잘못된 건 잘못했다고 얘기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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