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운전사> 포스터. 영화는 '통속적인' 방법으로 80년 5월 광주를 풀어낸다.

<택시운전사> 포스터. 영화는 '통속적인' 방법으로 80년 5월 광주를 풀어낸다. ⓒ (주)쇼박스


1980년 5월의 광주를 다루는 바람직한 방식이라는 게 과연 존재할까. 고결하고 통렬하며, 과감하게 항쟁의 중심으로 돌격하는 영화만이 80년 5월의 광주를 다룰 자격이 있을까. 장훈 감독의 <택시운전사>는 이 같은 질문을 깊이 곱씹게 하는 영화다. 영화는 혁명의 중심으로 돌입하는 대신 주변을 돌아보고, 사건보다는 사람에 집중하기를 선택한다. 광주민주화항쟁을 다룬 많은 작품에서 주요하게 다뤄지는 장면, 즉 무기고 습격과 도청에서의 저항 같은 장면이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러한 선택은 이 영화가 광주민주화항쟁이란 역사적 사건을 지나치게 가볍게 다루고 있다는 비판과 마주하게 한다. 평범한 소시민의 각성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다루는 흔한 방식을 채택하고 있으며 이를 구현하는 기법 역시 전형적이라는 게 대략적인 비판의 요지다. 요컨대 <택시운전사>는 통속적이다. 그리고 이는 상당 부분 사실이다.

이제껏 1980년 5월의 광주를 다룬 많은 영화가 있었지만 나는 <택시운전사>만큼 통속적인 작품을 익히 본 일이 없다. 어린 딸을 둔 아버지의 부성애와 주변인들과의 인간적 유대, 이 같은 코드를 드러내는 방식까지가 모두 그렇다.

영화의 첫 장면, 그러니까 김만섭(송강호 분)이 택시를 몰고 독립문 고가차도를 달리는 장면은 영화의 정체성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카메라는 만섭의 앞에서 CG 처리된 거리를 잡고, 만섭의 어깨너머로 서서히 뒤로 빠져서는 만섭의 뒷모습을 비춘다. 그리고는 다시 만섭의 차를 빠져나와 고가차도, 나아가 거리 전체를 잡아낸다. 이 장면을 보고 있자면 영화가 관객들에게 한마디 말을 건네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지금부터 벌어질 일은 바로 이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하는.

가장 통속적인 이야기로 대중을 지향하는

 딸(유은미 분)을 끔찍히 생각하는 아버지인 만섭(송강호 분).

딸(유은미 분)을 끔찍히 생각하는 아버지인 만섭(송강호 분). ⓒ (주)쇼박스


실제로 영화는 만섭이란 소시민의 성장드라마로 꾸려진다. 영화 초반부 그는 시위하는 대학생들을 향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걸핏하면 데모질이야"하고 불쾌해하는 소위 '꼰대'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절대 변하지 않을 것 같은 그를 영화는 예정된 노선을 따라 차츰 변화하게 한다.

계기는 광주의 비극이다. 푸른 눈의 손님을 광주로 태워다주면 거금 10만 원을 주겠다는 말에 광주로 향한 만섭이 그곳에서 충격적인 사건을 겪으며 이전과 전혀 다른 사람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광주를 떠날 기회가 없지는 않았으나 광주의 사람들과 마음의 선이 연결된 그는 운명의 손길에 이끌려 다시 광주로 운전대를 돌리고 만다.

이런 선택과 다시 돌아간 광주에서 마주한 광경은 만섭을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화하게 한다. 광주는 만섭의 상식과 양심으로 절대 용납할 수 없는 폭력의 피해자이다. 이미 광주와 연을 맺은 만섭은 이러한 상황을 외면할 수 없다. 영화가 만섭의 변화를 충분히 공감 가게 그려낸 덕분에 관객은 그와 감정선을 같이 하며 80년 5월 광주를 느끼게 된다.

다시 오프닝으로 돌아가자. 이 장면에서 영화는 만섭의 성장기임을 드러내는 동시에 가장 대중적인 이야기임을 선언한다. 바로 음악을 통해서다. 이 장면에서 만섭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조용필의 히트곡 '단발머리'를 경쾌하게 따라부른다. 1979년 발표된 이 노래는 당대 가장 유명한 대중가요 가운데 하나로 지금도 많은 이가 기억하는 명곡이다. 영화는 이 노래를 첫 장면에 사용하며 영화가 지향하는 바가 대중들에 있음을 명확히 한다.

두 차례 보여진 낡은 신발의 의미

 오랜 군부독재의 영향으로 폭압적인 분위기를 상징하는 듯했던 다른 군인들과 달리 박중사(엄태구 분)는 영화의 주제를 드러내는 핵심적인 캐릭터로 등장한다.

오랜 군부독재의 영향으로 폭압적인 분위기를 상징하는 듯했던 다른 군인들과 달리 박중사(엄태구 분)는 영화의 주제를 드러내는 핵심적인 캐릭터로 등장한다. ⓒ (주)쇼박스


대중을 향하는 영화가 통속적인 모습을 띠는 건 당연한 일이다. 대중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모두가 잘 아는 감정을 일깨우는 게 가장 쉽게 공감을 자아내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아내를 잃고 홀로 딸아이를 키우는 눈물겨운 부성이며 월세를 내지 못해 주인집 여자에게 머리를 숙이는 아버지의 모습에 애처로움을 느끼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심지어 그 장면을 딸이 목격하게 되었을 때는.

주먹밥으로 상징되는 광주시민의 인심은 어떤가. 사복형사들에게 붙잡힌 재식(류준열 분)이 숨어 있는 일행들에게 도망치라고 하는 장면, <분노의 질주: 더 세븐>의 그 유명한 엔딩신을 오마주한 게 아닌가 싶은 자동차 추격신을 삽입해 관객의 감정을 쥐어짜는 장면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것들이다. 모두가 흥얼거릴 수 있는 유행가처럼 이 영화도 많은 이들이 함께 울고 웃을 수 있는 통속적인 설정으로 가득한 것이다.

이를 보여주는 소품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신발이다. 영화라는 영상예술의 역사에서 신발만큼 한 사람의 삶과 애환을 상징하는 소품도 드물 것이다. 장훈 감독은 영화에서 두 차례에 걸쳐 노골적으로 신발을 부각한다. 그 하나는 만섭 딸의 신발이고 다른 하나는 재식의 신발이다. 낡아빠진 이 신발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소시민의 삶이며 인생과 다름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하여 만섭이 재식의 신발을 집어 들어 드러난 맨발 위에 다시 신겨주는 장면에서 관객은 국가폭력으로 아무렇게나 떨어진 인생에 영화가 최소한의 도리를 하는 듯한 인상을 받기도 한다.

이 모든 장치는 <택시운전사> 이전에도 수도 없이 반복되어온 것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과연 이 같은 수법이 무용한가. 좀 더 세련되고 창의적인 방법으로, 혹은 더욱 진지하고 사실적으로 이야기를 풀어갈 수도 있었겠으나 이만큼 많은 사람의 공감을 살 방법은 떠올리기 쉽지 않다. 영화가 선택한 통속적인 방식, 그러니까 익숙하고 따스하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만큼 효과적으로 관객의 공감을 살 수 있는 방식은 생각하기 어려운 것이다.

소시민의 각성, 누구든지 변할 수 있다는 희망

 광주의 대학생 구재식(류준열 분)과 만난 독일기자 위르겐 힌츠페터(토마스 크레취만 분).

광주의 대학생 구재식(류준열 분)과 만난 독일기자 위르겐 힌츠페터(토마스 크레취만 분). ⓒ (주)쇼박스


영화가 이 같은 선택을 한 이유도 명백하다. 광주민주화항쟁은 사건 발생 37년이 지나도록 한국사회가 완전히 소화하지 못한 아픔으로 남아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 '임을 위한 행진곡'조차 마음껏 부를 수 없었던 현실이 이를 방증한다. 소위 빨갱이에 의한 폭동이라는 일부 극우단체의 주장도 뿌리 깊게 퍼져 있는 게 현실이다. 광주 바깥, 지나간 사건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선 더욱 그렇다.

이러한 현실 가운데 감독은 광주민주화항쟁을 내부인이 아닌 외부인의 시선에서 그려내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보았던 듯싶다. 특별히 대중이 효과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통속적인 방식으로 말이다. 만섭과 같이 가정을 지켜내기 위해 험난한 세상에서 분투하는 시민 개개인이 광주의 사건을 알고 느끼고 변화하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주인공인 만섭은 곧 영화를 보는 우리이기도 하다. 그가 피터를 태우고 광주로 향하지 않았다면 그는 계속 시위하는 대학생을 욕하는 꼰대 어른으로 늙어갔을 것이다.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에서 가장 운수 좋은 날이 가장 재수 없는 날이 되었듯, 만섭의 운수 좋은 날도 가장 재수 없는 날이 되었으나 다시 그 인생 최고의 날이 되었음을 확신한다.

<택시운전사>가 1980년 5월 광주와 관련한 최고의 영화는 아닐 것이다. 사건의 중심으로 곧장 진격해 들어가지도 않았고 광주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잡아낼 의사도 없었던 듯 보인다. 주인공이 광주에서 만난 사람 가운데 선하지 않은 인물이 없었다는 점과 일부 장면에서 희생과 연대의 가치를 과하게 끌어낸 부분이 불편하다는 비판도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다른 무엇보다 이 영화를 극장에서 만난 관객이 제2, 제3의 만섭이 될 가능성을 내다볼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택시운전사>는 보고 권할 충분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택시운전사 장훈 송강호 토마스 크레취만 김성호의 씨네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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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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