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 연분홍치마는 7월 13일부터 10월 16일까지 100일 프로젝트로 '당신이 기다리는 다큐멘터리 제작자가 되어주세요 600'(당기다 600)을 진행합니다. 인권활동과 다큐멘터리 제작을 이어가기 위해 안정적인 활동비를 확보하고 아픈 활동가와 지친 활동가에게 안정적인 쉼을 제공하기 위한 프로젝트입니다. [편집자말]
군형법상 '추행' 죄 폐지를 위한 1만인 입법청원운동 '한국판 소도미법! 동성애 처벌법! 군형법상 '추행' 죄 폐지를 위한 1만인 입법청원운동 선포 기자회견에서 글쓴이 "타리" 활동가의 사진.

▲ 군형법상 '추행' 죄 폐지를 위한 1만인 입법청원운동 '한국판 소도미법! 동성애 처벌법! 군형법상 '추행' 죄 폐지를 위한 1만인 입법청원운동 선포 기자회견에서 글쓴이 "타리" 활동가의 사진. ⓒ 연분홍치마


2003년이었던 것 같다. 당시 장애여성공감에서 상근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당시 대표였던 박김영희 언니가 연분홍치마 사람들을 만나고 왔다고 했다. 어떤 이들이 여성주의 단체 창립을 하려고 하는 데 조언을 구하기 위해서 무작정 만남을 요청했었다고 했다. 나는 당시에 여성주의 문화 운동, 영상 활동에 관심 있는 이들이 어떻게 장애여성단체에까지 연락을 취했을까 의아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아마도 연분홍치마가 가진 이러한 문화는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어떤 사려 깊음, 조심스러움, 철저한 준비, 주변 마음 살피기, 정당성을 내부로부터 과신하지 않고 동료들을 만들고 그들과 함께 만들기와 같은 태도의 토대인 것 같다.

연분홍치마 활동가들, 특히 김일란 감독과 가까이 지내면서 자주 만나지 못해도 중요한 의견을 나누는 동료로 지냈다. 그러면서 다큐멘터리를 만든다는 것, 특히 그것이 사회운동과 결합한다는 것이 가진 무게를 알게 되었다. 사회운동으로서의 다큐멘터리는 사람을 조직하고, 서로 지지대가 되고, 주인공과 말을 함께 고르고 전달하고 주장하는 것이라는 점을 느낀다. 게다가 영상을 찍고 편집하고 상영하는 행위를 위해서 영상에 담기지 않는, 영상에는 담겼으나 편집이 된 수많은 시간과 대화와 기다림, 협상, 갈등, 부대낌, 그리고 결심 같은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상에 담기지 않는 이것들이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진짜 재료라고 알 수 있었다. 이 과정을 통해서 활동가로 살아가는 나에게 좀 더 겸손함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실제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 공식화될 수 있는 것, 갈등과 협상의 결과물들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훨씬 더 많이 기다리고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됐다.

< 3XFTM > <레즈비언 정치도전기> <종로의 기적> 커밍아웃 3부작은 한국 성소수자 운동의 역사를 함께 하는 이슈들이었다. 연분홍치마는 당시 성소수자 운동이 제기해야 할 이슈들, 얼굴들, 삶의 이야기들을 용감하고 끈기 있게 그리고 겸손하게 담아왔다.

페미니즘으로 보는 <두 개의 문> 두 개의 문 개봉당시 "페미니즘으로 보는 <두 개의 문>" 기획 상영회에서 글쓴이 타리 활동가와 김일란 활동가가 함께 관객과의 대화를 하고 있다.

▲ 페미니즘으로 보는 <두 개의 문> 두 개의 문 개봉당시 "페미니즘으로 보는 <두 개의 문>" 기획 상영회에서 글쓴이 타리 활동가와 김일란 활동가가 함께 관객과의 대화를 하고 있다. ⓒ 연분홍치마


<두 개의 문>은 국가폭력에 대해서 페미니스트 영상활동가들이기에 가능했던 관점과 감수성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다큐멘터리 상영활동이 어떻게 용산참사와 같은 사회문제를 다시 한번 환기하고, 어떻게 관객의 정체성을 바꿀 수 있는지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였다. <공동정범>의 제작과정은 감히 흩어졌던 사람들을 모으고, 문제를 다시 직면할 수 있게 결정적인 공간을 이 다큐가 만들어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에도 쌍용차 노동자에 관한 다큐 <안녕 히어로>와 통신설비 하청 노동자에 관한 다큐 <플레이온>을 만들고, 용산참사 진상규명 및 재개발 제도 개선 위원회 활동, 416연대 미디어위원회 활동,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 미디어팀 활동 등 셀 수 없는 활동들을 연분홍치마 구성원들이 해나가면서 무수한 결정들을 함께 책임져왔을 것이다.

이러한 작업을 가까이서 살펴보면서 인권활동가로서의 영상활동가에 대해서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단지 기록자이거나 다큐멘터리 '감독'이 아닌 영상활동가라는 것은 그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과 관계와 결정에 대한 책임을 공유하는 존재들이다. 그 영상이 기록하고 있는 것들은 감독의 성과이자, 연분홍치마가 헌신적으로 활동해온 결과이기도 했고, 그 현장을 함께 만들고 기억하고 계승하는 이들의 역사이기도 했으며 운동을 살려내는 불쏘시개가 되기도 했다. 사람들은 그렇게 또 현장을 지키고 운동을 이어나갈 힘을 얻었다.

2014년 서울시청 무지개농성 타리 활동가와 연분홍치마도 함께 참여했던 서울시청 무지개농성.

▲ 2014년 서울시청 무지개농성 타리 활동가와 연분홍치마도 함께 참여했던 서울시청 무지개농성. ⓒ 연분홍치마


하지만 영상활동가와 이러한 단체가 처해있는 재정적인 현실은 운동을 같이 만들고 결정에 대한 책임을 공유하고 있는 것에 걸맞지 못한 경향이 있다. 연분홍치마와 같은 영상활동가들의 활동을 통해서 우리의 운동이 기록되고 있고, 언어가 다듬어지며, 대중들에게 영상의 언어로 전해지고 있고 앞으로 이 운동이 다할 때까지 영상활동가들의 존재가 존중받고 빛났으면 좋겠다.

헌신적으로 활동했던 다큐인의 박종필 감독이 병환으로 세상을 떠나고, 연분홍치마의 김일란 감독 또한 긴 투병 생활을 시작했다. 친구로서, 동료 활동가로서 지금 가장 하고 싶은 말은 영상활동가라는 존재에 대해서 우리가, 사회가 어떻게 인식하고 존중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연분홍치마가 겸손하게, 하지만 온 마음을 다해서 제안하는 '당기다600' 프로젝트의 의미가 잘 읽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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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 연분홍치마는 여성주의 감수성을 바탕으로 현장에서 연대하며 다큐멘터리를 제작합니다. 마마상, 3XFTM, 레즈비언 정치도전기, 종로의 기적, 두 개의 문, 노라노, 공동정범, 안녕히어로, 플레이온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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