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 한 편의 영화로는 알 수 없는 영화감독만의 세계가 있습니다. 한 시대를 풍미한 국내외 영화감독들을 집중 조명합니다. 관심 있는 여러분의 참여도 환영합니다. [편집자말]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이름을 각인시킨 영화 <하나비>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이름을 각인시킨 영화 <하나비> ⓒ 기타노 다케시


일본의 기타노 다케시 감독이 한국과 전 세계에 이름을 제대로 알린 건 1997년 <하나비>를 통해서였다. 그해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이었던 <하나비>는 야쿠자를 소탕한 형사가 이후 보복을 받는 과정에서 겪는 일을 그린 작품이다. 딸을 잃은 데다 동료는 불구가 된 것에 대한 복수로 범인을 죽이고 경찰을 그만두지만 삶을 녹록지 않다. 아내가 시한부 판정을 받으면서 활로를 찾기 위해 형사는 일탈을 고민한다.

이 영화가 국내에서 첫 상영된 것은 1997년 2회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서였다. 해방 이후 수십 년간 일본 영화가 묶여 있던 시절, 1996년 시작된 부산영화제는 금기된 영화들을 당당히 볼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하나비>의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모든 상영이 매진돼 당시 부산영화제는 5천석 규모의 야외상영장에서 특별상영까지 마련해야 했다.

감독이면서 주인공 역할로 나오는 기타노 다케시는 평소의 모습과는 다르게 상당히 무표정하고 진지한 인물로 나온다. 그해 부산영화제에서 그를 만난 관객들 사이에서 팬덤도 형성됐다. 모래사장과 바다가 이등분된 장면은 빼어난 영상미를 자랑한다. 그를 존경하게 된 감독들이 오마주로 활용하기도 했다.

영화에 나온 그림의 의미는? 내가 그렸는데 전시할 곳이 없어서

 영화 <기쿠지로의 여름> 한 장면

영화 <기쿠지로의 여름> 한 장면 ⓒ 영화사 진진


기타노 다케시는 일본의 대표적인 연예인이기도 했다. 일본에서는 비트 다케시라는 코미디언으로 더 많이 알려졌기에 그가 감독으로서 인정받는 게 일본에서는 어리둥절할 정도였다. 하지만 적어도 한국에서는 훌륭하면서 유머감각까지 갖춘 매력 있는 감독으로 인식됐다. 

그의 유머 감각은 당시 <하나비>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에서 유감없이 발휘됐다. 한국 관객들의 진지한 질문에 솔직하면서도 재밌게 답변해 웃음과 박수가 같이 터져 나올 정도였다.

관객 : 당신의 영화를 보면 조폭과 형사의 싸움에서 조폭들이 하나같이 한 대만 맞아도 코피를 흘린다.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냐?
기타노 다케시 : 아마 다들 혈압이 높아서 그런 것 같다.

관객 : 영화를 보면 그림들이 나온다. 누가 그린 그림이며 어떤 의미가 있나?
기타노 다케시 : 내가 그린 그림이다. 전시를 하고 싶은 데 전시회를 열기가 어려워 영화를 통해 전시한 거다.

당시 관객과의 대화에서 그가 빼놓지 않고 하는 말이 있었다. 98년 월드컵 한일전을 남겨 놓고 있는 시기였는데, 제발 일본이 월드컵에 갈 수 있도록 한 번만 져 달라고 읍소하는 것이었다. 무대 위에 올랐을 때 그는 감독이었지만 코미디언의 기질을 그대로 드러낸 특이한 감독이었다.

<기쿠지로의 여름>은 기타노 다케시의 코믹 재능이 빛을 발한 작품이었다. 역시나 감독의 명성으로 인해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돈 벌러 나간 엄마를 찾아 가려는 어린 소년과 소년이 걱정된 이웃집 아줌마가 전직 야쿠자 남편을 동행시키면서 철업는 중년 남성과 어린 소년의 여향을 웃음과 애잔함으로 그린 영화다. 영화 속 음악이 좋다는 평가를 받았고, 대중적인 재미로 인해 기타노 다케시 팬들의 기대를 흡족시켰다.

 영화 <자토이치>에서 맹인 검객으로 나온 기타노 다케시

영화 <자토이치>에서 맹인 검객으로 나온 기타노 다케시 ⓒ 영화사 진진


사무라이를 다룬 <자토이치>는 <7인의 총잡이>를 패러디한 작품으로 도박과 마사지로 생계를 이어가는 맹인 검객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한 게이샤 자매와 함께 마을에서 군림하는 세력과의 한판 대결을 줄거리로 하는 영화다. 신나는 군무가 나오는 등 비장하면서도 경쾌함이 있는 따뜻한 결말의 작품이다. <자토이치>는 2003년 베니스영화제 관객상과 작품상을 수상하며 다시금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2012년 작품인 <아웃레이지 비욘드>는 2010년 만든 <아웃레이지> 후속작으로 그해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에 상영됐고 2013년 아시안필름어워즈 감독상을 수상하면서 감독의 건재를 확인시켰다. 야쿠자 조직간 배신과 응징 등의 싸움을 통한 자멸을 그린 영화로 올해 <아웃레이지 최종장>을 완성하며 3부작으로 마무리했다.

감독이면서 주연배우, 절제된 '폭력의 미학'

 영화 <아웃레이지>의 한 장면

영화 <아웃레이지>의 한 장면 ⓒ 기타노 다케시


기타노 다케시 작품의 특징은 감독이 주연으로 나서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소재나 배역에서 일본의 폭력조직 야쿠자를 빼놓을 수 없다. 절제된 연출은 평가받고 있으나 폭력적인 장면이 많고 잔인하다는 지적이 자주 따라 붙는데, 피 튀기는 장르영화지만 무표정한 모습의 주연 기타노 다케시는 비장미마저 느끼게 한다. 감독의 지지자들이 매력을 갖는 부분이다.

기타노 다케시는 세계 작가영화의 주요 감독으로 분류되고 있지만 일본 내에서는 코미디언 비트 다케시의 명성을 넘지 못한다는 평가가 많다. "영화제에서만 팔리고, 극장에서는 안 팔리는 감독"이라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에 대해 기타노 다케시 감독은 "TV는 내 마음대로 하면 되지만 영화는 관람하는 데 돈이 드니까 하고 싶은 걸 억누르게 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따라서 폭력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하는 것은 그가 잘 할 수 있고, 말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비치기도 한다.

하지만 일본에서의 평가가 어떻든 한국에서는 꽤 멋진 감독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은 분명하다. 꽤 진지하면서도 최대한 말없이 무표정으로 일관하는 영화 속 그의 모습이 기타노 다케시 특유의 '폭력의 미학'으로 자리잡는 모습이다.

기타노 다케시 하나비 기쿠지로의 여름 자토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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